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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신 이후의 신을 생각한다
역자가 말하다_『재신론』 리처드 카니 지음 |
리처드 카니라는 이름도 『재신론』이라는 책 제목도 매우 생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리처드 카니가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독자의 이목을 끈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 2004)이나 『현대유럽철학의 흐름』(한울, 2021)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재신론』의 저자는 우리에게 더는 생소한 사람이 아니다.
본서의 저자는 현재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에 찰스 B. 시릭(Charles B. Seelig)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다. 카니 교수는 그동안 우리에게 현대유럽철학을 잘 소개한 인물 정도로 알려졌지만, 『재신론』을 기점으로 독창적인 사유를 펼치는 우리 시대의 사상가로 주목받는 학자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현재도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를 주제로 여러 편의 박사학위논문과 단행본 연구서가 나오기도 했다. 철학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연구 대상으로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카니 선생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사유의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8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는 주디스 버틀러 등과 함께 대회 전체 주 강사로 연단에 서기도 했고, 필자도 당시 그의 강연을 직접 들었는데, 그때 그의 강연 주제도 재신론(Anatheism)이었다.
‘재신론’은 카니 선생이 직접 벼리어낸 개념이다. 재신론은 『간추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도 정의하듯이, 접두어 Ana의 “본래대로 다시, 새로이”라는 의미를 활용한 말이다. 즉, 재신론은 신과 신을 믿는 신앙을 다시, 또 새로이 사유하는 사유와 실천의 운동을 뜻한다. 그럼 왜 우리는 신을 다시 사유하는가? 카니는 서구 사회에서 오랫동안 패권적인 지위를 누린 모든 것의 신(Omni-God), 곧 전-지(Omni-science), 전능(Omni-potence), 전재[또는 편재](Omni-presence)의 신, 곧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신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또 새로이 신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니에 의하면 이런 신은 사실 죽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신의 죽음 선언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지목된 이 신은 이론적으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상황에서 이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는 신은 고통받는 인간의 심정을 알지 못했고, 그 고통받는 인간을 구할 힘도 없었고, 또 사람들이 고통받는 그 장소에도 없었다. 바로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신 이후의 신이 누구이고, 이 새로운 신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재신론의 모험이자 도전이다.
이전의 신은 현실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카니가 다시 사유한 새로운 신은 이방인으로서의 신이다. 그는 새로운 신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이 비판한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에 의존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는 적어도 자신과 서구인들이 속한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유일신 전통의 이야기에서 예외 없이 이방인으로서의 신이 등장한다는 점을 포착하는 해석학적 정당화를 시도한다.
그의 특유의 이야기 해석학에 의하면, 아브라함 종교 전통의 경전과 그 해석 전통에서는 예외 없이 이방인의 부름과 그에 대한 내기(wager)로서의 응답으로 신과 신앙이 재형성되는 이야기를 신과 신앙이 새로이 정립되는 사건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이제 우리가 사유해야 할 신은 이방인인 타자이고, 이 타자에 환대하는 내기를 거는 신앙이 새로운 신앙의 모형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도 이방인으로 차별받는 자, 가난한 자와 같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태복음 25:40)”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카니에 의하면, 이런 식의 메시지는 꼭 아브라함 종교만이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런 환대·적대의 선택지는 비단 서구 사회에만 놓인 게 아니다. 나날이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 혐오와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에 갇힌 우리 사회 앞에 타자에 대한 환대·적대라는 선택지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다. 여기서 환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카니의 『재신론』은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또 이것은 비단 종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방인의 신적 목소리는 종교·비종교, 유신론·무신론을 가로질러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모든 타자에게서 비롯하는 울림이기 때문이다. 이 울림 앞에 서성이는 모든 이들에게 『재신론』은 적지 않은 도전과 위로를 줄 것이다.
김동규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