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트래디셔날 닥터 3

[참도리]

"뉴스특보입니다. 현재 강도 10.5 규모의 거대한 대지진이 미국의 서남부지역을 강타했습니다. 대지진은 서남부지역인 캘리포니아, 네바다, 아리조나 주가 인접하는 지점에 일어났으며 건물이 붕괴하고 도로가 갈라지고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등 온갖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반정부군에 의해 국지간 전투가 미국방부를 상대로 일어나고 있습다.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지에서 매복한 반정부군은 계속되는 미국정부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총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잠시후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미국에 대지진이 일어나 수만 명이 죽고 다치는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한편으로 중동국가에 민주화의 바람이 일어나 수십 개의 중동국가들이 독립시위를 하거나 내전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다. 물론 미국 서남부 대지진 보도 후에도 미국 내전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따랐다.

 강태신 요원은 전한수 국장의 긴급호출을 받고 곧장 국가정보원 본부로 차를 몰았다.  곧바로 최정혜 요원에게 호출한 태신은 그녀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뉴스 안보셨어요? 지금 미국 서남부 대륙이 10.5 규모의 강진에 맞고 난리가 났어요. 지진이 일어난 시점은 미정부에 대항한 파머스 반정부 연대가 내전을 촉발한 시기와 일치해요. 대부분의 반정부군이 현재 지진이 일어난 장소에 주둔해 있었다고 하고요."

최요원과 통화를 마친 태신은 곧장 라디오를 켰다. 그는 반정부군이 구성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라디오의 긴급뉴스진행에 따르면 미국 내전의 소식이 어제였고, 오늘 거대한 지진이 미국 서남부를 강타한 사실을 한꺼번에 듣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국내전과 지진이 일어났는데, 왜 전 요원들을 집결해야 하는 거지? 전세계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전한수 국장은 국가정보원의 대회의실에서 모든 요원들을 모아 놓고 중요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각 국가에 현정부에 반하는 테러범들 및 반정부집단이 결집되고 있습니다. 미국에 내전은 그러한 범죄단체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업무들은 일단 접도록 하세요. 그리고 전 요원들은 모두 대한민국 정부에 반(反)하는 모든 단체들을 수색하고 검거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발표를 마친 전국장은 강태신을 불렀다.

"강요원, 자네 심정은 잘 알겠지만, 이정환 요원은 그만 잊도록하게. 그리고 앞으로 임연주와  성남실종사건에 대해서는 일체 수사를 접게, 그렇지 않는다면 자네는 그 즉시 해고야."

강태신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대로 손을 놓을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전한수 국장님.”

돌아서 가려고 하던 국장이 고개를 반쯤 돌리며 귀찮은 듯 물었다.

“왜?”

“정부에서 실시한 순간이동 프로젝트는 국가기밀인데, 무엇 때문에 저보고 캐오라고 하신 겁니까?”

전국장은 순간 멈칫하며 놀란 기색으로 강태신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국가에서 하는 순간이동 프로젝트라니…”

 강태신은 그 순간 모든 국가정책, 헌법, 국가기관, 제도, 관공서들이 모두 잘 꾸며진 거대한 무대와 그 곳 모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진짜처럼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식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자신의 인생 그대로를 사는 한편의 인간극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있는 전한수 정도의 위치라면 그 모든 것들이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의 행동과 눈빛에는 연기하는 자의 어색함이 곁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국가에서 순간이동프로젝트를 실시한다는 게 아니라, 예전에 미국에서 실시한 필라델피아프로젝트가 떠올라서 말씀 드린 겁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고차량들은 미국정부가 주도했던 순간이동프로젝트와 한번 연관을 시켜보는 것이죠.”

“허 참, 사람, 별소리를 다하는군.”

“국장님, 별소리라뇨. 저보고 그 사건을 맡기신 건 국장님입니다.”

“그래, 이제 그 사건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니 그만 접고 한국 내 반정부 활동 자들이나 검거할 준비나 하게.”

“알겠습니다.”

서산 가야산 비밀기지에서 제임스 블레이드는 그의 사무실에서 좀처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70인치 되는 벽걸이 모니터 앞에 서서 화면의 어떤 지역을 표시하는 신호불빛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신호의 불빛은 한참 서울 신길동에 위치해 있었다.

제임스 블레이드는 그가 지휘하는 특공대를 소집해서 새라 캠벨에게 순간이동 장치를 이용해 김덕수를 다시 생포할 것을 명령했다. 새라 캠벨은 자신의 연구실에 설치된 순간이동장치를 가동했다. 육중한 기계음이 들려오며 모터가 회전하는 소리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순간이동 포탈 앞에 선 특공대 다섯이 중무장한 가운데 제임스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새라는 붉은 색 순간이동 실행버튼을 눌렀다.

한참동안 딸 민예와 아내 은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김덕수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 거리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그는 머리가 한참 아프던 사이에 문득 그가 있던 비밀기지에서 자신의 뇌를 수술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이런 내가 의식이 없는 틈에 놈들이 내머릿속에 뭔가를 넣었구나.'

그는 빠른 판단을 내리고 이산인 원장을 찾아 중랑구 진산한방병원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김덕수의 아내 윤은자는 갑자기 밥먹다가 화장실로 간 남편이 걱정됐다. 그녀가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집안에 갑자기 검정 전투복 슈트를 착용하고 헬멧을 쓴 다섯명의 군인들이 나타났고, 윤은자는 기겁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덕수의 딸 민예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덕수는 이산인 원장실 문앞에 섰다. 문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김덕수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산인과 최유정, 이효정, 그리고 임연주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김덕수가 나타나자 이산인이 자리에서 벌떡일어나며 그를 맞았다. 뒤에 임연주가 김덕수를 보자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분은..."

임연주가 일어서자 이효정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분도 우리와 함께하는 분이세요."

임연주가 다시한번 놀라운 얼굴로 김덕수를 바라보자 김덕수는 반가운 듯 아픔을 참는 쓴 미소를 지으며 연주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연주양,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네에 아저씨..."

연주는 손을 들어보이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반면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셨군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이산인은 김덕수의 팔을 손으로 살짝 감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원장님 그 비밀기지의 녀석들이 제 머릿속에 뭔가를 넣은 것 같아요. 좀 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뭐라고요? 머릿속에 뭐가 있다고요? 혹시..."

"혹시라면 뭔가 떠오르시는게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일단 MRI실로 가시죠."

김덕수는 진산한방병원에 최첨단 의료기기가 있어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단 몇분의 검사 후 김덕수의 머리에서는 작고 검은 마이크로 칩이 발견됐다. 놀란 표정을 일관하던 이산인은 곧장 김덕수를 수술대에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수술대 위로 오른 김덕수에게 이산인은 마취제를 주사한 뒤 일분이 지나자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은 길지 않았다. 내과를 전공한 이산인은 김덕수의 머릿속에 있는 칩을 손쉽게 제거했다.

수술 후 원장실에 최유정을 찾은 이산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유정에게 귓속말을 했다.

"칩이 김덕수의 머릿속에서 발견됐어요. 내용은 위치추적장치인데, 비밀기지에서 심어진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 여기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겠습니다."

"연방정부요원들이 곧 들이닥칠 수 있단 말씀이시군요."

"네, 그런데 김덕수의 가족들이 걱정이군요. 그가 방금 집에서 이동해 왔는데,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는 연방정부요원들이 만에 하나라도 악심을 품고 김덕수의 가족들에게 해를 입히면 어떡합니까?"

수술이 끝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김덕수는 마취가 풀려 이산인의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산인이 인기척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김덕수는 불안한 표정의 여운을 남긴 채 이내 사라져 버렸다.

신길동 집으로 돌아온 김덕수는 집안이 쑥대밭처럼 난장판이 되어있자 극도로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어질어져 있는 집안 구석구석을 계속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가족들이 사라진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김덕수는 극도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점점 분노로 돌변하고 있었다. 그는 들끓는 용광로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듯 포효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갑자기 괴성을 지르자 사방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진동이 일어났다. 집안의 물건들이 한 순간에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부서지고 깨지기 시작했다.

김덕수의 눈빛에는 이성은 없었고, 오직 살기로 가득했다. 그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다짐과 함께 불꽃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산인 원장은 갑자기 사라진 김덕수가 매우 걱정됐다. 가족들에게까지 위험에 처해서 돕지 않으면 큰일이 날수도 있었다. 이산인은 곧장 박도진을 호출했다. 도진은 이산인의 문자를 받고 곧바로 진산한방병원으로 순간이동되어 나타났다.

"도진, 지금 김덕수의 가족이 미군의 비밀기지로 납치 당한 것 같아. 김덕수가 그걸 알고 순간이동해서 다시 비밀기지로 갔을 거야. 그런데 아무래도 내 예감이 좋지 않아. 지난번 그 비밀기지에서 빠져나올 당시 집중이 잘 안되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다고 하더군. 이번에도 갑자기 몰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빠져나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어. 자네가 가서 그를 구해 주게."

"알겠습니다. 그 비밀기지는 그가 제게 준 영상에 있는 그곳이겠군요."

"그래. 근데 장소를 알아야 갈수 있나?"

"아닙니다. 그를 생각하면 바로 그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 조심하게."

"네."

서산 가야산 연방정부 비밀기지의 지하 10층 밀실에 갇혀 있던 윤은자는 딸 민예를 꼭 안은 채 두려움에 바르르 떨며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밀실 문의 작은 창 밖에는 무장을 한 세 명의 미군들이 복도를 지키고 있었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철문의 경첩이 한꺼번에 뽑히면서 강한 압력을 받은 문짝이 폭발을 일으키며 통째로 떨어져 날아갔다. 거침없는 속도로 뱅글뱅글 도는 문짝이 밀실 문 앞에 서있던 군인을 치고는 밀실 문 앞 천장에 꽂혔다. 

잠시 후 떨어진 출입문을 둘러싼 외벽들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출입문과 벽이 무너진 통로로 분노로 가득한 김덕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남은 두 명의 군인은 김덕수가 다가오자 당황한 듯 M4 카빈 소총을 들어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두 군인의 총구에서 노란 불꽃이 일어나며 총알들이 김덕수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김덕수는 분노로 가득한 강렬한 눈빛으로 날아오는 총알들을 노려보자 수십 개의 총알들이 굴곡을 이루며 양쪽 벽에 모두 박히기 시작했다.

김덕수는 양손을 들어올려 두 주먹을 쥐더니 양옆으로 확 펼쳤다. 그러자 갑자기 두 군인은 맥없이 공중에 들린 채 양쪽 벽으로 날아갔다.

철퍼덕

엄청난 힘에 의해 벽에 머리가 부딪힌 두 군인은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김덕수가 밀실 문을 향해 주먹 쥔 오른 손을 끌어당기자 밀실 문이 잡아당겨져 통째로 뽑혀 나갔다. 밀실 안에 있던 은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실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김덕수는 은자와 민예를 발견하자 두 눈에 있던 살기가 차츰 풀리기 시작했다.

"여보."

놀란 표정의 은자는 김덕수를 보고 혼란스러운 모든 감정을 담아 외쳤다.

전 기지에 비상 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여러 군인들의 군화발소리가 들려오자 김덕수는 아내와 딸을 안은 채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도장의 영대를 생각했다.

그러나 김덕수는 뜻대로 순간이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매우 당황해 하며 계속해서 생각에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몸은 여전히 밀실 안에 아내와 딸과 함께 있었다. 그때 군인들이 무너져 내린 시멘트 덩어리들을 밟으며 뛰어오고 있었다. 김덕수는 그들과 계속해서 부딪힌다면 분명 아내와 딸에게 위험이 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속히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비밀기지 밖 해미 가야산의 수풀을 생각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거품처럼 사라지며 가야산 숲 속 어딘가에 떨어졌다. 어두워진 산야에 달빛 조차 비추질 않아 캄캄한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윤은자는 그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제임스 블레이드와 두 명의 수행 요원, 그리고 중무장한 특공대원들이 문짝이 떨어진 채 비어있는 밀실 안으로 들어섰다. 밀실 안으로 들어온 제임스의 얼굴빛은 마치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들어와 이런 엄청난 일을 했냔 말이야."

한 대원이 통제실과 통신을 하더니 제임스에게 보고했다.

"통제실에서 인공위성 사진에 세 명의 민간인이 가야산 주변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합니다. 도주한 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노한 제임스블레이드는 주머니 속 아이폰을 꺼내 연구동의 새라 캠벨에게 전화를 걸었다.

"캠벨 교수 당장 순간이동장치를 가동해서 여기 나를 비롯한 특공대원들 모두를 가야산에 있는 김덕수 그 놈에게 당장 데려다 주세요. 바로 통제실과 연결해 위치를 파악 하시면 될 겁니다. 빨리 해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실행 가능합니다. 제가 지금 순간이동장치 확인을 하던 중이었으니까요."

새라는 곧 통제실과 연락을 취한 뒤 제임스와 특공대가 있는 위치와 김덕수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좌표의 위도를 입력시킨 후 순간이동장치의 붉은 색 실행 버튼을 눌렀다.

덕수는 다시 한번 산을 벗어나려고 순간이동할 장소를 생각했지만, 며칠 전 탈출 때처럼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그때였다.

김덕수가 한참 서있던 가야산 숲으로 갑자기 번개가 내리치 듯 불빛이 번쩍하며 미군과 제임스블레이드와 두 수행요원이 나타났다. 마침 그들은 김덕수의 가족들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발견되지 않았고, 덕수는 아내와 딸을 안은 채 숨을 죽이며 나무 뒤에 숨었다. 특공대원들이 어두운 숲을 향해 여러개의 라이트를 켜며 사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서치라이트 불빛이 사방을 비추며 어두웠던 주변을 대낮처럼 밝히기 시작했다. 김덕수와 윤은자, 김민예는 갑작스러운 강렬한 불빛 때문에 순간 앞을 가늠하지 못했다.

특공대와 제임스는 나무 뒤쪽으로 길쭉한 그림자가 늘어뜨려져 있자 대번에 김덕수의 가족인 것을 깨달았다.

김덕수 역시 불빛으로 자신들의 노출된 것을 알고 곧장 뒤로 돌아 아내와 딸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대원들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제거해."

미군 M4 카빈소총에서 불꽃이 일어나며 수십알의 탄환들이 불을 뿜으며 날아갔다. 정신없이 도망가던 김덕수는 아무 대책도 없었다. 좀전까지 사용했던 도술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날아오는 총알에 벌집이 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강력한 힘을 지닌 무형의 에너지가 거대한 칼모양을 형성하며 수십알의 탄환들을 무썰 듯 베어 버렸다. 총알들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고 정체모를 힘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흙바닥과 풀위로 후두둑하며 떨어졌다.

제임스 블레이드는 총알들이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거나 땅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자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김덕수는 오른쪽 방향에서 누군가 달려오자 경계심으로 쳐다보다가 점점 가까워지자 한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아 ! 박도진."

박도진은 방긋 웃으며 김덕수의 팔을 붙들었다.

어느새 박도진과 김덕수, 윤은자와 김민예는 도진의 숙소의 거실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김기사님, 오늘부터 여기서 계셔야 합니다. 다른 곳은 위험하고 지금 진산한방병원에서도 모두 자리를 비우고 떠난 상태에요."

김덕수는  도진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매우 고마워 아직까지도 감격에 눈시울이 젖어있었다.

"아까, 정말 고맙네. 자네 아니었으면 우리가족이 모두 황천길로 갔을 거야."

"별말씀을요. 이산인 원장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셨으면 김덕수 기사님을 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쨌든 모두에게 고맙네요."

김덕수는 다친 곳 없이 가족과 함께 무사히 돌아와서 기쁜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가실 줄 몰랐다.

제임스 블레이드는 요원들을 풀어 김덕수의 위치추적기가 잠시 머물러 있던 진산 한방병원으로 행정안정부의 허가 법인 조사원으로 위장한 한국인 요원을 보냈다. 한국인 요원은 한방병원을 다니며 시설 부적격 부분을 확인 하는 척하면서 김덕수를 찾지만 김덕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병원에는 새 원장이 그를 맞이 했고, 본래 원장인 이산인은 바로 어제 새 원장에게 법인 양도를 끝낸 후 떠난 상태였다. 

미국 대지진이 일어나기 1년전 인 2010년 8월 15일 미국

캔자스 강 위로 비치는 밤하늘의 큰 달은 적막하고 어두운 산야를 훤히 밝혔다. 한차례의 거친 회오리가 불어왔다. 강물의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달모양도 함께 흔들렸다. 도시가 인접한 강기슭에 목재로 정교하게 건축된 오두막집은 산과 강에 어울려 제법 운치를 자아냈다. 집 지붕의 굴뚝에서는 늦가을의 추위를 실감케 할만한 연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성을 수십년간 연구해온 나사(NASA) 우주국은 아직도 화성에서 인간이 삶을 영유할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직 달 이상의 행성에 땅을 밟아본적이 없는데도 1%의 가능성을 두고 끊임없이 탐사하고 개발하려고 노력하지요. 하지만 나사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허구헌날 우주멀리 떠다니는 별들이나 찍어대는 일 말고... 상위 1% 엘리트 집단들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그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구매한 티켓으로 화성이나, 달로 가서 살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따스한 화로 앞에서 알록달록한 짙은 갈색 카페트 위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열명 남짓의 남녀들은 세상에 대한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 모임의 대화를 주도하는 남자는 검은 수염이 덮수룩하고 쌍커풀이 짙은 생김새에 편해보이는 쉐타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대지진, 북극의 해빙, 온실효과를 들먹이며 세상이 멸망하기 전 자신들의 탈출구를 찾을 생각만 합니다. 인간의 입에서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니 자꾸 줄어가는 산소와 온실효과로 인한 북극의 해빙의 문제를 들고, 세계인구를 10억으로 줄여야 한다는 둥, 미치광이 얼간이 같은 소리만 내뱉고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야 국민을 위하고 어쩌고 저쩌고 위선떨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미 앨리트들 간에 모종의 계획이 다 있는 겁니다. 어떤 영화는 우주로 로켓타고 가는게 아니라 지구가 멸망해도 버틸수있는 배를 만들어서 지구의 반죽이 완전히 끝날때까지 배에서 기다렸다가 나온다는 허황된 이야기나 펼치고 있고 말입니다. 천재지변이 영화감독에게는 무지 우습게 보였나 봅니다. 땅이 쫙쫙 갈라지는데도 주인공은 살아남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풋하며 웃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긴 갈색 생머리의 미모의 여인이  한참 머릿속에 담아놓은 생각을 터뜨리 듯 말문을 열었다.

"헐리웃 영화에서 계속 봇물처럼 나오는 주류가 뭐겠어요? 정체성을 잃고 정부로부터 쫓기는 특수요원의 이야기나,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아무런 존재감없이 세상에 노출된 사람의 이야기는 지배에서 벗어나면 홀로 남아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CSI같은 특수요원이나 특검수사부 등 다양한 수사시리즈를 통해 공권력의 힘앞에 저항할 자가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고요. 또한 영화에서 그들의 종교를 상징하는 심볼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 심리적으로 우리의 뇌속에 세뇌되어 훗날 현실로 드러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의도가 깊게 깔려있습니다."

그녀의 힘찬 주장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듯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유럽계통의 서양인 사이에 앉아 있던 한 동양인 남자가 그 자리에서 기립을 하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신분을 기록에 지운다해도, 우리끼리는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조직을 형성해야 합니다.이제 우리도 음모론을 더이상 음모라고 치부할게 아닙니다. 이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로서 대접하고, 우리스스로 언론을 형성해, 그들에게 대항해 나가야 합니다.  더이상 부유계층의 횡포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힘을 키워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놈들이 더이상 큰일을 꾸미기전에..."

그러자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기된 분위기를 이었다.

"상위층의 음모는 이미 백년전부터 이어져왔습니다. 그 사이에 아무렴 반대세력들이 없었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대대로 그들의 성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하며 세력을 길러왔습니다. 여러분들을 이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우리의 세력을 공개하고자 이곳에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갈색 생머리의 여인이 리더인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맥빈, 빔프로젝터를 켤까요?"

맥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는 곧바로 옆에 이젤과 함께 서있는 스크린을 향해 빔프로젝트 영사기를 쏘는 버튼을 눌렀다.  

리처드 파머스, 그는 대 영농업자로서 1930년대부터 개간사업을 펼쳐 영농업을 이끌어오며 형제들과 함께 미국의 미시건주의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대부호였다. 그의 아들이자 맥빈의 아버지인 밀런 파머스는 1970년대부터 모든 가업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전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견문과 지식을 쌓고 여러계층을 사귀며 비밀리에 사조직을 형성해 왔다.

"여러분 지금 스크린에서 보시는 계보는 저희 아버지 밀런 파머스께서 전세계를 누비며 친분을 쌓은, 우리의 궁극적인 뜻을 함께 펼치고 계신 동지분들입니다. 저분들 외에도 우리와 뜻을 함께할 동지들이 많이 계시지만 우선 각 조직의 리더와 대표만을 모아서 간추린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시며 거대 자본금융세력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으고 계십니다. 금융세력은 대한민국을 가장 그들의 뜻에 부합하게 움직이는 나라라고 별점을 높게 쳐주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곧 결성될 세계정부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을 규합하고 계십니다. 미국, 캐나다, 남미 뿐만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수많은 국가와 호주,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아프리카 등지에서 35년간 많은 동지를 모으고, 그들과 교유하며 멀리서도 편지를 주고 받고, 현대에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교류하며 우리가 앞으로 펼칠 새로운 판세를 짜고 계십니다. 사실 아버님만이 아니라 우리 비밀조직은 다른 형태로 백년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지금의 거대금융세력이 비밀조직이었을 때부터 그들이 지금 세상을 꿈꾸었듯이, 그들에게 힘이 주어지고 세상을 온통 전쟁의 독안으로 몰고 갈 때즈음 먼저 깨어 있던 분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여러가지 무기를 준비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거대자본세력들은 온갖 암투와 술수로 반대세력을 의식하고 암살과 위장으로 그 훌륭하신 분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링컨 전대통령, 존에프캐네디 전 대통령, 마틴루터킹 목사, 인도의 간디, 한국의 김구 이분들 외에도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지고 활동하시다가 비명에 가신 많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방법이 위험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은 아버님께서는 1970년대부터 비밀조직을 결성해 오셨습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인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빌드버그 비밀그룹은 자신들이 더이상 비밀그룹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백년전에나 그들이 비밀그룹이었지, 지금 모든 힘들 거머쥐고 있으니 비밀이 될 수 없겠지요. 지금의 진정한 비밀조직은 진정한 민주를 갈망하는 우리들인 것이며, 이제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일을 저지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

맥빈은 말을 마치며 그의 손에 쥔 포인트를 갈색머리 여인에게 내밀었다.

"리지, 여기요."

갈색 생머리의 여인인 리지 존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맥빈으로부터 포인트를 건네받았다. 빔프로젝트 영사기를 조종하는 동양인이 다음장으로 넘기자 새로운 도표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사실 맥빈이 덧붙히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집안과 연줄이 거대금융세력에 맞설 수 있는 금전과 물자를 조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무슨 방법을 사용하든 그곳에는 항상 돈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거사를 치르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 악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조직이 밀런 파머스의 지휘로 존재하기도 하고, 또한 파머스는 현재 다양하게 분포된 우리 조직이 움직일 수 있도록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파머스 집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우리의 독립 언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년간 다양한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해왔으며, 현대에 이르러 인터넷 방송 및 사이트를 운영하며 부수입을 일으키며 자본줄을 이어가는 동시에 은연중에 다양한 물밑 작업을 이뤄왔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및 라디오 방송, TV방송은 독립적 기반을 두고 신세계질서의 엘리트들이 계획하는 법령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미국의 통화가 긴축재정에 들어가며 파산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한 대로 연방국가가 실시될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피부로 절실하게 와닿을 통제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독립 방송국에서는 인터넷, 라디오, TV를 통해 지상파로 많은 국민들에게 이 절실한 상황을 전달할 것이고, 극복할 수 있는 분명한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거짓된 평화를 외치는 위선적이고 간사하기 그지 없는 정부의 행태를 고발하는 자발적인 언론의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독립방송국보다 조금더 도발적이고 개방적으로 인터넷 언론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인터넷을 이용해 정부의 간악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으며, 많은 민중들이 우리의 뜻을 깨닫고 우리의 길에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리지가 자신의 발표를 마친 후 자리에 앉자 마자 영사기 프로젝트를 조작하던 동양인 남자가 바로 일어서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저는 대한민국을 고향국가로 두고 있는 한국인 김민수라고 합니다. 여기 모인 분들 중에는 반절 이상이기독교인인 것으로 아는데, 저역시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신세계질서를 이루려는 세력들에 반하는 인구가 기독교인이 태반이라는 사실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기독교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들의 세상이 시작되는 그날 세상의 모든 종교는 탄압정책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는 점이죠. 종교탄압으로 기독교뿐만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등, 기타 기성종교 뿐아니라 새롭게 생긴 신흥종교까지 숨죽여 하늘을 찾아야하는 숨가쁜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이제 그러한 세상이 초읽기에 들어섰으며, 우리는 더욱 똘똘 뭉쳐야 합니다. 서로의 종교를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는 가운데, 종교를 떠나서 압제에 저항하며 자유를 갈구하는 진실된 사람들로 성장을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인 김민수의 발표에 사람들은 공감하는 표정으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간 때 대한민국 포항

어두운 밤 백사장의 방파제 위에 놓인 십층 남짓한 U자 모양의 호텔은 성난 파도가 거칠게 넘실거리는 동해 바다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새벽 3시경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서 야간 업무를 보고 있던 장영지는 프론트 현관 밖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섬광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밖의 상황에 대한 호기심에 잠시 프론트를 벗어나 현관 밖으로 나갔다. 추적추적 떨어지고 있는 빗물 앞에서 영지는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주위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더니 검은 하늘 위로 천장에 금이 가듯 번개가 대각선 모양으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쳐내렸다.

"어멋!"

놀란 영지는 가슴 한쪽에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리자 프론트 사무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한승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사무실 문밖으로 나갔다. 프론트 데스크 안에 영지가 보이지 않자 의아해진 승호는 문득 어두운 현관 밖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뿔테 안경을 고쳐 잡으며 현관 밖을 응시했다.

갑자기 밖이 환한 섬광으로 가득 차오르는 동시에 한 여인의 모습을 한 검은 그림자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한 30초간 번개의 섬광은 주위를 밝히며 떠있는 여인의 모습을 밝게 비췄다. 그녀가 장영지라는 것을 알게된 승호는 그만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날 장영지는 본사에서 오회장의 비서로 전격 승진됐다. 오양조가 보낸 리무진이 호텔 앞에 서자 장영지는 여러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30일 재생기간 만료

가사 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