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제주 3박 4일, Pokarekare Ana
있잖아요!
뉴질랜드 남 섬 여행이 이랬어요.
오렌지색깔의 고색창연한 지붕들이 즐비한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을 한 바퀴 휘돌아, 전 드디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늦은 800만 년 전에 탄생한 때 묻지 않은 땅 뉴질랜드 남 섬에 제 인생 첫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우린 섬의 서쪽 좁은 바닷길이 땅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드 해안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밀포드사운드를 향해 달려갔어요.
가는 길목에 우리는 캔터베리대평원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전 그곳에서 지평선이란 것이 실제로 있구나 하는 것을 저의 이 두 눈으로 확인했어요.
우리 어릴 땐 이렇게 생각했잖아요.
수평선은 실제로 있어도, 지평선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라고요.
바다 저 멀리서 이쪽 육지를 향해 다가오는 배 한 척이 돛대 끄트머리부터 시작해서 그 배의 몸체까지 보이게 되는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할 때 그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어 간 그 선이 바로 수평선이었잖아요.
그렇게 수평선은 우리가 스스로의 그 생각 속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지평선이란 것은 저 멀리 산꼭대기라도 보일 것이고 또 하다못해 전봇대라도 하나 걸려들 텐데, 어찌 깨끗한 지평선이 있을 수 있느냐며 ‘흥!’ 그렇게 코 방귀를 뀌고는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입니다.
캔터베리대평원에서 제가 본 지평선은, 저의 눈길이 닿는 그 어디에도 낮은 구릉조차 없는, 그래서 거치적거리는 것 하나 없고, 파란 그 빛깔까지 너무 닮아 마치 수평선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너무나 ‘깨끗한 지평선’, 바로 그것이었어요.
그 드넓은 초원에서, 모처럼 만난 사람이 반갑다는 듯 뒤뚱뒤뚱 달려오는 얼룩소 한 마리를 생각 속에서 한 번 그려보세요.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상황이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얼룩소 한 마리가 저로 하여금 조물주의 창조의 신비로움에 푹 빠져들게 해버리는 그런 감동을 제 가슴에 깊이 박아주었던 그 현장이, 바로 거기에 있었어요.
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우리 남북한 합한 땅덩어리보다 조금 더 큰 뉴질랜드의 전체 인구가 400만 명 남짓할 뿐인데, 양은 7,000만 마리, 소는 800만 마리, 사슴은 300만 마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방목되고 있다 했어요.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을 달려가서야 겨우 서부 산악지대가 우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근데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산이라는 것은 낮은 산기슭을 올라 산허리를 거쳐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인데, 이곳 뉴질랜드 남 섬에서 만나는 산이란 것들은, 그런 산기슭 산허리 같은 개념이 없이, 놀랍게도 그냥 코앞에서 바로 거의 수직으로 솟아올라 꼭대기까지 이르는 것들로, 순식간에 1,000미터 2,000미터의 높이를 만들어 버리는 험준한 돌산들이 수두룩했다는 겁니다.
얼핏 보기에도 그 돌산과 돌산 사이에 벌어진 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곳 뉴질랜드 남 섬이란 것은 그저 하나의 어마어마한 돌덩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듯 우리는 그 돌산과 돌산 사이 해발 1,500미터쯤을, 까마득한 그 옛날 누군가 쟁기질을 한 듯 너무나 평평한, 그리고 그 위에 노란 금빛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반지의 제왕’의 무대였던 드넓은 황금초원을 달려가고 있었어요.
그곳 그 정경을 글로써 한 번 그려볼까요?
오른쪽 오십 리 밖, 저기 저 이미 만년설이 쌓여 있는 높은 산봉우리에, 또 다시 눈발이 날려 그 만년설을 한 층 더 높이고 있고요, 왼쪽 오십 리 밖, 저기 저 까마득한 벌판에는 까만 빗줄기가 하늘과 땅을 실타래 잇듯 하고, 그 틈새로 소리 없는 번개가 번쩍 번쩍거리고요, 달려가는 우리 고속버스 저 앞쪽엔, 맑은 구름사이를 뚫고 내려온 빛줄기가 세 쌍 무지개를 만들어 그 하늘에 걸어놓고 있더라고요.
하루 나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뉴질랜드 고원지대라고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말이, 말 그대로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 감동이 제 가슴에 파고들고 있더라고요.
뉴질랜드 남 섬엔 온통 빙하가 녹아 흘러 만든 호수와 계곡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옥빛 호수와 계곡의 그 물빛이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그렇게 담겼거나 흐르는 물들은 그 어디나 너무나 맑아서 손으로 그냥 퍼 마셔도 아무런 탈이 없다 했어요.
이곳 뉴질랜드 남 섬에는 그러한 호수들이 수 백 개가 있다고 했으며, 우리 여의도의 백배 정도 되는 호수들도 허다하다 하더라고요.
구비치는 계곡물에서는 남녀 젊은이들이 래프팅하기에 꼭 알맞을 것 같았고, 만년설이 두껍게 쌓여 이어진 높은 산봉우리에서는 스키 타기가 일품일 것 같았어요.
빡빡한 일정으로 래프팅을 하거나 스키를 타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딱 하나 남들 잘 하지 않는 추억꺼리를 제가 거기에서 담아가지고 왔어요.
바로 그 옥빛 계곡 오십 미터 위에 걸쳐진 ‘카와라우’다리에서 똥배인 제가 겁 없게도 번지점프를 했거든요.
그때 제가 번지점프를 하면서, 웃기는 이야기꺼리 하나 만들어 두었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이미 하루 전에 제가 오기를 부려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신청을 해놓았고, 그 동안 여행을 같이 해온 일행들도 ‘똥배 아저씨가 그럴 리가?’하는 의문을 내세우면서도, ‘대단하시네요. 한 번 해 보세요’라면서 부추기는 바람에, 사실은 겁이 좀 났었지만, 이제는 뒤로 주춤 물러설 수도 없게 되었었어요.
제 아내라도 간곡히 좀 말려줬으면 못이긴 척 그만두려 했는데, 눈치 없는 제 아내는 ‘고혈압이 있는데...’ 그렇게 딱 한 번 말리는 척 하다가 그만 뒤로 빠지는 것이, 그때로서는 정말 섭섭했었어요. 제 쪽이 안 팔리게 죽으라고 우겨 말려줘야 했거든요.
허리와 사타구니를 안전띠로 꽉 조여매고 발목에 튕겨지는 로프를 동여맨 뒤 점프대에 섰어요.
5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높이였고 그 점프대에 오르기 전 옆에서 봤을 때는 협곡을 흐르는 강의 폭이 꽤나 넓어 ‘이것쯤이야’하고 애써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그 점프대에 올랐는데, 막상 제가 그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차게 흘러가는 옥빛 계곡물이 그만 팍 좁아져 까마득하고, 떨어지는 순간 자칫 협곡의 바위에 부딪칠 듯한, 무서움이 불현듯 느껴졌어요.
얼핏 ‘이 순간을 어찌해야 하나?’라고 생각을 막 돌려가기 시작하는데, 손바닥이 저의 찐빵 같은 얼굴 크기만 하고, 손등과 팔뚝에는 가을 낙엽색 같은 기분 나쁜 털이 숭숭한, 덩치 큰 진행자가 뒤에서 ‘파이브, 포, 쓰리...’하면서,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어차피 그렇다면 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내와 여행 동료 그리고 이 점프를 부추긴 군산상고 출신 가이드, 또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될 저의 두 아들과 우리 모든 친구들에게 한마디는 해야지. 암! 그래야지!’
이런 생각이 들어, 몸을 다시 뻣뻣이 세워 ‘잠깐!’ 하고 외치는데, 아! 글쎄 그 덩치 큰 친구가 저의 외침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투, 원!’ 이렇게 카운트다운을 마치고는, 그냥 저의 등을 탁 떠미는 순간, 저는 그만 중심을 잃고 어쩔 수없이 계곡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도 저의 뇌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엇갈려 스쳐 지나가고 있었어요.
하나는, 평소 고스톱 판에서 그렇게 잘 써먹어 왔던 ‘STOP'이란 영어를, 하필이면 ‘잠깐’이란 우리말로 뒤바꿔 뱉어 버렸을까 하는 후회였고요, 또 하나는, 이미 대책 없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 순간의 흐트러진 모습으로는, 이 같은 제 모습을 보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 그대로 쪽팔리게 되어버리기 십상이라는 부끄러움 그거였어요.
그래서 눈 깜짝할 그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독수리 날개 짓처럼 두 팔을 쫙 벌렸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순식간에 다가오는 옥빛 그 계곡의 물빛을 저의 망막에 담아버렸어요.
땀과 계곡물에 뒤범벅된 몰골이었지만, 자랑스럽게 받아주는 일행들의 환대에 제 가슴 참 뿌듯했던 순간이었어요.
“똥배에다가 혈압도 있는 사람이 공연히 미친 짓 해놓고는 들떠가지고. 사실은 겁났지? 에이. 쯧 쯧 쯧.”
당연히 칭찬해줄 줄 알았던 마누라는, 저의 똥배를 툭 툭 툭 치면서 그렇게 비아냥거리고 있더라고요.
이어서, 너무나 깊고 맑아 마오리 원주민들이 비취호수라고도 부른다는 와카티푸 빙하호수와, 은빛 만년설이 덮여 모험심 강한 스키어들이 즐겨 찾는다는, 그리고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제왕의 후계자 아라곤과 활의 명수 레골라스가 달리던 해발 2,400미터의 리마크블스 산과 스키퍼스 캐년과, 그리고 그 주위 깎아 세운 듯 험준한 산봉우리들의 어울림이 너무나 아름다워 영국여왕의 마을이라는 뜻을 담은, 미 대통령 클린튼이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 정경 속에서 골프를 즐기기 위해 두 번씩이나 찾았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퀸즈타운을 우리도 찾아갔어요.
퀸즈타운을 막 덮칠 듯한, 봅스힐을 올랐어요.
곤돌라를 타고 200여 미터를 거의 수직상승하여 그 마을과 주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봅스힐 전망대에 올라 뷔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어요.
1,000여석 정도 되는 자리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가지각색의 손님들로 이미 꽉 차 북적대고 있었고, 그 레스토랑 종업원들도 각국에서 몰려온 젊은이들로 짜여져, 마치 ‘세계는 하나 될 수밖에 없다’는 글로벌리즘 이 시대의 분위기를 아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드넓은 호수에서 불어 제켜 올라오는 바람이 여간 세차지 않았지만, 좀 더 가까이서 바깥 정경을 만끽하고 싶어 발코니로 나갔어요.
그곳에서 제 생애 처음으로 제 눈에 비쳐 들어온, 그 아름다운 남십자성을 가득 찬 경이로움으로 쳐다볼 수 있었어요.
퀸즈타운을 지나 서부 피오르드 해안이 있는 밀포드사운드로 향했어요.
200년 전 곡괭이와 삽으로 뚫어나간 암반 굴을 지나자마자, 그곳은 바로 절벽같이 떨어지는 산중허리쯤 이었어요.
눈앞에 마주 펼쳐진, 거의 2,000미터는 수직으로 올라갔을 만한, 그런 바위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산 꼭대기부터 폭포수가 떨어져 생긴 물길들 이 수 천 개가 새겨져 있었어요.
입이 딱 벌어지는 신세계가 바로 거기에 펼쳐지고 있었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수 천 개의 물길들에서 실제로 폭포수가 쏟아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했어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제 코를 찌르는 듯 했는데, 거기는 피오르드 깊은 협곡이 있는, 뉴질랜드 남 섬의 그 아름다움의 핵심, 밀포드사운드 바로 그곳이었어요.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에만 있는 줄 알았던 피오르드 협곡이, 바로 뉴질랜드 남 섬의 서부해안에도 이렇게 아름답게 생성되어 있었어요.
협곡 안쪽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면서, 바닷물의 빛깔이 옥빛, 검은빛, 진 초록빛, 진 남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타고 가는 크루즈 앞머리에는 돌고래 몇 마리가 우리가 탄 그 배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어요.
그 돌고래의 눈빛과 저의 눈빛이 마주치던 그 순간의 감동을 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저도 한 마리 돌고래가 되어, 그냥 그 바다물속으로 풍덩 빠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고요.
1,000여 미터 높이의 바위틈새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는, 그 물길이 해면에 닫기 전에 바람에 흩날려 버려, 이미 물안개가 되어버리고 말더라고요.
뉴질랜드 그곳에서 배웠던, 그 옛날 전설속의 어는 공주의 아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민요가, 저절로 제 입에서 흥얼흥얼 맴돌더라고요.
이렇게요.
Pokarekare ana Nga wai o Rotorua
Whiti atu koe hine Marino ana e
Tuhituhi taku rita Tuku atu taku ringi
Kia kiti to iwi Raru raru ana e
E hine e Hoki maira
Kamate au I te aroha e
E hine e Hoki maira
Kamate au I te aroha e
Kamate au I te aroha e♬
16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31년 9개월을 몸담고 있던 검찰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던 2005년 그해 9월에, 아내와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을 두루 돌아보는 패키지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 뉴질랜드 남섬을 두루 돌아보면서 가슴에 담았던 감동을, 그 즈음에 검찰 공무원들의 모임인 ‘검찰동우회’에서 반년보로 발행하는 회지에 한 편 여행기로 기고했었다.
위의 글은 그 전문이다.
제주 한림 바닷가에 섰다.
저만치 바다 건너로 그 아름답다는 비양도가 보이는 그 바닷가였다.
바람은 세찼고, 그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는 거셌다.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눈보라까지 치고 있었다.
그 거친 풍경 속에서, 내 생각은 추억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래서 날아간 곳, 내 가슴에 ‘Pokarekare Ana’의 추억을 담아줬던 뉴질랜드 남섬 바로 그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