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끝나버렸어 여름! / 고선경
잘됐지 뭐야 부러웠거든 너의 여름 원피스 흰색 바탕에 연두색 클로버 무늬 자주 가는 천변 카페에서는 사과잼 바른 와플을 팔기 시작했어 산울림보다는 유재하나 김광석이 떠오르는 계절 절반만 빛바랜 이파리 물웅덩이에 둥둥 컨버스는 역시 로우보다 하이 밟으면 이파리가 구겨지고 구름이 조각난다 카페 차양이 걷힐 때쯤 너는 어느새 한참을 앞서 걷고 있어 석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오프닝에 어울릴까 엔딩에 어울릴까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남자애들이 농구를 한다 골대의 그물망이 곧 찢어질 것 같다 텅 빈 쭈쭈바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손과 너의 캄캄한 뒤통수 농구공이 쉴 새 없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끼어드는 “다 울었어?” 너와 내가 점점 나란해진다
—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10) -------------------------
* 고선경 시인 1997년 경기도 안양 출생.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 고선경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3부의 표제시다. 제목을 의식해서일까. 시가 3부 마지막에 실려 있다. 화자는 여름이 끝나는 것을 반기고 있다. 첫연부터, 부러웠던 너의 여름 원피스를 더 이상 안 볼 수 있게 되자 "잘됐지 뭐야"라고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2연에서는 "자주 가는 천변 카페에서" 팔기 시작한 "사과잼 바른 와플"에서 가을의 도래를 실감한다.
시 중반에 "컨버스는 역시 로우보다 하이"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브랜드가 '컨버스'라는 운동화가 목이 높은(하이) 게 낮은(로우) 것보다 더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뒤에 농구 하는 장면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농구 하는 남자애들 중 한 명은 분명 신었을 듯. MZ 냄새 물씬 풍기는 시구다.
후반부에서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듯 화자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있다. 끝나버린 여름인 "텅 빈 쭈쭈바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손과/ 너의 캄캄한 뒤통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다 울었어?" 묻는 이는 끝나버린 여름일까 새로 온 가을일까. "한참을 앞서 걷고 있"던 "너와 내가 점점 나란해"지는 건 이런 감정의 교감 때문일 것이다. - 임종명(네이버 블로거 '숲속의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