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페르소나
현이령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두꺼비집을 지었다가
기찻길을 만들었다가
모래의 그림자를 쥐락펴락한다
모래는 아이를 모르고
아이도 모래를 모르는데
둘을 바라보던 내 눈이 까끌까끌하다
나는 모래처럼 모로 누워
파도에 눈을 씻는다
모래를 털어내려 할수록
들러붙는 생채기
멀리서
아랫도리를 내놓은 사내 녀석이 다가와
어린 소녀가 만든 모래성에
한바탕 시원하게 오줌을 갈긴다
소녀는 성난 파도처럼 울고
소녀의 성은 젖고 무너지고 흩어져서
다시 모래로 남는다
모래는 나처럼 누워 포말에 부서진다
해변을 지나 수평선을 넘어
또 다른 미래의 모래가 되려고
각자 흩어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
모래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멀리서 모래시계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환영幻影
오늘을 빠져나간 한 줌의 모래는
새로운 병에 담겨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된다
모레는 본래대로 모레를 향해 흘러가고
모래는 원래대로 모래가 되어
바다를 누비는데
모래를 떠난 아이와 나는 어디에 있을까
현이령
2021년《전남매일》신춘문예로 등단.
- 웹진《 님Nim 》2025년 5월호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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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페르소나 - 현이령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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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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