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같은 체스키 크럼로프의 풍경을 마음에 담은 채 체코를 뒤로 하고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린츠에 도착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모짜르트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과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다는 빈 소년 합창단이 떠오르는 나라...
오늘은 그곳을 회상하며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노래를 틀어 놓겠습니다.
아침을 먹고 한 시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베네딕도 수도원인 멜크 수도원(Melk Abbey).
버스에서 내려 가을 코스모스가 반가이 맞아주는 수도원 입구의 계단을 내려갑니다.
머리속에 담겨있는 수도원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게 입구부터가 화려합니다.
원래는 중세의 명문가였던 바벤베르크가의 왕궁이었던 곳을 레오폴드 3세가 베네딕도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요새형 수도원으로 개축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대표하는 여제인데 "이곳을 와 보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다'라고
했다네요.
벨라도 형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에 나오는 반항아 타입의 현지 가이드, 필립이 마리아 테레사의 초상화
앞에서 이곳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수도원 박물관에 들어서자 베네딕도 성인의 성상과 그 옆에 독일어로 höre 라고 쓰여 있습니다.
영어로 'hear', '들어라'라는 말이라는데요,
언젠가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님이신 김구인 신부님께서 피정을 지도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라고 해야하나요 "Ora, labora, et lege" ... 기도하고 일하고 읽어라 라는 뜻인데,
읽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라는 뜻이라고요.
팔이 굽혀진 십자가 상의 예수님, 800년 전에 비엔나에서 옮겨 온 것으로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기 위해
팔을 굽혀서 표현했다고 합니다. 보기 드문 고딕 양식의 십자가라고 합니다
개혁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사의 아들은 사제의 복장에 간편함을 추구하여 가죽으로 만든 이런 사제복이
만들어졌다고 하고요
옆방에는 수도원의 모형이 있었는데 방이 무려 500개나 된다고 하여 놀라웠지요.
밖으로 나오니 수도원 길을 건너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강인데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지요.
블타바, 몰다우, 체코에서는 두나, 우리에겐 영어식으로 다뉴브라고 알려진 강,
유럽을 동서로 나누면서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봅니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틀립니다.
연인인 듯 보이는 사람 둘은 한 곳을 쳐다보고 있네요.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9만여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관으로 들어오니 과연 멜크 수도원의 압권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움베르또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라는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곳.
수사들에게 금서로 되어 있는 책들을 수사님들이 몰래 읽으면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미스테리 스릴러로
14세기 가톨릭의 종교와 권력, 부조리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작품인데 영화에서는 스토리 때문인지
분위기가 너무 음침하게 느껴졌었지요.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다 읽으려면 한 300년 쯤 걸린다고 하는 책들의 인쇄본은 이렇게 벽면의 책꽂이에 꽂혀
보관되어 있고요
필사본은 중앙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음악의 나라 답게 악보가 그려져 있는 책이 눈에 뛰네요. 혹시 모짜르트의 작곡 노트?? ^^
도서관을 나와 이어지는 성당으로 들어서자 금으로 치장된 성당이 아주 화려합니다.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신앙의 표현이겠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기 저기 번쩍입니다....
그냥 넋 놓고 바라보다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옆의 소성당으로 들어갔는데,
그곳도 화려하긴 마찬가지....
천장의 화려한 프레스코화에는 온통 천사들인걸 보니 아마도 하늘나라를 표현한 것도 같고
낙원에서 쫒겨나는 아담과 하와도 그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입구에서 보았던 베네딕도 성상의 지팡이와 똑같은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천사도 보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들여다 보지는 마세요. 이 사진으로는 잘 안 보입니다.
괜히 눈만 나빠지십니다 ^^
깔끔하고 고풍스런 수도원 식당에서 '비프 굴라쉬'라는 점심을 먹은 뒤 바라보는 정원이 편안합니다.
번쩍이는 모습들에서 눈을 돌리니 이렇게 한줄기 물줄기를 뿜고 있는 소박한(?) 분수가 왠지 더 맑아 보입니다.
사열된 보초들 같이 잘 다듬어진 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도원을 나옵니다.
차창 밖으로 잘 다듬어진 목초지를 지나며 한 시간 가량을 가면 비엔나에 도착한답니다.
식후라 그런지 솔솔 잠이 쏟아지네요.
오스트리아는 동쪽의 왕국이라는 뜻이며 서기 1000년에 바벤베르크 왕가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이어지면서
비엔나는 제국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사 광장의 왕궁처럼 생긴 자연사 박물관....
나무 그늘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 있는 젊은이들이 편안해 보이지요? .
박물관 앞에는 마리아 테레사 여제와 그를 호위하는 기마병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카메라에 기마병만 담은 걸 보면 아직도 말 탄 왕자를 기다리고 있는
치기어린 여심이 무의식 중에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에효, 정신 차려야지...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는 벨베데르 궁전은 황제가 사보이 유진에게 하사한 여름 별장인데요,
그는 프랑스 루이14세 왕의 서자였는데 외모가 볼품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이후 그는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여 총사령관의 직위에 오르고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어
유럽에서 터키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한 유럽의 영웅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벨베데르 궁전 뒤쪽의 정원을 걸으면서 주일 오후를 여유로이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비엔나 시내는 버스를 타고 Ring Road를 한 바퀴 돌면서 지나쳐 갑니다.
이 길은 옛 성벽이었던 자리를 허물고 길을 냈기 때문에 반지처럼 둥그렇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국회 의사당, 시청, 요한 스트라우스가 직접 지휘했다는 음악당 등, 주요 건물들 가운데 오페라 하우스가 보입니다.
이 건물은 링로드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다고 해요.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음악가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버스에서 내려 비엔나의 상징과도 같은 성 슈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 있는 슈테판 광장을 걸어봅니다.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지기도 했다는 이 성당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에게 바쳐진 성당이라고 하는데,
품머린 종은 오스만 터키의 군들이 버리고 간 대포를 녹여 만든 것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크기로
울릴 때는 성당 전체가 흔들린다고도 합니다.
비엔나 사람들이 매해 마지막 날 밤에는 이 광장에 모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고....
오스트리아의 수호 성인인 레오폴드 성인의 동상과 삼위일체상이 자리 잡고 있는 비엔나의 케른트너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물리친 후 레오폴드 왕에 의해 세워진 이 거대한 삼위일체 상에는
아래 기도하는 왕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대통령, 어디서 많이 본듯도 합니다만 느낌은 전혀 틀리네요^^
가마솥 뚜껑 같이 생긴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꼬마가 너무 가까이 갈까봐
아빠는 걱정이 되나 봅니다
케른트너 거리를 걷다보면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왕궁을 마주하게 되지요.
그런데 너무 많은 왕궁들을 본 후라 이제 마구 뒤죽박죽 헷갈리고
맛잇다는 비엔나 커피 생각만 간절해집니다.
드디어 얻은 자유 시간...
왕족에게 과자를 공급하던 곳, 비엔나 최고의 카페라는 Demel Cafe에서 비엔나 커피를 주문했지요.
비엔나 커피는 우리들 표현이고 '멜랑쥐' 라고 캐더린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그 생각이 나질 않아서
커피에 아이스크림 어쩌고 하면서 주문을 했건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바로 저 사진의 아이스크림 파르페 같은 것...
어쩐지 너무 금방 알았다고 하더라니...
할 수 없이 그냥 먹었지만 맛은 좋았습니다.ㅎㅎ
5시가 넘은 시간, 다시 왕궁을 둘러보고 요제프 광장을 지나고 신왕궁을 지나고...
오스트리아는 한 달을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이라 정작 가보고 싶은 곳은 그냥 두고 돌아서야 했지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이별이라....
각각 프랑스와 터키로부터 오스트리아를 지켰다는 두 영웅, 카를 대공과 사보이 유진(오이겐 공)이
말을 타고 서 있는 영웅 광장에도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왕도 영웅도 모두 역사속의 인물이 되어 사라지고 동상으로 남은 곳,
한바탕 공연을 벌인 듯한 천막들을 거두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저런 시간들이 오리라 생각하니 이 순례의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면서
오늘 아침 뽑은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2고린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