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2월14일(화)■
(누가복음 21장)
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묵상/눅 1:25-31)
◆ 재림 징조
(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과 이방인들이 한동안 예루살렘을 정복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갑자기 먼 미래를 말씀하신다.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다.
재림 직전에 생길 세상의 징조는 일월 성신(日月星辰) 곧 해와 달과 별들에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바다와 파도의 징조가 있다. 이 둘이 정말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비유적인 말씀인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문자 그대로 자연현상에서 나타나는 징조로 본다. 위의 예루살렘에 임한 징조들이 문자적이었듯이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한 징조는 그렇게 상세하게 말씀하시고, 마지막 때에 대해서는 겨우 한 줄밖에 말씀하지 않으셔서 무척 아쉽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겨우 며칠 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대에 사람에게 닥칠 예언은 상세하게 말씀하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들이 그들 중에 어떤 분이 살다 가셨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는 감사하게도 후에 요한계시록이라는 아주 두툼한 정보를 주셨다.
어떤 사람은 요한계시록이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성경에서 제외하는데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매우 귀중한 책이며 미래를 푸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속해있어서 그 사건이 닥치기 전에는 아무도 확실하게 이것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계시록을 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하심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되 그에 대한 해석은 모두 참고만 해라. 내 해석이 절대적으로 바르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위험한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래에 사건이 닥치면,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말씀들이 그대로 성취된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아래는 개인적인 해석과 견해다. 들어두면 참고가 될 듯하여 남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말세의 카운트다운이 일곱 인을 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첫째 인을 떼시자 '흰 말을 탄 자'가 나타난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이 사람이 누구인가?
이 사람이 마지막 시대의 시작이다.
사도 바울은 재림의 가장 강력한 첫 징조로 둘을 꼽았는데, 그것은 전쟁이나 재앙이 아니라 '배도'와 '불법의 사람'이었다 (살후 2:3).
따라서 사도 바울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조화시키자면 흰 말을 탄 자는 불법의 사람이다. 이 사람에 의해서 전 세계적인 통합과 배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떤 분은 말세의 첫 징조로 3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첫 징조가 아니라, 끝 징조다. 징조로 삼고 대비하기에는 너무 끝이다. 말세의 첫 징조는 전쟁이 아니라, 흰 말을 탄 사람이고, 불법의 사람이다.
이 세상은 언젠가 세계 정부가 들어서고, 세계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마도 자연재해와 각종 재앙으로부터 온 지구인들은 공동대처라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각국의 합의 하에 이를 용인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2억의 군대가 등장하는데(계 9:16), 나는 이것이 세계 정부 설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는 2억이라는 숫자는 군대 숫자로는 불가능하지만, 전 세계를 통합할 요원의 숫자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의 군대를 아무리 많이 잡아도 이천오백만 명이 넘지 않는다.
2억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리고 설사 2억의 군대를 모았다고 해도 이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도대체 누구와 싸운단 말인가?
나는 2억의 군대란 세계 통치에 동원되는 요원들이라고 본다.
14억 인구 중국의 경우를 보자.
현역 군인이 218만 명, 예비 병력까지 합치면 314만 명이라고 한다. 중국에서조차 2억의 군대는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원의 숫자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산당원의 숫자는 무려 9,600만 명이나 된다. 이들이 국민들 속에 파고들어서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탠다.
만일 전 세계가 제대로 통치되려면, 2억의 사람들이 통치 요원으로 동원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계 정부에 가장 많이 반발하는 성도들이 이들에 의해서 고발되고 처형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중국 문화혁명 시절에 자식이 아비를 고발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 시대가 그러할 것이다.
일곱인 재앙 속에는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월성신의 징조(계 6:12,13)와 기근, 역병, 지진 등과 같은 자연재해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자연재해는 성도들을 피해서 임하지 않는다. 성도들도 이러한 자연재해에 함께 희생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자.
왜냐하면 이러한 재앙으로 죽은 것이 '화'가 아니라 '배려'였음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일곱인 이후에 오는 일곱 나팔 재앙은 신앙이 약한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박해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배도하는 것보다는 재앙으로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 훨씬 낫다.
내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은 일곱 나팔 시대에 배도하면서 연명할 수 있는 수명이 기껏해야 3년 남짓이다. 겨우 이 시간을 더 살려고 배도하고 그래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은 아무리 봐도 바보짓이다. 설사 수십 년을 더 살아도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그 이전에 재난으로 죽는 게 낫다. 아마도
계시록 7장을 보면 일곱 인 중간에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 앞에서 찬양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큰 환난이란 핍박과 자연재해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 허다한 무리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일깨운다.
일곱 인의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나는 이들이 바로 144,000명(계 7:4)이라고 본다. 물론 144,000의 숫자는 상징적이다. ) 일곱 나팔 재앙 시대에 무서운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세상의 악함을 확실하게 전할 전사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순교 당할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휴거될 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국지전은 있겠지만, 세계 대전보다는 오히려 여러 재해 앞에서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점점 세계 통합 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틀릴 가능성도 열어둔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형제가 코로나로 아내를 잃자 무척 슬퍼했다.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씩이나 하는 이렇게 충성된 성도를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에게 이사야 57장 1절 말씀을 위로의 말씀으로 건넸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사 57:1,2)
이 형제는 이 말씀이 무척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점점 재난이 많아지고, 주변에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도 들린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간 곳은 비참한 곳이 아니다. 영원한 안식임을 잊지 말자.
만일 지금이 일곱 인 시대라면, 지독한 박해를 견딜 자신이 없는 자들은 오히려 재난으로 죽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도 배도하면서 몇 년 더 사느니 차라리 재난으로 일찍 죽는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일곱 인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다. 감사하고 깨어서 준비하며 더욱 은혜를 받자. 구하는 대로 주시는 풍성한 은혜 속에서 더욱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복을 누리자. 일곱 인 시대가 시작되면 신앙생활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바로 지금, 이 은혜의 시대에 잘 준비하여서 언제 죽음이 닥쳐도 기쁨으로 주님께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
언젠가 갑자기 닥칠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주 예수님, 제가 주님께로 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