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실 金成實(1869~1931)】 1919년 경기 수원군 송산면 만세운동 참여,」
1869년 4월 3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마도면(麻道面) 해문리(海門里, 현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중반 고향에서 가까운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1919년 3월 26일 사강리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홍명선(洪明善)·홍면옥(洪冕玉)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은 사강리 주민들이 구장 홍명선의 집에 모여 호세를 내는 날이었으므로 아침 일찍 구장의 집으로 갔다. 오전 9시쯤 주민 120여 명이 모이자 홍효선이 ‘각지에서 한국 독립의 시위 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 마을도 그 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취지로 만세 시위를 제안하였다. 이에 주민들과 함께 찬성하여 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2시경 홍면옥의 주도로 주민들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불렀다. 4시경에는 송산면사무소로 이동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 참가자들이 면사무소 안에 들어가 면장과 면서기들에게 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하였고, 결국 면장 홍달후와 면서기 5명이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나온 뒤 마을을 돌면서 만세 시위를 벌였고, 서신면 쪽으로 행진한 후 밤 11시경 해산하였다. 송산면에서는 27일과 28일에도 시위가 이어졌는데, 이때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일제 경찰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붙잡혀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혐의로 징역 6개월(미결구류일수 15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감형되어 이해 4월 28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