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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토요일 맑음 숙소에는 어젯밤에 널어놓은 빨래들로 가득하다. 푹 잤다. 일어나니 6시30분이다. 아침은 바나나로 해결했다. 아침 8시에 숙소 앞에서 박 군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2층이다. 유명한 카주라호의 아침은 조용하고 한가하다.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이 부요함보다는 가난함이 더 느껴지는 곳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라는 소문에 비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관광객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마을이다. 교통이 불편하기로 악명 높은 것도 있지만 생산할 만한, 먹고살 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마을이다. 호수 가에 서서 박 군을 기다린다. 깡마른 흰 소가 평화로이 길을 활보한다. 속도를 내고 달리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다. 박 군과 함께 본격적으로 카주라호 구경을 나섰다. 우리가 서있던 호수의 이름은 Shiva Sagar(호수)다. 서부 사원군은 숙소밀집지역 바로 옆에 있어 걸어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서부, 동부, 남부 사원 군 중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서부 사원 군 이다.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남녀교합상인 미투나의 대부분이 서부 사원 군에 있다. 이른 아침이라 이제 막 문을 열려고 준비 중이다. 입장료 250루피에 캠코더 비 25루피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축축한 기운에 사원 내는 조용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처음 만난 사원이 바라하 사원이다. 서부 사원 군 중 가장 이른 시기인 900년경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바라하는 비쉬누신의 3번째 화신으로 멧돼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전해져서 커다란 멧돼지 상이 검은 돌로 조각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이 멧돼지를 먹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눈에 맛있게 보이는 멧돼지들이 길가에 한가롭게 새끼들을 데리고 쓰레기통 주변을 뒤지는 이유를 보여주는 형상이다.
그 옆에 락쉬마나 사원으로 갔다. 비쉬누 신에게 봉헌된 사원인데, 서부 사원 군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다. 이곳의 볼거리는 춤추는 요정 압사라이다. 마치 신화속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섬세한 형상이 일품이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국 단체 관광객이 들어온다. 아는 지식이 별로 없어 얼른 따라가 듣기로 했다. 인도 가이드가 서툰 한국말로 설명해 주는 것이 재미있다. 중년 부부들의 진한 농담으로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가이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으니 재미있다. 군악대를 동반한 말과 코끼리 행렬을 세긴 조각은 당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코끼리는 왕들이 탔고, 말은 군인들이 탔단다. 기단 부분에는 작은 미투나 상들이 늘어서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말과 성행위하는 남자를 중심으로 그를 바라보는 여자상이다. 가이드가 없으면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 정말 엽기적이다. 그 외에도 노래 부르는 모습,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선생님과 아이들 모습에는 착한 학생과 딴 짓 하는 나쁜 학생들이 묘사되어 있다. 선생님 뒤에는 가방 든 사람, 물 든 사람, 컵 든 형상이 조각 되어 있다. 당시에도 가방을 든 패션이 나타나있고, 헤어스타일도 특이해 세심하게 쳐다보면 볼거리가 많다. 단체 관광객의 일정이 촉박해서인지 중요한 것만 설명해 주고 건너간단다. 다음 찾은 사원이 유명한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이다. 서부 사원군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사원이다. 카주라호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미투나 상들이 바로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높이가 31m에 달해 규모가 가장 큰 이 사원은 1025~50년 에 건립되었다. 최초로 카주라호 사원 군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에 따르면 사원 내부에 226개, 외부에 646개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여행자들이 그토록 관람하기를 원하는 미투나 상들은 바로 이 사원 외벽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다양한 성적체위를 자랑하는 미투나에 만 정신이 팔려 조각상들이 주는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책에 써있다. 이 사원의 외벽은 인도인들의 생활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쉬바, 꾸마리, 바라하, 나라심하, 차문다 등의 다양한 신상이 여행자들을 신화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데, 인도의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하니 보이질 않는다.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조각상들을 찾아본다. 용과 전갈은 섹스를 상징 한단다. 허벅지에 붙어 있는 전갈 모양을 찾아서 기뻐한다.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여자가 발바닥을 보며 가시를 빼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당시의 신발 사정을 알 수 있단다. 보는 이의 얼굴을 붉게 할 만큼 노골적인 조각상, 애로 조각, 미투나가 부끄럼 없이 속살을 드러내며 방문객의 눈길을 자극한다. 가이드의 흥미를 끌려는 우스운 해석에 관광객들은 한마디씩 거들며 웃는다. 나이든 관광객들이라 농담도 진하고 거침없다. 얼마나 노골적인지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인도의 성애서로 이름 높은 ‘카마수트라’의 원전이 바로 카주라호의 조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신성해야할 사원에 다른 종교에서는 금기시하는 성 행위 조각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으니 많은 금욕주의자들의 분노를 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특히 마하트마 간디는 ‘모두 부셔버리고 싶다’라는 말로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와 성이라는 기묘한 접합과 조각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는 게 카주라호의 현실이다. 다양한 미투나 상도 흥미진진하지만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의 입구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 거대한 돌을 통째로 깎아 만든 입구는 조형미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곡선의 3자 모양은 힌두교의 주신이자 파괴신인 쉬바, 창조의 신 브라흐마, 법의 신 비쉬누를 상징하기도 하며 칼을 상징하기도 하고, 쉬바신의 삼지창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니 고개가 아프다. 단체 관광객이 파도처럼 왔다가 단체 사진을 찍고 서둘러 사라지니 또 경내가 조용하다. 옆에 있는 조그만 사원으로 갔다. 마하데바 사원이다.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는 곳은 아니지만 사자상이 눈에 띈다. 이 사자상이 찬델라 왕조의 문장일 것으로 추측한다. 카주라호에서 최고의 조각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 다. 카주라호 유적들은 1000여년전 이곳에서 번영을 누렸던 찬델라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 찬델라 왕조는 자신들을 달의 신인 찬드라의 후손이라고 믿는 라지푸트족의 한 갈래로 시조는 어린 시절에 사자를 때려죽인 일로 유명한 찬드라 뜨레야다. 찬드라 뜨레야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찬드라 드레야의 어머니는 헤마바띠라는 공주로, 인드라신이 저주를 내려 16세에 과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신마저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탓에 ‘달의 신’ 찬드라의 눈에 들었고, 결국 둘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가 바로 찬드라 뜨레야다. 달의 신은 헤마바띠를 떠나기 전 자신의 소생이 천하를 지배하는 왕이 될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은 수많은 사원을 건설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전성기에는 무려 85개나 되는 사원들이 카주라호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에 의해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22개만 남아있다. 어떻게 22개의 사원은 남겨질 수 있었는지, 고고학자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란다. 사람들은 불경스럽게 보이는 미투나 조각들이 사원을 살린 요인이라고 말한다. 또 한팀의 단체 관광객이 들어온다. 가이드의 설명이 궁금해 다시 따라다녔다. 죽으면 영혼을 가져간다는 깔리 신상도 찾았다. 가이드는 저마다 해석이 맘 대로다. 단체 관광객의 가이드는 항상 인도인이다. 한국인은 공식적으로 가이드를 할 수 없단다. 많은 인도인들의 일자리 때문인가 보다. 제법 한국말을 잘 한다. 원숭이들이 사원을 오르내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4~5명의 인부들이 잔디를 깎고 있다. 기계로 깎는 것이 아니라 긴 칼로 잔디를 쳐서 수동으로 깎는데 기계보다 더 납작하게 깎아놓는다. 뭐든지 인도식이다.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의 북쪽에 있는 데비 자가담비 사원으로 갔다. 원래는 법의 신 비쉬누를 모셨던 곳이지만 현재는 쉬바신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모시는 사원으로 바뀌었다. 사원 내부에는 쉬바와 파르바티 부부상이 세워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쉬바의 또 다른 부인인 칼리의 조각상도 보인다. 칼리는 손에 낫과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다. 해골로 만든 목걸이 사람의 팔로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 몇 개의 미투나가 있어 방문객의 시야를 자극한다. 사원들의 내부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간밤에 내린 비로 젖어있어 양말을 버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 다음 방문 한 곳이 칫드라 굽타 사원이다. 데비 자가담비 사원과 거의 비슷한 모양의 사원으로 카주라호에서는 유일하게 태양신 수르야를 모신다. 사원 안에는 10여명의 아바타를 거느린 비쉬누 상과 함께 7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늘로 오르려는 수르야신의 신상이 있다는데........ 어두워서 후레쉬를 비쳐도 찾기 어렵다. 다시 층계를 내려와 관리인에게 물으니 후레쉬를 켜고 보여준다. 작게 희미하게 보여지 는 형상들을 찾으니 기분이 좋다. 사원 조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모습은 비쉬누가 반 독수리 반인의 모습을 한 가루다를 타고 소라와 바퀴, 곤봉, 연꽃 등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 옆에 머무는 전설의 뱀 아난타가 있다. 세상이 어지럽거나 악과 싸울 필요가 있을 때 적절한 아바타로 변신해 도움을 준다. 유지와 재생의 신이다. 아내는 행운의 여신인 락스미로 일반적인 힌두교 가정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그년에게 예배 하며 행운과 부를 기원한다. 그년가 타고 다니는 동물은 흰 올빼미다. 비쉬누 상은 머리가 11개다. 아바타란 비쉬누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간 혹은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지상에 출현 할 때가 있는데, 이 모습을 아바타라고 불렀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분신을 가리킬 때 아바타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래 힌두교의 비쉬누 신과 관련된 언어이다. 다음에는 비쉬와나트 사원이다. 이 사원 앞에 쉬바의 탈거리인 난디가 있어 이곳이 쉬바 사원임을 알려주고 있다. 난디는 힌두교 신인 쉬바의 수소 바하나(탈것)이다. 수소는 원래 쉬바의 동물 형상이었는데, 1세기경부터 신의 탈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단다. 모든 쉬바 사원은 등에 혹이 난 수소가 높은 단 위에 기대어 사원 입구를 바라보는 상을 갖고 있다. 다음 방문한 곳이 파르바티 사원이다. 칫타르 굽타 사원 앞에 있는 조그만 사원으로 원래는 비쉬누 신을 모셨던 장소다. 사원이라기보다는 조그만 탑 형태다. 파르바티는 쉬바의 부인이다. 쉬바는 파괴의 신이다.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한 손에는 창을 들고 목에 코브라를 감고 있으며 이마에는 제 3의 눈을 갖고 있는 정력이 넘치는 신이다. 그의 부인 파르바티는 히말라야의 딸로 현모양처의 여신이다. 이 둘은 매우 정열적인 부부이며 히말라야의 커이라스 산에 살고 있다. 사원 안에는 강가여신이검은 악어를 타고 있는 조각이 있는데 이는 파르바티 사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제 대충 둘러본 것 같다.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가니 사원 내는 조용하다. 우리도 밖으로 나갔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 무리 들어온다. 점심때가 되어서 우리는 먹을 것을 찾았다. 오늘은 모두 걸어서 다니기로 하고 방향을 동부 사원 군으로 잡았다. 가는 길에 만나는 아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씨식당은 오랜 기간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왔단다. 인도인 주인과 한국여성 여행자의 로맨스(?)로 유명한 곳이다. 들어서니 약간 썰렁하다. 인도인 젊은 주인이 나온다. 김치 볶음밥과 수제비를 시켜서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옛 명성 같이 그렇게 손님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부 사원 군으로 걸어가는데 당나귀와 염소 무리가 지나간다. 간디 동상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직진하여 걸어가는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들을 만났다. 붉은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간다. 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 아이들도 하나씩 주니 좋아한다. 서부사원 군은 힌두교 사원 일색인데 비해 동부 사원군은 넓게 퍼져 있는 힌두사원과 한 곳에 몰려있는 자인교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3개의 자인교 사원이다. 자인교 재단에서 관리되고 있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 중 가장 큰 사원인 빠르스바나뜨 사원은 상태가 좋은 편이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인교는 불교와 힌두교의 연합이라고 할까? 나체수행, 무소유, 살생금지 등이 교리 속에 있는 종교이다. 이 사원에서는 브라흐마, 비쉬누 등의 조각이 있고, 활을 들고 있는 사랑의 신 까마와 그의 부인인 라티와 같이 흔히 볼 수 없는 신들이 있다. 외벽을 차지하고 있는 신들이 모두 힌두교 신인데 분명 자인교 사원이란다. 그 옆에 아디나뜨 사원, 샨티나뜨 사원이 있다. 아디나뜨 사원은 더탕기르 아디나뜨에게 봉헌되었다. 더탕기르란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스승이라는 뜻이란다. 1대 더탕기르는 바후발리다. 불과 100여년 전에 세워진 샨티나뜨 사원에는 4.5m에 달하는 16대 더탕기르 상도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왔다. 할 일 없는 인도인들이 아무 표정 없이 입구 광장에 모여 있다. 자인교 사원이 무료라 고맙다. 입구를 나서니 자인교 아트 뮤지엄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관심도 없다. 그냥 지나쳤다. 돌아 나오는데 남쪽 멀리 사원이 하나 보인다. 남쪽으로 돌아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참 한가하다. 동부 사원 군에서 남쪽으로 1.5km정도 걸어가니 두라데오 사원이다. 카주라호에 조성된 사원 중 가장 늦은 시대에 만들어진 사원이다. 입장료가 없다. 잘 만들어진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미투나 상도 잘 보존되어 있다. 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니 작은 개울이 보인다. 코다르 스트림인데 아이들이 즐겁게 수영을 하고 있다. 흐르는 물을 보니 시원해 보인다. 다시 동부 사원 군으로 갔다. 하누만 템플을 찾아가려 마음먹고 마을을 들어가서 물으니 골목길을 가란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마을 뒤편으로 가니 자바리 사원이 나온다. 벌판 한가운데 외로이 세워져 있다. 마을 뒤편이라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깨끗하다. 사람 똥은 돼지나 개들이 다 먹어버려 깨끗하고 소똥만 군데군데 있다. 자바리 사원은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11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외벽에 새겨진 요정 압살라 조각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입장료가 없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사원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넓은 벌판이다. 농사도 짓지 않는 벌판이 이렇게 넓다니........ 시원하다. 나로라 사가르(호수) 방향으로 걸어간다. 멧돼지들이 10여 마리 돌아다닌다. 가만 들소들도 모여 한가롭게 놀고 있다. 호수 옆 돌무더기에는 소똥을 연료로 사용하려고 붙여 말리고 있다. 연못을 바라보니 넓다. 고요하다. 깊어보이지는 않았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바마나 사원이다. 동부 사원 군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보존 상태도 가장 좋은 사원이다. 거울을 보는 여인, 사자 상, 코끼리 상 등이 볼만하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걸을 만 한데 땅이 질퍽거린다. 호수를 끼고 숙소 방향으로 걸어오는데 호숫가에 방치된 브라흐마 사원을 만났다. 사실 이곳은 이름만 브라흐마 사원일 뿐 실제 주인은 쉬바신이다. 내부에 보관된 링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링감이란 남성의 성기를 말하는 것으로 쉬바신을 상징한다. 링감 아래쪽에는 여성기를 상징하는 요니가 있다. 요니는 ‘진리는 영원히 나뉠 수 없으며 합일된 상태에서 모든 존재의 완전함이 나타난다’는 뜻을 담도 있다고 한다. 방치된 브라만 사원은 한마디로 쓰레기통이다. 계속 걸어가니 찾고 싶었던 하누만 사원이 표시된 팻말이 보인다. 북쪽으로 약간 걸어 올라가니 하누만 사원이다. 사원 이라기보다는 붉은 색으로 칠한 원숭이 상이다. 붉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라마를 도와 악마를 물리친 원숭이 신 하누만은 복종과 헌신의 상징으로 숭배를 받는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도 보인다. 그런데 왜 원숭이 신에게는 붉은 칠을하고 붉은 천으로 가릴까? 네팔 카투만두의 더르바르 광장에서 본 하누만도 붉은 색 붉은 천인데....... 기대한 것보다 초라해서 허탈해 하고 있는데, 개가 와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구경할 것은 다 한 것 같다. 이제는 카주라호에서 볼 것을 다 본 것 같다. 내일 떠나야 하기에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예약하기로 했다. 여유 있게 걸어가니 버스터미널도 멀지 않다. 버스 터미널에는 버스는 없고 한가하다. 작은 가게에 중년 남자들이 40여명 모여 무언가를 정신없이 보고 있다. 궁금해 비집고 내부를 들여다보니 낡은 19인치 정도의 TV에 정신이 팔려 있다. 아침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8시와 9시에 잔시 행 버스가 있단다. 표는 아침에 살 수 있단다.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30분정도 쉬고 4시에 박 군을 다시 만났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호수 계단 아래는 시바신을 상징하는 링감과 요기가 만들어져 있다. 호수 계단을 자세히 보니 사원의 부서진 돌덩이들로 만들어져 있다. 하얀색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호수 갓길을 따라 차우사트 요기니 사원을 찾아갔다. 카주라호에 있는 사원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사원으로 죽음의 신 깔리를 모시고 있다. 건설 당시에는 사원 앞뜰에 65개의 신실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절반가량 만 남았다. 이 사원은 카주라호에서 유일하게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대단한 볼거리가 없어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언덕위에 폐허가 된 유적 터에 들렀다. 모두 무너져 버려 돌 들 위에 돌들만 올려 져 있다. 돌탑에 앉으니 눈 아래로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왼쪽은 버스 스텐드 방향이고 오른쪽은 끝없이 펼쳐진 벌판이다. 자전거가 한 대 지나간다. 사람 다니는 길이 하얗게 그어져 있고 집이 서너 채 보인다. 앙상한 나무가 가끔 서 있고 소 서너 마리가 보인다. 우리 바로 밑에는 구아바 나무와 파파야 나무가 보인다. 멀리 말라버린 풀 속으로 한 소녀가 컵을 들고 볼일을 보러 가는데, 우리를 발견한 듯 자꾸 쳐다본다. 벌판 한가운데서 볼일을 보고 성급히 일어선다. 언덕 위 폐허 위 돌담에 앉아 쉬니 맘이 편하다. 갑자기 박물관에 가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서둘러 박물관으로 갔다. 오후 5시까지 문이 열린다. 막 문을 닫으려 하다가 우리가 도착하니 다시 문을 열어준다. 서부사원 입장권으로 가능하다고 써있지 만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 5루피를 내고 들어갔다. 사진기나 캠코더 비를 따로 받는다. 1층에 3개의 실로 구분되어 있다. 모두가 불상이요 신상들이다. 카주라호에서 발굴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의 80% 이상이 인도의 다양한 신을 새긴 신상들이라 구경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알아야 재미있는데, 왠지 지나치기 뭐해서 들린 곳이다. 관리하는 영감님들이 더 재미있다. 카주라호는 인구가 10,000명 정도가 사는 조용한 곳이다. 정말 하루 종일 열심히 다닌 것 같다. 해가 진다. 이곳도 전기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저녁식사로 고향식당에 가서 닭 도리 탕을 시켜서 먹었다. 맛은 있는데, 닭들이 인도사람을 닮았는지 살이 없다. 박 군이 추천해준 Lay's 스넥을 종류별로 사고 땅콩과자 2개를 사서 숙소로 왔다. 인도 스넥도 먹을 만 했다. 썰렁해지는 밤 기온이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다. 마르지 않은 빨래를 드라이기로 말리는데 소리가 요란하다. 양말 같은 것은 근방 말려진다. 카주라호를 잘 구경했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다리가 얼얼하다. 두 다리 쭉 뻗고 누우니 행복하다. 감사드리며 하루를 접는다. 내일 일어날 준비를 해 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