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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제 13장 사사 삼손의 출생
초대 사사 옷니엘로부터 소사사 압돈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도 중반을 넘어 말기로 접어든다. 이제 남은 사사는 삼손과 엘리, 그리고 사무엘뿐이다. 본장은 삼손의 출생 배경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삼손의 출생과 그가 나실인이 될 것을 예고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삼손의 부모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1. 삼손의 수태 고지 (13:1-14절)
사사 입다 이후 30년 동안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자 백성들은 다시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악의 길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으며,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사사 삼손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예비하셨다.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셨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블레셋 족속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적 생활과 중계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람을 잡아 애굽에 노예로 팔기도 했던 악랄한 집단이었다. 이러한 블레셋 족속들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것은 그동안 겪었던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블레셋은 삼손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며 그들의 치하에서 삼손이 사사로 활동한 기간은 20년 정도이다. 그러나 삼손 이후에도 블레셋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사사 사무엘의 통치 말기에 그 압제가 일시 소강상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 후 왕정시대에도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다윗 왕이 저들을 정복함으로써 마침내 블레셋의 압제는 끝이 난다.
소라 땅은 처음에는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으나 이후에 단 지파로 넘어갔다. 그러나 왕국 시대에 유다의 세력이 강성해졌을 때 그 땅은 유다 지파에게 반환되었다. 단 지파는 다른 지파와 달리 여러 가문이 없고 ‘수함 가족’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 ‘마노아’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처음부터 불임 여성이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는 자녀 생산을 체념하고 큰 수치와 슬픔 가운데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의 사자’께서 그 여인에게 찾아오셨는데 이 분은 바로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여인에게 수태를 고지하셨는데 이러한 고지는 하나님께서 태어날 아이를 관장하시며 특별히 그 아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마노아 부인에게 성별을 요구하셨는데 그녀는 나실인이 아니었지만 삼손에게 요구되는 것과 같은 규례가 요구된 것은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까닭이다. 그래서 임신 중에 포도주와 독주를 먹지 말며 어떤 부정한 음식도 먹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일정 기간 나실인이 되려면 그 기간 동안 머리를 깎을 수 없었다. 그러나 태중으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는 일평생 동안 머리털을 밀 수 없었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나실인으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영원한 나실인’이라 부르는데 사무엘, 세례 요한 같은 사람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실인이 되었으며 후일에 바울이 자신에게 이 나실인을 적용하여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 자신은 바로 영원한 나실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나실인’이라는 말 ‘나지르’는 ‘바치다’ ‘거룩하게 하다’ ‘구별하다’라는 의미로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말한다. 이 나실인 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이다. 이들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과 독주를 마실 수 없으며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하고 시체를 가까이 하여 자기 몸을 더럽혀서도 안 되었다. 이러한 나실인 법은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헌신하며 봉사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삼손이 태어나면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한다고 했는데 실상 그의 등장은 구원의 서막에 불과하였고 그 후에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삼손의 어머니는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모세나 선지자들에게 붙여진 것으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여호와의 사자의 정체를 알지 못하였고 다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어떤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웠다.’고 할 때에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말 ‘야레’는 어떤 공포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경외심이나 숭배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노아의 아내는 주의 사자가 들려준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으며 그 말을 그대로 남편에게 전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 여호와께 기도하여 구하기를 아내를 찾아왔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달라는 것과 자기들이 낳을 아기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달라고 청원하였다. 그렇다면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아기의 양육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욱 자세하게 자신이 직접 알아보기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그의 아내가 밭에 있을 때에 다시 나타나셨으나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여호와의 사자께서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은 그 여자의 영성이 뛰어났다거나 특별한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이미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적이 있고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깨닫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급히 남편에게 달려가서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출현했음을 알렸다. 마노아는 아내를 따라가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고 그에게 묻기를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입니까.’라고 확인해 보았는데 그 이유는 마노아 역시 아내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자를 선지자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의 소식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했는데 이는 동정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그는 묻기를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라고 재차 물었다. ‘기르다’라는 말 ‘미쉬파트’는 ‘규례’ ‘관습’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태어날 아이에게 독특하게 적용될 생활 방식을 물었던 것이다. 마노아가 민수기 6:2-20절에 나오는 나실인의 규례에 대하여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상세히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 후에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라고 다시 물었는데 이 말의 뜻은 아이의 양육의 문제를 질문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서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를 질문한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 중에 금해야 할 것과 장차 태어날 아이가 금해야 할 것을 재차 강조하시고 여호와의 사자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 삼가고 그대로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즉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떠한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포도주뿐만 아니라 생포도. 건포도, 포도즙, 포도껍질과 씨까지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들을 먹음으로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을 염려하여 금지하신 것이다. 이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교훈의 선례이다.
하나님께서 마노아에게 먼저 찾아오시지 않고 아내를 찾아오신 목적은 자녀 양육에 있어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을 아담을 통해서 받은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속아서 범죄를 저지른 것과 같이 만약 마노아를 먼저 찾아와서 그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그 말을 마노아가 아내에게 전달했다면 열 달 동안 임신한 중에 말씀을 거역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은 어머니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것이다.
2. 마노아의 번제와 삼손의 출생 (13:15-25절)
마노아 부부는 삼손의 잉태 고지를 전해 준 여호와의 사자가 곧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그에게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음식 대접을 거절하고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쳐 주셨다. 앞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던 여호와의 사자도 기드온이 준비한 음식을 먹지 않고 번제물로 불살랐었다. 이처럼 여호와의 사자가 음식을 거절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자신의 참 모습을 깨우쳐 주시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번제를 준비하려거든’이라는 말에서 어떤 사람은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처음부터 번제를 준비하고자 의도했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며 그것은 여호와께 기도한 마노아의 경건한 신앙과 모순되는 것이다. 번제를 마땅히 여호와께 드리라고 한 것은 아들의 출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 준 근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나 마노아는 아직도 그 사람을 여호와의 사자로 깨닫지 못하고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인하여 그의 이름을 물었다. 왜냐하면 그가 전해 준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 빛나게 하기 위하여 이름을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마노아는 그 사람의 신분이나 정체를 알기보다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서 이스라엘 가운데 그 이름을 전하려고 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곧 그 대상의 본질이나 특성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는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하셨다. ‘필리’라는 이 말은 ‘이해를 초월하다.’ ‘놀라운’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wonderful'이다. 인간이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의 이름으로 이 이름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마노아 부부에게 나타나신 분은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릴 때에 이적이 일어났다. 기드온이 번제로 드렸던 염소 새끼와 무교전병과 국과 같이 마노아도 이와 유사한 번제물을 드렸던 것인데 소제물은 화덕에 구운 무교병이나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이었을 것이다.
‘이적’이라는 말은 앞에 나온 ‘기묘’와 같은 어근을 가지기 때문에 사자의 행동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그 이적의 내용은 불꽃이 제단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적은 처음부터 불임의 여성인 마노아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되는 현상일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마노아가 드린 번제물을 받으시고 그 제물에 이적을 불을 내려 번제물을 다 태우셨다. 이 불은 인간의 더러운 모든 죄를 다 태우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불이 제물을 태우면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마노아의 제사를 열납하셨다는 증거이며 그 불꽃을 타고서 여호와의 사자께서 함께 승천하신 것은 그가 마노아 부부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완성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목도한 마노아 부부는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노아 부부는 이제야 자신들과 대화하신 분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이다.
죄악에 물든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때에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부르짖었으며, 야곱과 기드온도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고 죽을 줄로 생각하여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오시고 인간을 만나 주시는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저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노아는 아내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두려워했지만 그의 아내는 상당히 지혜로운 여인이었으므로 자기 남편이 공포심에 떨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남편을 위로하였다. 그 위로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전혀 자기들을 죽일 의향이 없다는 것을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 모든 일을 직접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란 여호와의 사자가 친히 현현하신 일과 번제단 불꽃 이적을 행해 보이신 일을 말한다.
셋째, 이런 말씀도 이르지 아니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삼손의 출생 예고와 마노아와 그의 아내와 아들이 지켜야 할 것들과 삼손의 양육에 관한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임신의 모든 기간이 지나고 드디어 마노아 아내가 아들을 낳아서 그 이름을 삼손이라 불렀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태양’ 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삼손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여 광명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 ‘봉사하다.’ 라는 의미인데 이는 그가 날 때부터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라는 표현은 삼손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아이 사무엘이 성장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와 같이 삼손은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 속에서 잘 자랐다.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 있는 마하네단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단의 진’이라는 뜻으로 삼손이 활동하며 생활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아마도 삼손의 출생 이후에 그의 부모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것 같다.
삼손이 성장할 때에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개역 성경에는 ‘그에게 감동하시니라.’고 했다. ‘감동하다’라는 말 ‘파암’은 ‘강하게 밀다.’ ‘몰아넣다.’라는 의미로 성령께서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셨다는 뜻이다. 이제 삼손은 그 마음과 몸을 주장하시는 성령께 사로잡힌바 되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역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개 성령의 감동은 지혜, 예언 등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삼손에게는 영웅적인 완력 즉 육체의 강한 능력과 힘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삼손은 보통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육체의 힘을 가졌을 것이며 그런 능력은 블레셋을 상대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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