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철학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어느 책벌레의 좌충우돌 철학 읽기.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읽기', '고전 읽기', 더 세부적으로는 '철학 읽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기는 주저한다. 책만 펼쳐 들면 졸음이 쏟아질 것 같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음미하게 해 주지 않고, 쪼개고 덧붙이고 해체하면서 '학문화'시켰기 때문에 생긴 지독한 편견일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선입견을 깨며, 제목 그대로 '브런치'처럼 가볍지만 풍성한 철학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철학,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독서를 통해 말 그대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해 온 저자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철학을 읽고 음미하는 길로 안내한다. 소크라테스부터 하이데거까지 16명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그들이 쓴 48권 고전들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곁들이며, 철학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와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원전을 인용하면서는 한글과 영어 텍스트를 함께 실어 고전의 맛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소개
(SIMON CHUNG)은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책을 기획, 집필하거나 좋은 책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것을 좋아한다. 『철학 브런치』에 이어 역사 편, 문학 편으로 계속 출간될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는 소수의 전문가와 마니아들만 읽고 즐기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고전 텍스트들의 내용이 너무나 흥미진진하다는, 평범하지만 거의 잊힌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그 밖의 저서로는 변호사 친구와 함께 써 호평을 받은 법률 및 역사 교양서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다가 결국 음치나 박치보다 더 대책 없는 간서치(看書癡)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좀 들어서도 늘 어디 한적한 곳에서 책이나 실컷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으며 유유자적 사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비정한 현실은 희망 사항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뒤 공인 회계사(CERTIFIED PUBLIC ACCOUNTANT) 및 공인 법회계사(CERTIFIED FRAUD EXAMINER) 자격을 취득해 기업 회계 감사, 경영 진단, 지식 재산 관리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하기야 회계장부도 영어로는 ‘BOOKS’라고 쓰니 좋아하던 책(BOOKS)과의 인연은 어쨌거나 계속 이어진 셈이랄까. 그러던 어느 해 한국에 출장을 나왔다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출판사를 소개받아 진짜 ‘북스’ 몇 권을 출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풀타임 작가 겸 독서가로 변신하는 꿈을 종종 꾸며 신작을 구상 중이다.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CARBONDALE 졸업.
목차
Chapter 1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메인 브런치: 소크라테스
원전 토핑: 『향연』 / 『변명』 / 『파이돈』
1st Brunch Time _ 고대 그리스, 철학하기 좋은 시간
태초에 남녀가 사랑하게 된 까닭은 / 철학도 결국 사랑이더라 / 지혜도 쓰기 나름, 돈독 오른 논변가들 소피스트 / 소크라테스, 풀타임 철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2nd Brunch Time _ 소크라테스, 잔치에 가다
‘대화편’을 읽기 위하여 / 향연, 그들은 왜 잔칫집에 모였을까 / 당신을 사랑해, 당신은 나를 완성시켜 / 소크라테스, 질문을 시작하다
3rd Brunch Time _ 소크라테스의 변명
법정이란 진실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곳 / 인간의 지혜란 거의 혹은 전혀 가치가 없다 /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4th Brunch Time _ 애지자의 최후
악법도 법은 아니지만 /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진짜 이유
Chapter 2 유토피아의 꿈과 이성의 도서관
메인 브런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원전 토핑: 『국가론』 / 『시학』 / 『정치학』 / 『자연학』 / 『형이상학』 / 『니코마코스 윤리학』
5th Brunch Time _ 유토피아의 꿈
소크라테스의 탈을 쓴 플라톤? / 우리 공화국에서는 / 소크라테스 vs. 케팔로스 ? 늙는다는 것 / 소크라테스 vs. 폴레마르코스 ? 정의란 무엇인가 / 소크라테스 vs. 트라시마코스 ? 강자의 정의 / 정의로운 국가란 무엇인가 / 철인왕의 비전 / 철학자들의 쿠데타? / 다시 한 번, 정의란 무엇인가
6th Brunch Time _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서관
시공을 초월한 세련미와 작품성 / 시학, 카타르시스 혹은 미메시스 / 인간은 타고난 정치적 동물이다 / 과학 발전의 선구자 혹은 방해자 / 형이상학 혹은 형이후학 / 아테네 학당
Chapter 3 웅변가와 황제의 철학
메인 브런치: 키케로, 아우렐리우스
원전 토핑: 『수사학』/ 『예지력에 관하여』 / 『웅변술에 관하여』 / 『국가론』 / 『신성론』 / 『명상록』
7th Brunch Time _ 키케로, 로마 최고의 천재
키케로, 로마의 엄친아 / 회의주의,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 정치학적 비전과 신학적 통찰력 / 후마니타스, 인문학의 아버지 / 철학자의 최후, 로마 버전 / 서구 문명의 ‘키케로앓이’
8th Brunch Time _ 황제의 명상
스토아철학의 태동 / 황제의 철학 / 명상록, 지존의 자리에서 실천한 도덕률 / 철인군주의 계보 / 철인 황제의 아이러니, 팍스 로마나의 종언
Chapter 4 과학 혁명과 근대 철학
메인 브런치: 베이컨, 데카르트, 파스칼
원전 토핑: 『신기관』 / 『수상록』/ 『방법서설』 / 『제1철학에 대한 명상』 / 『팡세』
9th Brunch Time _ 과학 문명의 치어리더
프랜시스 베이컨의 시대 / 베이컨을 아는 것이 힘 / 귀납, 돌아서 들어가기 / 『수상록』,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탁월한 언어 / 명품 철학 에세이의 맛 / 베이컨의 유산
10th Brunch Time _ 과학적 인식론의 선구자
근대 철학의 창시자 / 진리 추구를 위한 올바른 사고 방법 / 생각하는 나는 무엇이어야만 한다 /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정신 / 인형의 전설
11th Brunch Time _ 수학자의 콧대, 철학자의 갈대
천재의 개심 / 생각하는 갈대 / 내기의 신학, 혹은 신학의 내기 / 믿으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팡세로 팡세하기
Chapter 5 독일 관념론 산책
메인 브런치: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원전 토핑: 『순수이성비판』 / 『실천이성비판』 /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 『보편적인 자연사와 천체론』 / 『정신현상학』 / 『역사철학』 / 『법철학』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여록과 보유』
12th Brunch Time _ 이성과 비판의 철학
관념론 혹은 형이상학 / 순수이성의 세계 이해 / 별이 빛나는 밤의 정언명령 /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우주를 품다
13th Brunch Time _ 절대정신의 날개를 펼쳐라
절대정신과 세계정신 / 무적의 정반합 변증법 / 미네르바의 부엉이
14th Brunch Time _ 뜻밖의 스타 탄생
헤겔에게 도전한 재야의 고수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은 고통의 바다 / 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철학자의 ‘의지’, 연금 생활자의 ‘표상’
Chapter 6 이렇게나 재미있는 철학도 있다
메인 브런치: 볼테르, 니체
원전 토핑: 『영국인들에 대한 편지』 / 『미크로메가스』 / 『캉디드』 / 『철학 사전』 / 『비극의 탄생』 / 『즐거운 학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우상의 황혼』 / 『반그리스도』
15th Brunch Time _ 시대를 비웃은 ‘깐족’ 마왕
철학이 재미있다? / 볼테르의 수업 시대 / 미크로메가스, 우주적 관점에서 본 지구인의 삶 / 『캉디드』로 낙천적 세계관을 비웃다 / 『철학사전』의 탈을 쓰고 시대를 비판하다 / 신과의 화해
16th Brunch Time _ 차라투스트라가 날리는 ‘돌직구’의 힘
전무후무한 새로운 철학 / 인문학 스타의 탄생, 혹은 비극의 탄생 / 영원히 위험하게 살라고? / 차라투스트라, 초인을 위한 서곡 / 망치를 든 철학자 / 그리스도교와의 전쟁 / 이 사람을 보라!
Chpter 7 실존주의자들의 예능감
메인 브런치: 사르트르, 카뮈, 하이데거
원전 토핑: 『구토』 / 『존재와 무』 / 『파리』 / 『시시포스의 신화』 / 『이방인』 / 『페스트』 / 『정의의 사람들』 / 『존재와 시간』 / 『형이상학 입문』 / 『횔덜린 시의 해명』
17th Brunch Time _ 유(有)로 무(無)를 펼쳐 보이는 재능
우발적 존재의 헛구역질 / 타인이라는 지옥 / 자유로의 처벌, 그리고 끝없는 변신
18th Brunch Time _ 그의 까칠함
부조리의 작가 / 『이방인』의 초연함, 『페스트』의 치열함 /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때 이른 죽음
19th Brunch Time _ 하이데거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신비주의 전략 / 존재론의 역사 / 존재,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모호한 개념 / 현존재의 본색 / 하이데거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 존재의 시
출판사 서평
철학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어느 책벌레의 좌충우돌 철학 읽기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읽기’, ‘고전 읽기’, 더 세부적으로는 ‘철학 읽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기는 주저한다. 책만 펼쳐 들면 졸음이 쏟아질 것 같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음미하게 해 주지 않고, 쪼개고 덧붙이고 해체하면서 ‘학문화’시켰기 때문에 생긴 지독한 편견일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선입견을 깨며, 제목 그대로 ‘브런치’처럼 가볍지만 풍성한 철학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철학,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독서를 통해 말 그대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해 온 저자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철학을 읽고 음미하는 길로 안내한다. 소크라테스부터 하이데거까지 16명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그들이 쓴 48권 고전들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곁들이며, 철학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와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원전을 인용하면서는 한글과 영어 텍스트를 함께 실어 고전의 맛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젠체하는 철학은 잊어라
철학은 맛깔 나는 샴페인 브런치다!
우리는 보통 ‘철학’ 혹은 ‘철학자’라는 말에서 친근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무언가 ‘세속’과는 약간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고담준론을 펼치는 이들이 철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도덕 시간이나 윤리 시간에 배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신전을 연상시키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에서 허연 천 같은 것을 두르고 그들이 설파하는 철학이라는 게 신의 섭리나 세계의 본질 같은 난해한 이야기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저자는 이렇듯 ‘철학’을 대하는 우리들의 선입견이 ‘무섭고도 끈질기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철학을 무턱대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며, 심지어는 암호로 가득 찬 불가사의한 문서라고 믿거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자들만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편견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수많은 철학 고전들을 직접 맛본 결과, 철학이란 심오한 지혜의 샘이라기보다 차라리 ‘샴페인을 곁들인 선데이 브런치’처럼 다양한 빛깔과 맛깔이 흘러넘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은 정반대로 철학을 무거운 ‘디너(dinner)’처럼 생각한다. 이론과 개념과 학설을 다 알고 있어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정찬’같이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철학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철학의 고전들에서 드러나는 철학자들의 맨 얼굴은 딴 세상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들이 때로 사람 좋지만 나름 고집도 있는 동네 아저씨(소크라테스) 같기도 하고, 예리하고 통렬한 필체를 지닌 시사평론가(볼테르와 니체) 같기도 하며, 수수께끼 같은 언어의 연금술사(하이데거)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동네 아저씨? 지나친 비약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대화편’에 드러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아리스토데모스)가 말하기를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소크라테스를 만났는데, 가장 좋은 슬리퍼를 신고 있기에?소크라테스에게는 상당히 드문 일이지?그렇게 잘 차려입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는군.
그(소크라테스)가 대답하기를 “아가톤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 간다네. 나는 어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그와 그의 축하 행사를 피했다네. 하지만 오늘 참석하는 데는 동의했지. 잘생긴 주인에게 너무 처지지 않도록 나도 이렇게 멋진 스타일로 치장했다네.” 하고는 “초대받지 않은 채로 나와 함께 가는 건 어떤가?” 했다는군. _ 본문 42쪽
어떤가? ‘산파술’이니 ‘변증법’이니 하는 낯선 용어를 들먹이며 배우던 소크라테스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 브런치』에서 만나게 될 철학자들의 진짜 모습이다.
16인의 철학자, 48권의 철학 고전
철학자들과 그들의 원전을 직접 만나라!
철학을 더욱 난해하게 만드는 것은 대개 철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다. 가뜩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 개념들을 그보다 더 어려운 말들로 배배 꼬아 제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철학에 좀 더 쉽게 접근해 보겠다고 펴든 해설서가 오히려 더 큰 절망을 안겨 주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원전에 대한 해설서를 읽기보다 원전 자체를 만나는 것이 철학을 맛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 책도 결국 원전 해설서인 셈 아니냐고? 아니다. 『철학 브런치』는 인용된 원전에 대한 현학적 해석은 배제하고, 말 그대로 ‘철학 이야기’라는 큰 물줄기 속에서 원전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게 해 준다. 그런 맥락에서 각 장의 구성 자체를 이런 개념으로 제시했다.
메인 브런치: 각 장에서 소개할 철학자들을 메인 요리로 설정했다. 소크라테스부터 하이데거까지 모두 16명 철학자가 19개 브런치 메뉴를 선보인다.
원전 토핑: 플라톤의 『향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베이컨의 『수상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 48권 원전들에서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인용문들만 엄선해 곁들인다. 말 그대로 ‘곁들이는’ 개념이다. 엄숙주의에 빠지지 말고, 맛보고 즐기면 된다.
저자는 인용된 각 원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해석은 최소화하고, 그 행간에서 무얼 느끼고 받아들일지는 개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왜냐하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갖는 데서 철학 읽기의 즐거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숱한 해설서들에서 제공하는 빤하고 정형화된 해석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철학 고전의 독자로서 그가 느끼고 이해한 바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 열린 해석을 함으로써 독자들 역시 고전 텍스트에 편안하게 다가가게 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앞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소개할 때, 우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직후 혼란기에 벌어진 쿠데타, 즉 ‘30인 독재’를 언급한 바 있으며 이 쿠데타를 주도한 핵심 지도자들 중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중략) 혹시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는 자신들이 주도한 쿠데타를 일종의 정치 실험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다시 말해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 콤비가 제시한 ‘칼리폴리스’의 이상을 아테네에 실현하려 했던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_ 본문 135쪽
물론 저자가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만한 용어나 개념들에 대해서는 ‘어원’을 짚어 주면서까지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 줌으로써, 철학 입문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영어로는 보통 The Republic 혹은 Republic이라고 한다. 이는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플라톤의 그리스어 원작을 라틴어로 옮기며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res는 라틴어로 ‘사정(affair)’ 혹은 ‘일(business)’을, publica는 ‘공공(public)’을 의미한다. 따라서 republic의 어원인 res publica는 본래 ‘공공의 일’, ‘공공의 이해관계’를 의미했던 것이다. _ 본문 99쪽
저자가 중간 중간 삽입하는 개념이나 용어 설명, 나름의 해석 등은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원전 읽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원전의 주요 대목들만 인용하며 논의를 이끌어 가다 보면 자칫 분절적인 내용이 되기 쉬운데, 저자의 적절한 장치들 덕분에 우리는 막힘없이 고전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모순어법이 아니다
철학은 재미있다
철학은 재미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어려운 학술서들을 뒤적이며 외계어 같은 용어들과 씨름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철학사에 등장하는 주요 철학자들이 모조리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말 그대로 직업 자체가 철학자였고, 매일 하는 일이라는 것이 토론이었다. 스피노자는 철학을 하기 위해 대학 교수직도 거부하고 렌즈를 갈아 생활비를 벌었다. 아우렐리우스가 후대에 『명상록』으로 묶인 글들을 집필한 것은 전장에서였다. 그들은 모두 철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철학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철학은 따로 시간을 내어 씨름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일상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철학에 대한 태도를 잘못 설정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學)’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philosophy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ia)’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가만히 앉아서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에 대한 깨달음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철학의 고전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면 곧장 철학하기에 돌입하면 될 텐데, 굳이 옛 철학자들의 글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생각하기’에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둘째, 고전 속에 담긴 ‘철학자들의 생각’이 우리에게 말 그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고전 읽기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문장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는 그들의 정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볼테르의 『철학사전』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면, 18세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가 성직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적인 신부(수도원장)는 한때 똑같이 가난한 자들의 맨 앞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빈자였다. 하지만 이후 가난한 영적 아버지들은 20만 혹은 40만 파운드에 달하는 수입을 얻어 왔는가 하면, 독일에는 경호 부대를 거느린 가난한 영적 아버지들도 있다. 청빈의 서약을 한 빈자가 그 결과 군주가 되다니? _ 본문 409쪽
그러니 우리는 철학의 고전을 읽으며, 수천 년에 걸쳐 존재해 왔던 철학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부터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세대의 인물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처럼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철학에는 그 어떤 실용적인 기능도 없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철학 브런치』는 그렇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유와 소요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어느 나른한 오후, 호젓한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으며 이 책을 펼쳐 들어 보는 건 어떨까? 치열한 삶 속에서, 그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보다 더 큰 삶의 에너지와 이유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책속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당시 아테네 전통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긴, 한 집안의 부자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그가 수많은 거물들에게 굴욕을 안기는 모습을 목격한 젊은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중략)
기원전 423년, 아리스토파네스가 무대에 올린 〈구름The Clouds〉을 보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당시 아테네 사회에 꽤 심각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속 인물 스트레프시아데스는 막대한 빚 때문에 소송당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아들을 소크라테스가 운영하는 ‘생각 공방’에 보낸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생각 공방에서는 ‘약한 논리’를 ‘강한 논리’로 바꾸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이게 웬걸? 스트레프시아데스의 아들은 생각 공방에서 논변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후 다짜고짜 아버지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새롭고 기발한 것을 알게 되고, 기존의 법도를 경멸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교묘한 사상, 논법, 억측을 알게 됐으니 이제 아비에게 태형을 가하는 일의 정당성을 증명해 볼 생각이다.
_ 본문 88~89쪽,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진짜 이유’ 중에서
로마 바티칸에서 교황의 개인 서재로 쓰인 ‘서명실’ 벽면에는 르네상스 천재 화가 라파엘로(Raphael)의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빛낸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그 중심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중략)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플라톤의 오른 손가락은 분명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몸짓은 자세히 보면 약간 애매하다. 딱히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다기보다는 손바닥을 아래쪽으로 펴고 있는 모습이 뭔가 거부하는 몸짓 같기도 하다. 마치 스승에게 “잠깐, 잠깐, 그만하시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플라톤이 하늘을 가리키며 또 영혼과 이데아를 들먹이기 시작하자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는 제발 그만하시라고 손을 내젓는 장면의 ‘스냅 샷’이 아니고 뭐겠는가.
_ 본문 177쪽, ‘아테네 학당’ 중에서
로마 제국이 육현제, 칠현제를 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인데,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아우렐리우스 자신이다. (중략)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시 『명상록』을 펼쳐 보도록 하자. 그 속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아우렐리우스풍 문장이 등장한다. (중략)
내 자식들이 어리석지 않고 기형이 아니었음을 (…) 신께 감사드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위대한 철인군주의 한계와 비극을 본다. 아우렐리우스는 사실 ‘자식 복’ 운운하며 신께 감사드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략) 아우렐리우스는 네르바 이후 선대 황제들이 지켜오던 대권 승계의 전통, 즉 능력 있는 귀족 자제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아 온 관행을 깨뜨렸다. 양자 대신 친아들에게 대권을 물려주면서 평생 쌓은 공덕을 모두 까먹는 악수 중의 악수를 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철인군주’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인데, 엄친‘황’조차도 결국 완벽한 인간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인간적 한계 때문에 로마가 치른 역사적 비용이 너무나 엄청났다는 데 있다. 이름조차 어딘가 싸이‘코’ 같은 ‘코’모두스는 심지어 칼리굴라나 네로도 능가하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자 ‘또라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_ 본문 239쪽, ‘철인 황제의 아이러니, 팍스 로마나의 종언’ 중에서
헤겔은 생전에 많은 저서들을 남겼고, 사후에도 그의 제자들이 강의 노트 등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중략)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인류의 지적 게으름을 탓하기 전에 헤겔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이 있다. (중략)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데, 헤겔의 글은 너무 난해하다는 것이다. 난이도로만 따지면 칸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정신현상학Phenomenology of Spirit』만 해도, 읽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긴 제목이라고 믿고 싶어질 정도다.
_ 본문 336~337쪽, ‘절대정신과 세계정신’ 중에서
천하의 볼테르에게도 죽음은 찾아왔다. (중략) 이때 가톨릭 신부가 그를 찾아와 마지막 고해성사를 하라고 종용했는데, 이때 나눈 대화가 유명하다.
“사탄과의 관계를 끊겠습니까?”
“신부님, 지금은 적을 만들 때가 아니랍니다.”
볼테르는 1778년 여든넷 나이로 영면했다. 말년에 그는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신께 단 하나, 아주 짧은 기도밖에 드리지 않았다네. ‘주여, 내 적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소서.’ 그리고 신께서는 그것을 들어 주셨지.
평생 동안 기성 권력과 지식 체계를 비판하고 조롱했던 그에게 이보다 더 간절한 기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 소원은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