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6일 259회 새해답사를
단양으로 다녀왔습니다.
남한강 세 개의 봉우리, 도담삼봉
단양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은 일찍이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유년시절의 벗이자 퇴계 이황 선생의 시심을 흔들어 놓은 명승지이다.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 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정선군에서는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부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기지를 발휘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 라고 주장하여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정도전은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세 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깊은 사연을 알 수 없지만
팔도강산에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더하고자 했던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한강의 푸른 물결을 비단삼아 두르고 있는
도담삼봉의 모습이 더욱 신비로우면서도 고혹적으로 보인다.
도담삼봉은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남편봉을 중심으로 아담한 모양새의
처봉과 첩봉이 양옆을 지키고 있는데 특히, 남편봉은 삼도정이라고 불리는
육각정자를 멋들어지게 쓰고 있어 더욱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도담삼봉을 만난 퇴계 이황은 시 한수에 그 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爲泊仙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사인암
사인암은 선암계곡의 상·중·하선암과 함께 단양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단양팔경 중 하나로, 단양 남쪽 남조천변의 푸르고 깊은 계류를 끼고 있는
높이 70m의 기암절벽이다. 사인암 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운선구곡이라 하며
단양팔경 중에서도 제일 빼어난 경승지로 손꼽는다.
암벽에 ‘탁루불군 확호불발 독립불구 돈세무민’ 즉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라는
우탁 선생 친필 각자가 있고, 암상에는 노송까지 곁들여, 마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 우탁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당시 우탁은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 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을 지냈고
이후 그의 고향인 단양 땅으로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이런 연유로 인해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인암 앞으로 이사한 농가맛집에서
맛기행에 어울리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능강 솟대문화공간
청풍 호반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나는 이의 발길을 잡는 공간이 있다. 병풍처럼 둘린 푸른 산자락 아래에 살포시 자리한, 국내 유일의 솟대 전시관인 능강 솟대문화공간이다. 솟대 위의 나무새들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생동감이 넘치고, 어디든 카메라만 갖다 대도 작품이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이곳은 우리의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조명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솟대조각가이자 전 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윤영호 선생의 솟대작품 수백여 점을 실내외에 전시한 공간으로 솟대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솟대는 고조선 때부터 하늘을 향한 인간의 소망(마을의 안녕과 풍요)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나 돌로 된 긴 장대위에 오리나 새 모양의 조형물을 올려놓아 마을 입구에 설치하던 것으로,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 총회에서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공식 상징물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민족문화 100선에 포함됐다.
제천 의림지
제천 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
영호정과 경호루,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한다.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의림지의 수심은 8∼13m, 호반 둘레는 약 2km에 이른다.
1976년 충북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다가 2006년 명승 20호로 승격됐다.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쌓았으며,
약 700여년 뒤에 박의림이 쌓았다고 한다.
의림지는 사계절 어느 때 방문해도 즐겁지만 겨울이 제일 좋다.
호수 주변에는 목조 산책길과 수경분수, 인공폭포, 공연시설이 조성돼 볼거리를 더한다. 충청의 별칭이 ‘호서(湖西)’인데 이 말은 바로 의림지의 서쪽에 있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수백 년 묵은 노송을 비롯해 수양버들,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숲이 저수지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 듯하다.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있는 영호정(향토문화자료 12호)은
1807년에 이집경이 세운 것으로 6·25전쟁으로 파괴된다.
이후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 화강암 주춧돌 위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중건했다. 의림지 서쪽에 1948년 세워진 경호루(향토문화자료 23호)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자 목조 기와집 형태를 띠고 있다.
동쪽의 우륵정은 2007년 우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신라 진흥왕 때의 악사이자 가야금의 명인인 우륵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우륵이 앉아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바위와 그가 마셨다는 우물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수, 충주호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 만든
다목적 호수로 우리나라 호수 가운데 가장 크고 깨끗한 호수이다.
월악산국립공원, 송계계곡, 청풍 문화재단지, 단양 8경,
고수동굴, 구인사, 수안보온천, 노동동굴 등 수많은 관광자원들이 주변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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