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68)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63·사진)는 “북한 후계자 김정은(26)은 결국 개혁·개방을 택하겠지만 실천에 옮기려면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24일 말했다. 2001년 4월 탈북하기까지 13년간 어린 시절 김정은 등 북한 핵심층의 생활을 접했던 후지모토는 “적어도 5~6년은 김정은의 의사가 정책에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버지(김정일)가 사망해도 후견인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의견이 중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방한한 후지모토는 본지와 단독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며 “그 나라(북한)가 존속하려면 세습밖에 없고, 세 아들 중 김정은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이복형 김정남(39)의 권력투쟁 가능성에 대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정남이 외신 인터뷰에서 ‘3대세습 반대’를 밝힌 데 대해 “‘공화국’이라 하지 않고 ‘북한’으로 부르는 건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싫어하는 일인데 세습반대 발언까지 했다”고 놀라워했다. 후계구도에서 낙마한 김정은의 친형 정철(29)과 관련해선 “정철은 마음이 착해 동생을 공격하지 않고 서포트(지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김정은이 세살 때 백발백중의 사격을 했다’고 선전한다는 설에 대해선 “새 지도자가 됐으니 전설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김정은과 17살 때 사격을 했는데 백발백중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은은 자나 깨나 농구를 했다”며 “김정일 위원장은 밥을 먹고 45분 쉬어야 한다고 지시했지만 정은은 5분도 견디지 못하고 ‘형 (농구하러) 가자’고 하곤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외모에 대해 그는 “살이 쪄 보이는 건 많이 먹어서일 것”이라며 “북에서는 위에 자리잡는 사람은 가늘면(날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의도적으로 몸집을 키웠을 것이란 얘기다. 또 “항상 모임이나 그룹의 중심이 되는 등 김정일로부터 DNA를 이어받은 인물”이라며 “내가 아버지라도 정은을 후계자로 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은 대장은 위험한 인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사건을 김정은이 지시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후계구도 형성 과정에서 작전이 성공하면 김정은 업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혁·개방으로 주민을 윤택하게 하고 정치범 수용소도 없애 국제사회에 인정받았으면 한다”고 김정은에게 당부했다.
북한 여성과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온 그는 인터뷰 내내 김정은을 ‘대장’, 김정일을 ‘장군’이라 불렀다. 북한 가족 때문에 비판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북한을 벗어 나온 게 김정일 장군이 싫어서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대북매체인 열린북한방송(대표 하태경)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25일 후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고 기자 간담회 등을 할 예정이다.
이영종·정용수 기자
◆후지모토 겐지 =일본의 스시 전문 요리사로 1982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의 일본 식당에서 일했다. 이후 일시 귀국한 뒤 87년 재방북해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13년간 있다가 2001년 탈북했다. 일본 경시청과 통화한 내용이 북한에 포착돼 1년6개월 가택연금을 당하자 출장을 핑계로 북한을 탈출했다. 두고 온 가족은 광산으로 추방됐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 등 4권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