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얼마 전,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드디어 물고기를 훔쳐간 범인을 알았다. 아이가 어린 시절, 아파트 1층에 살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공터가 있어서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이라야 누가 버린 FRP 1.5*1.5미터에 깊이가 20센치 되는 대형 어항을 땅에 묻어서 수평이 되게 했다. 그리고 아들과 동네에 낚시를 가서 고기를 잡으면 그 곳에 넣어두곤 했다. 그런데 10마리의 물고기를 넣어두면 고기가 한 마리씩 없어진다. 그 당시는 매우 바쁜 시절이라 그 연유를 알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들이 말한다. “아빠, 그 때 고양이가 물고기를 물어갔어요” 그러면서 고양이가 몰래 물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6~7세의 아들과는 동네 냇가에서 낚시를 자주 간곤 했다. 그 당시에도 수렵이나 낚시가 금지 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동네에서 40여년을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지형과 지물에 익숙했기에, 아주 은밀한 곳에서 낚시를 했다. 어느 날, 칸데라를 켜고 아들과 밤 10시까지 낚시를 했다. 그리고 20센치짜리 붕어 10여 수를 낚았다. 고기를 낚을 때마다 아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이 물고기 어떻게 하면 좋겠니?” 그러자 아들은 “아빠, 할머니가 보약으로 할 수 있게 같다드려요”라고 한다. 그 말에 얼마나 신통방통한지 즉시 동의를 하고, 차를 타고 옆 동네에 사시는 외할머니에게 같다드렸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을 전하자 할머니는 손자를 양손으로 꼭 안아주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인 5월 5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처음으로 혼자 청계천 7가에 물고기 관련 물건을 사러갔다. 무엇보다도 오직 혼자서 갔다 왔다. 하지만 그 며칠 전, 아내가 나에게 와서 아들을 혼내주라고 한다. 청계천 7가에 혼자 가겠다고 떼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집에서부터 청계천 7가까지 가는 방법에 대하여 버스와 지하철 약도를 가지고 설명을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아들을 나무라지 못하고 그 말에 동의를 했다. 또한 아내에게도 아들은 이미 충분히 혼자 갔다 올 수 있으니 걱정을 말라고 했다. 그럼 청계천 7가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우선 물고기를 파는 수족관이 많다. 열대어서부터 기수어, 민물고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각종 새와 파충류와 양서류를 파는 곳도 많다. 한 마디로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천국이다. 그런데 사실, 5월 5일 이전에 아들의 꿈과 동행한 스토리가 있다. 그 해 4월 초, 아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그 곳에 함께 갔다 왔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아내가 아들과 그 곳에 갔다 왔다. 그 다 다음 주는 내가 아들과 함께 갔다 왔다. 아들과 그 곳에 도착하니 단골이라며 한 수족관의 사장님을 소개해준다. 그 사장이 말하길, 이렇게 3주 연속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 맥주 2캔을 사서 아들에게 사장님 갔다드리라고 했다.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는 작은 인사다. 이렇게 아들의 물고기 사랑은 깊어갔으며, 따라서 집에 어항의 숫자도 석 달 사이에 7개로 늘었다. 또한 물고기의 숫자 역시 300마리 이상을 기르게 되었으며, 민물고기, 기수어, 열대어까지 그 영역이 늘었다.
그 해 7월 말, 아들은 여러 가족과 함께 무인도 캠프에 함께 했다. 인천항에서 10여 가족이 배를 타고 무인도로 출발을 했다. 참가자 중에서 옆 동네에 사는 성현이 아빠가 아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그리고 아들이 많은 물고기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더니 기범이를 부른다. 그리고 대뜸, 아는 물고기를 말해보라고 한다. 그러자 아들의 입에서는 물고기 이름이 거미가 실을 뽑듯이 줄줄 나왔다. 그러나 성현이 아빠는 도데체 몇 마리의 물고기 이름을 아냐고 묻는다. 아들은 300마리 정도를 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사실, 아들의 실력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고기를 기를 때 함께 넣는 수초 이름도 수 십 개를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은 매우 어렵다. 학명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5학년부터 무인도에서 아빠들에게 루어낚시 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루어낚시란 무엇인가? 먼저 루어란 가짜미끼란 뜻이다. 지렁이나 옥수수 등을 사용하지 않고 가짜미끼로 물고기를 유인하여 잡는다. 서구에서는 이런 낚시법을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한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 장소를 이동하며 낚시를 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낚시대에 루어를 달고 릴낚시처럼 멀리 던진다. 그리고 던지자마다 릴을 감는다. 그 때, 바위속에 숨어있던 놀래미나 우럭 등이 그것이 먹이라고 착각을 하고 덥석 문다. 그렇게 낚시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무인도에 참여하는 아빠들 중에서 루어낚시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평균 10~20%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사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통하여 루어 낚시법을 익히곤 한다. 하지만 지방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차마 OT에 참여하란 말을 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가르쳐준다. 그런데 이 때가 가장 바쁜 때이다. 그래서 마음은 있지만 가르쳐주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때부터 한 시름을 덜었다. 아들이 여유있게 낚시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아들이 루어낚시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이 때는 양평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할 때이다. 그런데 그 곳에 웅덩이가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 곳에서 루어낚시 연습을 해보겠냐고 했더니 냉큼 동의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들은 6살부터 해마다 아빠와 함께 무인도 캠프에 참여를 했으며, 늘 루어낚시를 하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은 그 곳에서 혼자 마음껏 연습을 했다. 사실, 루어낚시의 경우, 정상적일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트러블이 생길 경우, 빠르게 조치하는 법을 알아야 하며, 루어를 던질 때 파마현상(낚시줄이 파마 머리처럼 엉키는 현상)에 대비하기 위하여 예비동작과 캐스팅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연습하다보니 이젠 5학년 어린이가 아빠들에게 루어 낚시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딸이 고등학교 1학년 4월, 갑자기 “아빠, 홍대(홍익대학교)가 어디있어요?”라고 한다. 그래서 신촌에 있으며 그 곁에는 연세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이화여자 대학교 등이 있다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순간, ‘아, 이 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딸에게 짐짓, 마음을 숨기고 “딸아, 홍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 아빠랑 한 번 가볼까?”라고 했다. 그러자 딸은 흔쾌히 동의를 하며 날짜를 정하자고 한다. 그래서 일주일 후에 가기로 했다. 평소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이런 날에는 늘, 아빠가 운전을 하며 VIP 대접을 한다. 홍대에 처음 가는 날, 딸은 카메라를 챙겨서 함께 떠났다. 주차를 하고 학교에 들어서자 풍물패가 연습을 하고 있었고, 각종 동아리 모집 프랭카드가 어지럽게 눈을 가로 막는다. 딸은 카메라고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찍는다. 그리고 먼저 엄마가 배웠던 시각디자인학과를 찾았고, 혼자 갔다 왔다. 점심은 학교 근처에서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먹었으며, 보너스로 값싼 옷도 한 벌 사주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딸은 돌아오는 도중에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아빠, 거기에서 못 본 것이 있어서 그런데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면 안돼요?”라고 한다. 그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알았다고 동의를 했다. 하지만 아빠의 속마음에는 ‘이제 본전을 뽑을 수 가 있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주에 딸과 차를 타고 홍대에 다시 갔다. 딸은 지난 번에 보지 못한 곳이 있다며 동부서주하며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홍대에 머물며 마음껏 자신이 원하던 것을 본 후에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일주일 후, 딸은 “아빠, 서울대는 어디에 있어요?”라고 한다. 이 말에 신림역 근처에 있으며라고 설명한 후, “거기에 가본 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딸은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와 한 번 가볼까?”라고 했더니 냉큼 좋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주에 서울대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이곳에는 그동안 몇 번은 와봤지만 하도 학교가 넓어서 미대를 찾기에도 한 참을 헤멨다. 천신만고 끝에 미대를 찾은 후에 딸은 계속 사진을 찍는다. 점심은 학교 구내식당에서 딸이 가장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딸이 충분히 미대를 본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딸은 “아빠, 마지막으로 홍대에 한 번 더 가볼 수 있을까요?”라고 이젠 좀 뻔뻔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서 동의를 하고 다음 주에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아빠의 속마음은 ‘홍대가 딸의 마음에 들어왔구나’라며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다음 주에 다시 홍대에 다녀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딸은 이젠 당당한 표정으로 “아빠,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서울대에 한 번 더 가고 싶어요?”라고 한다. 그 말에 ‘아빠는 네가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넉넉한 표정으로 동의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서울대에 다녀왔다. 그리고 집에 오는 도중 남타령고개를 넘어서 남서울대공원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리프트가 시야에 보였다. 그러자 딸은 “아빠, 우리가 어릴 때 저기서 리프트 탄 것 기억나요”라고 한다. 그렇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주 리프트는 타러가곤 했다. 정 시간이 없으면 리프트를 타고 왕복을 한다. 그러면 호수를 지나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그곳에서 간식을 먹었다. 이미 시간은 저녁이 되어 해가 산에 걸려있다. 그동안 딸의 방에는 대학에 가겠다는 구호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학에서 딸이 사진을 많이 찍었고, 아빠는 딸에게 제안을 했다. 구호대신 사진을 붙이면 더욱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글자에는 이미지가 없지만 사진에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며, 이는 상상력을 키워주며 또한 관계를 맺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끔 딸과 고 1 때의 대학에 5번을 간 것을 이야기를 한다. 지금이라면 그런 열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기억과 추억속에서 아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으며 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느껴지는 행복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 결과 딸은 자신이 좋아한 미대에 입학을 했다. 자녀의 꿈을 따라 동행하라! 이는 수사적인 언어의 표현이 아니다. 지금, 당장 아이와 함께 만들 수 있는 행복이며 또한 꿈을 키워주는 몸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