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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전설 ㅊ
🍎 차茶나무 (Camellia sinensis. 茶木, 芽茶, 苦茶) (꽃말 : 追憶. 原産地 : 韓國, 中國, 日本, 印度)
★ 傳說.
(1)
中國의 傳說속의 帝王 神農氏는 野生의 풀을 하나하나 씹어보고서 仔細하게 性質과 用法을 記錄했다고 한다. 하루는 毒草를 씹어 죽음 直前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눈 앞에 나무도 풀도 아닌 가지 하나가 손짓하듯 너울 거리기에 그 잎을 따 씹었더니 차츰 解毒이 되고 살아날 수 있었다 한다. 이에 神農氏는 그 나무를 茶나무라 이름하고, 解毒을 第一의 效能으로 傳하게 되었다. 茶는 풀 초(艸)와 나무 목(木) 사이에 사람 인(人)이 있는 글자로 神農氏를 죽음에서 살려낸 데 따른 字라고 한다.
(2)
中國 戰國時代 名醫였던 扁鵲에 얽힌 逸話다. 扁鵲은 平凡하게 살던 中 長桑君이라는 醫術에 能한 道人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禁方의 口傳과 醫書를 물려받아 醫術을 攄得한 뒤, 虢나라의 太子를 살리고 齊나라의 桓侯의 病勢를 診斷한것으로 傳해지며 魏나라 君主가 扁鵲에게 醫術에 對하여 물은 것으로 傳해진다. 무엇보다 죽어가는 太子를 살려내어 天下의 名醫가 되었다.
扁鵲은 모두 8萬4千가지 病에 對한 藥方文(處方)을 알고 있었는데, 折半도 안되는 4萬가지 程度를 弟子들에게 傳受했을 때, 너무 有名한 것이 禍根이 되어 競爭者의 凶計에 依해 暗殺되고 말았다. 이에 弟子들이 先生의 무덤가에서 百日을 슬퍼하니 扁鵲의 무덤에서 한 나무가 솟아 올랐다. 그것이 茶나무였는데 하도 神奇하여 弟子들이 觀察 硏究해보니, 그 잎에 담긴 여러 性分들이 神秘한 效能을 보여 나머지 4萬4千의 藥方文을 얻게 하더라는 것이다. 茶가 萬病通治의 不老草처럼 膾炙되는 것은 이들에 依해서라고도 한다.
(3)
印度 香至國의 王子 達磨는 6世紀 初 西域에서 唐나라로 와서 洛陽을 中心으로 活動하였는데, 參禪 中 자꾸만 졸음이 오자 눈시울이 있어 잠을 불러 들인다며 兩 눈의 눈시울을 떼어내 뒷뜰에 버렸다. 이튿날 그 자리에 茶나무가 솟았는데 잎을 씹으니 今方 머리가 맑아지고 잠은 멀리 달아나더라는 것이다. 茶를 修道用 飮料로 삼는 것은 達磨에서 始作되었다고도 한다.
(4)
中國 福建省의 武夷山에 가면 品質이 아주 優秀한 名茶가 있는데 바로 不知春이다. 봄을 모르다는 意味를 지니고 있다.
옛날에 寒秀堂이란 書生이 茶를 너무도 사랑해서 冊을 보면 茶經이요, 詩도 茶詩만을 읊고 쓰며, 茶는 손에서 놓지도 않을 만큼 즐겨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武夷山은 景致도 빼어나고 물도 좋고 特히 茶가 香氣롭다는 말을 듣고 直接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武夷山에 到着한 때는 淸明과 穀雨가 막 지난 때라 봄茶를 다 딴 뒤였다.
多少 興味가 줄었으나 武夷山의 秀麗한 景致에 끌려 이곳저곳 거닐기 始作했다. 그는 九曲邊에서 水仙茶를 보고 九龍谷에서 大紅袍茶를 보고 또 白鷄冠 等 많은 名茶나무를 보았지만 만차가지로 찻잎은 다 딴 뒤였다.
그가 天遊峰 기슭의 큰 巖石아래에 이르렀는데 어디선가 奇異한 香이 풍겨왔다. 그 香은 蘭香같기도 했고 桂樹香같기도 했는데 상큼하면서도 津했다. 香氣를 따라 가보니 그늘진 巖石사이로 큰 茶나무가 자라나 있었고 크고 두터운 찻잎이 가득 달려 바람결에 한들거리며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寒秀堂은 "봄이 지나 이제야 움이 트니 그야말로 不知春이로다."라고 詩를 읊었다. 반가움에 詩를 읊고나자 뜻밖에 洞窟쪽에서 女人의 고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돌려보니 붉은 옷을 입은 한 處女가 茶 광주리를 들고 서서 "感謝합니다. 不知春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하며 自身은 해마다 이 찻잎을 따는데 이름이 없었다며 오늘 좋은 이름을 가지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는 것이었다.
寒秀堂은 계면쩍어서 "그냥 읊어본 詩였는데 아가씨가 맘에 드신다니 不知春이라고 하지요."라고 對答했다.
그로부터 不知春이란 이름으로 많은 愛好家들로 부터 사랑을 獨次知하였다 한다.
(5) (武夷山 大紅袍茶 傳說)
먼 옛날 武夷山 北쪽 山麓에 惠婉村이라는 마을에 일찍이 男便을 여의고 子息도 없이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가난하였지만 慈愛로워 남을 돕기를 躊躇하지 않았고, 늘 부지런하여 마을 사람들은 勤婆婆라고 불렀다.
어느 해 武夷山에 前例없는 큰 가뭄이 들어 草木들은 누렇게 變했고, 穀食은 거의 말라 죽었으며, 바위틈의 샘물도 끓겼다.
사람들은 延命하기 爲해 草根木皮로 僅僅히 살아갔다.
어느날 할머니는 平素에 지니고 다니던 광주리에 뜯어 모아 둔 풀잎 가운데 여린 찻잎을 골라 국을 끓여 房으로 들어갔다.
그 때였다. 갑자기 門밖에서 사람의 기침소리와 呻吟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할머니가 疑訝해하며 門을 열어보자 한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었으며, 입술은 피에 젖어 바짝타고 精神은 半쯤 나간 狀態였다.
할머니는 急히 할아버지를 부축해 房으로 들이고 나서, 于先 나물 국이라도 마셔야 할 것같아 한 砂鉢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힘겹게 虛飢진 배를 채우고 나서 精神이 드는지 한 砂鉢을 더 請하여 훌훌 마셨다.
얼마의 時間이 지나자 할아버지는 기침도 멎고 完全히 氣力을 되찾았다.
할아버지는 感激해 하며 할머니께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後 할아버지는 목숨을 救해 준 恩人인데 그냥 떠날수는 없다며 龍의 입에 眞珠가 물린 特異한 지팡이를 건넸다.
할머니는 一見 凡常치 않음을 알고 極口 지팡이를 辭讓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다시 호주머니에서 두 個의 씨앗을 꺼내어 할머니에게 내 놓으면서 懇曲히 받아 줄것을 請하였다.
"이 씨앗을 지팡이로 땅을 파서 묻어주시고 가끔 물을 주면 곧 나무가 자랄것이니 그때 이 지팡이를 나무에 기대어 놓으면 반드시 할머니에게 福이 따를것입니다."란 말을 남긴 後 忽然히 사라졌다.
할머니는 世上에 別의別 일도 다 많다며, 할아버지가 남긴 말대로 씨앗을 심고 가꾸었더니 그 자리에 싹이 나기 始作했다.
仔細히 살펴보니 그것은 茶나무였다. 다시 지팡이를 그 苗木에 기대놓자 苗木은 빠르게 자라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는 잎이 茂盛해지고 봄바람에 맑은 香氣가 퍼지고 數많은 山새와 蜂蝶이 날아드렀다. 할머니는 참으로 神秘롭고 또 기뻤다. 香에 끌린 할머니가 그 찻잎을 조금 따서 끓여 마셔보니 깊은 香氣는 奧妙했고 精神까지도 맑아지며 몸도 가뿐해지는 것이었다.
平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인지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맛을 보여주고 싶어 찻잎을 땄는데, 神奇하게도 따낸 자리에 바로 잎이 돋아나올 뿐만아니라 더욱 茂盛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茶를 待接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患者들도 있었는데 이 茶를 마신 後 差度가 있더니 病이 말끔히 낫는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勤勉함과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神이 아시고 分明 卓越한 藥效까지 지닌 茶나무를 내리셨다고 말하며 이 나무를 神이 내린 茶나무라 하여 '神茶'라고 불렀다.
이 所聞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맑은 香氣를 滿喫하고 疾病마져 고쳤으며 할머니의 恩功이라며 稱頌하였다.
그러자 所聞은 急速度로 傳播되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끝내는 皇帝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자 皇帝는 貪慾이 생겨 臣下를 시켜 그 茶나무를 파다가 御花園에 옮겨 심도록 하였다. 猝地에 할머니는 茶나무를 빼앗기고 말았다.
皇帝는 우쭐대며 자랑하고파 文武百官을 불러 宴會를 베풀었다.
宮中音樂이 演奏되는 가운데 皇帝는 直接 袂를 걷어 부치고 찻잎을 따려고 나무로 다가서자 갑자기 茶나무가 손에 닿지않을 만큼 솟구치는 것이었다.
발꿈치를 들어도 걸床을 놓아도 사다리를 놓아도 자꾸만 그 위쪽으로 逃亡치듯 자라나 到底히 딸 수가 없었다.
이에 火가 난 皇帝가 茶나무를 찍어 불태워 버리라고 命했다.
한便 할머니는 茶나무를 强奪當한 後로 크게 傷心하였다.
神이 내린 茶나무를 잘 지키지 못했다며 神明님께 容恕를 빌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할머니는 病들어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잠이 들었을 때 까치가 門 밖에서 쉬지 않고 지저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門을 열고 나가 보니 흐릿한 안개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무 뿌리 하나를 메고 오고 있었는데 仔細히 보니 그 茶나무 뿌리였다.
할머니의 消息을 듣고 周圍 사람들이 皇帝가 잘라 버린 茶나무의 뿌리나마 캐어 들고 할머니께 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神靈께 感謝해 하면서 拜禮하였다.
그리고 난 後 茶나무 뿌리를 어루만지며 "神茶여, 神茶여, 너의 恩惠를 갚을 수 없음이 正말로 恨스럽구나. 아마 너가 이곳에 있게되면 또 危害를 加할 사람이 나타날 것이야. 眞正으로 當付하노니 부디 安全한 곳으로 떠나렴." 말끝도 흐리며 할머니의 두뺨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神仙이 준 지팡이를 茶나무 뿌리에 기대어 놓자 놀랍게도 그 지팡이가 갑자기 한 무더기 赤雲으로 變하여 그 茶나무를 싣고 空中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離別을 아쉬워 하는듯 空中을 서너바퀴 旋回하더니 하늘로 치솟아 武夷山 山허리의 바위 사이에 내려앉았다.
이듬해 봄 사람들이 그 곳에 가보았더니 茶나무는 가지가 세 個가 뻗은 狀態로 푸른 빛이 玲瓏하고 맑은 香이 振動하였다.
그리고 茶나무가 자라는 바위 사이에서는 한 줄기 맑은 藥水가 흘러 내리는 것이 마치 別天地 같았다.
이것이 바로 세 그루 武夷 大紅袍茶나무에 얽힌 傳說이다.
(6)
中國 江西省 盧山은 雲霧茶로 有名하다. 香이 상큼하며 맛이 부드럽고 많은 傳說도 있다. 그 中 中國 4大奇書( 三國志演義, 水滸傳, 西遊記,金甁梅)의 하나인 西遊記에 나오는 孫悟空과 關聯이 있다.
孫悟空이 花果山에서 원숭이王으로 있을때 복숭아를 비롯한 여러가지 과일酒를 즐기며 神仙生活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늘의 玉皇上帝와 王母娘娘이 마시는 神仙茶가 생각나서 天上으로 가려로 구름을 잡아 탔다.
구름위에서 이 땅을 굽어보니 中國땅의 南쪽이 파랗게 빛났다. 곧장 날아가 仔細히 보니 그것은 茶나무 밭이었다. 때는 가을이라 茶나무씨가 달렸는데 그 씨를 어떻게 받아서 花果山으로 가져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 때 새들이 날아와서 여기서 뭘 하냐고 물었다.
孫悟空이 내가 다스리는 花果山엔 茶나무가 없어서 이 茶나무를 옮겨 심으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고 對答했다.
그러자 뭇 새들이 앞다퉈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러고는 茶나무밭에 내려앉아 씨앗을 따서 물고 花果山을 向해 날기 始作했다.
새들이 盧山의 上空을 가로지르다 秀麗하고 恍惚한 景致에 陶醉되어 앞서 날던 새가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뒤따르던 무리도 一齊히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茶씨앗은 盧山의 여러 山봉우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花果山에 보내져야 할 茶가 雲霧도 아름다운 盧山에서 자라게 된 緣由이며, 사람들은 일러 雲霧茶라 일컬었다. 以後 傳說과 함께 널리 世上에 알려지면서 有名稅를 떨치고 있다.
(7)
中國 安徽省 齊云山에서는 小蘭花茶가 生産 되는데 '齊山云霧'란 이름으로 그 品質이 아주 뛰어나다.
먼 옛날에 齊云山 山鹿에 큰 莊園이 있었는데 莊園主는 李占山이라는 사람이였다. 이 莊園主는 侍女인 蘭花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蘭花는 죽어도 莊園主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同僚 侍女들의 도움을 받아 莊園을 몰래 빠져나와 山넘고 물을 건너 한 洞窟入口로 避身해 갔다. 그런데 이곳 絶壁에 茶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박쥐들의 排泄物인 五靈脂로 因해 더욱 茂盛하고 香氣도 津했다.
蘭花는 이 찻잎을 商品化 시키면 經濟性이 있음을 看破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오리라 마음먹고 山아랫 마을로 向해 떠났다.
그곳에서 人心이 넉넉한 할머니를 만나 함께 寄居하게 되었다.
蘭花는 自初至終을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찻잎을 가져와 볶아서 거리로 나가 팔았다.
이 때 한 나그네가 그 茶를 사서 끓는물에 우려 마셨더니 香이 너무도 뛰어나고 부드러웠다.
그는 周邊 사람들에게 世上에 다시없을 茶라며 자랑을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蘭花를 찾아와 茶를 사서 돌아들 갔고, 蘭花도 할머니도 生活이 多少 넉넉해졌다.
사람들은 齊云山에 박쥐神仙이 만든 茶가 바로 이 茶라고들 말했다.
이 消息이 퍼져나가 莊園主인 李占山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바로 下人을 보내 茶의 出處를 알아 오도록 指示를 했다.
그 結果 박쥐神仙은 바로 李占山의 侍女로 있다가 脫出한 蘭花였으며, 그女가 市場에 나오면 사람들은 줄을서서 그女로부터 茶를 購入하고 있었다고 報告했다.
瞬間 李占山의 腦裏에는 陰凶한 野慾이 스쳐갔다.
그는 어느날 蘭花의 뒤를 尾行하기 始作하였다. 그女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齊云山을 向해 걸어가 어느 洞窟앞에 到着하더니 絶壁쪽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바로 그 絶壁에 茂盛한 茶나무가 있었으며 숨어 지켜보는 그도 밀려오는 香氣에 미칠 地境이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蘭花의 등 뒤로 接近하여 그女를 絶壁아래로 밀어버렸다. 그 後 茶나무를 獨占한 그는 찻잎을 따서 皇帝에게 貢物로 바쳤다. 그 茶의 맛을 본 皇帝는 그 자리에서 "齊山云霧"라 글을 써 李占山에게 내리며 齊云山의 茶監督官으로 任命하고 해마다 찻잎을 皇室로 보내도록 命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으며 많은 下賜品을 받고 자랑스럽게 歸鄕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 봄이되어 찻잎을 따러 갔던 李占山은 하늘이 무너지는 衝擊을 받고 땅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 茶나무가 말라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結局 李占山은 貢物을 바치지 못하고 온갖 臆測을 받으며 逃亡다니다 붙잡혀 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李占山이 죽은 다음해 神奇하게도 蘭花가 抑鬱하게 떨어져 죽은 그 絶壁사이로 많은 茶나무가 다시 자라나기 始作했다. 그 곳 사람들이 그 茶를 다시 마셔보니 前과 똑 같이 香이 뛰어났다. 사람들은 蘭花를 잊지못해 그 茶名을 小蘭花茶라고 불렀으며 아주 貴하고 훌륭한 茶로 名聲을 날렸다.
🍎 차조기(Perilla frutescens var. crispa. 紫蘇葉, 蘇葉, 赤蘇, 桂荏, 白蘇葉, 紫蘇, 자주깨, 붉은깨, 차즈기, 매기풀) (꽃말 : 誠實, 正直. 原産地 : 中國)
★ 傳說.
陰曆 9月 9日 重陽節은 中國에서 第一 큰 明節이다. 이날 富者집 젊은이 몇 名이 술집에서 게 많이먹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熱心히 게를 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卓子 밑에는 껍질이 수북 쌓였다. 그때 마침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名醫 華佗(? ~208年. 東漢 末의 傑出한 醫學子. 字는 元化이며 沛國 譙<只今의 安徽省 亳州>사람. 痲醉藥 ‘麻沸散’을 發明했다. 모든 醫術에 뛰어났는데, 그中에서도 特히 外科에 精通하여 神醫라 불렸다)가 弟子를 데리고 들어왔다. 華佗는 미친듯이 게를 먹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선 깜짝놀라며
“여보게 젊은이들, 게는 性質이 찬 것이라 많이 먹으면 배頉이 나고 甚하면 生命도 危殆롭다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華佗가 主人을 불러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니 게를 그만 팔도록하라고 當付했다.
그러자 主人도 別 參見을 다한다는 反應을 보이므로 華佗도 더 以上 말리지 않고 弟子와 함게 술을 마셨다.
밤이 이슥하여 華佗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고 할 즈음, 갑자기 젊은이들이 腹痛을 呼訴하다말고 하나 둘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뒹굴며 主人게 어서 醫員을 불러 달라고 소리쳤다. 너무 늦은 時間이라 主人도 醫員을 부르러 갈 處地가 아니어서 발만 동동 굴렸다.
그때 華佗가 自身이 醫員이라며 나서자, 젊은이들이 옷자락을 끌어잡고 살려달라고 哀願했다.
挽留하던 醫員의 말을 귀담아 듣지않은 잘못을 後悔하며,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華佗는 때로는 어른들의 經驗에서 오는 말은 한 番쯤은 새겨들을 必要가 있다며, 돈은 必要없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華佗는 弟子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藥草를 뜯어와서 술집 主人에게 건네며 솥에 넣고 삶아서 그 물을 마시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이들은 腹痛이 사라지고 뱃속이 便安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藥草는 이름이 없던터라, 華佗는 보랏빛 풀을 먹으니 便安해진다는 意味에서 紫舒라고 이름하였다.
拜禮하며 젊은이들이 돌아간 뒤에 弟子가 스승에게 어떻게 이 풀이 食中毒에 좋은 줄 아셨는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스승은 動物들의 行動을 보고 배운 것이라 하였다. 어느 여름철 江가에서 藥草를 찾고 있다가 水獺이 아주 큰 물고기 한 마리를 艱辛히 삼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놈이 배가 아픈지 땅에 뒹굴더니 풀밭으로 나와 보랏빛 풀을 뜯어 먹고선 暫時 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고 하였다.
물고기는 性質이 차고 紫舒는 性質이 따뜻해 서로 中和하여 물고기의 毒을 풀어 준다는 것이다.
이 풀을 華佗는 紫舒라 이름 지었으나 뒷날 時間이 흐르면서 紫蘇라고 變하였으며, 우리말로는 차조기라고 부른다.
🍎 참깨 (sesame. 學名 Sesamum indicum L. 胡麻, 芝麻, 香麻, 白油麻, 白芝麻, 白脂麻, 白胡麻, 眞荏) (꽃말 : 期待하다. 原産地 : 印度, 熱帶아프리카)
💢 들깨 (Perilla frutescens var. japonica. 野荏, 荏子, 水荏子, 蘇, 白蘇葉, 荏, 重油,) (꽃말 : 情겨움. 原産地 : 아시아)
★ 傳說
歷史的으로 많은 사람들이 多樣한 食品과 藥草를 둘러싸고 不老草라고 主張했지만 그中에서 東•西洋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不老長生의 妙藥이라고 믿었던 食品이 바로 참깨이며 오래도록 不老草로 待接을 받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18世紀 初盤인 朝鮮後期의 實學者 洪萬選이 지은 山林經濟에서 참깨는 神仙들이 먹었다는 仙藥에 가까운 食品이라고 極讚을 했다. 山林經濟에 따르면 뽕잎가루와 참깨를 꿀에다 섞어 仙藥을 製造하는데, 석달동안 服用하면 몸에서 潤氣가 돌고 半 年을 먹으면 精力이 솟구치며 모든 病이 사라진다고 적었다.
中國 南北朝時代 때 梁나라에 살았던 醫學者이며 道敎의 道士로 神仙이 되기를 推求했던 陶弘景이(456年 ~ 536年) 참깨가 八穀 中 가장 좋은 것으로 "神仙들은 참깨로 밥을 지어 먹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오래 산다"고 했다.
古代 아랍에서도 참깨는 不老草로 神들이 먹는 食品이었다. 人類文明의 發祥地인 앗시리아의 天地創造 神話에서는 神이 人間 世上을 만들기 前에 참깨로 만든 술(Sesame wine)을 마셨다고 한다. 참깨가 天地創造의 作業에 必要한 에너지를 補充하는 飮食이었고 人間이 만들어지기 前에 神이 드셨던 食品이었던 것이다.
古代 힌두교 傳說에서도 참깨 씨앗을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했으니 古代 印度에서도 참깨를 不老草로 여겼다. 神話時代를 지나서도 참깨는 에너지의 源泉으로 받아들여졌는데 古代 이집트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참깨가 發見된 것이 그 證據라고 한다. 또 옛날 그리스 兵士들은 戰爭터에 갈때 참깨를 戰鬪食粮으로 持參했는데, 적은 量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었다.
東洋에 참깨가 傳해진 것은 紀元前 1 ~ 2世期 무렵이다. 中國 漢武帝의 命을 받은 張騫이라는 外交官이 西域 그러니까 只今의 中央 아시아에 있는 匈奴族 國家를 訪問하고 돌아오면서 가져왔다고 漢書 西域傳에 나온다. 아랍의 참깨가 실크로드를 타고 東洋으로 傳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언제 참깨가 傳해졌는지는 正確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宋나라 使臣인 徐兢이 쓴 高麗圖經에 高麗에서도 참깨를 栽培한다는 記錄이 있고 海東繹史에서도 高麗에는 胡麻 卽 참깨가 많다고 했다.
中國에는 漢나라 때 傳해졌고, 高麗 때 참깨를 많이 栽培한다고 記錄에 나오니 우리나라에는 三國時代 무렵에 참깨가 들어왔을 것으로 推定할 수 있다.
歷史의 記錄에도 참깨는 貴重한 作物로 나온다. 요즘은 賂物로 떡값을 주지만 朝鮮時代 때는 참깨를 賂物로 건넸다. 朝鮮王朝實錄에는 文宗 一年 참깨 열말을 賂物로 받은 者가 있으니 處罰해야 한다는 記錄이 있다.
成宗 때는 임금의 丈人인 府院君이 自身의 下人이 참깨 두 섬을 賂物로 받았다는 告發이 들어왔는데 事實과 다르니 嫌疑를 벗겨 달라며 上訴를 올렸다는 記錄도 보인다.
中宗 때 黃琛이라는 者가 當時의 勢道家였던 金安老에게 請託해 忠淸兵使가 되자 참깨 20말을 賂物로 보냈다. 그런데 朝鮮時代 記錄에서 興味로운 事實을 엿볼 수 있다.
文宗 때는 賂物로 바친 참깨의 量이 열 말 이었는데 成宗 때는 두 섬을 賂物로 바친 것으로 나온다.
中宗 때는 스무 말 그러니까 두가마를 賂物로 바쳤다가 門前薄待를 當했다고 했다. 賂物의 額數는 받는 사람의 地位와 請託의 程度에 따라 差異가 있겠지만 어쨌든 數値上으로 보면 참깨의 經濟的 價値가 빠른 速度로 評價切下된 것 같다.
🍎 참제비고깔(Larkspur) (꽃말 : 淸明, 自由, 輕率, 輕薄. 4月 19日의 꽃. 原産地 : 유럽)
💥 淡紅色 참제비고깔(Larkspur) (꽃말 : 自由. 5月 21日의 꽃)
★ 傳說
그리스의 엘리사탄 海岸에 正義感이 强한 오르토프스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낚시를 좋아하는 오르토프스는 어느 날 낚시를 하다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떨어졌는데 그때 돌고래가 救해 주었다.
그때부터 오르토프스와 돌고래는 서로 날마다 海邊에서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漁父들이 돌고래를 一網打盡하려는 計劃을 세웠다. 그러나 虛事였다. 番番이 失敗한 原因이 오르토프스가 이 消息을 돌고래에게 傳하여 먼 바다로 逃亡가게 했기 때문이다. 이 事實을 알게된 漁父들은 오르토프스를 殺害하여 屍體를 바다에 던지고 말았다. 돌고래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 오르토프스의 靈魂을 꽃에 머물게 해 달라고 바다 神에게 빌었다.
神은 그들의 友情을 嘉尙히 여겨 오르토프스를 참제비고깔 꽃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한다.
참제비고깔 꽃의 學名을 그리스語로 '돌고래(Deiphinium)'라고 한다.
🍎 창포菖蒲 (sweetflag. 學名Acorus calamus var. angustatus. 水昌, 地心, 隱客) (꽃말 : 敬意, 神秘한 사람. 優雅한 마음. 原産地 : 韓國, 中國, 日本)
💥 獨逸 菖蒲(German Iris) (꽃말 : 멋진 結婚. 4月 17日의 꽃)
★ 傳說
옛날 中國에 當代에 最高 高手인 靑年 劍客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말씀대로 自身의 劍術을 누구에도 드러내 자랑치 않으며, 自身의 劍術 實力만 믿고 함부로 相對을 對하지 않으며 每事에 愼重히 臨하겠다고 스승께 굳게 盟誓를 하였다. 또한 이를 어기면 어떠한 罰도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靑年은 술을 마시고 愛人 앞이라 그만 自己가 天下 最高 劍客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老人이 이것을 막아보라며 지팡이로 이마를 내려치자
無防備 狀態의 靑年은 손도 못쓰고 그 자리에서 絶命하고 말았다.
이 老人은 靑年의 스승이었다.
老人은 靑年의 屍體를 땅에 묻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 後 그의 무덤에서 칼처럼 생긴 풀이 돋았는데, 後悔하듯 謙遜히 피었다. 이 꽃이 바로 菖蒲꽃이다.
💢 꽃창포菖蒲(Flag Iris. 菖蒲붓꽃. 아이리스) (꽃말 : 優雅한 마음, 좋은 消息, 심부름. 5月 10日의 꽃)
★ 傳說
(1)
클로비스란 프랑스 王은 어느 날 神奇한 꿈을 꾸었다.
마흔 살이 넘도록, 한 番도 보지 못한 天使가 꿈에 나타나 防牌 하나를 주는 것이었다. 이 防牌에는 꽃菖蒲 세 송이가 繡놓아져 있었다.
이는 分明 하늘의 啓示로 받아들인
王은, 全國의 모든 兵士들에게 命하여 至今까지 개구리 紋樣의 防牌를 天使가 주고간 防牌와 똑 같은 꽃菖蒲 紋樣으로 바꾸도록 措置하였다.
그런지 얼마 뒤에, 外國의 軍隊가 프랑스에 쳐들어왔다.
오랫동안 戰爭을 準備해 온 敵軍의 先制攻擊을 막기에는 힘겨웠으나, 한 치의 땅도 敵에게 빼앗겨서는 않된다며 똘똘뭉친 프랑스 軍隊도 決死的으로 對抗하여 끝내 敵軍을 退却시켰다.
王도 兵士들도 기쁨에 넘쳤으며, 王은 이 勝利는 天使가 防牌를 갖다 주었기 때문이라고 稱頌했다.
한 동안 나라는 平和로웠으나, 또 다시 外國의 軍隊가 쳐들어왔다.
한 番 失敗를 하고 돌아간 敵軍은 이番에는 萬般의 準備를 한 모양이다.
數千 마리의 말과 數百萬의 軍隊가 프랑스 領土로 쳐들어왔다.
王은 卽時 最前方으로 支援軍을 이끌고 戰爭에 뛰어들었다.
王은 軍士들을 督勵하며 "우리에겐 하늘이 준 防牌가 있으니 勝利는 반드시 우리것이다. 한 치의 領土도 侵奪 當해선 않된다"라며 白馬위에서 防牌를 번쩍이며 活氣차게 陣頭指揮를 하였다.
이에 士氣衝天한 兵士들이 總攻擊을 펼친 끝에 敵軍을 모조리 쳐부수었다.
戰爭이 끝나고 다시 平和가 오자, 王은 王妃에게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다. 王은 防牌의 紋樣을 개구리에서 꽃菖蒲로 바뀐뒤로 두 番이나 戰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꽃菖蒲를 國花로 삼고자 하였다. 王妃도 積極 讚成하였다.
이때부터 꽃菖蒲는 프랑스 國花가 된 것이다.
(*꽃菖蒲가 이 世上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하늘의 仙女가 무지개를 타고 땅 위에 심부름을 왔다가 구름의 장난으로 무지개가 걷히자, 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꽃菖蒲로 變했다는 傳說도 있다.
꽃菖蒲는 또한 音樂의 聖人 베토벤이 좋아하던 꽃 中의 하나로, 베토벤이 사랑하는 戀人을 만나러 갈 때는 꼭 꽃菖蒲를 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2)
이탈리아에 아이리스라는 美人이 있었다.
名門貴族 出身으로 착한 마음씨와 高貴한 性品을 지닌 그女는 로마의 한 王子와 結婚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王子가 病으로 죽고 만다.
홀로된 아이리스는 請婚을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 누구에게도 應하지 않고 恒常 푸른 하늘만 마음속으로 憧憬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散策길에 젊은 畵家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 亦是도 아이리스를 사랑하게 된다.
畵家는 熱心히 請婚을 했고, 結局 畵家의 熱情에 感動한 아이리스는 다음과 같은 條件을 提示했다.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은 꽃을 그려 주세요"
畵家는 온 熱誠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아이리스는 그림을 본 瞬間 그 아름다운 姿態에 感動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이 그림에는 香氣가 없네요" 하고 失望스런 歎聲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그림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날개를 차분히 접고 꽃에 키스를 하는것이 아닌가.
그 瞬間 아이리스는 感激에 차 눈을 반짝이면서 畵家에게 키스를 했다.
이後 푸른 하늘빛의 꽃 아이리스는 그들이 처음 나누었던 키스를 그대로 간직해 只今도 꽃이 필때면 隱隱하고 그윽한 香氣를 풍긴다고 한다.
(3)
옛날, 하늘의 神에게 아이리스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그리스 最高의 女神 헤라는 아이리스를 예뻐해 自己의 侍女로 삼았다.
그런데 헤라의 男便인 바람둥이 제우스가 아이리스에게 마음이 끌려 그女를 誘惑하려 했다.
그러나 怜悧한 아이리스는 그 때마다 그럴 듯한 理由를 대어 자리를 避하곤 했다.
헤라는 그런 아이리스가 더욱 사랑스러워 무지개를 그女의 목걸이로 膳物해 주었고 이 무지개로 다리를 놓아 하늘을 건너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香氣로운 입김을 세 番 뿜어 주어 祝福해 주었다.
이 때 입김에 서린 물방울 몇 방울이 땅에 떨어져 꽃菖蒲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菖蒲를 아이리스라고 하는데 꽃菖蒲(Iris ensata var. spontanea)와 붓꽃(Iris nertschinskia)은 모두 ‘Iris’라는 같은 屬이다.
🍎 채송화菜松花 (Moss Rose. 佛甲草, 萬年草, 半支蓮, 따꽃) (꽃말 : 純眞. 可憐, 天眞爛漫. 10月 16日의 꽃. 原産地 : 南아메리카)
★ 傳設
(파키스탄에서는 主로 午後에 피기 때문에 Gul Dopheri<午後 꽃>이라고도 불리고, 印度에서는 主로 午前 9時에 피기 때문에 nau bajiya<9時 꽃>이라 불리며, 베트남에서는 午前 10時에 핀다고 10時꽃이라고 불린다)
古代 페르시아에 奢侈가 매우 甚한 女王이 있었다. 寶石을 좋아해 膳物도 稅金도 寶石으로 내라고 해서 臣下들과 百姓들은 등骨이 휠 地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老人이 數 많은 寶石이 담긴 箱子를 가지고 와서 女王께 바쳤다.
老人은 한 가지 條件을 내걸었다.
寶石 하나마다 페르시아 百姓 한 사람과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女王은 自己가 가지고 있는 寶石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老人의 寶石을 보자 갖고 싶은 慾心이 생겨 老人의 말은 흘려듣고 그 條件을 承諾했다.
그렇게 老人이 寶石 하나를 건네줄 때마다 百姓은 한 사람씩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寶石을 건네받은 뒤 마지막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이미 나라에는 百姓이 한 名도 없었음에도 女王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寶石을 가지려고 箱子를 집어드는 瞬間 寶石과 箱子가 모두 터지면서 女王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寶石들이 모두 흩어지면서 그 菜松花로 變했다 한다.
🍎 천인국天人菊(Firewheel. 루드베키아, 수잔루드베키아) (꽃말 : 永遠한 幸福, 正義, 團結, 協力. 原産地 : 北아메리카)
★ 傳說.
아메리카 西部 開拓時代에 美國의 開拓者들은 날마다 土着 인디언들을 몰아내며 領土를 넓혀갔다.
그러던 中 어느 작은 인디언 部落을 占領한 部隊의 指揮官이었던 젊은 白人將校는 인디언 酋長에게 다른 곳으로 移住해 살 것을 勸誘했지만頑强히 拒否當했다.
將校는 酋長을 說得하기 爲해 數차례 그의 집을 찾아갔다.
酋長에게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딸이 있었는데, 白人將校가 자주 찾아가다 보니 이 處女와 마주쳤으며 그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무르익어 갔다.
이렇게 되자 將校는 한 발 물러나 인디언과의 共存할 수 있는 길을 摸索해 보겠다며 酋長과 딸에게 約束하였다. 그리고 꼭 다시 돌아오리란 言約을 남기고 部隊를 東部에 있는 本陣으로 撤收시키기고자 길을 떠났다.
하지만, 인디언들과의 妥協은 決코 있을 수 없다는 過激派 部下들은 그 將校를 暗殺하고, 다시 돌아와 인디언 部落을 불태우고 인디언들을 쫓아 버렸다.
將來를 約束하며 사랑을 키워오던 白人將校의 죽음을 알리 없는 인디언 處女는 廢虛가 된 마을로 다시 돌아와 홀로 살며 戀人이 돌아오기만을 鶴首苦待했다.
오랜 歲月을 가난과 苦痛으로 버티며 살던 處女가 어느날 原因모를 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슬프게도 生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인디언 處女가 쓰러져간 자리에서 그女를 닮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바로 그 꽃이 永遠한 幸福을 꿈꾸었던 인디언 處女의 넋을 간직한 루드베키아로, 只今도 이 꽃을 보면 인디언 處女의 노란 살결과 검은 눈瞳子를 떠올리게 하고있다.
🍎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 Smile Rosebay. 躑躅, 黑船躑躅, 개꽃나무) (꽃말 :情熱, 사랑의 기쁨, 恩惠, 名譽. 原産地 : 아시아)
★ 傳說.
(1)
옛날 漢拏山 靈室地域에 아주 씩씩하고 健壯한 將軍감의 아들 500名을 거느리고 살던 어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五百將軍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들은 兄弟間의 友愛도 두터웠으며 孝心 또한 至極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아들들의 食事를 돌보는 어머니의 苦生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들들은 죄다 밖으로 나가고, 어머니만 집에 남아 커다란 가마솥에 粥을 가득히 쑤고 있었다.
나막신을 신고 가마솥 가장자리를 돌며 힘겹게 粥을 젓던 어머니가 아차하는 瞬間에 펄펄끓는 가마솥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粥은 먹음직스럽게 다 되었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머니가 볼일이 있어 暫時 出他했으라라 믿고, 배도 고픈차에 모두들 맛있게 粥을 먹기 始作했다.
그런데 가마솥의 粥이 바닥이 날 즈음에 나막신과 함께 뼈들이 나타났다. 이를 본 兄弟들은 只今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直感하였다.
너무도 안타깝고 서럽고 罪스러워 兄弟들은 목놓아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어느 누구도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으며 結局 5百名의 아들들은 化石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靈室의 억센 五百將軍(說法을 敬聽하는 佛弟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靈室의 五百羅漢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으로 불렸으며, 그들이 뿌린 눈물 자국마다 철쭉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철쭉꽃이 피기 始作할 때까지는 漢拏山도 素服을 벗지 않고 골짜기마다 쌓인 殘雪은 조금씩 녹아내리며 해마다 離別눈물을 보탠다고 한다.
(2)
細石平田의 陰陽水이야기는 智異山(1915.4m) 最初의 住民이었다는 夫婦에 對한 說話이다.
男便의 이름은 호야이고, 아내는 연진인데, 이들은 智異山에 들어와 幸福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子息이 없는것이 恨스러웠다. 어느 날 男便은 깊은 山속으로 열매를 求하러 떠났다. 이때 黑곰이 아내를 찾아와 細石平田에 있는 陰陽水를 마시면 子息을 낳을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듣고 아내는 곧장 그 샘터로 달려가 물을 마셨다.
한便, 平素 곰과 사이가 나빴던 범이 이들의 對話 內容을 엿듣고 있다가 山神靈에게 告해바쳤다.
이에 山神靈이 大怒하여 陰陽水의 神秘를 人間에게 發說한 곰을 土窟 속에 監禁하고, 아내에겐 細石平田의 돌밭에서 平生토록 혼자 철쭉꽃을 가꾸게 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男便을 기다리며 피눈물로 철쭉꽃밭을 가꾸던 아내는 어느날 촛대峰의 頂上으로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山神靈을 向해 男便이라도 돌아오게 해 달라며 懇切한 마음으로 빌었으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자리에서 望夫石으로 變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하고보니 山神靈도 過했음인지 怒氣를 풀고 奇跡의 샘 陰陽水를 人間에게 開放하여 그 惠澤을 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只今까지도 子息을 願하는 많은 女人들이 이곳에 찾아온다고 한다.
(3)
慶尙南道 河東郡의 金鰲山은 생김새가 特異한 바위가 많고 별窟 달窟이라는 窟바위가 있다.
먼 옛날 이곳에 달이란 女人과 별이란 사내 夫婦가 살았다.
별은 勇敢하고 힘이 세며 容貌가 俊秀하였고, 달은 白玉같은 얼굴에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絶世美人이었다. 이들은 琴瑟도 좋았으며 부지런히 일하며 幸福한 生活을 했다.
별은 겨드랑이에 金빛의 비늘이 있었는데 여기서 엄청난 힘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事實을 알고 있는 地神은 그를 猜忌하였으며, 特히 달을 차지하지 못한데 對한 怏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地神은 恒常 별을 없애버릴 窮理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疾病을 몰고 다니는 神이 나타났다.
地神은 그에게 自己의 事情을 말하고 도움을 請했다.
그러자 河東땅을 준다면 도움을 주겠노라며 應答하였는데, 달을 차지하기 爲해 地神은 그 條件에 應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별의 金빛 비늘을 떼게 하는 呪文을 알아내고 熱心히 중얼거렸다. 그러길 몇 年이 지나자 놀랍게도 별의 겨드랑이에서 黃金비늘이 떨어지며 그는 脈없이 쓰러졌다. 달은 그런 별을 極盡히 看護하였다.
呪文에 成功한 地神은 이때다 싶어 별을 없애기 爲해 구렁이로 變하고는 洞窟로 向했다.
그런데 거의 다왔을 무렵 어디선가 大虎가 나타났다.
그 大虎는 별을 救하기 爲해 錦山에서 온 것이었다.
두마리의 大虎가 出發했는데 수컷이 먼저 到着하여 커다란 구렁이와 猛熱한 싸움이 始作되었으나 勝負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숫 호랑이는 암컷 호랑이가 빨리 到着해 주기를 바랐으나 늦어지고 있었다. 理由는 地神에 도움을 준 神이 땅을 물길로 갈라 놓았기 때문이었다.
둘의 凄切한 싸움은 구렁이의 勝利로 돌아갔으며 結局 별도 죽임을 當하였다.
地神이 달을 보며 함께 살것을 請하자 달은 너무 忿怒한 나머지 온통 붉게 얼룩진 꽃으로 變하였으며 男便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이 꽃이 只今의 철쭉꽃이 되었다 한다.
(4)
三國遺事에 옛날 新羅 善德女王 때 江陵 太守로 赴任하는 純貞公을 따라 그 任所로 同行하던 水路夫人은 絶世佳人이었으며 꽃을 무척 사랑하였다. 그들 一行이 바닷가에서 休息을 取하였는데, 周邊의 景觀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特히 屛風처럼 드리워진 바위들은 一品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1千丈 絶壁위에 흐드러진 철쭉꽃은 그야말로 錦上添花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水路夫人이 歎聲을 連發하며 꽃이 갖고싶은 나머지 一行들을 둘러보고 "누가 저 꽃을 꺾어 올 사람이 없는냐"고 하였으나 누구도 나서는 者가 없었다.
그때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老人이 그 말을 듣고는 絶壁을 타고 올라가 철쭉꽃을 꺾어다 水路夫人에게 바치며 "자줏빛 바윗가에/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는 獻花歌도 함께 올렸다 한다.
🍎 청미래덩굴(Chinaroot , 山歸來 , 猿捕茨, 過山龍, 金剛果, 菝葜, 萆薢, 禹余粮, 土茯苓, 黃牛根, 金剛根, 명감, 망개나무, 종가시나무, 청열매덩굴, 매발톱가시) (꽃말 : 장난. 原産地 : 東北아시아)
★ 傳說.
옛날 어떤 閑良이 紊亂한 性生活을 하며 돌아다니다 梅毒에 걸렸다.
온갖 藥을 써봐도 效果가 없었으며 結局 몸도 衰弱해져 앓아눕게 되었다. 이에 아내의 憎惡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참다못해 男便을 山속에 대려다 버리고 말았다.
그 後 몇 달이 지난 어느날, 當然히 저승 사람이어야 할 男便이 멀쩡하게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勿論 梅毒도 깨끗이 나아 있었다.
아내는 큰 罪를 지은 잘못으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자 男便은 아내를 慰勞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고맙고 多幸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男便은 살아 돌아오게된 緣由를 說明하였다. 처음엔 너무도 배가 고파 헛것이 보이길래 어떻게든 살아야 겠다 싶어 周邊에 있는 가시덩굴의 뿌리를 캐서 먹었더니 異常하게도 虛飢가 가시며 몸 狀態도 좋아졌다 한다. 그래서 이참에 病의 뿌리를 뽑고 歸家하리라 作心하였는데, 마침 그곳에 사람이 살아도 될만한 窟이 하나 있어 그곳에 寄居하며 繼續 그 덩굴뿌리를 캐서 먹고 完快하여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土茯苓이라는 청미래덩굴 뿌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男便을 山에서 돌아오게 했다고 해서 ‘山歸來’라고도 불렀다. 凶年엔 救荒食品으로, 逃亡者들에겐 食糧 代用으로 쓰였다 하여 ‘硬飯’이라고도 부르며, 神仙이 물려준 糧食이란 意味의 ‘仙遺糧’이라는 이름도 지니고 있다.
🍎 초롱꽃(Canterbery Bell. 鐘꽃) (꽃말 : 感謝, 引導, 沈默. 7月 10日과 11月 21日의 꽃. 原産地 : 아시아<韓國>, 유럽)
💢 金剛초롱 (Geumgangchoronkkot. 紫斑風鈴草) (꽃말 : 可憐한 마음, 각시와 新郞, 靑紗초籠. 原産地 : 韓國)
★ 金剛초籠 傳說
먼 옛날 金剛山 毘盧峰 밑에 早失父母한 男妹가 살고 있었다.
누이는 어머니를 代身하여 同生을 살뜰히 보살펴 주었고, 同生은 누이를 어머니처럼 依支하고 살아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누이가 病으로 앓아 누웠고 온갖 藥을 써 보아도 病은 甚해만 갔다. 同生은 누이의 病을 낳게하기 爲해 온 山과 깊은 골짜기를 헤매며 藥草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나 지쳐 개울가 벼랑아래 기대 暫時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불쌍한 아들아, 네 누이의 病을 고칠 藥이 이 世上에는 없단다. 달나라의 桂樹나무 열매만이 藥이 되는데, 네 힘으로 어떻게 求할 수 있겠느냐. 외진 山속을 속절없이 헤매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어머니 달나라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 同生은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瞬間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나도 서러워 한참 동안 목 놓아 울던 同生은 하늘나라가 아무리 멀어도 기어이 올라가 桂樹나무 열매를 求해 오리라 마음먹고 百川洞 골짜기에 용하다는 一百 歲 된 老人을 찾아가 아뢰었다.
“할아버지, 저 달나라에 가려고 합니다. 가는 길을 좀 알려 주세요.”
“이 世上에서 하늘이 第一 가까운 곳은 毘盧峰인데 그 마루에 올라서면 달나라에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달나라는 사람이 못 가는 딴 世上과 같은 곳이란다."
할아버지께 感謝해 하며 同生은 달나라에 갈 수만 있다면 毘盧峰이 아무리 높고 險해도 가리라 다짐했다.
집에 돌아온 同生은 누이를 安心시키며 “누나, 내 좋은 藥草를 求하러 毘盧峰 마루에 다녀 올께.”
"얘야, 險한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操心해라. 그리고 늦지 않게 돌아와야 한다.”
“누나, 念慮마. 今方 갔다 올께.”
벼랑을 오르며 몇 番을 떨어져 구르며 傷處를 입으면서도 期於코 毘盧峰 마루까지 當到하였다.
하지만 정작 毘盧峰 꼭대기에 올라보니, 하늘의 달나라에 갈 길은 없었다. ‘날개도 없고 사다리나 밧줄도 없이 어떻게 올라가랴.’ 애를 태우며 同生은 그져 하늘만 쳐다보며 하염없이 앉았는데 어느 덧 해는 지고 밤이 되었다.
精神을 차리고 생각하니 ‘아, 누님이 나를 기다리겠는데 늦어서 어쩌나' 근심스러워 집이 있는 쪽을 바라본 瞬間 갑자기 머리위에서 "촤르르"하며 사다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恐怖에 질려 얼른 바위 틈으로 몸을 숨기고 살펴보니, 中天 높이 뜬 달에서 내려지는 銀사다리였다. 그런데 그 사다리를 타고 곱고도 고운 仙女가 물甁을 안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 金剛藥水를 길러 오는 月宮의 仙女가 分明하다.'
이렇게 생각하며 慌惚하여 지켜보는데 仙女는 黃龍潭의 물을 길어서는 흰 바위 곁에서 光石을 꺼내 하늘에 대고 비쳤다.
한 番은 오른손에, 한 番은 왼손에 番갈아 쥐고 비쳤다. 그리고는 光石을 바위 구멍에 다시 넣었다.
그러자 이番에는 金사다리가 주르르 내려왔고 仙女는 그것을 타고 올라가 버렸다.
同生은 드디어 달나라로 올라 갈 수 있는 秘密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서움도 잊고 흰 바위로 달려가 仙女가 두고 간 光石을 꺼내 보았다. 그것은 五色 燦爛한 寶石이었다.
한便 病席에 누워있던 누이는 藥草 캐러나간 同生이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자 애를 태우며 초롱불을 켜들고 찾아 나섰다.
누이는 毘盧峰 마루까지 가겠다고 한 同生을 찾아 기슭과 골짜기들을 살피며 다음 날 밤에야 毘盧峰 마루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毘盧峰 마루에 올라서자 멀지 않은 바위 壁 쪽에서 異常한 光彩가 번득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달려가 보니 그것은 金사다리가 하늘에서 땅에 드리운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로 同生이 올라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며 누이는 同生을 불렀다.
누이의 목소리를 들은 同生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누나, 달나라의 桂樹나무 열매만이 누나의 病을 고칠 수 있어. 얼른 다녀 올테니 기다려.” 同生도 金사다리도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누이는 두 팔을 벌리고 돌아오라고 발을 구르며 同生을 불렀으나 哀切한 목소리만 虛空에 맴돌 뿐이었다.
누이는 초롱불을 마주하고 앉아 온 밤을 새웠다. 그때부터 누이는 同生과 헤어진 毘盧峰 마루에 每日 밤 초롱불을 켜들고 찾아 올랐다.
하늘로 올라간 同生은 낯선 世上에 이르러 마침내 桂樹나무 열매를 딸 수 있었다. 그는 赤衫을 벗어 열매를 싸안은 다음 누님이 애타게 기다릴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둘러 金사다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때 하늘나라 法秩序를 맡아보는 四天王이 同生을 發見했다.
人間 世上의 사람이 神仙 나라를 侵犯하였다고 크게 怒하여 金사다리를 들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 갈겼다.
그때 그만 銀사다리, 金사다리는 "콰르릉"하는 천둥소리를 내며 毘盧峰 마루에 떨어져내려 數 千 數 萬 個의 層階를 이룬 바위 돌로 變했다.
四天王은 人間 世上에서 올라온 놈을 魂내기 爲해 잡고 보니 그는 어린 少年인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찌하여 달나라에 올라왔느냐?”
노여움과 함께 驚歎에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少年이 어리둥절하여 서 있는데 臣下들이 말을 되받아 “올라오게 된 緣由를 아뢰어라.”하고 소리쳤다.
그제야 同生은 前後事緣을 말한 다음 赤衫 소매에 싸 넣은 桂樹나무 열매를 보이면서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哀願하였다.
少年의 이야기를 듣고 난 四天王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奇特하구나, 人間 世上에 이같이 至極한 男妹間의 사랑이 있는 줄을 내 미처 몰랐노라.”하더니 다시 吩附를 내렸다.
“月宮에서 第一 날랜 龍馬를 태워 보내라.”
이리하여 少年은 桂樹나무 열매를 가지고 毘盧峰을 向해 疾風같이 龍馬로 달려 내려왔다.
하지만 神仙나라의 하루는 人間 世上의 千 年과 같아 同生은 누이를 만날 수 없었다.
同生과 헤어진 그날부터 하루같이 초롱불을 켜들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기다리던 누이는 끝내 그리운 同生을 만나지 못한 채 숨이 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이가 죽을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초롱불만은 千 年이란 오랜 歲月이 흘렀지만 꺼지지 않고 그대로 켜져 있었다. 그 불은 異常하게도 漸漸 더 빨갛게 켜져 있다가 꽃으로 變하였다.
同生은 毘盧峰 마루에 내려 누이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에선가 꽃香氣가 풍겨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누이가 들고 있던 초롱불 같은 아름다운 꽃이 香氣를 풍기고 있었다.
“아! 초롱꽃” 同生은 사랑하는 누나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안고 누나와 함께 오르내리며 오누이의 情을 뜨겁게 나누던 잊을 수 없는 봉우리들과 골짜기에 그 꽃을 精誠껏 옮겨 심고 愛之重之 키우며 가꾸었다.
초롱꽃은 이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갈라져서 살 수 없는 오누이의 살뜰하고 純潔한 마음을 담았기에 오로지 金剛山에만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리고 언제나 同生을 애타게 기다리는 누나의 모습처럼 하늘 속의 달나라를 向해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짙은 香氣를 풍기며 사람들에게 友愛의 깊은 情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金剛초롱꽃”이라 부르며 特別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 측백 側柏나무(Arbor-Vitae) (꽃말 : 堅固한 友情, 期待. 1月 11日의 꽃. 아시아<韓國. 中國>原産)
★ 傳說
(1)
子息이 없는 老夫婦가 先祖들의 墓를 지키면서 墓 附近의 오두막집에서 살았는데, 너무도 가난하였기에 가끔은 食糧이 不足해 동냥을 하기도 했다. 多幸히 집은 튼튼하여 눈이 덮여 무너질 걱정은 않아도 되었다.
이들 夫婦의 오두막집 周邊엔 커다란 側柏나무가 數十그루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側柏나무의 가지와 잎과 열매가 많이 떨어졌다. 老夫婦는 그것을 모아서 오두막집 처마 밑에 가득히 쌓아 두었다가 겨울에 땔감이나 炊事用으로 使用하였다.
어느 해 겨울, 오두막집을 덮을 만큼 큰 눈이 내려 꼼짝없이 老夫婦는 房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食糧도 바닥이 나고 夫婦는 甚한 배고픔에 시달렸다.
눈이 어느 程度 녹은 날 아침, 참새와 山새들이 房門 앞에서 눈을 헤치며 무엇인가를 熱心히 먹는 것을 老夫婦가 보게 되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처마밑에 수북 쌓아둔 側柏나무의 열매였다.
瞬間 이들은 새들이 먹는다면 사람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側柏나무의 씨앗을 모아 솥에 넣고 끓이자 솔香을 풍기며 걸쭉한 粥이 뇌었다. 夫婦는 주린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午後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배부르고 便安한 잠에 醉해 있던 어느날 老夫婦는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다름아닌 두사람의 조카로, 눈속에 먹을것도 없이 어떻게 지내시나 걱정이 되어 食粮을 조금 가지고 찾아왔던 것이다.
夫婦는 조카들을 반갑게 맞았으며, 조카들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여쭈어 보았다.
夫婦는 側柏나무의 열매를 끓여 먹었더니 虛飢도 덜하고 잠도 실컷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歸家길에 어버지가 不眠症으로 苦痛스러워 한다며 말씀드리고 側柏나무의 열매를 조금 얻어 가지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이 열매를 끓여 먹은 뒤로는 단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한다.
그 後 不眠症 老人에게 側柏나무 열매가 效果가 있다는 事實이 온 마을에 傳해지게 됐다. 그 所聞을 들은 醫師 들이 試驗해 본 結果, 不眠症에 效果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心血不足에 依한 虛汗, 腸의 津液不足에 依한 便秘에도 效果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 後 오랜 期間의 臨床實驗의 結果로 側柏나무 열매는 韓藥으로 使用하게 됐으며, 그이름을 `柏子仁'이라고 부르게 됐다.
(2)
옛날 秦나라 宮女가 山으로 逃亡쳐서 仙人이 가르쳐 주는대로 소나무와 側柏나무잎만 먹고 살았는데, 추위와 더위를 모르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온몸에 털이 난 체로 2百 年 以上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3)
赤松子라는 사람이 側柏나무 씨를 먹었는데 빠졌던 이가 다시 났다고 왔다 하였으며, 柏葉仙人은 側柏나무잎과 열매를 8 年동안 먹었더니 몸이 불덩이처럼 되고 腫氣가 온몸에 돋았다가 깨끗이 나았는데 그 뒤로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에서 빛이나며 結局 神仙이 되어 羽化登仙(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神仙이 됨) 했다 한다.
★ 側柏나무에는 무덤 속의 屍身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는 힘이 있다.
좋은 자리에 묻힌 屍身에는 벌레가 생기지 않지만 나쁜 자리에 묻힌 屍身에는 진딧물을 닮은 자잘한 벌레가 생겨 屍身을 갉아먹는데, 이 벌레를 閻羅蟲이라고 부른다.
側柏나무를 墓地 옆에 심으면 屍身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서울 城北區 放鶴洞에도 三百살이 넘은 側柏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의 잎을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傳說이 있어 受難을 當하고 있단다.
🍎 梔子나무(Cape Jasmine) (꽃말 : 限없는 즐거움, 純潔, 淸潔, 幸福. 3月 19日의 꽃. 中國 原産)
★ 傳說
옛날 英國에 가데니아라는 아름다운 少女가 살았는데, 純潔한 것을 좋아한 나머지 흰色을 몹시도 사랑했다.
어느 겨울 밤, 少女가 눈부신 흰 눈이 온 世上을 뒤덮는 光景을 꿈꾸고 있을 때, 누군가 조용히 窓門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살며시 일어나 窓 밖을 내다보았다.
窓 밖에는 하얀 꽃을 한아름 안은 天使가 微笑지으며 서 있었다.
“나는 天國의 純潔의 天使입니다.
이 世上에서 가장 純潔한 處女를 찾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쁨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天使가 少女에게 파얀 꽃 한 아름과 씨앗 하나를 膳物로 건네주고 떠나갔다.
少女는 이 씨앗을 흰 花盆에 심고 精誠껏 물을 주고 가꾸었더니 얼마 後 싹이 나왔다.
少女는 다시 苗木을 操心스럽게 땅에 옮겨 심고 잘 자라나기를 빌며 보살폈다.
一年이 지나자 나무는 크게 자라서 크고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다.
꽃이 어찌나 희고 아름답고 香氣로운지 이웃 사람들도 놀라며, 이는 가데니아가 所重히 여기는 純潔의 넋이 서린 꽃이라고 異口同聲으로 말했다. 이 꽃이 바로 梔子꽃이다. 少女는 말할 수 없는 幸福에 잠겨서 이 꽃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天使가 나타나가데니아에게 말하였다.
“가데니아! 그대가 키운 꽃은 이제부터 이 땅에서 永遠히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오. 그리고 또 그대가 꿈꾸는 純潔한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데니아는 놀라서 天使에게 물었다.
“天使님! 나의 男便이 될 만한 純潔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곳에서도 제가 꿈꾸어 온 男子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天使는 微笑를 지으며 가데니아에게 말하였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말을 마친 天使는 놀랍게도 갑자기 아름답고 凜凜한 靑年으로 變하였다.
가데니아는 뜻밖에 일어난 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靑年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時間이 흐르면서 흰색의 꽃 빛과 香氣 속에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사랑스런 눈빛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 씨에서 자란 나무의 꽃을 가데니아꽃(梔子꽃)이라고 불렀다.
🍎 칡(Kudzu Vine. 葛, 葛根, 野葛, 黃芹, 粉葛, 葛子根) (꽃말 : 사랑의 한숨. 原産地 : 아시아)
★ 傳說.
(1)
옛날에 깊고도 鬱蒼한 山속에 藥草를 캐 마을에 아픈사람이 생기면 고쳐 주기도 하면서 홀로 사는 老人이 있었다.
어느 날 老人이 山에서 藥草를 캐는데 갑자기 山밑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싶어 暫時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열댓살 쯤 되어 보이는 한 少年이 老人에게 달려오면서 숨이 넘어갈듯 살려달라며 털석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處해진 狀況을 빠르게 說明했다. 自身은 山 아랫마을에 사는 葛원외라는 사람의 외아들인데, 朝廷의 奸臣들이 아버지가 逆謀를 꾀한다고 임금님께 讒訴하여 軍士들이 몰려와 집을 包圍하였으며, 이때 아버지는 모든것을 諦念한채 自身만은 꼭 살아서 집안의 代를 잇도록 하라며 逃亡치게 했다고 말했다.
온 家族이 慘酷하게 죽임을 當하였는데 自身만 몰래 빠져나왔으나 軍士들에게 發覺되어 追擊을 當하고 있다고 했다.
葛氏 家門은 代代로 忠臣의 집안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尊敬하고 있는터였다.
老人은 그 少年을 救해 주기로 決心하고 깊고 險한 골짜기에 自身만 아는 洞窟로 避身시키며 平素에 藥草를 貯藏해 두는 곳이니 배가 고프면 그것을 먹도록 하라고 일렀다.
사나흘 동안 山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少年을 찾지 못한 軍士들은 범에게 먹혔거나 굶어 죽었을 것이라며 追擊을 멈추고 下山하였다.
洞窟로 찾아간 老人이 少年을 安心시키며 떠나도 좋다고 하였다.
그러자 少年은 마땅히 갈곳이 없다며 老人을 모시고 살 수만 있다면 꼭 그 恩惠를 잊지않겠다고 哀願했다.
老人은 少年의 處地가 너무도 안타깝고 可憐하여 어렵지만 같이 살기를 許諾했다.
그 뒤로 少年은 老人과 함께 날마다 山을 오르내리며 藥草를 캐 生計를 이어갔다.
老人은 少年을 親孫子같이 極盡히 사랑했고, 少年도 老人을 親할아버지처럼 恭敬하며 뒷수발을 다하였다.
老人은 藥草를 採取하면서도 굵고 튼튼한 덩굴植物 뿌리를 캐는것을 좋아하였는데 渴症이나 泄瀉에 效果가 뛰어났다. 少年이 洞窟속에서 먹었던 것도 이 뿌리였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뒤 老人은 世上을 떠났다.
이제 長成한 少年은 혼자 藥草를 캐러 다녔다. 그리고 그 동안 老人에게서 藥草의 쓰임을 배워 많은 患者를 돌보았다.
特히 泄瀉病에 效驗이 뛰어난 덩굴 뿌리의 이름를 몰랐기에 사람들이 물었을때면 難堪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하나 지어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잊고 살았던 지난날을 回想해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自身만이 오직 葛氏 집안의 한 줄기 希望이자 뿌리란 생각이미치자 이를 잊지말아야 겠다고 다짐하며 '葛根'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以後 사람들은 葛根 곧, 칡뿌리라 불렀으며, 옛날 凶年엔 救荒食品으로 사랑을 받았고 오늘날엔 사람들에게 藥用으로도 多樣하게 쓰인다.
(2)
德裕山 골짜기에 早失父母한 참으로 不幸한 盲人 兄弟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아우는 兄을 爲해 每日같이 칡뿌리를 캐와 粥을 쑤어 주었다.
兄은 粥을 먹을때 마다 同生이 찌꺼기만을 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못난 생각이 禍根이 되어 아우는 不幸하게도 兄에게 殺害을 當하고 말았다.
어처구니 없고 寃痛하게 죽은 同生은 소쩍새로 還生하였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앞못보는 兄을 안타깝게 생각한 同生은 소쩍새가 되었어도 兄의 安危를 걱정하며, 굶어 죽지는 말라고 이곳저곳 칡이 있는 곳으로 날아다니며 그 位置를 가르쳐 주었다.
소쩍새 울음만 따라가면 칡이 있어 兄은 僅僅이 살아갔으나, 언제부턴가 兄의 손에 칡이 닿으면 그 칡은 녹아 버리는지 몰라도 欣跡없이 사라져 버렸다.
結局 兄도 얼마 못가서 목숨을 잃는 罪값을 치루고 말았다.
以後로 德裕山엔 칡이 없다는 傳說이 있다.
(3)
伽倻國 5代 伊品王 때의 일이다.
宮闕 西쪽 佛母山 아랫 마을에 늙은 陶工 曺氏와 외동딸 설희가 살았다.
설희는 性品이 豁達하고 義俠心이 强했다.
그女의 집안은 옛날 居登王의 王妃 慕貞王后의 親戚이기도 했다.
老 陶工의 卓越한 技術은 伽倻聯盟國 뿐만 아니라 百濟와 倭에 까지도 알려 지게 되었다.
한때는 倭國으로부터 豊足한 老後를 保障하는 條件으로 와 달라는 勸誘도 있었으나 拒絶하였다.
한便 어여쁜 설희에게도 아버지의 여러 弟子들로부터 求愛가 있었는데, 그 中에서 쇠바우 동네(金岩洞)에서 온 바우쇠와 사랑을 하여 將來를 約束한 사이가 되었다.
아버지도 이들의 사랑을 許諾하였으며, 바우쇠는 熱心이 陶藝의 훌륭한 技法을 익혔고, 約婚을 盟誓한 두 사람의 사랑도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갑자기 나라에 戰爭이 터졌다.
當時 伽倻國은 百濟와 倭를 가까이 했으나 新羅에 對해서는 威脅을 加하였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新羅가 高句麗 廣開土大王에게 援兵을 請하여 騎兵과 步兵 5萬名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伽倻國은 많은 犧牲을 치루고 온갖 受侮의 不利한 條件을 받아드리며 戰爭은 終熄되었다.
이때 戰場에 바우쇠도 差出되어 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戰死를 했다느니 高句麗에 捕虜로 끌려갔다느니 하는 온갖 所聞이 있었으나 確實치는 않았다.
설희는 佛母山 長遊巖에 올라가 날마다 至極精誠으로 바우쇠의 無事 歸還을 祈禱했지만, 다음 해 가을이 올 때까지도 아무런 消息이 없었다.
周圍사람들도, 아버지도 이제는 잊고 좋은 婚處를 얻어 떠나라고 勸하였으나 설희는 그럴 수 없다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기를 3年째, 高句麗에 捕擄로 끌려간 바우쇠가 千辛萬苦 끝에 살아서 돌아왔다. 그러나 바우쇠는 왼쪽 팔을 못 쓰게 되어 陶工으로서는 絶望的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희는 바우쇠가 죽지 않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感謝해 했으며 두 사람은 結婚式을 올렸다.
이제 陶工일에는 설희가 발벗고 나섰다. 바우쇠도 한 팔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熱心히 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끈질기게 일하는 夫婦를 가리켜 ‘칡넝쿨 夫婦’라 했으며 설희를 ‘칡꽃아씨’라 불렀다.
戰後엔 海上權이 新羅로 넘어가 倭와의 陶磁器 輸出길은 막혔지만 中國으로 그 길을 열어 이들 夫婦는 相當한 富를 누렸다.
그 동안 아버지도 老衰해 世上을 뜬 狀態였다.
그러던 中 어느핸가 極甚한 가뭄으로 나라에 凶年이 들었는데, 칡넝쿨 夫婦는 그동안 모은 財産으로 밥을 굶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이 所聞이 宮中에까지 傳해졌다.
伊品王과 貞信王后는 칡넝쿨 夫婦를 宮中으로 불러들여 宴會를 베풀고 稱讚하며 큰 賞을 내렸다.
歲月이 흘러서 이들도 世上을 떠났다.
伽倻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 칡꽃이 필 때면 칡넝쿨 夫婦를 기리기 爲해며 女人들은 머리에 칡꽃을 꽂고 술과 떡과 茶로 祭祀를 지내는 風俗이 생겨났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