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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19:20
아직도,
무엇이….
설익은 자의 생각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께 섭섭할 때 나오기 쉬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무엇이…..
이 잣대를 참 많이 휘둘렀습니다.
최선을 다한 후 그저 값없이 받은 것이니 값없이 주는 그런 마음이 참 부족한 인생이었습니다.
괘씸한 놈들 많은 것처럼 생각되곤 했습니다.
하늘 보화를 위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예수님 말씀에 근심하며 돌아 간 청년의 마음을 그려봅니다.
그 청년이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고 자랑이 되지 않기를,
선을 행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기를
선을 행하고 휘두를 잣대가 길어지는 꼴이 아니기를 기도합니다.
그저 거저 받은 것 흘려보낼 수 있는 믿음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6절)
얼마 전 본 글귀가 얼핏 떠오릅니다.
'부부지간에는 생색을 내지 맙시다'라는 글입니다.
그 글을 읽고는 좀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은연중에 나를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던 터라 무슨 일을 하면 입으로 터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건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부부라는 것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제게 바탕이 되었다면 제 몸에 한 것에 대하여 제 스스로 생색을 내는 것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이 주신 나의 짝이요 그 짝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이 연합하여 가정을 만들고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며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9:27-28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어떤 행동을 할때는 무언가를 꼭 얻기 위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잘 살거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낙심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닥치나 낙망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도 같은 고민을 한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얻는 게 중요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잘되는 삶이 이 세상에서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갖고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지도 예수님 보시기에는 중요치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온전할 수 없는 우리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게 목적이 아닌 사는 동안 예수님 자녀로 부끄럽지 않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베드로는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천국에서 받을 영광을 얘기해 주십니다
제자들의 생각에 꾸지람을 할 만도 하지만 그들이 시간이 지나면 참된 제자로서 주님을 따를 것을 아셨기에 후에 받을 영광을 얘기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의 모습은 온전한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저를 기다리시듯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다른 이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했지만, 겉으로는 계명을 지켰을지 몰라도 율법의 정신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요구를 온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드러났습니다.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영생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소유에 집착하며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 속에, 아직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부요함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언제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열린 손과 마음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소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믿음을 구합니다.
하나님,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제 마음이 세상의 것에 묶이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만이 제 최고의 가치이심을 고백하며, 그분을 따르는 기쁨 안에 살게 인도해 주세요.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땅을 살며 제게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버리라 하면 저도 버릴 자신이 없습니다. 저 역시 재물 많은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전심을 다해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믿음이 이기는 삶 되길 기도합니다.
기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이나 삶의 우선순위 문제는 늘 우리를 따라다니고 각 사람의 우선순위가 그들의 삶의 품격과 가치를 말해줍니다.
기독교인이 되기 전과 후의 삶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바뀌어야 합니다. 천국 가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천국에 갈 수 있을만한 삶을 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의 결과입니다. 80-90년대의 축복신앙이 천국을 목적으로 만들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우선순위를 가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 힘든 이유는 부자 되게 해준 돈을 포기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논리로 정치인은 권력의 욕심을 포기해야 하고 목사들은 섬김 받기와 권위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사역의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대한 욕심일 것 같습니다. 그저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자족하며 살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누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고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라 하시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이들과 같이 나의 어떠한 노력과 열심히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고 방법이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자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의 삶,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하는데 가진 것이 많아서, 누리는 것이 많아서 때로는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에도 내 손에 들어오면 쉽게 내놓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모든 것을 깨닫고 아낌없이 그에게 내어드릴 수 있는 이가 되기 원합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소수에 확률에 온전한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19장에서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꾸짖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18장에서 하신 말씀을 제자들은 왜 귀담아듣지 않았을까요?
저에게도 반복해서 주신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반복해서 언급하시는 말씀들을 내 말씀으로 받고 마음에 잘 새기고 그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주를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무엇을 얻을수 있나요...
베드로의 숨기지않는 솔직한 질문에...
오히려 제 안에 숨겨진 속마음을 들킨것같아 뜨끔했습니다.
아...우리가 이렇구나...
버린다고 버렸다고 하지만 다른 것을 다시 얻기를 바라는구나...
입술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 희생했다고 여기며 그에 대한 댓가와 보상, 더 큰 축복, 응답을 기대하는구나...싶었습니다.
어찌보면 거래하는 듯한 부끄러운 질문에도...
주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받을거라 친절히 말씀해 주시는 주님...
존귀하신 주님을 얻음에도 내것 버리기를 망설이는 부족한 자를 받아주시고, 은혜주시며 끝까지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한분이면 됩니다...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시며, 주시는 사랑만으로 감사하며 주님앞에 머물도록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