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이 소유한 언론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기업들이 언론을 소유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언론사도 기업체이니 대기업과 돈 많은 사람들이 사고 팔 수도 당연히 있습니다. 축구단과 야구단이 매매시장에 나오고 돈 많은 세력이 사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경우는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다른 기업체는 이윤추구만이 최선의 목표겠지만 언론사는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기업체와는 달리 언론사에는 사회적 도의 내지는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역할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론사가 영업이익만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무감은 등한시하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이미 언론사가 아닙니다. 그냥 시중잡배가 운영하는 기업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독자들이 사서 읽지 않을 것이고 방송사의 경우는 시청률이 곤두박질을 치고말 것입니다. 독자와 시청자가 없는데 어떻게 운영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세계적인 언론사들이라는 곳에서 요상한 일들이 벌어져 상당한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얼마전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와 LA 타임스가 이번 미국 대선에서부터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미국내에서는 엄청난 파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언론사들이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대선때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발표가 없어도 당연히 저 언론사는 어떤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보수적인 색체의 언론사와 약간의 진보성향의 언론사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도 난이도도 있지 않습니다. 그냥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진보성향의 언론과 보수적인 언론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미국은 대선전에 상당수 언론에서 자신들이 검증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것이 전통화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을 양분하는 두 신문사 그러니까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이번에도 당연히 지지 후보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고 뉴욕타임스는 이미 지지후보를 밝혔습니다. 이제 워싱턴포스트가 밝힐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대선부터는 특정 후보지지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신문사 기자들과 편집진 등이 합의해서 내려졌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의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바로 신문사 소유자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3년에 아마존의 설립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것입니다. 이번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 LA타임스도 의사이자 사업가가 2018년 재정난에 봉착한 언론을 구하겠다면서 사들였습니다. 대기업 소유주와 돈많은 개인이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를 인수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 두 신문이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다고 그 신문 독자들이 후보를 선택하는데 혼란스럽지는 않습니다. 이미 두 신문이 어떻 성향인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성향의 독자들이 주로 선택한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해당 언론사 기자들과 유명 편집인들의 반응은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 로버트 케이건이 향의 표시로 사표를 던졌고 기자들도 한 명의 후보(트럼프후보)가 언론의 자유와 헌법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결정은 중대한 실수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해서 워싱턴 포스트를 빛낸 언론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기자도 이번 사태가 너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쟁사인 뉴욕타임스도 언론학자의 칼럼을 통해 이번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바로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존재합니다. 트럼프후보는 유세장에서 자기가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를 비판한 미디어와 언론인들에게 보복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이런 협박에 대해 미국의 기자와 언론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자 본연의 임무를 다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협박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바로 언론 사주 즉 신문사를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마음 먹기따라 자신들에게 상당한 위해가 돌아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너무 싫어하는 언론사들이 있습니다.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입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그때마다 가짜뉴스라고 폄하하기 바빴습니다. 이들 언론사들과 연관된 기업들은 트럼프 재임기간동안 이런 저런 피곤함을 많이 겪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다시 돌아오면 그런 양상이 또 재연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 언론사 소유자들은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번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제 미국은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명언인 "자신은 언론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제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워낙 럭비공이자 독불장군인 트럼프 후보의 재등장은 미국 언론에게는 정말 악몽같은 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제프 베이조스나 LA 타임스를 인수한 사람도 트럼프의 귀환을 미리 판단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권력을 두려워하는 자는 언론사를 소유하면 안된다는 대단한 격언을 이번 사태는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애당초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가가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언론사는 이런 저런 외압에도 굳건하게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으로서 위상이 생기는 것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고 다른 매체에 밀려서 전통의 언론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가들이 인수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언론사를 소유한다는 것이 풍기는 의미는 대단합니다. 아무리 권력자라도 감히 언론사 사주에게 마구 대할 수 없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일관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기업가가 소유한 언론사는 위축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기업가를 옥죄면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럴 경우 언론사의 본분의 역할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반화된 이야기입니다. 특히 한국의 이런 저런 언론매체들의 소유주가 건설사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유주가 건설사인데 어떻게 건설사의 입맛에 반하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겠습니까. 사표를 낼 생각이 없다면 건설사가 추구하는 것을 무시하면서 제대로 된 건설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담아 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번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LA 타임스에서 일어난 일은 여러가지 면에서 씁쓸하다는 뒷맛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언론이 아직 제 역할을 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그 명성에 오물을 뒤집어 씌운 형국입니다. 이제 미국마저 그렇다면 세계속에 제대로 된 언론이 설 수 있는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답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시대의 감시자인 언론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권력의 횡포와 불평등과 부정 등 암흑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언론학자의 말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2024년 10월 2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