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서랍 / 김분홍
칸칸의 마디를 여닫는 명분이 많은 어둠에도 손잡이가 있을까 네모의 귀퉁이를 가졌기에 삼각 김밥의 의미와는 다른 모서리가 있을 거야
닫힌 서랍은 비밀이 열릴까 봐 초조하고 열린 서랍은 무엇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비밀은 결코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서
손가락에 채워진 애인의 자물쇠를 풀어줄게
숨기는 나와 탐색하는 너 속이 활짝 펼쳐진 하늘 아래 속을 숨긴 우린 누워 있어
뒤집어진 하늘이 줄줄 샌 걸까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문은 열리지 않고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어 바닥에 젖은 지문들 수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손잡이를 탓해선 곤란해
정리는 연 사람만 닫을 수 있어 닫힌 사람을 두드려 보는 것 자꾸만 삼각으로 쏠리는 마음이 엉켜 있어 정리하고 싶은 얼굴
끝까지 열어야 하는 거니, 닫아야 하는 거니
⸺ 《상상인》 2022년 1월호(통권 3호) -------------------
* 김분홍 시인 1963년 충남 천안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및 방송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전문가과정 수료 2015년〈국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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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추는 사물들
「끝까지 서랍」에서 전면에 나오는 사물은, 역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랍’이다. 그런데 이 서랍은 열거나 닫을 수 있다는 면에서 복합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우리의 마음처럼 말이다.
이 시에서 서랍은 연인인 “숨기는 나와 탐색하는 너” 사이에서 어긋나버리는 마음들을 보여주는 사물이다. 시인이 포착한 서랍의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닫혀 있는 서랍을 보면 그 서랍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닫힌 서랍을 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반면 닫힌 서랍은 비밀이 드러나지 않을까 초조하다.
시에 따르면 ‘나’는 닫힌 서랍이다. ‘너’는 이 서랍을 열고자 한다. 나와 너를 바꾸어 놓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는 자신의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싶을 것이다. 하여 두 연인은 “속을 숨긴” 채 같이 “누워 있”는 것이다.
서랍을 열었을 때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에 따르면 그곳에는 “엉켜 있어 정리하고 싶은 얼굴”이 있다. 그 서랍이 열렸을 때 서랍은 “무엇을 증명하려고 애”쓰지만, 그 증명은 불가능하다. 열린 서랍 속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비밀은 서랍 속에 없었다. “비밀은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기에. 즉 너의 서랍을 열었다고 너의 비밀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얼굴들’이 엉켜 있을 뿐이다.
서랍 속에 있는 것들의 정리는 서랍을 닫은 사람만 할 수 있다. 서랍을 닫은 사람만이 그 서랍을 열 수 있기 때문에.(반대로 그 서랍을 연 사람만이 닫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서랍을 열고자 하는 ‘너’가 아무리 비밀의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하지만 비밀은 “속이 활짝 펼쳐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들어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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