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세렝게티 평원에서 누우들은 떼를 지어 다닌다. 홀로 다니면 사자 등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서로의 안전을 위해 모여 다니면서 풀을 뜯고 생활한다.
요즘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서도 떼를 짓는 이른바 ‘브랜드 타운촌’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정 지역을 하나로 묶는 브랜드 타운 내 아파트 몸값이 불황 속 호황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한솔공인관계자는 “시장 침체 영향으로 아파트 가치가 떨어질 만도 하지만 신도림 역세권 중심으로 형성된 대림아파트의 경우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가격도 오르고 거래도 이뤄지는 등 강한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맹주' 역할 톡톡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촌. 총 3500가구로 1979년 완공된 이 아파트단지는 28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 아파트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곳 현대아파트는 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거래가 꾸준하다. 가격도 올 들어 강남권 일반아파트 값이 약세를 면치 못했지만, 이곳은 예외다. 매수세는 꾸준한 데 매물이 많지 않다 보니 가격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구현대1차 142㎡(43평형)은 17억~18억원을 호가한다. 일반 평균 시세는 16억2500만~17억5000만원을 형성하고 있지만 실제 이 가격대로 살 수 있는 매물은 없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압구정동 나은공인(02-545-4321) 김여진 실장은 “서울의 다른 지역 아파트가 최근 들어 소형 중심으로 가격이 소폭 오르고 있지만, 이곳은 대형 아파트를 사려는 잠재 수요가 넘쳐나는 곳으로 적정 가격대에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거래된다”고 전했다.
면적이 큰 아파트일수록 가격 상승 폭은 더 크다. 구현대1차 178㎡(54평형)은 거래가가 21억5000만~23억원으로 올 들어 2~3억원 가량 올랐다. 인근 구현대2차 175㎡(53평형)도 올 초보다 2억원 이상 올라 최고 25억~27억원을 호가한다.
구로구 신도림동 일대에 조성된 대림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들도 지역 맹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99년 1차 1056가구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2004년 7차 411가구 입주까지 총 4224가구의 대림타운이 형성돼 있다. 한 때 신도림 일대는 주거지로서는 외면을 받던 곳이었지만 대림산업이 공장 터에 아파트를 짓고 브랜드타운을 이루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특정 지역에 한 브랜드로 주거 타운을 형성한 아파트들이 시장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가격
이 오름세를 타는 등 '불황 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세권 일대
가격도 주변 아파트보다 높다. 신도림역과 가까운 대림 e편한세상 4차 112㎡(33평형)는 8억원 선으로 바로 옆에 동아3차 135㎡(40평형) 거래가(7억5000만원)보다 더 비싸다. 이 아파트는 ㎡당 714만원(평당 2352만원)으로 웬만한 강남 아파트 값 수준이다. 152㎡도 1년 새 최고 1억5000만원이나 치솟아 11억원을 호가한다.
신도림동 은혜공인 윤영부 사장은 “대형 브랜드 타운이 형성된 데다 역세권 개발까지 완료되면 이곳 대림아파트 몸값이 더 뛸 것이라는 기대감에 집 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엔알 박상언 대표는 “브랜드타운은 아파트 단지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문화, 상업시설 등의 기반시설도 체계적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기엔 가격 선도, 침체기엔 가격 안 빠져”
마포구 공덕동과 신공덕동은 ‘삼성타운’으로 불릴 만큼 삼성건설의 아파트 단지들이 성곽처럼 둘러싸고 있는 동네다. 이곳엔 7개 단지 5101가구의 삼성래미안 아파트가 포진해 있다. 다른 브랜드 아파트보다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고 가격 또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실제로 공덕 삼성래미안3차의 경우 주변 아파트보다 매매 호가가 평균 1억원 이상 비싸다. 삼성래미안타운내 아파트는 7월 이후 소형 평형 위주로 가격 오름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신공덕 삼성래미안2차 76㎡(23평형)은 3억~3억2000만원으로 넉달 전보다 2000만원 이상 올랐지만 매물이 거의 없다. 3차 79㎡(24평형)도 두 달 새 2000만~3000만원 올라 3억5000만~4억원을 호가하지만 수요자들의 입질은 끊이지 않는다.
지하철 5,6호선 환승역인 공덕역과 도보로 3~5분 거리에 있는 삼성래미안1차 82㎡(25평형)은 최고 가격이 4억3000만원을 호가한다.
신공덕동 한국공인(02-704-5949) 윤성희 사장은 “이곳 삼성타운 아파트는 시장 호황기에는 지역의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불황기엔 가격의 하방경직성(한번 오른 집값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지니고 있다”며 “이같은 삼성타운의 매력 때문에 이곳에 진입하려는 수요자들이 많지만 매물이 많지 않다보니 거래도 뜸한 편”이라고 전했다.
성동구 금호동 일대는 대우건설의 아파트들이 많이 모여 있다. 1997년 금호8구역을 재개발해 세워진 대우아파트를 중심으로 2005년 5월 입주를 시작한 금호1차 푸르지오와 금호11구역을 재개발해 최근 입주 중인 푸르지오 아파트 등이 ‘대우 타운’을 만들고 있다.
이곳 대우타운은 브랜드 인지도 뿐만 아니라 입지도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 데다 강변북로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의 접근성도 뛰어난 때문이다. 또 동호대교와 성수대교를 통해 강남권과의 진출입이 편리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금호1차 푸르지오 76㎡(23평형)은 3억2000만~3억70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올 3~4월과 비교해 평균 2000만원 가량 올랐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계의 설명이다. 이 아파트 102㎡(31평형) 역시 5억5000만~6억2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지만 호가는 이보다 3000만~5000만원 더 나간다고 한다.
금호동 건우공인(02-2292-7373) 김호중 사장은 “주변에 재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중인 데다 대우 푸르지오 단지도 앞으로 계속 들어설 예정이어서 브랜드타운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