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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된 자들의 기쁨 (눅10:17-20절)
예수님께서 보내신 70인의 전도는 대성공이었고 그들은 큰 기쁨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님께 그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제자들은 상당히 흥분된 감정으로 우쭐했습니다. 17절에 보면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했는데 이 말은 그들의 전도의 성과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께서 해 오시던 일을 자기들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보고를 받은 주님은 먼저 제자들의 사역 결과에 대해 인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러가라고 명했을 때 그 명령을 받은 사탄이 영적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 앞에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맥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과 그의 제자들이 사탄과의 접전에서 승리하고 개가를 부른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해칠 자가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뱀과 전갈은 주로 사탄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시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계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결국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탄을 밟으며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사역을 할 때에 악한 영들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뱀에게 심판하기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이 예언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며 그 제자들 역시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의 사역에 대해 인정하시고 난 후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대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귀신들의 권세를 제어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에 비하면 귀신 축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사역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보증 수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는 자가 그것을 자기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거나 성취한 업적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 기록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의 자만성과 위험성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만심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으로 사역을 떠났기 때문에 귀신들이 항복하는 일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이 그 일을 해냈다고 하는 자기도취에 빠졌고 자기자랑이 된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변화산 아래에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의 사건은 더욱 자신들의 마음을 흥분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사역을 하면서 자만에 빠지게 되면 저기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제자들이 파송을 받은 것은 주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수행하도록 능력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부여받은 능력은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나타나는 기사나 이적에 관심하고 본래의 임무를 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나타내고 전도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얻는 진정한 기쁨은 무엇입니까.
1. 복음 전파의 성공에서 얻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70명을 선발하여 전도 특공대로 삼아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물론 이들은 두 사람씩 짝이 지어 보냈는데 제자들이 똑 같은 사역을 하고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저들이 왜 그렇게 기뻐했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의 이름으로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지식이나 이름이나 사상이나 무슨 주장이나 그런 것으로 전도하지 않고 오로지 주의 이름으로 전도했는데 주의 이름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구원입니다.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는 전도하기를 ‘온 이스라엘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묻기를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저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영혼이라도 내가 전도한 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전도의 열매를 거두고 나서 그 열매를 가지고 돌아와 큰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둘째, 귀신들이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나 사탄은 본래 하늘에 거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탄의 속임에 빠진 결과 저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차지하게 되고 하늘을 정복하고자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면 사탄은 거할 곳을 잃고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집니다.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는 그 순간에 사탄은 더 이상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고 해할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사탄이 물러간 곳에는 모든 병이 낫고 고통과 저주가 사라지고 슬픔과 눈물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간은 불행의 늪에서 참담하게 살아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고 세미나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운드 인이라는 호텔에 심부름꾼인 벨 보이 일을 하는 흑인이 있었는데 나이가 한 45세쯤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이 굉장히 양순하고 친절하고 얼굴에 웃음과 광채가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 목사님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요청하기 때문에 어느 날 하루 점심때에는 아무하고도 식사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지역에 있는 월남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 위해 그 벨 보이에게 운전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월남 식당이 바로 그 호텔 옆에 있었지만 벨 보이가 식당을 잘못 알고 고속도로를 상당히 달려가서 먼 동네에 있는 태국 식당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미 점심때가 늦은 지라 그분이 돌아갔다가 다시 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목사님이 나하고 같이 식사하자고 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립니다. 왜 눈물을 흘리느냐고 하니까 ‘목사님, 세상에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목사님과 함께 식사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내가 2년 전에 목사님이 쓰신 기도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고 너무 감동이 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도 조용기 목사님을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 생각에 나같이 이름도 없는 흑인을 어떻게 조 목사가 데리고 가서 식사를 함께 해 주겠는가. 자기가 기도를 하면서도 스스로 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 차례가 오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을 알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도 상당히 감동을 했습니다. 아무도 안 만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식당을 잘못 들어가게 하셔서 기어코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분의 기도를 정말 들어주셨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브라운 레독인데 그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일찍이 어머니를 버리고 이혼을 했고, 자기는 편모슬하에서 자라면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 강도질하고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10대가 되자 갱단의 일원이 되어서 총기를 가지고 한 일은 도둑놈들의 물건을 다시 도둑질했습니다. 도둑놈들이 도적질을 해 왔다는 정보를 들으면 그 도둑놈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놈 물건을 빼앗는 것입니다. 아편 장사들이 아편을 가져왔다고 하면 그 아편 장사들을 공격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항상 무서운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감옥에도 수차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와중에 갱단은 다 총에 맞아 죽고 혼자만 남았습니다. 이제 적들이 자기의 생명을 노리고 있으므로 어머니가 뉴욕 뉴저지에 있는 너의 아버지 집으로 가라고 해서 뉴저지에 있는 우리 아버지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이미 네 번째 여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니까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 자기를 보고 교회를 가자고 했습니다. 그 분은 열렬히 예수를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가느냐. 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아니야, 너 예수 믿으라고 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 가면 참 예쁜 처녀가 있다. 이 처녀를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서 가자고 하는 것이지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요. 정말 처녀를 소개 시켜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날 처녀를 만나러 교회에 갔다가 처녀는 못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는데 목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오더니 ‘아들이 네가 험한 세상을 살았구나.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성령께서 너의 일생을 변화시켜 줄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더랍니다. 그래서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령 달라고 고함을 치며 땀을 뻘뻘 흘리는데 성령이 임하여서 방언을 말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일생을 대마초를 피우고, 아편을 먹고 마시고 주사 맞고 그 아편의 황홀한 유혹에 빠져서 살았는데 성령을 받고 보니까 성령이 갖다 주는 마음이 도저히 마약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았는데 그는 성격도 변화 받고 마음도 변화 받고 아편 중독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약 하나 쓰지 않고 깨끗이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늘날 흑인 청소년들이 도적질하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는데 자기도 교회를 하나 세우고 낮에는 이 호텔의 보이 노릇을 하고 밤에는 가서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 주었는데 그 다음부터 기분이 좋아서 찬송을 부르는데 차를 운전하고 오면서 찬송을 그렇게 잘 불렀습니다.
그 분은 흑인 빈민촌에서 태어나서 교육도 잘 받지 못하고 강도질하고 마약 먹고 아편 주사를 맞고 인간의 가장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는데 그가 만일 예수를 안 만났더라면 벌써 상대방에게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흉악한 표범이나 사자보다 사나운 사람을 변화시켜서 양 같이 온순하게 만들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늘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간증을 듣고 목사님이 도리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는 언제나 사탄이 참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기쁨의 요소는 복음 전도 운동을 통하여 사탄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기쁨이요, 죽어버린 탕자를 도로 찾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온 우주를 얻은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입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고 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2.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하여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하게 되는 일은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사를 행하고도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 즉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생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 날 이단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져 이렇게 되는 자가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혼의 구원을 받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은사까지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의 능력과 그 결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 잉태 될 때 이미 죄인으로 잉태되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굉장한 항의를 했습니다. ‘목사님, 왜 내가 짓지도 않은 죄를 책임져야 됩니까. 아담이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자기가 책임져야지, 아담의 자손이라고 해서 내가 아담의 죄를 책임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콩 심은 데 팥이 납니까.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지 않습니까. 아담으로 심었으니 아담으로 나는 것이지 아담으로 심었는데 예수님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아담이 원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에서 우리의 조상이 되었으니 우리는 전부 버림받은 데서 태어나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죄인으로 잉태되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아담이 범죄 하므로 그 후손이 다 함께 죄의 사망의 덫에 걸려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평해도 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예수 안 믿어도 구원 얻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법 없이 살 사람이라도,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아담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벌써 사망에 묶여 태어났으므로 주를 믿어 구원받지 못하고 그대로 살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리 착하고 선해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정욕으로 난 것은 정욕인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많은 자범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원죄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포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자범죄를 짓는 것입니다. 불의한 죄를 짓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강도하고 강간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탐욕하고 온갖 죄를 다 짓습니다.
*엡2:1 그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인간들은 허물이 얼마나 많은 지, 자기 자신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원죄와 허물 죄로 말미암아, 또한 자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철저히 죽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어떠한 윤리와 도덕적인 선한 행위를 해도 살 수 없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대신해서 원죄와 자범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벌을 받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이 죄를 다 갚아 주실 분은 천하 인간에게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훌륭한 종교를 가지고 왔습니다. 철학을 가지고 왔습니다. 도덕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갚아 주기 위해서 심판을 받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은 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원죄가 용서받고 수많은 자범죄가 씻음 받고 우리는 정죄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속에 선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기록된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된 자라는 뜻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을 주셨다는 것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복음운동에 참여하는 자 곧 성화의 생활을 하는 것을 뜻입니다.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한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 승리자들을 뜻합니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결단코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키며 짐승의 박해에서 최후 승리는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구원과 보상을 뜻합니다.
*단12:1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 지리라.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궁극적 구원과 선행에 대한 보상이 확증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영원한 호적, 영원한 국적, 영원한 생명 즉 불사의 몸의 소망에 대하여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뜻이 여기 있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의 진정한 기쁨, 제자의 진정한 기쁨, 그것은 정치적 민주화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요, 경제적 부유함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요,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는 정도의 기쁨도 아닙니다. 물론 세계를 재패한 모든 분야의 영웅들의 기쁨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의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세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기쁨입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며 분쟁하며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암담한 처지나 고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하고 한숨과 눈물 속에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전해 주고 저들의 눈을 밝히며 귀를 열어 주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29:18-19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망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그러면 저들의 행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기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확고부동한 영생의 은총입니다.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소유한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말하기를 ‘예수를 향한 참 된 신앙은 불안을 치료한다.’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주님의 기쁨을 깨달은 후 말하기를 ‘오! 아름다움이여! 그렇게 오래 되시고. 또 그렇게 새로우신 아름다움이여! 나는 나무나 늦게 당신을 사랑하였나이다. 당신은 나의 속에 계셨으나 내가 밖에 있어서 당신을 찾던 중이었나이다. 당신은 나와 같이 계셨으나 내가 당신과 같이 있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성 에브라임은 주님의 기쁨을 체득한 후 기도하기를 ‘주여, 잠간 동안 나에게서 손을 떼지 마옵소서. 내 마음의 너무 약하여 이런 큰 기쁨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해딩거는 임종하면서 주님의 이 기쁨을 감지하고 말하기를 ‘주님은 어찌 그리 좋으신지요. 예수여! 당신의 사랑이 어찌 그리 달고 오묘합니까. 나는 이것을 받기에 너무 무가치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구령 전도의 기쁨은 사탄을 굴복시키고 사탄을 쫓아내며 사탄을 멸망시키는 승리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탄을 영원히 결박하고 굴복시키는 비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 그래서 70명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감격하여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이름으로 어떤 명령을 하든지 귀신들이 모두 항복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선포되는 곳에는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우리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사탄은 번개 같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구원의 기쁨은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기쁨이 참 제자의 기쁨이요, 성도의 기쁨이요, 교회의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 금년 한 해에는 복음 전도의 큰 열매를 맺고 사탄을 굴복시키며 내 자신의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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