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옛날 담배공장
지중해에 접한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프랑스 제 2의 도시인 이곳은 금년에 EU가 선정한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유럽문화수도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백여 년 전에 세워졌다 폐쇄된 프랑스담배공사의 대규모 공장 건물이다.
제조업의 쇠퇴에 따라 1990년 문을 닫은 이 담배공장은 1991년 연극집단과 몇몇 예술단체들이 비어있는 공간에 들어가 작업을 하면서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1992년 이곳 부지를 매입한 마르세유시는 당장 빈 공장을 처리할 마땅한 대안이 없자 한시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했고, 예상을 깨고 이곳이 도시의 문화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프리쉬라벨드메(Friche la Belle de Mai)'라는 이 공간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버려진 땅, 황무지'라는 뜻이지만, 마르세유에서는 도시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희망의 땅'으로 통한다.
우리 청주에도 연면적 5만5천㎡가 넘는 대규모 옛날 담배공장이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금년 9월 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며, 같은 공간에 국립현대미술관 분원이 자리 잡을 예정이다. 폐허가 된 옛날 공장이 문화의 향기로 채워질 전망인데, 보다 효과적인 활용과 운영을 위해서 서양의 담배공장의 변신 사례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가, 거대한 공간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의 보존이다.
프리쉬라벨드메는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 벽을 그대로 두고 있으며, 녹슨 기계들도 보존하고 있다. 최소한의 보수와 리모델링 원칙을 가지고 기존의 흔적들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비록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이곳이 지닌 시간성 역시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 번째는,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예술 활동의 포용과 조화로 발생하는 시너지효과이다.
프리쉬라벨드메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1구역에는 도시 유적 아카이브 시설이, 2구역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시설이 들어서 있고, 가장 큰 4만5천㎡ 규모의 3구역은 1,000여 명 예술가들의 작업실, 70여 개 예술단체의 사무실과 연습실,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서로 서로를 도우며, 그 속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창조 에너지를 충전하고 발휘한다.
세 번째는, 시민과 관광객들 모두가 함께 하는 열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500회 이상의 문화 행사와 80여 회의 워크숍이 열리며, 180여 개의 국제 교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간 120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예술가들은 하루 종일 공간의 문을 열어놓고 대중과 자연스레 교류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힙합, 재즈, 퍼포먼스, 서커스, 오페라 등 온갖 형태의 공연과 실험적 예술을 다양하게 경험한다. 탁아소, 스케이트보드 강습, 요리 프로그램, 매주 서는 장터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과도 밀접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 변신이라는 점이다.
이 공장은 관에서 마련한 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뜻밖의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 재생이 시설보다는 사람에 의해, 인위적 문화보다는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운영도 사회적 기업 형태로 되고 있는데, 설립 당시 10명 남짓이던 직원 수도 지금은 450명이나 된다.
사회마다 맥락이 다르기에 다른 나라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버려졌던 서양의 담배공장이 도시 재생의 구심점이 되어 문화의 메카로 거듭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3. 3. 26 중부매일>
첫댓글 청주 제조공장 활용에 참고가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