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소전리(벌앗)이라는 대청호 부근의 작은 마을을
**다녀와서 몇자 적어봅니다.
**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 사진한장 찍지 않았지만, 가끔은 눈
**으로 보는것 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
**을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은색 억새가 물결처럼 출렁이는 대청호를 굽이 돌아 소전리로 찾아드는 나그네의 마음은 여름날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 피할곳을 찾는 발걸음처럼 마냥 빠르게만 움직인다.
길은 나선지 오래..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소전리에 닿을수 있을지... 첩첩산중 저멀리 힘차게 용솟음치는듯한 산맥의 줄기들이 보일때쯤 저녁햇살을 반사시키며 반갑게 맞아주는 호수의 한자락을 마주하며 멈추었다.
한폭의 풍경화다. 어느 화가도 화폭에 잡아낼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노을과 호수가 시선을 사로잡은 채 떼어놓을줄을 모른다. 한참을 응시하다가 아쉬움을 뒤로한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지루함이 찾아들 무렵 얼기설기 새끼줄에 묶인 하나의 돌무지와 마주쳤다. 서낭당이다. 돌무지 앞에 작고 반듯한 돌위에 막걸리 한병과 붉은 감 하나가 보인다. 누군가 자신의 소망을 한껏 담아 놓았을 저 소박한 막걸리 한병에서 삶의 진한 향기를 느낀 것 같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감돈다.
서낭당을 지나 언덕 아래도 십여채의 집들이 올망졸망 또아리를 틀고있는 소전리가 보인다. 아늑하다. 빠꼼하게 보이는 가을하늘과 뉘엿하게 넘어가는 가을햇살속에서의 마을은 조용하기만하다.
누런빛을 띤 수많은 잎을 가슴에 안은 몇그루의 미끈한 미루나무가 보인다. 나그네의 고향에도 미루나무가 있었다. 작은 키를 원망하며 하늘을 찌를 듯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던 미루나무 꼭대기를 쳐다보고 흘린 눈물이 얼마였던가... 그 미루나무에는 꼭 까치집이 있었다. 얄미운 까치는 사과나 옥수수 같은 농작물을 제일 잘 익는 것으로만 따먹어서 미움을 받고는 했었다.
한옆으로 감나무가 눈에 띈다. 주렁주렁 가지가 부러질 듯이 달려있는 감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았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것처럼 보이지만, 인심좋은 우리네 어르신들의 생각은 또 달랐으리라. 홍시가 되어 떨어질때를 입벌리고 누워 기다려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베짱이 근성을 뒤로한채 마을을 더 둘러보기로한다.
한 농가앞에 섰다. 문전옥답이라고했던가~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두어평 됨직한 논에서는 굵은 씨알을 머금은 벼가 한창 고개숙이고 인사를 하고 있다. 나그네는 저 황금빛을 사랑한다. 누가 농부의 딸이 아니랄까봐~ 식사를 할때도 다른 것은 남겨도 밥은 잘 남기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한켠으로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매~애~하고 울며 수선을 피운다. 가늘은 다리로 판자를 쌓아놓은 곳에 올라 그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우는 모습이라니.. 어찌 사랑스럽게 않을수가 있을까.
가을은 역시 수확의 계절이다. 아직은 푸르름을 머금은 은행나무에서는 향긋한(ㅠㅠ) 냄새를 풍기는 은행이 올망졸망 참 많이도 열렸다. 그 누런 은행을 따서 한동안 삭히면, 그 향기는 과히 참기가 힘들다. 그 힘든 과정(^^)을 지나야만 고소한 은행이 나오는데, 그 과정을 모른채 은행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ㅎㅎㅎ
싱싱한 무청을 달고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며 한창 살을 올려가는 김장용 무의 소리없는 몸부림도 보인다. 아직은 아기팔목같은 크기지만 한달정도의 시간만 지나면 어른 손목보다도 더큰 모습으로 변하여 나그네의 밥상에 근사한 모습으로 오르리라.
저무는 해를 야속해하며 다랭이논 벼베기에 한창 바쁜 손을 놀리는 농부를 만났다. 무슨 볼게있다고 이런 산동네까지 왔는가라고 반문하는듯한 눈빛이다. 대처의 큰 논에서야 콤바인으로 수확을 하지만 다랭이논은 농부의 손길이 있어야만 수확이 이루어진다. 굵게 옹이지고 딱딱해진 손 끝에 들린 낫을 보며, 나그네는 삼십년넘게 농부로 사셨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느해 추수를 앞두고 큰 비 피해를 입어 몇천평의 벼가 물에 잠겼다. 물이 빠진후 쓰러진 벼에서 미처 일으켜세우지 못해 푸른 새싹이 돋아 나는 것을 보다 뒤돌아 어깨를 늘어뜨린채 돌아서던 그모습이....
느티나무 단풍 곱게 물드는 길이 끝나는 곳까지 돌아본다. 대청호의 상류가 나룻터가 보인다. 나룻터에는 지난 장마에 휩쓸려왔던 부유물들이 물빠진 산밑에 한무더기 쌓여있다. 과거에는 곡식 천냥, 과일 천냥, 한지가 천냥 이렇게 삼천냥이 나는 아주 풍족한 마을이었단다. 금강을 주로 건너 신탄진과 대전이 주 생활권이었는데, 대청댐의 건설로 지금은 뱃길도 끊어져 동네사람들 스스로 '강원북도'라는 말을 할만큼 아주 외진 산골마을이 되었다.
소전리는 '벌앗'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단다. 혹자는 '벌판의 씨앗', 가파른 돌투성이 밭을 경작하면서도 벌판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희망적인 뜻으로 풀이를 했다.
자연생태마을로 지정된 이곳은 도시 아이들의 사계절 체험학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겨울에는 '옛날에 시골 할머니댁에서는 겨울에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주제로 뒷동산에 올라가 비료푸대 눈써매 타기. 눈싸움과 눈사람 만들기. 논에 물을 가두어서 만든 얼음판에서 썰매타기. 지게를 짊어지고 뒷산에 올라 마른나무 한짐 하고 솔잎 모으기. 운나쁜 토기를 만나면 토끼몰이하기. 놀이에 지치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모닥불에 고구마 구워먹기. 저녁에는 따끈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듣기. 짚으로 새끼를 꼬아 축구공 만들기. 멧돌로 콩을 갈아 두부 만들어 먹기 등등등.....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의 가을을 만끽했다. 돌아서는 나그네는 옷자락을 소전리가 잡고 놓지 않는 듯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군불을 지피는 농가의 낮은 굴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매케한 연기마저도 그리워 정다워 보이는건 나그네의 마음 한구석에 십여년전에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진한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고향~~~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지요.....
님은 시적이고 감성이 충만한 분이군요 멋쟁이 입니다 그래요 좋은글보고 저도 가슴으로 고향을 더듬고 아련하게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님은 글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선림원, 지난 번에는 아수쿠림 사조쓰니까 요 담엔 오댕 사주까 (ㅎ.ㅎ)
네~~ 담에 만나면 꼭 사주세요^^ (수첩에 적어놔야지....ㅋㅋ_)
소전리를 다녀왔군요....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신비가 느껴지는곳이지요....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