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 동결하자 대통령실·여당 “아쉽다” 반발
금리 13번째 ‘동결’…가계부채 잡으려면 더 올려야
한국, 아파트값 또 오르고 가계부채 사상 최악수준
윤석열 정부, 투기조장·소비 위축시키고도 집값 부양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폭발적으로 증가 중인 가계대출과 국지적으로 상승 중인 서울 아파트값이 주된 동결 이유다. 물가가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도 한국은행의 고려 사안 중 하나다.
기실 한국은행은 작년과 올해 초에 걸쳐 기준금리를 더 인상해서 부동산 투기수요가 살아나는 걸 원천봉쇄했어야 했다. 한국은행이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기준금리를 동결한 건 잘한 결정이다.
놀라운 건 통화정책에 관해 독립성이 보장된 한국은행을 향해 정부와 여당이 한 목소리로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값 띄우기에 올인한 나머지 가계부채를 폭증시키고 자연스럽게 조정을 받던 서울 아파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윤석열 정부의 뻔뻔함이 끝 간 데 없다.
YTN 뉴스 화면 캡처.
가계부채와 집값 때문에 기준금리 동결한 한국은행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22일 하반기 두 번째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앞서 2020년 3월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 추가 인하했다.
이후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2021년 8월 0.25%p 올리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긴축 쪽으로 틀었다. 이어 같은 해 11월, 2022년 1·4·5·7·8·10·11월과 2023년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는 지난해 2월 동결로 깨졌고, 이후 13차례 연속 동결로 3.50% 기준금리가 작년 1월 13일부터 이날까지 1년 7개월 9일 동안 이어지고 있다. 다음 금통위 시점(10월 11일)까지 생각하면 3.50%는 약 1년 9개월간 유지될 예정이다. 한은 설립 이래 횟수, 기간 모두 역대 최장 동결 기록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최근 집값과 가계대출이 다시 뛰는 가운데 너무 일찍 기준금리까지 낮추면 자칫 부동산·금융시장 불안의 부작용이 이자 부담 경감 등에 따른 경기 회복 효과보다 클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YTN 뉴스 화면 캡처.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매매가격지수는 6월보다 0.76% 올랐다. 2019년 12월(0.86%) 이후 4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7월 이후 은행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려왔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도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4일 기준 719조9천178억원으로, 이달 들어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4조1천795억원 더 불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월 2.4%에서 7월 2.6%로 반등한 데다 향후 중동사태 등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가능성, 폭염 속 작황 부진 등의 물가 불안 요소도 여전히 많다.
금리 내리라며 한은을 압박 중인 대통령실과 여당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내려진 직후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며 "최근 내수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소비를 살려 나가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23일 원내대책회의 등을 통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내수 진작 문제에서 봤을 땐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여권에서는 선제적 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윤상현 의원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가계와 기업의 부담, 내수 부진을 타개해야 한다"며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를 요구한 바 있다.
YTN 뉴스 화면 캡처
영끌족 양산해 내수 죽인 자들이 내수를 근심하는 기괴한 상황
내수부진을 근심하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을 비판하는 대통령실과 여당을 보고 있으면 어안이 벙벙하다. 집값 띄우기에 올인해 ‘영끌족’과 ‘빚투족’을 양산한 건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다. 윤 정부에 현혹돼 무리하게 가계부채를 일으켜 집을 산 ‘영끌족’과 ‘빚투족’이 속출하는 마당에 누가 무슨 돈이 있어 소비를 한단 말인가?
가장 확실한 내수 진작 대책은 기준금리 인하가 아니라 집값의 하향안정화다. 이 자명한 사실을 윤 정부와 여당만 외면한다. 집값 띄우기로 내수를 죽인 자들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에게 눈을 부라리는 광경처럼 기괴한 장면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