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5]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이 그 불순종한 죄값으로 가나안에서 화를 당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실 때에 그들은 저희의 죄를 뉘우치고 큰 소리로 울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로 임하신 영이시니 만큼 그들의 심령에 압도적으로 큰 충격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들도 통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 이름을 "보김",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한 속죄제였을 것이다.
그들이 통회한 것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한 저희의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은 죄악 문제에 대한 해결책, 곧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속죄의 제도에 순종한 신앙인 것이다.
기독 신자들도 그들의 죄악 문제에 대하여 원통한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 만족한 회개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믿음을 오래 동안 지속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씨 뿌리는 비유에 있어서 돌밭에 뿌리운 씨의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말라버림과 같은 것이다
또한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와 같다고도 할 수 있으니, 곧 말씀을 듣고 반응을 보이다가 세상 염려 때문에 결실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 참된 경건은 좋은 밭에 뿌리운 씨와 같아서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다.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맘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 '예수로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그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찬미의 제사가 옛 언약의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려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더 이상 옛 언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동물 희생 제사가 아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한 희생제사가 단번에 드려졌으므로 더 이상 속죄를 위한 동물 희생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미하는 제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열납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항상'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가 지속적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때 가능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확신할 때 이루어진다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옅매니라 -
본문은 호 14:2의 인용으로 '찬미의 제사'에 대한 설명이다. '입술의 열매'는 감사제와 감사 찬송시 사용하는 '말'에 대한 셈어적인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고 드러내는 찬양으로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선함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과의 계약을 진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
저자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찬미의 제사'뿐 아니라 사랑의 행위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역설한다. '선을 행함'의 헬라어 '유포이이아스'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친절한 행위를 가리키며, '서로 나눠 주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스'는 돈이나 물건은 물론 타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는 관용을 가리킨다
타인을 사랑하는 실제적인 행위가 없는 찬미의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행위를 동반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이유이다.
친절과 관용 그리고 찬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말'로는 물론 '행함'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제사를 통해서 성취되며,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기쁜 마음로 열납하신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너희도 산 돌같이 - 베드로는 앞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산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도이 존테스'는 복수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한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한편 '세워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스데'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제사장'의 헬라어 '히에라튜마'는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