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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복음: 요한 15,26-16,4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행했던 성 도미니코 사비오!
오늘은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애제자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1842~1857)의 축일입니다.
돈보스코만의 고유한 교육방식인 예방교육의 소중한 결실이 바로 사비오의 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를 따라 사제가 되기 위해 오라토리오에 들어온 사비오는 안타깝게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라토리오 생활 3년 만에, 불과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비오의 짧은 생애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성인의 길은 결코 나이나 학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비오는 어린이들도, 청소년들도,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성덕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병고와 나약함,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도 성덕의 길로 나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잘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사비오는 오라토리오에 들어오기 전 모리알도에도 살았고, 몬도니오에서도 살았는데,
그를 가르쳤던 사제들은 한결같이 그의 덕행의 찬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를 돈보스코에게 보내야겠다며 추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스텔누오보 학교에서 사비오를 지도했던 알로라 알렉산드로 신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그를 처음 보자마자 즉시 그가 큰 제목이 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존재 자체로 제 눈을 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그의 아버지같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사비오, 슬기로운 아이였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돈보스코 오라토리오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신의 생애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사비오는 결코 한눈을 팔지 않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로 직진했습니다.
오라토리오의 다른 친구들은 그 나이 또래의 즐길 거리를 찾아다녔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들을
돌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비오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한 친구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너는 대체 그 눈을 어디에 써먹을 작정이길래, 이 재미있는 것 들도 안보고, 그렇게 줄창 성당에만 가있고, 맨날 예수님과 성모님만 바라보고 있냐?”
사비오의 대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는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 가서 성모님을 만나뵐 때 써먹으려고 아끼고 있단다. 눈은 우리 영혼의 창문이란다. 이 창문을 통해 천사도 들어오고 마귀도 들어오지. 그러니 우리 눈과 마음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지.”
하루는 돈보스코가 오라토리오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요지로 강론을 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랬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과 어느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면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돈보스코의 강론은 즉시 사비오의 마음속에 불씨 하나를 던졌습니다.
한번은 돈보스코가 매사에 모범생이었던 그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네가 선물로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사비오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제가 신부님께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신부님께서 저를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영혼을 구하게 해주시고 저를 성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사비오가 현대 가톨릭 영성 생활에 끼친 영향이랄까 업적이 있다면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화의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 것, 지극히 작은 것, 늘 반복되는 일상적인 것 안에 성화의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 큰 업적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비오는 기쁨 속에 주님을 섬기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행하고, 매일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며, 가까운 이웃들을 사랑으로 도와주며, 그런 노력을 통해 하루하루 성인의 길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교회는 그의 시복시성을 통해 만천하에 그 사실을 공포하였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피밖에 없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3)는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을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온 욕쟁이 오말순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오말순 할머니는 싸움닭입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오말순 할머니 때문에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집니다.
손자들은 엄마를 위해서라도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낫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말순 할머니는 쓸모없어진 자신을 한탄하며 한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젊어진 것입니다.
처음엔 가족도 걱정이 되었지만, 이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가수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보려 합니다.
점점 유명해지고 사랑도 싹틉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밴드에 자기 손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을 위해
긴급히 피가 필요합니다.
손자와 피가 맞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그러나 피가 빠지면 다시 늙게 되는 것을 압니다.
젊어진 오말순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수혈하기로 합니다.
이때 그 젊은 여자가 자기 어머니인 것을 안 아들은 어머니에게 떠나라고 말합니다.
자기 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살릴 테니까, 이젠 자신들 위해 희생하지 말고 당신 인생을 살아보라고 합니다.
붙들이라고 불리던 아들의 대사입니다.
“갓난쟁이를 남편도 없이 키우던 젊은 여자가 있었어요.
근데 그 갓난쟁이가 병이 났는데 도통 낫질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줄을 놓으려고 했지요. 근데 그 갓난쟁이 엄마는 너무 가난해서 해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슴으로 끌어안고 눈물로 말했어요.
‘붙들어라. 목숨처럼 붙들어라.’ 그냥 가세요.
그냥 가셔서 남이 버린 시래기도 주워 먹지 말고
그 비린내 나는 생선 장사도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살지 말고 명 짧은 남편도 얻지 말고 나처럼 못난 아이도 낳지 마세요.
그러니 제발 가세요. 엄마.”
그냥 가면 엄마가 아닐 것입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난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네 엄마고 네가 내 자식일 테니까.”
아들에게 어머니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피는 곧 성령이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의심될 때 어머니께서 흘리시는 피를 보았습니다.
단팥빵과 흰 우유, 그리고 삼겹살과 휘어진 발가락과 굳은살.
이것이 그분이 누구인지 증명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것은 어머니의 피입니다.
어머니의 피는 곧 아버지의 피이기도 합니다.
그 피를 통해 나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자기 아버지를 전쟁 통에 잃은 딸에게 친척은 “아버지는 딸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아!”라고 말해줍니다.
이것이 진짜 아버지를 증명해 줍니다.
얼마 전에 “수술 4번 받고 교실 왔는데…‘눈물 버튼’ 눌러버린 선생님”이란 동영상이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한 달 만에 반에 왔지만,
반 아이들이 신경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서러움에 울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를 놀래주기 위한 이벤트였습니다.
케이크도 준비되어 있었고 노래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엉엉 웁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준비한 그 노력이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은 아이에게 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진짜 자신의 친구들과 선생님임을 알게 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이 진리의 성령을 주는 방법은 곧 피 흘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피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누구셨는지는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고 그리스도를 우리가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15,26-16,4: 진리의 성령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다. 보호자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기쁨으로 채워주신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들은 참 기쁨이 있다. 이 성령을 주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15,26)이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이 아들의 영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우리는 아들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로마 8,9) 한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는 바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오시는 분으로, 아버지의 영이시며, 아들의 영이시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26절) 성령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더 깊이 알아듣게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사는 것이다. 성령에 잠기는 삶이 우리를 그분과 더욱 가까운 사이로 만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예기치 않은 환난이나 박해가 닥쳤을 때, 제자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고, 이 어려움을 통해 더욱 굳세게 주님께 포도나무 가지처럼 결합하여 있으라고 하신다.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4절). 이 말씀은 성령에 관한 약속과 그들이 고난받을 때, 주님께서 알려주실 증언에 관한 말씀이다. 그들의 때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떠나신 다음 제자들이 홀로 남아있게 되는 때이며, 그들이 박해를 받는 때를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 앞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할까, 자신에 대해 긴장하고, 노력하는 삶이다. 인간을 통해서 나오는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박해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유혹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안에, 성령 안에 살게 되면 이러한 삶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용기와 힘을 주실 것이다. 성령 안에 잠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책상 위가 너무 지저분한 것이 딱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된 것일까요?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누가 와서 난장판으로 만든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원래 지저분했는데 느끼지 못했고 또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책 내용을 되새기고 나서 눈을 떴을 때 그 지저분함이 보인 것입니다. 이 눈을 감고 드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성찰의 시간과 같지 않을까요?
성찰해야 주님과의 관계가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성찰 없이도 주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도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심지어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는데도, 외딴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안에 있지만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주님의 뜻보다 세속적인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날 때,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를 바라보며 주님께 향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세상 안에 있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느끼며 큰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런 사람이 주님께서 보내신 보호자, 진리의 영, 성령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성령은 세상에 주님을 힘차게 증언할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 내쫓겨도,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진리의 영을 통해 용기를 얻어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순교자가 이런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희망 안에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보는 우리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과거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시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벗어던져야 합니다. 세상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 성찰을 통해 또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착각은 모두 벗어 던지고, 깊은 성찰과 성령의 도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철저히 주님께 향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지금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에 질문하지 말고 삶이 던지는 물음에 “예”라고 답하라(빅터 프랭클).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1)
설령
고난이 우리를 찾아와
주님에게서
떼어놓으려 할지라도
우리는
흔들림 없이
우리를 위해 증언해 주실
성령을 믿어야 한다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와 묵상을 통한
깨달음으로 단련하며
늘 깨어있어야 한다.
복음 말씀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