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20:16
동일한 말씀이 19장에서도 20장에서도 나옵니다.
한 일을 앞세우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훨씬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은혜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만 남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불평했던 어제 일이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학기말 행사로 구석 구석을 살펴보며 일거리가 얼마나 많이 눈에 보이는지….
섬길 수 있는 일들이 많은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했습니다.
‘감사해요 ‘
늘 이렇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일 앞에서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사랑과 수고를 닮고 싶다고 하면서 힘들면 쑥 올라오는 불평의 가라지들이 보혈의 은혜로 뽑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매일 말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오후 5시가 되도록 일자리가 없어서 장터에 있던 사람들.
저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에 갔을 것 같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포도원 주인이 알고 늦은 시간이지만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일꾼을 찾고 계시는데 저는 주님의 초청에 기쁘게 응하고 있는지, 청함을 받고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편한 직에만 응하지 않고 주님이 맡겨주시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받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 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4~15절)
이상한 잣대가 작동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상한 잣대는 나의 이기심에서 시작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나에게 주시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는 은혜를 하나님의 뜻대로 주시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절)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보다 더 잘되는 이들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소경들의 눈을 만지셨다고 합니다. 어쩌면 앞 장에서 제자들이 병자들을 고치지 못했던 이유가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예수님과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NIV버전에서는 'compassion' 이란 단어로 쓰여있습니다. 동정하고 측은히 여기고 함께 아픔과 슬픔을 나누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져 제 마음이 짠해집니다.
예수님은 제가 아파하고 울며 부르짖을때도 함께 아파하시며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닮길 소망합니다.
포도원에 일꾼으로 와서 일하던 사람들중 받은 품삯으로 인하여 불평이 없었던 사람은 제일 나중에 와서 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자신들의 품삯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기에 고마운 마음뿐이었습니다. 먼저 와서 더 많이 일한삶들은 약속된 품삯을 받았지만 타인과 비교를 하였기에 만족할 수 없었고 불평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에 상대적 행복을 추구하며 나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며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데 스스로 그 행복을 던져버리는 삶을 사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주는것은 우리를 중독시키고 마약처럼 더 강하고 더 큰 것을 추구하는 만족이 없는 탐욕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행복과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 원합니다.
포도원 비유에서 저녁 5시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하루를 살아갈 일당을 주신 것은, 그들의 절박한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에게 일당은 생존의 문제이듯,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아시고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하지만 종종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좁게 바라보곤 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도 채우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나도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의 필요를 공감하고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비교가 아닌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늘 나의 행실을 돌이켜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만왕의 왕 가장 높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는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이라면 섬김보다 섬김을 받는 것이 더 좋을텐데 예수님은 우리 사람과 다르셨습니다.
지난 토요일 1년간의 속회가 끝이 났습니다.
새로운 속으로 분리되어 가시는 분들이 있어서 마지막 쫑파티를 하였습니다.
당일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모이긴 한다고 했는데 모이는 것이 맞나? 뭐라도 준비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몇일 전부터 뜨던 수세미를 가정별로 챙겨서 갔습니다.
도착을 하니 뒤이어 속장님 가정이 왔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지 50일밖에 안된 아이와 6살 큰아이가 있기에 정신이 없을 텐데도 마지막 쫑파티라고 혼자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 왔습니다.
물어보기라도 할걸... 싶었습니다.
다른 가정이 하나둘 도착하였습니다.
떡집을 하는 곳은 떡을 가져왔고 다른 가정에서는 닭강정을 준비했습니다.
서로 물어보지 않았지만 풍성하게 준비되어 쫑파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속회를 통해 이렇게 함께 나누며 교제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면 이렇게 풍성한 쫑파티를 할 수 없었겠지요.
함께 섬기고 나누는 기쁨을 말씀을 통해 속회를 통해 배워봅니다.
우리가 섬기고 나누는 것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를 통하여 믿음 안에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늦게 와서 짧게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다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아침부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늦게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품삯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더 큰 은혜를 입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얼마나 일을 시키실지 알수 없지만 일한 것에 대해 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일한 것에 비해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더 감사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사람을 시기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늘 세어보고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섬기며 살아가는 주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20:20~21)
예수님께 두 아들을 청탁?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내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남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좌,우편의 자리가 영광스러워 보이겠지만, 주님과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실 준비가 되어있는지 물으십니다.
요즘 준영이의 고등진로를 놓고 기도하면서 많은 걸 깨닫게 됩니다.
모든 아이들이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을 좇아 힘들게 가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습니다.
부모부터 바로 서있지 않으면 말그대로 입시라는 지옥에 빠질듯 합니다.
준영이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평생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인 것을 잊지않길 기도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준영이의 하나님으로 만나주시사,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주시길...
준영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시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길...
앞으로의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길 기도합니다.
먼저 부모된 자로서 신앙의 본을 보이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