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늦가을입니다.
유난히 비 많았던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만추의 초입에 들러본 바닷가
그 여름이 애틋하게 그립습니다.
네이버 <빈섬>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었는데 글이 이뻐서 한 번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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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딩동댕 지난 여름’
딩동댕 지난 여름
송창식
딩동댕
지난 여름 바닷가서 만났던 여인
딩동댕
하고픈 이야기는 많았지만
딩동댕
너무나 짧았던 그대와의 밤
딩동댕 딩동댕 말이나 해볼 걸 또 만나자고
딩동댕 딩동댕 여름은 가버렸네 속절도 없이
딩동댕
지난 여름 우연히 잡았던 손목
딩동댕
가슴은 아프도록 뛰었지만
딩동댕
너무나 짧았던 그대와의 밤
딩동댕 딩동댕 말이나 해볼 걸 또 만나자고
딩동댕 딩동댕 여름은 가버렸네 속절도 없이
여름 바다에는 포말처럼 부서지는 무상감이 있다. 추억이란 어쩌면 모래 위에 쓴 글씨같이 소멸을 앞둔 부실한 기념비이다. 여름과 바다. 그 시간과 공간이 합쳐지면 거긴 미처 데려오지 못한 스무 살의 출렁거림과 상처처럼 끼룩거리는 갈매기 몇 마리가 언제나 사물거린다. 하얀 물거품과 뜨거운 모래알. 발바닥에 느껴지는 사박거리는 모래알의 질감과 온도. 뜨거운 텐트 속에서 청하던 곤한 낮잠. 파도 소리는 언제나 인파(人波)의 노랫소리조차 실어갔다. 여인들은 잘쏙한 허리와 여윈 어깨를 드러내고 가끔 텐트줄을 건드리며 활보한다. 섬은 빛을 먹은 개처럼 가끔은 저 멀리로 달아났다가 저녁이 되면 슬그머니 배고픈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 여름 바다에서 사랑을 한다는 건 그저 잠시 피어난 충동들의 애틋하고 간절한 아름다움이다. 달려오는 파도가 한 뼘씩 더 다가와 지우고 가는 뉘우침이다.
송창식은 저 햇살 아래 가릴 데 없는 풍경들이 슬금슬금 사라질 무렵의 모닥불 앞에 앉는다. 매캐한 연기는 해풍에 실려 검은 하늘로 머리를 푼다. 둘러앉은 이의 등마다 새까만 파도소리를 숄처럼 걸쳤다. 얼굴들은 코와 입 그리고 눈의 도깨비 실루엣을 이루며 환영처럼 돌아간다. 그때 송창식은 통기타의 세 줄을 한 손가락으로 밀듯이 쓸어 내린다. 딩동댕.
딩동댕 지난 여름
바닷가서 만났던 여인.
딩동댕 하고픈 이야기는 많았지만
딩동댕 너무나 짧았던 그대와의 밤.
딩동댕, 세 개의 음은 속절없이 짧은 멜로디다. 하지만 그건 그 세 개 이외의 어떤 다른 음도 포함시킬 자리가 없는, 딱 그 만큼 알맞은 소리묶음이다. 미처 시작할 틈도 없이 이미 완료되어 버린 사랑같이 딩동댕은 거기서 멈춰 선다. 하지만 소리가 멈춰선 자리. 그 어둑한 수평선에서 그리운 생각들이 아련하게 따라온다. 그건 바로 지금이 아닌, 언제나 옛날이다. 지난 여름, 그리고 바닷가.
송창식이 아주 아끼듯 뱉어내는 마지막 말엔 언제나 처연한 애상이 있다. 여인이라 부를 때의 그 낮고 느린 호출에서, 우린 다시 끊겨버린 생각의 올을 찾아 당황스럽게 헤맨다. 바닷가에서 만난 여인은 세 계절 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젊음의 이산(離散)이 여름 바다로 결집하는 그 상봉의 보편적 이데아 같은 것이다. 거긴 내 여인도 있다. 누구나 바닷가의 어느 여인을 가진다. 그 여인 또한 어느 도시에서 달려온 일상의 존재이겠으나, 내겐 언제나 그 바닷가를 서성거리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다시 멈춰버린 기억을 찾으려 기타를 튕긴다.
딩동댕 지난 여름. 우연히 잡았던 손목.
우연이란 바다의 최음이 만들어낸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낯선 여인과 췄던 블루스. 맨살 어깨와 목 사이로 따뜻하던 숨결. 손바닥과 손가락에 몇 알 모래알과 체온을 함께 느끼며 맨발로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돌아가던 원무. 어둠과 바다, 그리고 몇 잔의 술은 그 낯선 것들을 얼버무려주었지만, 송창식은 고백하고 만다.
딩동댕 가슴은 아프도록 뛰었지.
그 쿵덕임이 낯선 상대에게 전달될까 얼마나 걱정했던가. 꾹꾹 눌러 참느라 타오르는 모닥불과 달려오는 파도를 헛눈으로 보는 척 했다. 하지만 진정할 수 없는 청춘의 동계(動悸)는 통증처럼 벌렁였다. 노래의 이 대목에 이르면 나는 내 추억과 저 노래의 흑백필름을 비교하며 황홀해했다. 아프도록 뛴 그 가슴은, 지금 내 심장 위에서 여전히 삶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고통은 언제나 유통기한이 있다. 아픔은 사라지고, 물거품들이 잠깐 비친다.
숨기고 억제하느라 느릿느릿 뛰던 맥박은, 이제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진다. 송창식의 기타는 그 맥박을 짚고 있다.
딩동댕 딩동댕 말이나 해볼걸.
또 만나자고.
여름 바다의 연심은 캠프장에 어지럽던 일회용 그릇들처럼 금방 쓰레기봉투에 감겨 내던져진다. 그리고 훌훌히들 떠났다. 하지만, 그건 싫어서가 아니었다. 바다를 벗어나면 나 또한 다름 사람이겠기에, 그 손을 맞쥔 낯선 사람 또한 다른 사람이겠기에, 그렇게 서둘러 이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한때를 내던진 것이다. 그저 분위기와 시간에 취해 잠깐 눈 먼 채 열었던 마음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어쩌면 단 한 컷의 스냅사진 같은 그 미소. 혹은 그 우수의 눈빛이 가슴에 단단히 남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말이나 해 볼 걸, 또 만나자고. 기약할 수 없음이야 말로 여름 바다의 특징이다. 낯선 누군가와 아무 말 없이 서로 몸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곳도 거기였다. 하지만 돌아서서 길게 뉘우친다. 그 몸의 애틋한 소통이야 말로 무잡(無雜)의 순애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전화번호 하나 없이 헤어진 그 또한 나를 기억할까. 또 만나자고 말했더라면 우린 어떻게 변했을까. 여름 바다 위에서 늘 지워지는 청춘의 긴긴 가정법들.
딩동댕 딩동댕 여름은 가버렸네,
속절도 없이.
저 속절없음에 분개하거나 어이없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 물거품 같은 사라짐이야말로, 그 여인, 그 기억, 그 유혹의 밤을 더욱 감미롭고 아름답게 지켜주는 건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이 사라짐의 반어법을 기타 소리의 재르렁거리는 여운에 실어 마음결에 깊이 새겨 넣는다. 읊조리며 부르는 그 느린 시대의 우연의 편린들. 그날 스쳤던 서늘한 입술과 귓전의 파도소리는, 딩동댕 저 단조로운 올림만으로도 빠짐없이 복원된다.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 빈섬
https://www.youtube.com/watch?v=scU5vYqLolo
첫댓글 용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제가 미인을 못 얻은 이유이고요ㅜㅠ.
아 ~ 슬픕니다.
빨리 그 바닷가에 두고 온 여인을 찾으러 갑시다. ^00^
@공갈공명(김병수,부산) 가슴 속에 묻어야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다시 만난다면 정녕 실망이 크실 겁니다.ㅜㅠ
@유유자적(방성원*서울)
그렇지요 !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 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 피 천득 '인연' 중에서
그리워 하며서 그 모습을 간직하는 게 가장 아름다울 것입니다. ^00^
아~
나의 베아트리체여 !
맹물 다방의 미스김양이여 ~ ^00^
@유유자적(방성원*서울) 유유자적님이 미인이 아니시라면
우린 전부 추녀를 얻은꼴입니다.
굽어살펴 주소서
물건 감사히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풀린낫도(선종환*청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