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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불을 던지러 왔노라
누가복음 12:49-5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에 보면 “내가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불을 지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주님은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 실제로 많은 불을 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불을 지르셨기에 우리가 살 수 있었고 세상이 바르게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세상이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불을 지르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세상에 던지신 불은 어떤 불일까요?
먼저는 구원의 불을 던지셨습니다.
이현주 목사의 동화 가운데 ‘마을에 불 지른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옛날 일본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마을의 동쪽은 큰 바다지만, 서쪽은 높은 산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산비탈을 일궈 만든 논에서 일했고, 몇 사람만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아침마다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해서 산비탈을 올라갔다가 날이 저물면 산기슭 오두막에 내려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 속 동물들에게서 자신들의 논을 지키는 일손이 필요했고, 마침 마을에서 손자 한 명과 사시던 할아버지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뜨거운 햇볕에 누렇게 익은 벼들을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할아버지는 매일 하던 대로 해돋이를 보려고 산 위 벼랑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일찍 일어나 논으로 일하러 올라가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한편 벼랑 위로 올라오신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저 멀리 떠오를 해를 기다렸지만 웬일인지 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 눈에 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놀란 할아버지는 허둥지둥 움집으로 달려와 아직 자고 있는 손자를 깨웠습니다.
“일어나라, 어서!” “음, 더 잘래.”
“안 돼! 어서 일어나 불붙은 장작을 가지고 따라와!”
손자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걸 처음 보았기 때문에 얼른 일어나 불붙은 장작을 들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불붙은 장작을 가지고 저만큼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논에 불을 질러라!” 할아버지가 벼에 불을 붙이며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건 마을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잖아요? 이렇게 다 자랐는데 여기에 불을 놓으면 모두 굶어서 죽을 거예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어서 시키는 대로 해!”
할아버지의 호통에 손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할아버지와 함께 마른 벼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금방 논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것저것 농사 준비를 하던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산 위 불타는 논을 쳐다보고는 비상종을 울리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산비탈 논으로 달려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산 위에 이르렀을 때에는 벌써 모든 것이 타버리고, 검은 잿더미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났습니다.
“아니, 도대체 누가 불을 질렀어?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할아버지가 나서며 말했습니다. “내가 불을 질렀네.”
“아니 왜요? 이제 추수만 하면 되는데 이게 무슨 일이세요?”
“저길 보게나.”
할아버지의 말씀에 사람들이 모두 그 곳을 쳐다보니, 산더미 같은 파도가 해변 쪽으로 마구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해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을을 휩쓸어 집들을 종잇장처럼 구기고 부서뜨렸습니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넋을 잃고 파도에 쓸려가는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
여러분, 만약 할아버지가 벼에다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파도에 휩쓸려 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벼에다 불을 질렀기에 그 불이 마을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태우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불살랐기에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심판과 정화의 불입니다.
한 번은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에 가 보니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짐승을 사고파는 일과 성전 세를 내기 위해 돈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시장인지 성전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에서의 경건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었고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온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속에 있는 문제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첫 번째는 이렇게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면 그 뜰밖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인들이 기도할 장소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먼 나라에서 오래 동안 준비하며 찾아온 순례자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장사꾼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입니다.
둘째는 장사 속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보셨습니다.
성전 뜰에서 짐승을 사야 제사장들의 검사에 합격할 수 있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을 주고 짐승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강도의 모습이었고 성전은 기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강도의 굴혈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주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다 쏟으시고 상을 엎으십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시면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성전에 불을 지르셨습니다!
잘못된 전통과 불의와 부정에 대하여 판을 엎으시고 심판과 정화의 불을 지르신 것입니다.
불을 지르신 것 때문에 주님이 제사장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 불을 지르러 오신 주님은 심판과 정화의 불을 지르셨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바꾸시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던 당시의 관습에 대해 안식일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날이라고 정면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서는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시면서 잘못된 삶에서 벗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 대해서도 심판의 불을 지르시며 저들이 정화되시기를 촉구하셨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개념이 제한적이었던 당시의 사람들을 향해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가족의 개념을, 사랑의 대상을 확장시켜놓으셨습니다.
그 불로 인하여 예수님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셨지만 그러나 세상에 잘못된 일에 불을 붙이고 태우고 정화시키시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 세상의 죄악과 잘못과 불의와 부정에 대하여 불을 지르셨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고 불의에 대하여 불의라고 소리치셨으며 아닌 것에 대하여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옳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화의 불이 오늘 우리에게도 붙여지기를 주님은 바라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놓으신 불을 통하여 우리가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정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불이 여러분가운데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불이 우리가운데 타오를 때에 세상은 밝아질 수 있고 정의가 구현되며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랑의 불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지르신 가장 중요한 불은 사랑의 불이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당시에 세상에는 사랑이 없었고 사랑에 목말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위한 땔감이 이방인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이방인을 무시하고 저주했던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상종할 수 없는 불순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멀리하고 무시하고 경멸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만이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여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을 무시하였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여자들의 인격이나 죄인들의 인격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이런 세상에 어떤 사랑이 있었겠습니까?
그런 세상을 향해 예수님은 사랑의 불을 지르셨습니다.
무시하던 여자들과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고 똑같은 인격으로 대우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섬기는 삶을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사랑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는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불을 주님은 이 세상에 던지셨습니다.
사랑의 불을 붙이셨습니다.
그 사랑의 불을 받은 자가 사랑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머리털을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았고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그 사랑에 감동받아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기로 했고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던 수가성의 여인은 그 사랑에 감동받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선전하고 알렸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려 죽을 때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발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목이 잘라 순교하기까지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받은 자들에게는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차갑게 식어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시면서 그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불이 다시 회복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훨훨 타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불이 붙지 않아 아니면 불이 꺼져버린 성도들 때문에 안타까워하시고 답답해하십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가운데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애매하게 세상을 탓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이면서 연탄재를 발로 차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속에 사랑의 불이 붙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불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불이 여러분들 가운데 활활 타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분쟁의 불입니다.
주님은 내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화목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가족들 간의 화목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가족들 간의 화목을 깨트리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은 분명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분명히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과의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다들 경험하셨겠지만 저도 신앙생활하면서 아버지에게 많이 혼났고 부자관계를 끊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런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신앙은 분명히 분쟁을 낳게 되고 관계를 갈라지게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헤어지고 갈라지는 아픔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분쟁은 신앙인이 비 신앙인과 갈라지고 반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 복음으로 살고 헌신하는 사람은 반대와 오해와 불신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두리 뭉실, 좋은 게 좋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불을 질러야 하며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평화보다는 분열을 일으켜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반대까지도 극복해야 하는 자기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 때문에 가족들과 싸워보았습니까?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부모님들과 형제들과 친구들과 싸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때문에 부부사이에 싸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예수 때문에 싸움이 없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헤어짐이 없었고, 말씀 따라 살기 위해서 분쟁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고 말씀대로 살아가고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싸움이 있어야 하고 분쟁이 있어야 하고 고독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쟁과 싸움과 고독이 있을 때 나도 살고 내 가족이 살고 내 가정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불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을 던지고 불을 지르셨습니다.
이 땅에는 예수님의 불이 필요합니다.
구원의 불이 필요하고 심판과 정화의 불이 필요하고 사랑의 불이 필요하고 고난과 분쟁의 불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그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이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십니다.
이 불은 생명의 불입니다. 구원의 불입니다. 화목의 불입니다.
이 불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불입니다.
이 불은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불입니다.(201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