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614
발심수행장041
동봉
지인소거智人所居
높은산중 여기저기 솟은바윗굴
지혜로운 공부인이 머물곳이요
사철푸른 소나무숲 깊은골짜기
수행자가 의지하고 깃들곳이네
고악아암高嶽峨岩
지인소거智人所居
벽송심곡碧松深谷
행자소서行者所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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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아도 스님과 첫새벽 스님께서는
축구蹴球라는 놀이를 아십니까?'
뜬금없는 기포의 질문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나 순간 평정을 되찾는다
뜬금없다고 당황해할 것도 없고
사실 어리둥절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본디 모르는 말이니까
아도는 잠자코 있고
첫새벽이 기포에게 되묻는다
'축구라니 그게 무엇인가?
놀이라고 한다면 서로 편을 갈라
승부를 겨루는 뭐 그런 것인가?'
기포가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축구'를 검색하니 다양한 해설이 나오고
이미지를 검색하니 사진들이 뜬다
다시 동영상을 검색해 들어가니
U-20 청소년 축구 준결승전 기록이다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던
아도와 첫새벽이 진지해진다
표정에서 놀라움이 읽힌다
아니, 어떻게 이런 게 다 있는가?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은 물론
함성을 지르고 얘기하는 목소리까지
이리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축구 동영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동영상이 작은 스마트폰에 그대로 실려
전해진다는 데 놀랄 수밖에 없다
첫새벽이 문득 함성을 지른다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사랑하는 후배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지
당항성 어느 공동묘지에서
해골물을 마시고 난 뒤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지 뭔가?
그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지
한데 오늘 기포 수좌 스마트폰을 보고
더 큰 신비가 있음을 깨달았다네'
'기포 수좌, 정말 잘 왔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로 말일세
축구인가 뭔가는 잘 모르겠으나
자네가 사는 미래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세상이구먼!'
과묵한 편인 아도조차 한마디 거든다
'거참, 재미있는 격구擊毬네
격구는 말을 타고 달리며
끝이 약간 구부러진 막대기로서
공을 쳐 상대방 문에 집어넣는 경기지.'
'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접 발로 차는 건 어렵겠지만
놀이하는 것을 보고 싶구려 하하하'
기포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들 두 스님을 타임머신에 태우고
미래 21세기 1919년 6월 16일
여름으로 한번 되돌아갈까?'
그동안 타임머신을 혼자 타고 다녔는데
아도와 첫새벽으로 더불어
2019년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스무살 미만(U-20)의
젊은이들이 펼치는 경기를 보고 싶다
90분짜리 준결승 하이라이트를
스마트폰 다시 보기로 보이자
아도와 첫새벽은 한껏 흥분해 있다
기포는 순간 후회를 느낀다
괜스레 스마트폰을 보여준 것 아닐까
단지 다독거리는 것만으로
이들 흥분을 가라앉힐 수는 없다
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2001년도에 태어난
U-20 월드컵 최고스타 이강인
그의 '예술 축구'의 활약을 보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첫새벽에게
어찌하면 이를 안정시킬 것인가
기포의 고민은 깊어간다
아도와 첫새벽
두 고덕高德 스님을
기포의 타임머신에 태우고
미래로 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기포가 고민하고 있는데
첫새벽과 아도가 동시에 입을 연다
'이보게 기포 수좌 말일세
21세기 미래로 갈 수는 없네
그 대신 말일세
우크라이나와
대한민국의 결승전을
자네 스마트폰으로 함께 보세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이고
우크라이나는 대관절 어느 나라인가?'
기포가 손에 땀을 쥔 채 답한다
'대한민국은 약 10만 제곱km 넓이로
통일신라의 미래 나라이며
줄여서 '한국'이라고도 합니다
통일신라 언어를 일부 사용하긴 하나
문자는 '한글'이라는 매우 독특한
표음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한 나라로
약 60만 제곱km로 제법 큰 나라입니다
얘기 중에 패널티 킥을 얻은
대한민국 팀이 선제골을 넣는다
전반전 5분도 되기 전에 하마 1:0이다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1,360년 뒤로 옮겨가는 것은
명암明暗의 법칙에 준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이를테면 1분 동안 어두웠던 어둠과
1만년 동안 어두웠던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동일하다
어두워진 지 1분 만에 불을 겨거나
1만 년 뒤에 불을 켰을 때
밝음이 오고 어둠이 사라지는
시간의 속도는 반드시 동일하다
타임머신이 과거로 이동하든
또는 미래로 이동하든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늘 동일하다
그러므로 얘기 중에 이동하더라도
타임머신의 속도는 절대속도다
절대속도는 빛의 속도가 아닌
이른바 생각의 속도다
아도가 한 마디 던진다
'지혜로운 자는
때로 스포츠 숲을 찾아
서로 어울리는 것도 좋겠다'
기포가 U-20 청소년 팀이
1:3으로 아쉽게 진 얘기를 들먹이자
첫새벽이 손을 들어 가로 젓는다
'놀이에 승패가 중요하긴 하나
놀이 자체에 더 큰 기쁨이 있다네
허, 이사람. 1:3이면 어떤가!
세계 2위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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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나온 반달이 저리 곱다/사진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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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2019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