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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을 택하심
고전 1:26-31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 1:26-31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여러분 가운데 과연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있습니까? 부자가 있습니까? 27)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고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여러분을 일부러 선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 쓸모 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만드셨습니다. 29)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30)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우리에게 알리는 일을 그리스도께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셔서 우리의 지혜가 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바르고 거룩하게 하고 또 우리를 자유롭게 살게 해주시려고 친히 그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31) 그러므로 성경에도 ㄱ)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만을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ㄱ. 렘9:24)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부르심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해 주고 성도들이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26-29) 고린도 신자들 가운데는 육체를 따라 살펴볼 때, 지혜로운 자(지식인, 철학자), ‘능한 자’(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문벌 좋은 자’(귀족)에 속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부르심의 기준이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 중에도 당시 내세울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들은 복음에서 예외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차별이 없습니다(롬 3:22). 바울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너희의 부르심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세상적인 지혜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뛰어난 지도자들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들, 지식인들을 부르시는 게 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다른 선택을 하신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미련한 일을 하고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첫째, 세상이 주장하는 것을 부끄럽게 하심(27), 둘째, 세상 것들을 폐하려 하심(29), 셋째, 선택받은 이들 중에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29)이라고 설명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30-31) 성도는 자기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골 2:3) 하나님과 올바른 위치에 서게 되며(고후 5:21) 거룩하게 되고(살전 4:3-7) 자신들이 받을 죄에 대한 형벌에서 자유케 됩니다(막 10:45). 다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곧 우상일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파가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말함으로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분쟁이 그쳐지기를 원했습니다. 만일 신자들이 자랑을 하고자 한다면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자랑은 자신이 이룬 것이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렘 9:23-24).
적 용 : 성도의 자랑은 지나온 발자취나 지금의 모습 속에 있는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에게 이루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과 은혜는 반비례합니다. 자신이 자랑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가려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때 우리의 자랑할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한 고백과 간증이 많아야 합니다. 나는 없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뭔가 더 해서 주님의 역사가 이뤄졌다고 자랑할 때 은혜는 없어지고 하나님은 사라질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십니다.
< 설 교 >
약한 것을 택하심
사람이 무엇을 자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간됨됨이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좋아하고, 가장 바라고 추구하는 것을 자랑하게 마련입니다. ‘자랑’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자는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고, 재벌은 자기의 ‘돈’을 자랑하며, 미스 코리아는 자기의 ‘육체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자랑, 머리자랑, 집안자랑, 자식자랑 등. 지금 당장 그러한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또한 그러한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합니다. 자랑거리는 곧 그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이자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스럽고, 감격스럽고,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수 있게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사람들이 자랑하는 자랑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랑하는 자랑거리에 비교하면 ‘쓰레기’에 불과하고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문제의 대부분은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서 발생합니다. 무엇을 자랑해야 할 지를 잘 모르고 있는데 있습니다.
1.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보물창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된 것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는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 자신이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영광스럽고, 놀라운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통해서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사함과 온전한 순종함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깨끗함과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과 온전한 구원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평안과 안식과 기쁨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평안이며, 안식이며, 기쁨입니다. 우리 삶의 능력과 힘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힘이며, 능력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므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비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신성의 충만함이, 지혜와 지식의 모든 충만함이, 은혜의 진리의 모든 충만함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찾고, 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구원과 영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 것이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것이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것은 아내의 것이고, 아내의 것은 남편의 것입니다. 비유컨대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결혼하여,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실 수 있고, 예수님의 순종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야 말로 성도됨의 엄청난 비밀입니다. 또한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너희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1:30)’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 집어 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값비싼 콘도 회원권은 돈이 있으면 되고, 상류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상류층이라는 신분이 있으면 되며, 대학은 지식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은 돈으로도, 가문으로도, 지식으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2.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자격이나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문벌이나 학벌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이러한 외적인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보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0:26)’.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성도로 부르시는 것은 학벌이 있든지 없든지, 부자든지 가난한 자 이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뽑는 기준은 이러한 세상의 조건이나 기준으로 뽑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뽑으시는 목적은 단 한가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고전1:29)’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며,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만 자랑하게 하시기 위해서 외모로 사람을 부르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3. 예수만 자랑하는 사람들 그러므로 성도들이란 누구입니까?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만을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님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지식과 권세를 의지하지만 성도들은 예수님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만을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님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쾌락과 편안함과 안락함을 사랑하지만 성도들은 예수님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만을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님만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성공과 업적을 기뻐하지만 성도들은 예수님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만 나의 관심을 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것에 관심을 두지만 성도들은 나의 관심을 예수님께만 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자랑거리들은 모두 ‘배설물’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모든 이들이여! 진정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 지를 점검해 봅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분, 더 귀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 때 예수님을 바로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 되신다는 사실을 바로 알 때 예수님만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자랑하는 사람들이 될 때, 교회는 세상과 달라지게 되며, 성도들은 성도답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만 자랑하는 사람들이 될 때,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님만을 자랑하라(고전1:31)’.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26-31 / 설교 : 문성욱 목사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는 뜻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PR은 원래 기업이 일반 대중들과의 관계를 맺어 기업 이미지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Public Relation'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자신의 회사 이미지 PR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합니다. 어떻게 PR을 하느냐에 따라서 기업의 존폐가 달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능력이나 탁월함을 누군가에게 바르게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좋다고 바르게 PR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과장을 하거나 과대포장을 해서 속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PR의 기본은 정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탁월함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필요이상으로 자기 자랑을 하게 되면 결국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자랑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함으로 인해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태도입니다. 힘이 장사인 개미가 있었습니다. 힘이 센 그 개미는 두 톨씩 쌀을 들며, 기고만장해 있었습니다. 모두들 우러름의 대상이었지만, 그 개미는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힘이란 겨우 쌀 두 톨 드는 힘밖에 안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저 어리석은 개미 같은 무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이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자랑은 어리석은 개미와 같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 6장 1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십자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회복’ 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말씀만으로는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그만한 대가를 치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춘천 근처의 장로님은 강가에 콘도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임대와 분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홍수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과 딸이 떠내려가는 가운데 아들의 손을 잡고 딸의 손을 놓아버린 광경을 본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우성치며 떠내려가 죽은 딸의 모습 때문에 이 강가에서 넋을 잃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은 이 모습을 생생히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에게 늘 감사하면서 죽은 누나를 생각하면서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말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값비싼 존재인지를 알려면 십자가를 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 십자가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자들, 강한 자들, 귀하게 여기는 자들을 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히려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9)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인간도 자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개미의 힘자랑에 불과합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31)
무엇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용맹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한 자라고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속성을 자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배려를 합니다. 약자의 입장을 존중해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가치기준은 언제나 강자를 기준으로 삼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자도 동등한 가치기준으로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편이 되셔서 배운 자보다는 배우지 못한 자를,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를, 존경받는 자들 보다는 그렇지 못한 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지난 1월 달에 신년축복성회 강사로 왔던 김삼환 목사님의 사위 이필산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김삼환 목사님 아버님 장례식 때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김삼환 목사님 아버님을 입관을 하는데 김삼환 목사님이 너무도 서럽게 우시더랍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아버님에게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지만, 김삼환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버님은 제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만약에 아버님이 제게 한 마지기의 밭이라도 남겨 주었더라면 저는 그 밭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느라 하나님 앞에 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아버님이 제게 칭찬 한 마디라도 해 주셨더라면 아버지의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아버님이 저를 격려하시는 말씀한 마디만 했더라도 아버님의 격려를 받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제게 밭 한마지기, 칭찬 한 번, 격려 한번 안 해주심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신 제 인생의 최고의 스승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많이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는데도 모든 것을 좋게 보시고 긍정적으로 보시는지...고난이 인생의 디딤돌이었습니다. 그분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강한 자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가장 작은 자임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죄인 중의 괴수라고 까지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만을 알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가 약할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순간이구나.’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강함이 아닌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바울의 고백과 결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지고 있는 약함의 부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약한데도 강한 척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과대 포장하여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약함을 자랑하라. 그 약함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자랑해야합니다. 그리고 강함만을 자랑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약함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더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