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5]섬진강 옥정호 별장에선 무슨 일이…
날씨도 으실으실한 어제 저녁판에 ‘엉겅퀴 박사’ 친구(신농업인 심재석)의 돌연한 초대를 받았다. 섬진강 옥정호 주변 자신의 별장에 인천의 사업파트너인 미모의 중년여성(박머시기, 여머시기) 두 명이 졸지에 내려와 나를 꼭 데려오라고 했다는 것. 웬 열? 달포 전 전주 삼천동 막걸리집(초막골)에서 수인사를 나눈 인연이 있다. 솔직히 갈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책 펴낼 원고 정리할 일도 있고), 대문 앞까지 차를 대령하는 데야 어쩔 수 없는 일. 여인네들이 차린 식탁에 홍어회 한 박스가 놓였다. 게다가 산동산 연태고량주라니? 친구는 농막이라지만 그만하면 멋진 산장 또는 별장에 손색이 없다. 동네(강진면 수방마을)와도 좀 떨어져 있고, 섬진강댐 위에 위치, 새벽안개가 장관이다.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산장의 넓은 마당엔 큰 나무토막들이 뒹글고 있다. 캠프파이어 하기엔 누구 눈치도 볼 필요없는 안성맞춤. 불멍을 아시리라. 어느해 겨울 잉걸불에 벌개진 얼굴로 테스형을 열창한 적도 있었다.
깊어가는 초겨울밤, 중년남성 두 명과 중년여성 2명, ‘썸’을 타는 사이였다면 쵝오였으련만, 그것은 결단코 아니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 흐흐. 기분이 수상쩍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친하다는 말을 ‘이무럽다’고 하는데, 친구와 그 여인들은 파트너로 수 차례 만난 사이여서 그런지 턱없이 자연스러웠다. 나로선 다행히 초면은 아니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는 면했으나 일단 호칭부터가 어색했다. 한 친구가 대뜸 ‘오라버니’라 해대는 바람에 어색함에서 해방돼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갔다. 특히 한 친구가 매달 책을 30여만원어치 살 정도로 좋아한다며, 대하소설 <토지> <태백산맥> <혼불> 등을 독파했다고 해 대화의 숨통이 트였다. 이런 말상대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 좋은 자리에서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음식(홍어회)과 좋은 술을 들며 좋은 얘기를 하는 행운幸運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친구는 역시 잘 두고 볼 일이다.
점입가경은 코끼리 다리만한 통나무를 도끼로 쪼개 불을 피우는 일. 이런 통큰 캠프파이어가 있다니? 잉걸불 주위로 빙 둘러앉아 한담, 방담을 나누는 재미라니? 어느 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불멍’도 했는데,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사업 구상? 가족의 평화? 등등등등. 하지만 이게 힐링이지 뭐가 힐링일까 싶었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 등이 시려 일찍 자리를 파한 게 옥의 티. 새벽에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눈을 뜨고서도 생생했다. 어느 모임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는데, 아내가 해몽가의 답변을 보내왔다. “좋은 꿈. 운기가 트임을 뜻함. 주변에 인맥들이 더 좋아지고, 그로 인해 님에게 더욱 도움이 됨을 예고하는 것임”그럴까? 하하. 제법 재밌다.
나로선 늦은 아침(8시. 6시면 이미 아침을 먹는다), 한 여인이 라면에 남은 홍어회를 넣어 끓인 ‘홍어라면(홍라)’을 대령한다. 홍어 살점이 입에서 스르르 녹는다. 별미다. 아침까지 불이 다 꺼지지 않아 태울 쓰레기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 <혼불문학관>을 가보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엉겅퀴박사가 길을 재촉했다. 가는 길 국도주변이니 우리집에서 원두커피 한잔 하고 집구경도 하고 가라고 하니 좋다고 한다. 막 도착한 제주산 귤에 예브초프 커피가루를 내려 한 잔씩 대접하고, 빈약한 서재를 보여주니, 내가 펴낸 책 한 권 달라고 떼를 쓴다. 재고도 없는데 ‘귀엽다’고 할 것인가. 흐흐.
아무튼, 이들은 혼불문학관을 거쳐 남원의 숨은 보석 대산면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올라간다는 전화다. 좋은 일이다. 깜짝 즐거운 추억을 쌓고 하루 나들이길 잘 올라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