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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원문보기 글쓴이: 민방위훈련
1970년대 후반 이후로 세계 3대 세력은 볼셰비키 카르텔/시오니스트, 록펠러 카르텔, 그리고 크레믈린 통치세력으로 구분합니다.
로스차일드의 지원을 받은 볼셰비키 카트텔/시오니스트와 록펠러 카르텔 그리고 러시아를 지배하던 볼셰비키 카트텔을 제거하고 추방시킨 크레믈린 통치세력(현재 푸틴으로 이어지는)입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다시 데이비드 록펠러 vs 제이 록펠러+로스차일드의 내분중이고 로스차일드와 록펠러간의 파워게임도 진행중이며 뿌리가 같은 시오니스트와 볼셰비키 카르텔까지 포함하여 이들 글로벌리스트들은 서로 자신들이 주도하는 신세계구도를 위해 복잡한 협치와 대립의 암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도 일부 볼셰비키가 정부에 남아있는 가운데 크레믈린 통치세력 푸틴(내셔널리스트)은 시진핑과 손을 잡았고 시진핑 또한 중국내 부패세력(록펠러 카르텔)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뉴스들에서 볼수 있는 정치세력이나 정치인들을 3대 세력으로 구분해서 보면 글로벌리스트VS내셔널리스트의 세계정치경제구도가 좀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보일 것입니다. 미국은 이렇게 이렇게 볼셰비키, 시오니스트, 록펠러 세력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이고 미국 대형 미디어는 록펠러 카르텔이 거의 다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리한 편향된 내용이 많아서 유의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1. 볼셰비키 카르텔
● 볼셰비키 카르텔과 시오니스트의 뿌리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20세기 역사의 많은 것을 형성하게 된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러시아에서의 볼셰비키의 혁명(볼셰비키 카르텔이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 사건)이었다. 또 하나는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유태인의 고향을 만든다는 개념을 지지한다는 벨포어 선언문Balfour Declaration이었다. 사실 벨포어 선언은 공식적인 대외 발표가 아니라 영국 시온니즘 단체 대표인 빅터 로스차일드에게 당시 영국 외무장관 이었던 아더 벨푸어 경이 보낸 편지이다. (유태인이 영국의 對독일전 승리를 도와주면 유태인이 고향인 시온에 돌아갈 수 있게 팔레스타인땅에 이스라엘을 세우게 해주겠다는)
볼셰비키주의와 시온주의로 알려진 정치 세력은 잘 알려져있지 않은 공통 뿌리를 가지고 있다. 둘 다 로스차일드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미 한세기전 로스차일드의 지원을 받은 John D. Rockefeller 1세는 거대한 부호가 되기도 하였다. 볼셰비키주의와 시온주의 또한 천 년 전의 소위 "유태인들의 왕국Kingdom of the Jews"으로 부르는 것에서 공통적인 역사적 뿌리들 가지고 있다. 이 왕국은 지금 러시아 남쪽에, 흑해와 카스피아 해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은 몽골-터키계의 카자르 인들로 알려진 민족을 구성하며, 그들의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국가의 종교로 유태주의를 채택했다. 이것은 카자르들이 두 강력한 이웃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정치적 계책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웃들은 당시의 강대국들이었던 남쪽에 있는 칼리프들Caliphs의 모슬렘 제국Moslem Empire과 서쪽에 있던 비잔틴Byzantium의 기독교 제국Christian Empire이었다.
이들은 바로 자신들이 유태인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이 두 가지 정치 세력은 유태인 공동체를 자신들의 활동을 은닉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볼셰비키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형제 세력인 시오니스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 목표는 ‘온 세상을 완전히 지배[Absolute domination of the entire world]’하는 것입니다.
● 볼셰비키 카르텔의 러시아 지배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 후 볼셰비키 주의는 기독교 러시아로 주입되었고, 그것은 록펠러 카르텔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그 시간 이래로, 그들 사이에는, 커튼 뒤에서 미국 정치를 지배했던 자들(록펠러 카르텔)과 소련을 다스렸던 자들(볼셰비키 카르텔)사이에는 은밀한 동맹이 있었다. 록펠러 스탠더드 석유의 이해들에게 1926년 러시아의 거대한 바쿠Baku 석유 단지들로부터 석유 거래의 지배권이 주어졌다. 여러 해들에 걸쳐, 록펠러 카르텔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도록 필요한 모든 면에서 지탱되도록 보살폈다.
미국과 소련이 대치해 있는 척 했던 동안, 그들은 실제로 전 세계를 먹어 들어가는 협공작전에 관계하고 있었다. 워싱턴과 모스코바 사이의 거짓 적대감이 세계를 양극화하고, 다른 국가들이 두 강대국이 지배하는 두 진영으로 들어가도록 연출되었다.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남기를 선택한 자들 - 소위 "제3 세계Third World" - 은 그들이 하나씩 무릎 꿇도록 하기 위한 내전들과 혁명들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장기적 목표는 - 한 비밀 백악관 지령 속에 있듯이 - "소련식 생활과 쉽게 융합될 수 있는 정도로 미국인의 생활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적으로 강력한 "하나의 세계one world" 정부가 궁극적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국제 평화를 위한 카네기재단Carnegie Endowment과 록펠러 궤도상의 동맹한 재단들에 의해 20세기 초에 세웠던 "약속commitment"의 달성이 될 것이었다.
● 볼셰비키 세력의 소련에서의 추방과 미국으로의 입성 그리고 록펠러의 실수
1917년 이래 크레믈린을 운영해온 볼셰비키 카르텔은 토착 러시아 기독교도들의 강인한 파벌에 의해 수십 년이나 오래된 전복 운동의 목표가 되었다. 토착 세력은 스탈린이 죽은 1953년부터 볼셰비키의 권력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후 Nikita Khruschev의 유명한 "스탈린주의 해체de-Stalinization" 운동을 일으켰다. 1970년대 중반에 이 반-볼셰비키 파벌은 마침내 볼셰비키들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크레믈린에 남아있는 볼셰비키들을 추방하였다. 그로부터 러시아의 권력의 자리에서 볼셰비키들의 추방이 뒤따랐랐다.
볼셰비키 카르텔이 러시아에서 그들의 장악을 잃었을 때, 소위 데탕트detente(국제관계의 긴장완화)가 불운을 맞았다. 록펠러-소련의 동맹은 소련 쪽의 볼셰비키 지배에 기초했고, 그것이 끝났을 때, 비밀의 동맹관계도 끝이 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록펠러의 4형제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소련에 있던 그들의 이전 비밀 동맹들이 볼셰비키들이었으므로, 그들은 러시아로부터 추방된 볼셰비키들을 여기 미국의 권력의 자리로 맞이했다. 그들은 추방된 볼셰비키들이 크레믈린을 장악한 새로운 그룹의 약점들을 알고 있을 것으로, 그리고 그들을 다루는데 록펠러 카르텔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록펠러의 형제들이 잊고 있었던 것은 볼셰비키들이 어느 누구와도 권력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 나쁜 것은 볼셰비키들이 모든 권력을 정부의 방식으로 소수(그들 자신)의 손에 집중시키기를 추구하는 국가 사회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록펠러 카르텔은 대조적으로, 권력을 최소한의 정부 간섭으로 기업들의 방식으로 소수의 손에 집중시키는 기업 사회주의를 대표한다. 둘 다가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만, 정반대의 수단에 의해서 말이다. 그들은 같은 사회 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
볼셰비키들은 여기 미국에서 권력의 자리들을 얻자마자 그것을 록펠러 형제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8년 중반에 펜타곤 내의 볼셰비키들의 영향력은 선제공격 핵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적 정책의 과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그러는 동안 1978년 7월, John D. Rockefeller 3세의 죽음이 일어났고, 4형제의 단위였던 것을 약화시켰다. 1978년 11월에는 가이아나 학살이 펜타곤 볼셰비키들이 주모한 군사작전의 일부로, 이스라엘 특공대의 결정적인 참가로 일어났다. 그런 다음, 1979년 1월에, 권력을 위한 전면적인 볼셰비키들의 장악이 넬슨 록펠러의 살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또한 그 곳에 이미 오랫동안 기반을 잡고 있던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이 새로운 볼셰비키들에 의해 보다 세력이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볼셰비키의 미 정부에 대한 권력 장악은 1979년 1월 26일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1908-1979, 포드 정부 시절 부통령--역주)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수개월에 걸쳐 두 그룹 사이에서는 베일에 가려진 암투가 발생했고, 그러는 동안 주요 인물들의 암살, 사직, 그리고 행방불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은 볼셰비키의 전통에 어울리게, 철저히 대중의 눈을 피한 채, 그림자 속에서만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소요는 점점 더 확대되어 마침내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들마저도 이 갈등 구조 속에 연루되게 되었습니다. 1979년 봄까지, 정보기관들 간의 전면전은 미국을, 특히 워싱턴을 완전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록펠러 카르텔 및 볼셰비키에 제각각 소속된 비밀요원들에 더하여, 러시아, 영국, 이스라엘에서 온 정보기관 요원들도 이 암투에 개입하였습니다. 저마다 이 위기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고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였으며, 각각의 그룹은 최첨단의 정보 기술들, 적어도 21세기는 되어야 선보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기술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1979년 초 몇 달 동안, 미국 정부의 록펠러 권력이 여기 볼셰비키들로 인해 흔들렸다. 그러나 볼셰비키들은 러시아의 KGB(신 크레믈린 통치세력)의 방해로 인해 그들의 장악 시도의 완전한 성공 직전에 중지되었다. 새로운 크레믈린 통치세력들은 여기서의 볼셰비키들의 완전한 장악이 급히 핵전쟁으로 이끌 것임을 알았으며, 그것을 막기 위해 행동했다. 그렇다 해도, 펜타곤의 볼셰비키들의 지배는 1979년 초 이래 계속 강해졌다.
격렬한 권력 투쟁이 미국 정부 안에서, 이제 견고한 볼셰비키들과 이전의 권력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록펠러 카르텔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덧붙여, 볼셰비키들에 대항한 제한된 새로운 동맹이 록펠러 카르텔과 새로운 크레믈린에 의해 1982년에 수립되었다. 록펠러 카르텔과 크레믈린은 여전히 서로간 해결해야 할 일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둘 다 볼셰비키들의 숙적이다. 볼셰비키들을 파괴하기 위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함께 일하기로 협의했다.
여기 미국에 있는 볼셰비키들의 주요 목표는 그들을 전복시킨 러시아를 쳐부수기 위해 교묘한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전쟁으로 가기 위한 무대는 중동이 결정적이다. 그 지역에서 여기 볼셰비키들은 전쟁을 위한 길을 내기 위해 그들의 가까운 동맹, 시오니스트s에 의존하고 있다.
1977년부터 이스라엘의 권력을 잡고 있는 과격한 시오니스트 정권의 기반은 1940년대의 테러리스트들이다. 오늘날, 세계의 세 번째 가장 강력한 군사 권력의 수반으로서, 그들은 더욱 큰 규모로 테러리즘을 계속 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가 꾸준히 커지면서, 그들은 새롭고 더 넓은 분쟁들로 교묘히 이끌도록 고안된 군사 테러리즘의 교본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자신을 "이스라엘Israel"로 부르는 나라는 1917년 벨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가져왔던 작지만 당당한 시온주의 소수파의 약속과는 아무 닮은 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억압받은 유태인들을 위한 평화롭고 조용한 피난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라성 같은 탁월한 반-시온주의 미국 유태인들이 1919년에 발표한 무서운 경고들이 시오니스트 이스라엘의 유혈의 역사 속에서 달성되었다.
● 국방부를 장악한 볼셰비키 카르텔과 국무부를 지킨 록펠러 카르텔
1979년 말이 되자 마침내 ‘먼지’는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렇더라도 미국 정부내 영향력에 있어서 완전히 제거되거나 박탈되지는 않았습니다. 볼셰비키들은 미 정부의 지배적인 위치들을 장악했지만, 그들의 권력 기반은 오직 군사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후 볼셰비키들은 러시아와 미국간의 전면적 핵전쟁이라는 아이디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볼셰비키들에게 있어서--당신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낯선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는 그저 그들의 세계지배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도구 정도에 불과했고, 이러한 관점은 시오니스트들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볼셰비키들에 의한 이 은밀한 쿠데타가 발생하기 3년전 까지만 해도, 록펠러 카르텔은 그들 자신들 역시 핵전쟁 쪽으로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록펠러 카르텔은 더 이상 핵전쟁을 치러낼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노선을 변경했던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록펠러 세력의 대변인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의 대중 홍보[public relations] 기구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반핵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거의 매일같이 이들은 핵전쟁의 공포감을 대중에게 불어넣었던 것입니다.--우리가 이러한 기구들을 가졌었다는 게 어쩌면 행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행정부 안에서도, 록펠러 카르텔은 조금씩 잃었던 권력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볼셰비키들의 임박한 핵전쟁 계획을 조금씩 허물어뜨려 나가려고 애썼습니다.
록펠러 카르텔 소속으로 미 행정부 내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국무장관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레이건 행정부가 최초엔 록펠러 카르텔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헤이그는 그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볼셰비키들은 록펠러 그룹이 그들의 입지를 공고화시키지 못하도록 응분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80년 11월 30일, “임시변통으로” 치뤄졌던 레이건 대통령 선출이 있은 지 몇 주가 지난 다음, 볼셰비키들은 빠르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후,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알릴 용도로, 모든 이야기들은 재빨리 전통적인 “고독한 암살자” 이론으로 꾸며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다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마인드 컨트롤로 프로그래밍된 희생양 하나가, 무작위로 쏜 총을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있도록 배치되었던 것입니다.--존 힝클리 주니어[John Hinckley, Jr.].
그 후, 사건이 전개되어간 바대로, 총격 자체가 백악관 주인의 얼굴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그러나 최소한 당신이 이해하게 된 바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통해 볼셰비키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는 있었습니다. 새로운 록펠러 카르텔 쪽 정부 프로그램들의 추진력을 멈추게 만들어, 취약성을 띤 시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모두가 완전한 한 편의 연극이었으나, 당신들 모두는 이를 간파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단 몇 주 후에, 볼셰비키들은 또 다시, ‘운전석’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특히 국방성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새로운 정부와 함께 캐스퍼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가 국방장관으로 지명되었는데, 그는 사실 록펠러 카르텔에 숨어든 볼셰비키 스파이였습니다. 레이건 암살 시도가 있는 후, 와인버거와 헤이그는 서로간의 목을 조르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둘은 각각 권력 다툼의 양극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미국정부내에서 볼셰비키 카르텔은 국방부를 장악하고 록펠러 카르텔은 국무부를 장악하는 구도는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2. 록펠러 카르텔
● 록펠러 제국
나는 모든 재앙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 노렸했다. - John D. Rockefeller 1세
그는 로스차일드의 부하로 출발하였지만 이내 파트너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오늘날의 록펠러 카르텔은 세계의 수백 개의 최대 다국적 기업들을 - 큰 석유회사들, 큰 금융기관들, 큰 기업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제국으로 단순한 정부들의 효과적인 통제를 넘어서 있을 정도로 거대한 경제적 자산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본부들은 미국에 있지만, 그 전망은 미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을 그 자체로 하나의 제국empire이다.
John D. Rockefeller 1세는 진짜 왕국을 설립했고, 그의 계획들과 프로그램들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수행되도록 했다. John D. Rockefeller Jr.(주니어/2세)는 역사적으로 미국적 기본 이상들의 기초인 기독교 신앙을 전복시키는데 특별한 강조를 주면서, 록펠러의 계속 확장하는 권력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러나 록펠러 카르텔을 그 권력의 정상으로 확장하고 발전시킨 것은 록펠러의 "세 번째 세대"였다. 3 세대의 6명 중, 여동생 Abby와 남동생 Winthrop는 장대한 계획에 많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비록 Winthrop이 나중에 Arkansas 주지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4명의 형제들 - John D. Rockefeller 3세, Nelson, Laurance, David - 은 록펠러 제국을 확장하는 사업으로 교활한 열성을 가지고 뛰어들었다. 그들은 세계를 영향권들로 나눴으며, 각자가 다른 형제들과 협력하면서 그 자신의 분야들에 집중했다.
*로스차일드가 배후에 있던 록펠러 카르텔이 기독교를 전복시키려는 전략은 미국과 러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예수회-프리메이슨이 기독교를 억합했던 전략과 괘를 같이 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부터, 세계적인 록펠러 제국Rockefeller Imperial이 된 것의 고삐를 잡은 것은 록펠러의 4형제들이었다. 현대적 다국적 기업들을 만들고, 미국 납세자의 돈을 2차 대전 후 그들의 세계적인 기업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해외 원조foreign aid"라는 위장 아래 사용한 것은 그들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를 위해 싸워졌고, 그것은 그들에게 전례 없는 재정적 횡재를 안겨주었다. 록펠러 석유 회사들은 사우디 석유를 배럴 당 5 센트의 단가로 거의 30년 동안 사들였는데, 1973년의 아랍 석유 수출 금지가 마침내 그것을 중단시킬 때까지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에 의해 벌어들인 엄청난 이익은 록펠러의 형제들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 많은 산업 기지들을 사들이게 했다. 동시에 2차 대전 동안 넬슨 록펠러가 세운 라틴 아메리카에 두루 걸친 록펠러 파워는 전후 기간 동안 확장되고 강화되었다. John D. Rockefeller 3세는 검은 아프리카의 많은 부분들의 경제적 점거를 주모했는데, 혁명들로 만들어진 검은 정부들은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그들의 자원들을 "관리하도록manage" 록펠러 다국적 기업들에게 돌아서야만 했다. Laurance Rockefeller는 미국의 항공과 방어 산업, 주요 항공사들의 지배로 바빴고, 증권시장을 주물렀다. 막내지만 가장 강력한 David는 록펠러 금융 제국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그의 촉수들이 세계 전역의 경제계들로 뻗쳤다. 그는 또한 정보산업에 정통했는데, Nelson 또한 이 분야에 관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1974-75년 동안 그들은 어떤 플랜들에서 미국의 통화 금 공급을 둘러싼 막대한 변칙적 사태들의 부분적 공개적인 노출들로 실추했다. 다음 1976-77년 동안 크레믈린과의 그들의 장기적 비밀 동맹이 깨어졌으며, 그들의 이전 동맹인 볼셰비키 카르텔이 러시아의 새로운 지배 그룹에 의해 전복되었다. 록펠러의 4 형제들은 러시아에서 추방된 볼셰비키들을 여기 미국의 권력의 자리들로 앉히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은 1979년 초에 여기 볼셰비키들에 의한 록펠러의 4형제들의 전복으로 이끌었다. 첫째인 John D. Rockefeller 3세는 1978년 7월 "사고accident"로 추정된 사건으로 죽었다. 그런 다음 1979년 1월 말에 볼셰비키의 쿠테타의 시작으로 Nelson Rockefeller가 살해되었다.
● 록펠러 카르텔의 근원
'록펠러 카르텔'은 조합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조합 사회주의란 예를 들어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거머 쥐었던 일을 상기해 볼수 있다. 히틀러는 거대 산업체들의 힘을 통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거대 산업체들을 비밀리에 통제했던 것은 바로 록펠러와 연계된 세력들이었다. 히틀러에 의해 세워진 정부 구조는 ‘파시즘’이었고, 그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정부의 파트너로서 특권을 향유하였다.
그러한 패턴을 다시 한번 더, 보다 강화된 형태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이번엔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것이다.. 오늘날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그들간의 연대로 형성된 ‘기업체 제국’이 너무나도 강력해져서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록펠러 카르텔'이 힘을 유지하는 한, '반 트러스트 법안(Anti-trust laws)'은 보류되고, 기업간 인수-합병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90년대 이후에 세계적 추세인 M&A의 이유를 볼 수 있다.
● 로스차일드를 위협하는 록펠러
원래 2차대전 전까지 압도적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했던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을 본거지로 하여 각국 왕실과 귀족 계급의 자산 관리 및 금융 거래를 대행하며 유럽 금융계를 장악하게 된 유태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2차대전 직후 조국 이스라엘의 독립에 기여하는 등 세계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 재정 위기에 처한 미국 정부가 금본위제(브레튼우즈 체제)를 폐지하면서 금에 집착하던 로스차일드는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에 세계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석유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에너지 혁명과 함께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제도 폐지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금 보유량을 자랑하는 로스차일드 재벌로부터 세계 석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록펠러 재벌에게 권력이 이동하게 된 것이다. 특히 금본위제 폐지로 인해 미국은 실물 자산과 연계되지 않는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내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록펠러 가문은 석유 가격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면서 계속 승승장구하여 국제금융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이들은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에도 긴밀하게 관여하여 록펠러 가문의 대표격인 데이비드 록펠러는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경제협의체인 삼각위원회(TC)를 창설하고 또한 국제정치를 총괄하는 대외관계위원회(CFR)를 설립해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다. 이 데이비드 록펠러가 소유한 회사는 세계 최대의 석유 메이저인 엑손모빌을 비롯해 걸프오일, 스탠다드오일 등의 석유 회사와 시티그룹과 JP모건 체이스 등의 은행, 그리고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후에 로스차일드 계열인 BOA에 매각됨), 리먼 브러더스(파산) 등의 투자 회사가 있으며 데이비드 록펠러가 설립한 대외관계위원회(CFR) 소속의 유명인사로는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외무장관 등이 있다. 쉽게 말해 그동안의 세계는 데이비드 록펠러를 필두로 한 거대 재벌 세력에 의해서 움직여온 것이다.
● 록펠러가의 내분과 로스차일드의 반격
데이비드 록펠러(좌)와 데이비드 록펠러의 조카인 제이 록펠러(우)
록펠러 카르텔의 수장은 데이비드 록펠러이며 그의 기업중 대표적인 기업이 씨티그룹입니다. 씨티그룹은 세계 1위의 기업이었으나, 2008년 금융사태로 6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사태를 돌아보면, 참으로 묘한 관계와 대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데미지를 입은 기업은 주로 씨티그룹 계열기업들'(록펠러 카르텔') 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록펠러 가문(제이 록펠러)에서 소유하고 있는 기업인 '골드만 삭스'의 선방입니다.
바로 록펠러 가문의 내부 주도권 경쟁으로 데이비드 록펠러의 조카인 제이 록펠러가 로스차일드 재벌과 연합하여 반기를 든 것입니다. 제이 록펠러는 떠오르는 록펠러 가문의 신예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거치며 데이비드 록펠러 계열의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시티은행 부실화와 함께 메릴린치가 로스차일드 계열의 BOA에 매각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골드만삭스의 오너인 제이 록펠러는 금융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록펠러 가문의 주인 자리를 노리게 되었습니다. HSBC와 로열더치셸 등을 소유하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도 계열사인 BOA를 이용해 파산 직전의 록펠러 계열 메릴린치를 합병함으로써 또다시 국제금융업계의 1인자 자리를 탈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골드만 삭스의 오너인 '제이 록펠러'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차기의 미국 실세로 자리하려 합니다. 그것은 미국의 황제 자리를, 데이비드 록펠러에서 존 데이비슨 제이 록펠러(흔히 '제이 록펠러'라고 부름)로의 자리 이동입니다. 제이 록펠러는 자기의 부하인 '헨리 폴슨'을 재무장관에 앉혀 이번 금융사태(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 록펠러가 선택한 오바마
(좌)부쉬와 네오콘. (우)오바마와 제이 록펠러
미국은 두개의 세력이 대결 중임을 밝혔다. 하나는 록펠러가(家)를 중심으로 하는 '록펠러 카르텔'이고, 다른 하나는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집단'이다. '록펠러 카르텔'은 미국의 국무부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헤게머니를 쥐고 있으며 키신저, 콜린 파월 등이 있고,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집단'은 국방부를 중심으로 CIA와 권력을 분점하고 있으며 네오콘을 주축으로 럼즈펠드, 체니 등이 있다.
부시 정부 때, 국무부는 국방부의 파워에 눌려 힘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했다.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의 정책이 국무부 중심의 스마트 파워로 돌아감을 뜻하고, '록펠러 카르텔'의 대 반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바마는 흑인으로서 미국의 압제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는데 최적임자이다. 그는 '록펠러 카르텔'이 만들어 냈고 '록펠러 카르텔'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대통령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록펠러 카르텔'의 전략은 무엇일까! '록펠러 카르텔'의 전략은 곧 미국의 미래 국가 전략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부시정권(볼셰비키 카르텔)이 행해 온 방법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신문에서도 이미 충분하게 거론된 것이다. 우선 국무부의 권한을 강화해 스마트 전략을 통해 폭 넓은 대외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은 '록펠러 카르텔'이 가진 석유, 금융 등을 통해 전 세계적인 헤게머니를 다시 쥐는 것이다.
3. 새로운 크레믈린 통치세력 The New Kremlin Rulers
1917년, 카자르계 유태인들(볼셰비키 카르텔)은 팔레스타인[Palestine] 땅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그들은 또한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the Bolshevik Revolution]을 일으켰습니다.--이 혁명을 위한 자금은, 아주 잘 알려진 미국의 몇몇 그룹(로스차일드, 록펠러)들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이 후, 러시아 땅에서는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한 전례가 없었던 홀로코스트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카자르계 유태인들은 900년도 넘는 세월이 흘러서야 마침내 러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탈환하게 되었으며, 기독교도들을 학살함으로써 기독교주의의 파괴도 함께 도모했습니다.--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들의 손에 죽어나간 기독교도들은 모두 1억 명이 넘었습니다.(독일인들이 죽였다고 주장되는 학살의 규모가 왠지 새 발의 피처럼 여겨지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은가요?) 더 나아가, 세계 도처에 있는 신성한 참된 유태인들은 다음 사항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 바로 그 동일 세월 동안 2천만 명도 넘는 신앙심 깊은 유태인들도, 자칭 하자르계 유태인들이라는 자들의 손아래 죽어나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의 기독교도들[the Russian Christians]은 지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볼셰비키 세력들[the atheistic Bolsheviks]을 전복시키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들은 마침내 볼셰비키 전복 계획을 완수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지난 1,000년도 넘게 지속되어온, 러시아 기독교도들[the Russian Christians]과 카자르계 시오니스트 유태인들[Khazar Zionist Jews] 간의 전쟁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볼셰비키들의 대다수는 자리를 옮겨 미국에 즉시 재정착했습니다.
1977년 후반에 처음으로 새로운, 비-볼셰비키 지배 그룹이 소련에서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무신론자들과는 달리, 사탄적인 볼셰비키들Satanic Bolsheviks을 최근 전복시킨 러시아의 새로운 최고 지배자들은 토착 러시아 기독교도들의 멤버들이다. 이 종파는 최소한 200년이나 오래 되었고, 종종 자르Czars 왕조와 상당한 관계를 가졌다.
비터 박사는 그의 청취자들에게 새로운 크레믈린 지배자들이 서방 기독교들과 같은 식으로 모든 것을 볼 것이라고 추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하나로, 그는 그들이 러시아의 최고 권력으로부터 볼셰비키들을 추방하는데 인내와 힘든 60년의 운동을 필요로 했음을 지적한다. 그 체험은 볼셰비키와 시온주의자 같은 사람들을 다룰 때 무엇이 되고, 안 되는 가에 대한 매우 단호하고 생생한 견해들을 그들에게 남겼다. 그들은 또한 어떤 종류의 급속하고 급격한 변화가 혁명을 위한 문을 연다는 것을 -- 그리고 혁명이 있을 때, 볼셰비키/시온주의 요소들이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거기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에 점진적으로, 한 번에 하나씩, 해방의 변화들을 도입하고 있다. 이만큼 왔으므로 그들은 너무 빨리 움직이면서 그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 위험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보이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1979년 초, 볼셰비키 혁명 이래 러시아로 최초의 성경의 합법적 선적이 일어났다. 그 부활절에 헨델의 메시아가 볼셰비키 혁명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 어느 먼 곳에서가 아니라 모스코바 예술 학교에서 연주되었다. 교회들이 하나씩, 소련 전역에서 문을 열고 있으며 -- 빌리 그레함 박사가 1982년 5월 모스코바 종교 회의로부터 돌아올 때 교회가 사람들로 꽉 찼다고 세계에 말했다.
러시아에서 종교에 대해 그가 본 것을 말함으로써, 빌리 그레함 박사Dr. Billy Graham는 여기 미국에서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미국 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적 볼셰비키들은 러시아를 증오하는 적으로 그리기 위해 그들 권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 그 이미지에 반하는 무엇이든 억압되었는데. 언젠가 여기 볼셰비키들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록펠러,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신크레믈린 통치세력들 간의 암투
우리는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행해졌던 볼셰비키와 록펠러 카르텔 간의 치열한 공방전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들에도 불구하고, 록펠러 그룹은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의 완전한 통제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금권을 재빨리 정치 권력으로까지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만약 록펠러 카르텔이 추구하는 바가 그들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미국은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행동 패턴은 히틀러의 독일과 비슷했던 것입니다. 볼셰비키들이 추구했던 복안은 미국을 마르크스주의적 독재체제로 몰고 가는 것이었는데, 록펠러 카르텔은 이들과는 상반된 노선을 가지고 이에 경쟁하였던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거머 쥐었던 일을 상기해 보십시오. 히틀러는 거대 산업체들의 힘을 통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거대 산업체들을 비밀리에 통제했던 것은 바로 록펠러와 연계된 세력들이었습니다. 히틀러에 의해 세워진 정부 구조는 ‘파시즘’이었고, 그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정부의 파트너로서 특권을 향유하였습니다. 바로 조합 사회주의자들[The Corporate Socialists]은 그러한 패턴을 다시 한 번 더, 보다 강화된 형태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이번엔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그들간의 연대로 형성된 ‘기업체 제국’이 너무나도 강력해져서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그리고 정부 내에 심어둔 그들의 요원들을 이용하여, 볼셰비키 세력에 반하여 그들의 독자 노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레이건 행정부는 내치 문제에 있어서 파시스트적 색채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반-트러스트 법안들[Anti-trust laws]은 효과적으로 보류될 수 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미 법무부 장관은 전면적인 기업간 인수 및 합병을 완전히 허락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행정부는 미 국민 전부를 감옥에 감금할 수도 있을 만큼의 많은 수용소들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나갔고, 이는 곧 현실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민자 통제소라는 명분을 내건 채, 점점 더 많은 감금 센터가 문을 열어 나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내 교도소들의 수용인원 초과라는 사회 문제는 거대한 감옥 시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좋은 변명거리로 작용하였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모든 시설들은 그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될 예정인 것입니다.- 강제 수용소들[Concentration Camps- FEMA].
이 록펠러 조합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반대 세력들과의 대결, 그리고 마침내 이들을 압도해 버리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면서, 록펠러 세력들은 자신들이 궁극적으로는 볼셰비키들과 시오니스트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록펠러파들은 항상 자신들의 적들의 심리적 양상을 주의깊게 연구하는 습관을 가졌었고, 바로 이러한 볼셰비키/시오니스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이들이 가진 아킬레스건--커다란 약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한 약점이란 바로 권력 자체의 속성과도 상관이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들과 시오니스트들은 고삐가 느슨해질 때면 언제나 너무 멀리 나아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이들 그룹 내부의 주도적인 인물 한 사람 조차도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수면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취를 남겨왔고, 우리가 수면에 가까이 이르면 이를수록,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자취를 추적하게 될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자신들을 파멸시켜 버리는 날이 올지언정, 수면에 보다 가까이 이르면 이르게 될수록, 우리는 계속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그러 모아야만 할 것이다.”
록펠러 카르텔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이제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오니스트들은 전쟁 행위에 관한 모든 제한들을 간단하게 무시해 버렸고, 그러한 과정에서 세상 전체로부터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볼셰비키들은 점점 더 높이 높이 올라만 갔습니다.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자칭 “큰 유태인들[Big Jews]”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비밀스럽게 사용하기 보다가는 교만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매체에서, 엔터테인먼트에서, 교육분야에서, 정부에서,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그들은 이러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 내 모든 권력적 지위에서, 유태인들은 그 구성비에 의해서 점점 더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유태 핏줄의 이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권력적 지위들은 바로 시오니스트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요직에 있는 다른 인종적 그룹의 인물들은 분명히 소수였습니다.--일본계 미국인들, 중국계 미국인들, 흑인들, 그 외의 어떤 인종 그룹이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태인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감히 다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점차적으로 반유태주의적 감정이 생겨나게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이는 물론 ‘계획된 반응’인 것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를 목도하게 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오직 자신들의 집안 거실에서나, 변두리 술집에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요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세력들은 미국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손에 넣었으며, 이미 그들은 너무 멀리 나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록펠러 카르텔은 바로 이들의 이러한 실수를 호기로 삼아 이 세력들을 괴멸시켜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미 행정부는 국내 문제에 있어서 점점 더 파시스트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강요될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메아리가 점점 더 크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과거 “유태인 문제”로 불리곤 했던, 동일 이슈가 재탄생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다나카 사카이 글에서 오바마(록펠러 카르텔)는 네오콘(볼셰비키 카르텔)이 중동지역등에서 지나치게 강공으로 나가게끔 유도하면서 오히려 네오콘의 계획들을 망치고 있다는 분석과 일치합니다.
지난 1982년 9월 17일, 전 세계는 제1차 핵전쟁의 발발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선제 핵 공격 계획을 세웠고, 치밀한 준비 끝에 전쟁 개시 날짜까지 잡았지만, 소련의 저항, 미국내 반대세력의 방해, 이에 더해 보다 결정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일급비밀들이 사전에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유포되는 바람에 결국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과 소련은 서로간에 적대국들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 두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자들(소련 : 소비에트 볼셰비키 카르텔 (주도) , 미국 : 록펠러 카르텔 (주도), 아메리칸 볼셰비키 및 시오니시트)은 서로 내통하고 있었으며, 냉전은 그저 그들끼리 만들어 내는 ‘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976년경 반-볼셰비키 세력으로 뭉친 러시아인들(신크레믈린 통치자들)은 자국의 권력 체계안에서 마침내 볼셰비키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러시아혁명(볼셰비키혁명)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탈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학기술력 및 무기체계에서 소련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채, 미국의 계획들을 사사건건 방해하게 되자, 마침내 미국은 소련에 대한 선제 핵 공격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1980년대 초반 여러 차례에 걸쳐 행해졌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 시험발사는 모두 군사용으로, 핵공격 타격지점에 관한 정보수집에 그 근본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2년 당시 핵전쟁을 감행하려 했던 세력들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연합 세력이었고, 또 다른 주요 파벌인 록펠러 카르텔은 이에 반대했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이라고 해서 신세계질서 아젠다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전세가 역전되어, 핵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그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수 밖에 없었기에 전략적인 반대를 했을 따름이었습니다. 1982년 4월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있었던 포클랜드[Falkland] 전쟁의 내막은, 사실상, 볼셰비키(영국의 대처정부 : 볼셰비키 통제하)와 록펠러 카르텔(아르헨티나는 록펠러 카르텔의 사주를 받고 대리전을 치룸)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실체는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 다툼이 아니었고, 이 섬에서 보다 남쪽, 남극 대륙 근처에 위치해 있는 남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내에 있는 전략적 군사기지의 사수(볼셰비키)와 파괴(록펠러 카르텔)간의 싸움이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이 기지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핵전쟁 개시의 카운트다운을 멈추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세력의 주요 근거지였습니다. 한편, 그 무렵 프랑스는 지스카르 데스텡 정부가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새롭게 부상한 소련내 반-볼셰비키 러시아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이 정권을 잡으면서 볼셰비키 세력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미국만을 국한해서 볼 때, 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은 미정부 내에서 정당과 무관하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당시 상황에서 볼셰비키 세력의 주축은 슐츠(레이건 정부하 국무장관, 82-89), 와인버거(국방장관, 81-87) 등이었고, 록펠러 카르텔의 경우는, 헤이그 국무장관(81-82), 이와 더불어, 과거에도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듯, 그들의 마스터마인드인 헨리 키신저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이 글의 최초 게시 당시, 닉슨을 볼셰비키 세력으로 분류한 바 있으나 이는 오류이며, 닉슨은 록펠러 카르텔에 속하지만 록펠러 카르텔 안에서 키신저와 양대 파벌을 형성하며 대립했던 인물, ‘헨리 키신저, 소련 간첩’ 참조--역자) 대체로 국방성엔 볼셰비키 세력이, 국무부엔 록펠러 세력이 강하며, 최근에 활약한 록펠러파로는 콜린 파월(국무장관, 2001-2005)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세력 간의 다툼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또 동시에 이들 모두와 러시아인들 간의 전쟁도 진행 중인 것입니다.
사실 역사적인 원인들에 따라, 록펠러 그룹과 볼셰비키들은 바로 이 민감한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서로 협동해 왔었습니다. 록펠러 제국이 발흥하게 된 기원은 약 1세기 이상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 시절 영국과 유럽에 기반을 갖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s]의 도움이 바로 그들의 모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볼셰비키파 역시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킬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로스차일드 기원의 볼세비키주의는 바로 록펠러의 도움을 등에 업고 러시아로 주입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부터 록펠러 그룹과 볼셰비키 세력은 전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서로간의 비밀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었지만, 오늘날 이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년간에 걸쳐, 미국 정부 내부는 두 개의 대립하는 세력들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갈갈이 찢겨져 있었습니다. 한 세력은 거대 석유 회사, 거대 기업들, 그리고 거대 은행들이 주축이 된 록펠러 카르텔[Rockefeller cartel]이었습니다. 다른 한 세력은 아메리칸 볼셰비키들[American Bolsheviks]이었는데, 이 세력 속에는 러시아로부터 쫓겨난 후 미국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날아든 구 소비에트 볼셰비키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오니스트들[Zionists]은 미 정부 내에서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정도에 머물렀으나, 그들의 노선만큼은 뚜렷하게 표명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국무부중심) - 닉슨, 레이건, 키신저, 헤이그 국무장관, 콜린파월, 브레진스키, 오바마, 클린턴 등
볼셰비키 카르텔(국방부중심) - 부쉬, 슐츠국무장관, 와인버거국무장, 네오콘(럼스펠드, 체니), CIA 등
금융세력에도 반기를 들고 전쟁을 확장하는 네오콘에도 반기를 들고 오히려 푸틴과 친한 트럼프는 적어도 위의 두 카르텔은 아닌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푸틴(크레믈린 통치세력), 시진핑과 같은 내셔널리스트로 분류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기출처의 내용들을 편집한 글입니다.
http://www.phoenixarchives.com/
http://blog.daum.net/truthinlight
http://c.hani.co.kr/hantoma/473427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1_3/5149
http://blog.daum.net/aicomm/15535626
http://blog.daum.net/kimjklmn/3040663
첫댓글 이런거보면 재수없어
재밋네
이런거 볼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로스차일드 저 가문 진짜 무섭고 대단한거같음......
금본위제 검색하다 요까지왔넹... 다 이해는 못하지만ㅜ 나중에도 읽어야지
흥미롭다
흥미돋는 음모론이네 약간 나치애들이 밀던 유대 볼셰비키들이 러시아를 장악했다~~ 스럽기도 하구 화폐전쟁 생각도 나구...
나중에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 여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