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 27. 오늘의 양식 : 다시 저주가 없으며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544 울어도 못하네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49 주 달려 죽은 십자가 ------------------------------------------
3. 신 앙 고 백---------- 사 도 신 경--------------------------------------------------------
4. 찬 송----------237 저 건너편 강 언덕에 ------------------------------------------
5. 기 도----------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계 22 : 3 -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7. 설 교 ---------- 다시 저주가 없으며
새 예루살렘 성에는 저주가 없다.
이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에 저주받은 세상이었다.
창세기 3: 17-18,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땅의 저주는 거두어졌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성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며 그에게 예배드리고 그의 얼굴을 뵈옵고 그와 교제할 것이다.
어린 양의 보좌 -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1) 다시 저주가 없다.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 슥 14: 11 -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저주'(詛呪)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데마'(*)는 저주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새 예루살렘에서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창 3: 14-20의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슥 14: 11의 성취이다.
* 창 3: 14-20 -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렸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저주가 없는 곳이다.
택한 종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게 된다.
2)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가운데 있다.
(1) 성도와 하나님의 연합.
(2) 삼위 하나님이 삶의 중심.
(3) 삼위 하나님의 통치하심.
특히 하나님과 어린 양이 핵심이다.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 함께 임재(臨在)하심으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된다.
* 계 21: 3-4 -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요 14: 20-21,23 -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고전 15: 27-28 -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3)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하늘의 천군 천사를 말한다.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은 세 가지이다.
Ⓐ 첫째는 하나님이며
Ⓑ 둘째는 어린 양이고,
Ⓒ 셋째는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그'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토'(*)는 단수로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고(삼위일체 되심) 있기 때문이다. (Beasley-Murray).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수신'(*)은 예배 행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모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을 예배하며 경배함을 시사한다. (Ladd, Johnson, Morris).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261 이 세상의 모든 죄를 ------------------------------------------
10. 폐 회 ---------- 주기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