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일오비(015B)의 정석원과 박정현이 [Op.4]라는 타이틀로 만났다. 10년을 넘는 막강한 인기와 실력파 뮤지션의 대명사, 그리고 작년 가을 이가희라는 이슈 메이커 가수를 만들어낸 정석원과 여가수중 몇 되지 않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만남은 앨범을 개봉하기 전부터 청자들을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했다.
어찌 보면 이번 앨범은 박정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양극화현상을 보일 수 있는 성향이 짙다. 먼저 양극화 현상의 1등 공신은 정석원일 것이다. 정석원의 다소 복잡한 사운드 메이킹이나 실험적인 측면이 박정현이라는 보컬리스트를 만났을 때, 극대화되는 결과물을 기다린 이들이라면 계속 리플레이 버튼을 누를 테지만, 온전하게 '박정현' 이라는 '가수'의 소름끼치는 보컬에 귀와 몸을 내맡기고 싶었던 이들이라면 짙은 정석원의 색깔에 묻혀있는 맛을 구미에 맞게 찾아내기란 약간의 어려움을 동반할 것이다.
1집의 '나의 하루', 'p.s I Love You', 2집의 '편지할께요', 3집의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의 곡들에서는 박정현의 보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으며, 3장의 앨범을 통해 'R&B의 디바'로 등극하기에 충분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네 번째 앨범 [Op.4]을 통해서 정석원이라는 묵직한 프로듀서와 함께 자신의 기존 모습에 다른 색깔을 덧입히고자 한다. [Op.4]란 장중한 분위기의 타이틀과 이름만으로도 관심을 끌게 하는 정석원은 그녀에게 '실험'이란 '모험'이란 두 글자의 숙제를 내준 듯 하다. 지금까지 안정된 구도 안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대중적 절대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앨범은 박정현보다는 정석원이라는 프로듀서가 '박정현'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놓을 지 촉각이 세워지는 것은 당연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에서 어쩔 수 없이 자꾸 거론하게 되는 정석원과 이 앨범의 호스티스인 박정현은 어떻게 앨범을 만들어 냈을까? 또 이들의 공조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 월드컵으로 너무나 고요해져버린 가요계에서 황금 키를 받아 쥘 것인가?
앨범의 전반부에 수록된 곡인 'Plastic Flower (상사병)'과 '꿈에'는 정석원의 치밀하면서도 다소 복잡한 사운드메이킹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첫 곡인 'Plastic Flower (상사병)'은 박정현이 아니면 이 어려운 사운드 스케이프를 가지고 있는 곡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간주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김세황의 날카로운 세션은 다소 박정현의 보컬을 잡아먹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박정현은 그 사이에서도 자신의 변화스러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음 이어지는 트랙인 '꿈에' 역시 'Plastic Flower (상사병)'과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국악기 소금을 이용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곡 안에서 변하는 몇 번의 템포는 이 곡이 박정현이 기존에 사랑을 받았던 쉽고, 편안한 발라드 스타일의 곡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곡인 일렉트로닉한 스타일의 'Puff' 또한 색다른 맛을 선사하는데, 세인트바이너리(Saintbinary)의 참여와 함께 몽환적이면서도 이펙트 한껏 머금은 박정현의 보컬은 또 한번 그녀의 기존 모습과는 다른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하는 곡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곡들이 박정현의 기존 스타일에 정석원의 역량이 더해져 변화와 실험을 가져다 준 곡이라면 다음 소개하는 곡들은 부담 없이 박정현을 만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뮤지컬적인 요소들이 혼합돼 앞의 장중한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미운오리'와 R&B/Funk의 리드미컬한 'Someone', 박정현하면 생각이 날 법한 팝 R&B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랑이 올까요', 간주 부분에 들려오는 정석원의 보컬과 가벼운 스타일의 '생활의 발견', 타이틀곡인 '꿈에'와 함께 타이틀곡으로 경합을 벌였다고 하는 '미장원에서'는 안정된 박정현의 보컬로 인해 청자들이 원할 법한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박정현의 다양하면서도 탄탄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여자친구 참 예쁘네', 아시아(Asia)의 'The Smile Has Left Your Eyes'의 리메이크곡이자 윤종신이 작사 한 '이별하러 가는 길', 록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떨쳐', 박정현이 본인의 어머니에게 전하는,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들리는 '나의 어머니' 등이 수록돼 있다.
이번 앨범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장중한 스케일로 청자들에게 짐짓 기대를 만들어놓게 한 'Plastic Flower (상사병)'과 '꿈에'를 제외하고는 뒤에 이어지는 곡들은 이전 앨범에 수록된 박정현의 수록곡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데 있다. 물론 박정현의 다양한 보컬을 확인 할 수 있는 곡들이나 전반적인 트랙에서는 "역시 박정현!"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한다. 박정현의 보컬 능력에는 예나 지금이나 가요계 최고의 디바임에는 틀림없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다양한 색깔을 과감하게 칠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앨범에 대해 폭발적이라던가 탄탄한 가창력이라는 상투적인 칭찬은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정석원의 색이 진하게 드러나는 'Plastic Flower (상사병)'이나 '꿈에' 등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은 일순간 평범한 발라드로 풀어져 변화와 실험을 예상했던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번 앨범을 통해, 정석원의 능력을 빌려 자신의 변화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름처럼 붙어 다니는 'R&B계의 디바'라는 고정된 이미지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변화스러운 옷을 입음으로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도전과 실험의 한 부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