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하는 최고의 건강 축제~! '2009 영주풍기인삼축제'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 10월, 경북 영주에서는 풍기 인삼의 알싸하고 그윽한 향내가 온 도시에서 느껴질 것이다. 9년 연속 문화관광부 지정 축제로 자리매김한 '영주풍기인삼축제'가 10월 13일(화)부터 18일(금)까지 6일간 남원천 둔치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떠난다면 더욱 유익할 경험이 될 영주풍기인삼축제는 이번에도 더욱 재미있고, 볼거리 많은 프로그램들이 추가되면서 한층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풍기인삼캐기체험> <행사장 풍경> <풍기인삼체험전시관>
'2009 영주풍기인삼축제'를 만나보기 3달 전, 풍기인삼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다.
산삼은 언제부터 재배 되었을까?
풍기인삼을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풍기인삼은 서기 734년(신라 성덕왕33년) 당현제에게 신년 하례용 선물로 산삼 200근을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짐에 따라 신라때 산삼이 유통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차츰 산삼이 선물에서 공물로 변하면서 당에서 산삼을 요구하는 횟수와 수량이 갈수록 잦아지자 농가에서는 산삼을 확보하기 위해서 논과 밭을 팔아 산삼을 사서 바쳐야하는 등 폐농현상과 폐단이 막심했다. 이를 막기위해 조선 중종 때 주세붕 선생이 산사에만 의존하였던 것을 인위적으로 재배, 생산해 그 수요를 충족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국에 산삼이 자생하는 토양과 기후를 조사한 결과 산삼이 많이 자생할 뿐만 아니라 인삼재배지로써 가장 적합한 곳이 '풍기'임을 발견하고 풍기에서 제일 처음 산삼종자를 체취하였다. 이때부터 인삼재배를 시작하여 풍기인삼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가장 우수 인삼으로 인정받고 있다.
<풍기인삼> <주세붕>
풍기인삼은 흥미로운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첫번째 설화
고려시대 전남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살던 홀아비 최모씨가 중병에 걸려 여러가지 약을 복용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때 효자 아들이 매일 모후산 바위 밑에가서 신선에게 아버지의 병이 완치되도록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깊은 산속에서 수염이 하얀 신선이 내려와 빨간 열매가 달리고 뿌리는 사람 모양과 흡사한 약초를 주며, "모후산 동북쪽 산기슭에 이와 같은 영약이 있으니 아비의 병을 치료토록 하라" 라고 말했다. 효자 아들은 너무 신비롭고 감사하여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 신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튿날, 날이 밝자 효자 아들은 모후산으로 향했다. 동북쪽 산기슭으로 헤매던 중 신기하게도 꿈에서 본 약초를 발견하게 되어 조심스럽게 뿌리를 캐고, 종자를 잘 간직해 집으로 돌아와 뿌리를 정성껏 달여 아비에게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비의 병은 씻은 듯 완치되었다.
*두번째 설화
도솔송 정상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있는데 봉우리 마다 골짜기 사이사이에는 산삼, 부추, 옻 밭이 각각 세마지기 씩 있다는 말이 오래 전 부터 전해져오고 있어 많은 이들이 약초를 캐기 위해 이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도솔밭 아랫마을의 농부 한 사람이 도솔송의 가장 큰 산삼이 풍기 장날이 되면 인간으로 변해 초립동자의 모습을 갖추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풍기 장날이 되어 농부는 동자를 따라 풍기읍내로 왔는데 점심때가 되자 동자는 어느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농부는 따라 들어가 동자의 음식값까지 지불한 것을 계기로 동행하게 되었다. 무슨 일로 자신을 따라 다녔으며, 왜 음식 값을 대신 지불했냐는 동자의 물음에 농부는 사실을 토로했다. 그러나 동자는 "나는 도솔봉에 있는 산삼밭 가운데 가장 큰 동삼인데, 지금 나와 함께 도솔봉으로 올라가 삼밭에 도착하면 내가 서 있는 밭에서 가장 큰 산삼으로 변해 땅으로 들어갈테니 나를 뽑지 말고 그 밭에 있는 다른 삼을 뽑으라" 고 말했다. 이윽고 동자가 삼으로 변해 땅으로 들어가자 이광경을 본 농부는 깜짝 놀라면서 돌연 마음이 변해 동자의 말을 버리고 큰 삼을 잡아당기니 삼 두뇌가 떨어지고 낮에 먹은 음식물들이 쏟아지며 삼밭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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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주선비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선비의신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