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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에 방심하고 있다가 모기에게 한 방 물렸고 뭉그적거리려다가 죽으면 계속 잘 텐데 하고서 이불킼을 했어요. 소피 컬러-두통-치통-요통 모두 좋아요를 확인했고, 아령 몇 번 깨작거리다가 화초에 물을 뿌린 후 수건 개기를 했어요. 빨개 갤 때마다 마음이 가지런해지는 것 같아요. 가게만 없으면 벌써 단풍놀이를 갔을 텐데 그렇다고 문 닫고 갈 처지는 아니고 만추의 과거를 소환하는 것으로 감성 파리와 쇼당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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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관방천을 경유한 뒤 만성리 다리를 건너면 용면-가마골-순창-복흥-내장산 길안데 실은 지리산 자락입니다. 갑장인 백지연이 지리산 노고단에서 자동차 CF(쉿, 레간자)를 찍었을 것이고, 석 여사의 아들들과 목숨 내놓고 간 전국 일주가운데 지리산 입산을 했던 생각도 납니다. 지금쯤 진영이 치영이는 멋진 청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다 하다 이젠 하늘 컬러나 온도 차, 바람, 땅 색깔마저 과거를 타이머시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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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일제의 잔재 속에서 산 탓인지 무턱대고 소환한 추억은 잿빛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날씨, 온도, 컬러가 모두 슬픕니다. AM9시 동네는 몸통이 굵은 느티나무가 정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단층 집 지붕은 이슬이 녹지 않아 젖어 있었고 신작로 옆으로 펼쳐진 들녘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예닐곱 무렵에 이삭을 줍거나 동네 어른들이 새끼를 꼬며 이엉을 일던 광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추수를 끝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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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콤바인이고 저것은 포클레인인가? 소년은 농사가 끝난 논두렁을 활보하며 방패연을 날렸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고무줄 새총을 들고 수렵을 다니기도 했어요. 물론 새는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딱 한 번 동생 놈이 형 몰래 쏜 새 총에 눈먼 참새가 맞아 바비큐 한 점 먹은 기억이 유일합니다. 더 오래전에는 나물 캐는 처녀처럼 벼 밑동을 들쳐 내고 ‘고누‘라는 좁쌀 만 한 알맹이를 캐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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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상 보릿고개이었을 겁니다. 근데 그 그루터기 뿌리에 붙은 알맹이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요. 암갈색 껍질 속 알맹이는 흰색 녹말로 기억합니다. 전라도에서는 끌 텅이라고 칭한 것 같기도 하고, 배추 끌텅과는 다른 말인데 ‘고누’란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벼는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쌀을 수확하고 생기는 볏단(낟가리)은 멍석이나 이엉을 엮거나 소먹이로 썼고, 탈곡 후 낟알 껍질은 왕겨로 사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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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때던 시절엔 값싼 왕겨를 정미소에서 사다가 쟁여놓는 것도 월동준비 중에 하나였습니다. 선친께서 우리 형제를 데리고 왕겨를 사러 간 날은 국밥을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기억이 내 속에 속속히 박혀있을 줄 몰라서 놀라고 있습니다. 낟가리란 것이 원래는 낟알이 붙어 있는 볏단을 낟가리, 혹은 노적이라고 합니다. 이 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군량미가 많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여수 노적봉에 낟가리처럼 짚을 덮어 속인 이야기는 제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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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도 실수로 낟가리를 태운 자의 손해 배상 규정(출 22:6)이 나오는 걸 보면, 낟가리는 이스라엘에서도 사용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동안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매년 가장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켰던 것 같습니다. 볏짚은 겨울철 소죽을 끓이는 여물로 없어서는 안 되었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 멍석, 망태 따위를 짜는데 원재료로 귀한 대접을 받았어요. 메주를 쑤어 발효 시키기 위해 매달아 놓을 때도 이 볏짚이 들어가야 좋은 곰팡이가 핀 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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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먹을 시래기도 볏짚이 필요해요.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지붕과 담장도 볏짚으로 엮었는데 지금은 곤포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얀 비닐에 둥글게 쌓여 들판에서 뒹굴고 있는 큰 원통형의 곤포는 소여물로 쓴다고 합디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 동에 10만 원 돈 한다는 것 같아요. 동짓날 쥐불놀이할 때 불 지르던 기억도, 집 나와 볏짚 속에서 밤을 새우던 생각도 납니다. 근데 있잖아요, 요새는 농사를 농부가 짓는 것이 아니라 농협에서 모판부터 수매까지 다 해준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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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0> 회입니다. "최서희 날 보고 들개라고 했지. 그래 간도라는 들판에서 김길상을 잡아주지. 니 년은 호랑이일지 모르지만 김길상은 토끼에 불과한 독립군이거든(두수)" "어찌해야 쓰카 아까운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이 나라에 해방이 오긴 오겠소(주갑)" "김두수를 용정에서 보았습니다(길상)" "중국 군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어" 두수가 임이를 식당에 데리고 왔습니다. "고향에도 갔었어?(임이)" "니 어미가 죽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어메" "자 받아 앞으로 더 김길상이를 잘 감시하라고 주는 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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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 말이 일본에 안 가겠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고?(용이)"" "홍아! 죽은 어메하고 늙은 아비 때문에 니 장래를 망치면 안 된다.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란 지 일 잘하고 처자식 아끼면서 반듯하게 살아주면 그게 자식의 도리다" "소식 들었나 임영빈 씨가 또 체포됐어" 명희가 조용하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족이라면 손을 쓸 텐데... (조용하)" "제가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라버니릏 구명해 주지 않겠다는 말인가요?(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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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무슨 일이야. 이 선생은 무슨 일이오?(용하)" "내가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도움을 줘도 내가 줄 테니(용하)" "명희 씨에 접근하지 마! 내게 멀어지지 마! 그렇다고 내게 가까이 오지도 마!(용하)" 니미럴, 어-쩌-라-고? "돌아갈까 아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영영 말하지 못해 말하는 거다(봉선)" 봉선이 상현을 찾아왔는데 먼저 온 손님이 있었네요. "혹시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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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빈손으로 왔어요. 지난번 봉순인가 하는 기생이 애인인가요?(명희)" 명희는 고민 끝에 상현을 찾아온 것인데 상현은 이미 자신은 봉건시대의 퇴물이라며 명희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니면 하룻밤 자자는 겁니까?(상현)" 울며 빗속을 뛰쳐나가는 명희가 가엾네요. 상현이 뒤늦게 명희를 찾지만 허탕이고 이것을 지켜보는 봉순도 딱하기는 매일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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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겠어요(명희)" 명희가 조용하를 찾아가 그의 품에 안깁니다. "불을 켤까요(봉순)?" "따뜻하구나. 우리 잠시만 이대로 있자(상현)" "우리가 여길 사서 이사 왔어요" 두 여자가 모두 떠나간 상현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처량합니다. "잔술 한 잔 시켜놓고 벌써 몇 번째 김치만 시켜요?돈 안받을 테니 나가요!(주모)" "자 내 술 나눠마십시다(상현)" "이동진이 아들 놈이 내게 왜 그래(준구)" "나랑 당신이 닮은 것 같아서... 그냥 술이나 한잔합시다(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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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군산입니다. "어메가 날 낳아 키웠듯 나도 이 아이를 낳아 키울 거요(봉순)" 봉순이가 왜 소리 없이 떠났는지 모르나(서희)" 1920년 훈춘 영사관입니다. 훈춘을 습격한 마적들, 두수는 길상과 함께 있는 두메를 눈여겨봅니다. "두메와 김길상이 한패란 말이지 재밌군" "고맙소 마적의 습격으로 힘들 텐데 군자금을 주셔서" "마적들이라면 돈을 노렸을 텐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차 습격을 일본인이 한 겁니다(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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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은 이번 흉계가 일본이 병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임을 알립니다. "소련의 힘을 빌립시다(두메)" "소련은 우리에게 이념을 요구할 거다. 범을 피하려다 이리를 만난 꼴이야" "내 아버지를 어떻게 알지" "강포수뿐만 아니라 네 어머니도 잘 알지(두수)" "니가 먼저 총 내려놔!" 후다닥.펵! "출생의 비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쓸모가 있겠어" "정말 제 어미니에 대해 모르십니까?(두메가 길상에게)" "큰일 났어 라우. 일본인들이 조선인들 집을 모두 불태우고 있어 라우(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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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서 이 지독한 세월이 지나갔으면 좋겠소(서희가 대청 마루에 서서)" 감나무-가을 눈 덮인 장독대 그리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봄이 왔는데 왜 이리 추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이 독립해 진정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서희 독백)" 일본군이 조선인 마을을 불태우기 시작하자 길상은 하얼빈으로 피합니다. "친일파 자식을 보고 친일파라고 하는데 듣기 싫은가 보네(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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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가방 나 싫다(영광)" 풍금 소리가 정경습니다. "백정 아들이 풍금을 쳐" "니는 종놈의 자식이니까 끼리 기리 어울리는 거 아냐?" 환국은 자신을 종놈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정이나 백정의 아들인 영광이가 놀리자 신분사회에서 갈등합니다. "니 와 그라노?(장 연학)" "어머니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라요(환국)" "무슨 일이요" "댁의 아들네미가 우리 아들 기성이를 바윗 덩이로 때렸으니 빨리 그놈아 내노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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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이가 제정신이 아닐 테니 잘 살피게(서희)" "죄송, 치료, 내가 그깟 치료비 받으려고 간 줄 아요/(두만)" "기성아! 그대로 말해줘서 고맙구나" 서희는 두만의 집으로 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분이라며 아들을 설득합니다. '기성이 아버님! 기성이 상처가 빨리 아물었으면 좋겠군요" "서방님! 이제 당신이 그곳에 남은 뜻을 확실히 알았어요. 당신의 아들 환국이가 장하지 않아요(서희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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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아! 이리 온, 아니다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잘못했다. 너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위기에 빠트리게 했어" 두만이가 나 형사에게 환국이와 서희를 일러바쳤고, 영광이는 퇴학을 시켜버렸으니 관수가 길기리 뛰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니가 암만 그래도 니그 아들은 학교는 다 다녔다" 이평이 아들 두만이가 하도 얼척없이 나대니까 아비가 찾아왔습니다. "제발 지사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 못하게 해라(김 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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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찾아왔나. 기화 언니? 언니 정신 좀 차리라고(산호주)" 봉순이가 약에 취해 자빠져 있습니다. "내 딸이야! 기생이라고 딸 못 나으란 법 있냐?(봉순)" "내가 이리 된 건 다 내 탓이야. 그 양반이 그리된 건 그 양반 탓이고. 내가 남자 복이 없는 게지(봉선)" "기생 산호수가 정석을 찾아왔습니다. "누님! 진주에는 어쩐 일이요?(강석)" 강석이가 사모하던 봉순이를 위해 이번엔 용이 아제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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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갸가 어쩌다가...(용이)" "모르겠소. 원래부터 강단이 있진 않았으니(강석)" "네가 말 못 하면 내라도 말해야지(용이)" "불쌍한 것(용이)" "이 부사 댁 서방님 아라고 들었습니다(정석)" " 봉선이를 데려와서 돌봐야겠는데 정 선생님께 알려주겠나(서희)" "지금은 저 사람은 선생인데 뭐 자랑이라고(석이의 처, 양을례)"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석이)" "석아! 나 아편 사게 돈 좀 주라" "긴 말 말고 가십니다. 마님이 오라고 했소(석이)" "아편은 안 했어야죠(석이)" 양현아! 여기 있으면 안 돼.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자(봉선)" "제발 정신 좀 차리소(정석)"
2.
새벽의 모기 한 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단지 하루의 일기처럼 보이지만 곧 기억의 심층부로 잠수하는 사색의 여정이 된다. 이불킼’으로 시작된 일상의 단편이 어느새 지리산 자락과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볏짚 냄새가 가득한 추수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 글의 서술자는 시간을 거슬러 가며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억, 농부의 손끝, 그리고 조국의 지난 세월을 한 호흡 안에서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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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과거가 엇갈리는 이 문장은, 소설 <토지> 제40권의 한 장면처럼 읽힌다. 토지 속 인물들이 격랑의 시대를 살아가며 "봄이 왔는데 왜 이리 춥냐”고 중얼대던 그 절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길상, 서희, 두수, 봉순… 그들의 이름은 더 이상 소설 속 인물만이 아니다. 글쓴이는 그들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그 시대의 고통과 현재 자신의 ‘감정의 골’을 포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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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농부가 짓는 게 아니라 농협이 짓는다”는 한 줄은, ‘노적봉의 낟가리’를 기억하는 세대와, 기억조차 outsource된 세대의 대비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그 사이에서 글쓴이는 묻는다. 우리가 들고 있는 ‘삽’은 진짜 흙을 파고 있는가, 아니면 추억만 되씹고 있는가. <토지>속 인물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방’을 기다렸듯, 이 글의 화자 또한 개인의 삶 속에서 작은 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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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한 방처럼 사소한 고통이, 문득 거대한 시대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이 글은 결국 한 인간이 ‘잊혀가는 시간’과 싸우는 방식을 보여준다. 어떤 장소나 냄새가 과거의 한 장면을 되살릴 때, 우리는 그 기억들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2025.10.27.mon.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