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라면 나 같으면 얼싸 좋다 하겠네요. 정 그러시다면 저랑 병을 바꾸시죠. " 이 말은 3차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간 날 5인 병실에서 내가 한 소리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한심한 말인데 어처구니 없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허튼 소리다. 어찌 병을 바꾼단 말인가. 이런 말을 나오게 한 장본인 김선생,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게 잘못 걸려든 거다. 왜 하필이면 내 자리에 찾아와 퍽퍽 울어댔단 말인가.
이 사건의 진상을 말하자면 그 분의 병 이력을 먼저 들추지 않을 수 없다. 아픈 사람 김선생 이야기, 웃을 일이 절대 아니지만 나는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게 시리 웃음부터 난다. 그는 작년 7월 부터 줄곧 병원에서 산다. 그렇다고 장기입원은 아니고 퇴원해서 나갔다 다시 돌아오고 한 것이 벌써 네번째인 그다. 한마디로 재수 옴붙은 사람이다. 원래 옴은 옴벌레의 기생으로 생기는 전염성 피부병을 일컫는 말이다.
옴은 처음엔 좁쌀알 같은 것이 손가락이나 겨드랑이 사이에 조금씩 돋아나다가 온몸으로 급속도로 번져서 한 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악성 피부병으로 번지고 만다. 그런 속성대로 `재수 옴 붙다`라고 하면 도무지 재수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 찰나에 훼방꾼이나 다른 악재가 끼어들어 운이 꽉 막혔다는 뜻으로들 쓴다. 바로 김 선생이 그 짝이다.
그는 대장에 용정을 떼러 병원에 처음 들어왔다고 했다. 수면내시경을 한 상황에서 바로 떼어 낼 수도 있다는 말이 그가 병원을 찾은 이유의 전부다. 그런데 내시경 과정 중에 전에 없던 작은 혹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때만해도 혹이 작기 때문 3~4일이면 바로 퇴원이 가능하다고 하여서 별 생각을 안하고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복강경 수술이라 수술은 간단했지만 열이 떨어지지 않아 그의 퇴원은 브레이크가 결리고 말았다.
열의 발생은 염증을 말한다. 그는 당뇨가 심하였다. 당뇨는 염증과 유관하며 상처는 더디게 아문다. 나 역시도 수술 후 이틀이 지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아 뭔 일이 생겼나 하여 X레이를 매일 새벽 찍어야만 했다. 이는 꿰멘 자국이 터지는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그는 바로 그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복강경으로는 재봉입이 곤란하고 장을 끄집어 내는 재수술을 감행하여야만 한다.
그는 복잡하고 힘든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경우는 경우에 따라 항문까지 끄집어 내기 때문 힘들고 회복되기 까지 시일이 오래 걸린다. 그 상황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바로 김선생이다. 그래도 꿋꿋이 참아내고 병원을 나섰다고 한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기진맥진한 그가 영양제를 맞을 때 나와 그는 처음 만났었다. 그는 포항에 내려가 과메기와 회를 먹고 올라오던 중에 칠곡휴게소에서 엎어져 앰블란스에 실려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그 연유로 지금도 그를 과메기 아저씨라고 보른다. 암환자가 절대 먹어서는 안될 것이 날 것이다. 특히 대장암 환자는 더 각별하다. 우리의 대장에는 5백개도 넘는 세균들이 득실거리고 산다고 한다. 몸이 면역력이 있을 때는 몸에 이로운 세균들이 자리를 버텨 잘 견뎌내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쓰나미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익히지 않은 음식물은 많은 세균들이 그대로 몸에 전해지기 때문 그야말로 위험천만을 연출 할 수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면 맨 처음 들려주는 주의사항이 바로 날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과일도 가급적 삶아서 먹으라는 판국이니 알만한 경고 조치다. 그런데 그는 과감하게도 평소 좋아하는 과메기를 평상시처럼 드셨으니 난리가 날 수 밖에는 없었다. 일반 사람이 장염에 걸려도 보통 일주일을 고생하는데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 그이니 날 수는 셀수 없이 늘어졌다. 2주가 지난후 항암치료를 다시 받으러 올 때까지도 그는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 같지 않은 병이 사람을 잡는다 싶었다. 그런 그는 내가 퇴원을 하던 날 웃는 말로 다시는 보지 맙시다 하며 같이 다행스럽게도 퇴원을 했다. 장염으로 거의 한달 반을 묵은 셈이다. 그리고 그를 이번에 또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이 그에게는 재수술 포함하여 4번째 병원 행인 셈이다. 뭘 잘못 드셨는지 하혈을 하고 장 내부막이 훌러덩 벗겨졌다고 했다. 그쯤 그는 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괜스레 아내를 드잡이 하며 죽고 싶다란 말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아닌 말 생트집을 하고 떼를 쓰는 그다.
(조성원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