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경주 무장봉 (624m)
억새 가득한 목장길 따라 호젓한 산길
무장봉은 경주시 암곡동에 자리하는 해발 624m의 산이다. 얼마 전 경주의 보문단지에서 집안행사가 있었는데 사진작가인 동생으로부터 최근에 각광받는 멋진 산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경주의 산이라면 내가 모르는 산이 없기에 산 이름을 물었더니 무장봉이라고 한다. 지도에는 아직 표시되지 않은 산이지만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이며 경주시에서 이정표도 잘 만들어 세운 산이라고 침을 튀기며 자랑하기에 알려지지 않은 산을 즐겨 찾는 독자들을 위해 무장봉을 찾았다.
암곡동 버스종점에서 북동쪽 계곡길을 이어가니 지난해 말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대형안내판이 먼저 눈에 띈다. 안내판을 둘러보고 승용차의 출입만이 가능한 좁은 길을 따라들자 경주국립공원 토함산지구의 '암곡탐방지원센터'에 이른다. 뒤이어 얼음이 녹아 흐르는 맑디맑은 개울을 건넌다. 예서부터 제법 너른 산길이 이어진다. 그 옛날 오리온목장으로 오르내리던 비포장 계곡길에는 어느덧 봄기운이 묻어난다.
이정표가 자리한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으로 '무장봉 5.3km, 암곡 0.4km', 오른쪽으로 '무장봉 3.1km'라 적힌 이정표가 선 이곳이 원점회귀산행의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큰길을 이어간다. 징검다리에 다슬기가 수북한 개울을 건너가자 다시 징검다리를 만나고... 이렇게 여섯 번이나 징검다리를 지나고서야 무장사지 100m를 알리는 이정표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의 개울을 건너 나무계단길을 오르면 무장사지다. 보물 제125호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와 보물 제126호 '무장사지 삼층석탑'이 자리한 이곳에서 안내판을 읽어본다.
무장사라는 이름은 태종무열왕이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비는 없어지고 비를 받쳤던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얹었던 용 모양을 새긴 비 머리만이 남아 있다. 1915년 이 주변에서 무장사 아미타조상사적비라는 비석의 조각을 발견하여 절 이름이 무장사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장사비 귀부의 머리는 용 모양인데, 두 마리의 거북이 등에 비를 받치던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비 머리에는 '아미타불ㅁㅁ' 라는 글자가 두 줄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신라 39대 소성왕(798~800 재위)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무장사에 모신 내력을 새긴 것이다. 비 조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안내판 내용과는 약간 다른 전설도 전해온다. 이 무장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 김효양이 지은 절이며, 삼국을 이미 통일한 신라에 더 이상 전쟁이 없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무기와 투구 등을 모아 이곳에 묻었다고 하여 절이름을 무장사로 지었다는 것이다.
삼층석탑은 무너진 채 깨어져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3년 일부 부재를 보충하여 다시 세웠고 현재의 높이는 4.95m다.
무장사지를 둘러보고 돌아 나온 삼거리에서 다시 동녘으로 계곡길을 이어 옛 오리온목장터에 이른다. 낡은 창고건물을 지나니 드넓은 목초지다. 그 오른쪽으로 너른 목장길이 이어진다. 지금은 비록 마른 대궁만 서걱거리지만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환상의 억새꽃밭을 이루리라.
무장산 산행은 참으로 특이하다. 광활한 억새평원을 느긋이 이어가는 목장길이며, 전설이 흩날리는 특이한 절 이름과 산이름이며... 생각해보면 무장봉 산행은 그야말로 명품산행이다. 어린아이 손을 잡은 한 가족이 오순도순 화기애애 걸어갈 행복 가득한 산이다. 친한 친구, 직장동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야 할 우정과 동료애의 산이다. 아니 어쩌면 반 삼천 년의 아득한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인문 지리를 고찰하는 역사탐방로이기도 하다.
토함산 삼거리와 하산길 삼거리를 지나 정수리에 올라선다. 수십 명 산꾼들이 한꺼번에 쉬어갈 수 있는 넓디넓은 억새밭 정수리의 한구석에 이정표가 자리한다. 때마침 아래 암곡동에 살고 있는 윤권록씨를 만난다. 시인이며 문화해설사인 윤씨는 동행한 시인들에게 무장봉의 역사와 전설을 설명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이곳에는 '무장산' 이라고 적힌 정상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쪽으로 지척지간에 자리한 664봉과 다시 그 남쪽에 자리한 동대봉산(680m) 등을 포함한 인근의 산세를 살펴보면 이 봉우리를 산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문의한 결과 현재 심의중이며 무장봉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윤권록씨의 말에 무게가 살린다.
이 부근은 나와 참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다. 남쪽 자락 황룡동 모차골은 월성 김가인 나의 육,칠대조 산소가 있어 어린 시절 매년 가을이면 벌초를 하러 오던 잊지 못할 옛고향이 아니던가.
하산은 200m를 되돌아 내린 삼서리에서 남쪽을 따른다. 100m 가서 만나는 이정표)무장봉 0.3km, 암곡 3.2km)의 방향을 따라 서북쪽으로 목장길을 이어간다. 되돌아보는 무장봉은 참으로 신비로워 보인다. 허허로운 억새밭 위로 솟은 초록색의 정수리. 어쩌면 회색 옷에 초록 모자를 쓴 서라벌의 옛 사람을 보는 듯한 환상에 빠진다.
다시 두 번의 이정표를 거듭 지나 비로소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솔숲을 지나 굴참나무, 갈참나무, 산벚나무가 어우러진 숲길과, 봄이면 흐드러지게 꽃모닥불을 지필 진달래군락지를 거친다. '암곡 1km' 이정표를 지나니 밧줄이 매진 다소 가파른 내림길을 이어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이 고장의 명물 왕산미나리를 재배하는 박여사(60세)의 비닐하우스 주점이다. 향긋한 미나리를 안주삼아 서로 권한 막걸리 잔에는 산꾼들의 정이 철철 넘쳐흐르고...
*산행길잡이
암곡 버스종점-(15분)-탐방지원센터-(5분)-등산로 삼거리-(35분)-무장사지 삼거리-(20분)-무장사지 왕복-(20분)-오리온목장 옛 건물-(40분)-무장봉 정수리-(1시간)-탐방지원센터-15분)-암곡 버스종점
무장봉 원점회귀산행의 들머리는 버스정류소와 암곡펜션을 지나 암곡동 계곡에 자리한 경주국립공원 무장봉탐방지원센터다. '무장봉 5.7km, 무장사지 2.4km'라 적힌 이정표를 지나 계곡길을 따라가면 등산로 삼거리에 이른다. 원점회귀산행의 갈림길이 이곳에서 왼쪽의 큰길을 따르면 이정표가 자리한 무장사지 삼거리를 만난다. ㅇ리곳에서 오른쪽 계곡을 건너 나무계단을 따라 100m 오른 곳에 보물 제125호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가 있다. 그 동북쪽에 보물 제126호 '무장사지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ㄷ올아온 삼거리에서 계속 큰길을 따르면 옛 오리온목장과 토함산 삼거리를 지나 통신철탑과 이정표가 자리하는 무장봉 너른 정수리에 이른다.
하산은 돌아내린 삼거리에서 남쪽을 따른다. 거의 500m 간격으로 설치된 이정표 3개를 지나고부터 목장길이 아닌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솔숲과 참나무숲을 지나면 진달래군락지가 이어지고 '무장봉 2.5km, 암곡 1km' 이정표에 이른다. 이곳부터 줄이 매진 다소 가파른 내림길을 따른다. 그 끝은 오름길에 만났던 삼거리다. 이곳에서 5분이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무장봉 원점회귀산행은 구석구석 많은 이정표가 있어(내 기억으로 16개) 초행이라도 길 찾기에 문제가 없으며 4시간쯤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교통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답게 경주로 가는 버스와 기차가 많다. 동대구역까지 가서 경주행 기차로 갈아타거나 바로 붙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타면 된다. 기차보다는 버스가 훨씬 자주 다닌다. 1시간 걸린다.
경주역이나 경주터미널에서 18번 시내버스를 타면 암곡 좀점까지 간다.
*잘 데와 먹을 데
암곡 탐방지원센터 입구의 암곡펜션(010-3706-9029)에서 단체 숙박을 할 수 있다. 대형주차장 옆에 자리한 박여사의 간이식당에서 간단한 식사와 뒤풀이가 가능하다. 향긋한 미나리가 일품이다.
무장봉 인근의 보문단지와 경주시내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많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