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 소금광산
폴란드는 우리처럼 슬픈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966년 일찍이 가톨릭교회 신앙을 받아들인 나라로서
전국민 95%의 인구가 로마가톡릭 신자라고 합니다.
이 폴란드에 있는 역사적 소금광산을 함께 탐방해 보세요.
크라쿠프 동남쪽 15Km에 위치한 이곳은 세계 12대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78년 유네스코 최초로 자연 및 문화 유산에 선정 되었다.
전통적인 인사말인 “하느님께 영광을!(God Bless You)”은 오래전부터 이 비알리츠카 소금광산 인부들이
서로 지나갈 때 쓰던 인사말이다.
비알리츠카 소금층은 180만년에서 200만년 전에 형성된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이다.
오랫동안 바다였던 이곳은 물이 증발한 후 소금(염화 칼슘)만 남았고 암염이 되기 까지 약 1만 5천 년이 걸렸다.
그 뒤 발생한 지각변동은 이 소금 층이 복잡해진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진흙과 점토로 쌓인 소금은 지하에 흐르는 물에도 씻겨 나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다.
소금 층은 서에서 동으로 약 10km정도 뻗어 나갔으며 두께는 500m에서 1.5km에 이른다.
가장 깊은 소금 층은 340m를 내려 가야 한다.
비알리츠카 소금광산은 약 5,000년이 넘게 존재해 왔다는 것은 11세기에 알게 되었다.
그 뒤 괄목 할 만한 발전이 뒤따랐으며 1996년 까지 소금을 채취 했었다.
지금은 소금 채취를 중단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14세기 현명한 카시미르 대왕은 소금에 대한 일반법을 성문화 했는데
이 것은 ‘회색의 금’을 캐는 광부들의 법과 특권을 규정한 것이기도 하다.
항상 국가 권력자들의 소유였던 소금 광산의 경영은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측근’에게 위탁하든지 임대하였다.
크라쿠프의 전성기인 야기엘로 왕조 때에는 국가 제정의 1/3이 소금무역에서 얻을 정도였다.
광부들은 소금광산에 대해 천천히 그러면서 체계적으로 알게 되었고 광산의 비밀과 부를 알게 되었다.
소금을 캐고 난 뒤 남은 공간은 나무를 세워 버티게 하였고, 안으로 흘러 들어온 물은 소금을 얻기 위해 끓였다.
700년이 넘게 존재해 오는 동안 소금 7,500만 톤을 캐내었는데
화차에 싣고 열을 세우면 적도의 1/5길이에 해당한다.
[관광시작]
그 어느 누구도 혼자서 이 소금광산에 들어 갈 수가 없다.
반드시 광부 출신이거나 광부 교육을 받은 이 곳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관광을 해야 한다.
처음 378개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64m 1단계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약 3km를 걸어 28개의 방을 이동한다.
현재 소금광산엔 소금을 제거해내서 생긴 2040개의 방이 있다.
모든 방을 연결하는 복도의 길이는 약 200Km에 달한다.
지하 1단계(64m) ~ 9단계(327m) 까지 다양한 크기와 층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금을 파내고 남은 자리가 통로가 된다.
이런 길의 총 연장길이가 300km라고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일반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곳은 지하 64m-135m(3단계)까지다.
마지막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올라온다.
내부온도는 항상 14도를 유지 한다.
공기 순환을 위해서 6단계 243m에서 콤프레셔로 통해 지하에 공기를 뿌린다.
통로는 공기 순환 때문에 바람이 세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자동으로 닫히게끔 만든 문들이 있다.
주의사항 1. 절대 성냥이나 라이터 등을 사용할 수 없다. 2. 가장 나중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처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문을 닫아야 한다. 3. 만약 파란 불빛을 보면 놀라지 마시길, 그 것은 소금을 지키는 영혼이다.
통로를 이동하다 보면 광산이 아닌 목책으로 둘러 쌓인 곳에 있음을 발견 하게 된다.
암염을 뚫고 만든 통로라면 나무가 필요 없지만 소금 층이 계속해서 이어진 것이 아니라서
일부러 굴을 뚫어서 길을 만들었다. 소금기로 인해 나무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방
가장 유명한 방문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1493년 크라카우에서 공부를 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소금광산으로 여행을 했다.
1973년 전세계가 위대한 천문학자의 탄생 500주년 기념을 할 때
비알리츠카 광부 들이 초라하고 오래된 방에 4.5m의 소금기둥으로
둥근 지구를 손에든 코페르니쿠스 조각을 세웠다.
드로즈도비체 방
높이 20m, 공간은 12,800입방 미터나 된다.
아름다운 통나무 열주가 들보를 지탱해 주고 있다.
이 열주들은 대칭적인 배열하며 위로 올라가 천장을 떠 받치고 있다.
입구 왼쪽부분의 넓은 공간이 있는 쪽엔 길고 넓은 통나무 열주를 세워 암벽을 지탱해주고 있다.
통나무 벽이 있는 곳엔 두 개의 그림 판 같은 크리스탈 소금 판이 있으며 그 곳엔 옛날 광부들의 노래가 적혀 있다.
첫 소절 끝은 광부들의 인사인 “God bless! (하느님께 영광을)”이 새겨 있다.
이 것은 작업하는데 하느님의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그 것은 광산 운영자와 선임자들이 광산 속에선 광부들에게 헬멧을 벗고 경의를 표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반대편 벽에는 두 개의 다른 기념판이 있는데
거기엔 6백년 전 광부들과 크라카우 야기엘로 대학교와의 관계를 기록해 놓았다.
카시미르 대왕이 대학교를 창립 했을 때 교수들과 학장들의 급료를 이 소금광산 세금으로 지불 했다.
두 조각상은 열심히 일했던 광부와 목수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기에 역사적인 소금광산이 지금 까지 남아 있게 된 것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
소금을 캐던 광부들의 모습,,,
소금만 파느라고 정신이 없는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조각을 하고 있다
놀라운것은 운반용 말이 이 소금 지하동굴에 있었다는 것이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지하에서 소금덩어리가 올라오는 장치이다
소금덩어리는 보통 한개의 무게가 300kg정도라고 한다
소금으로 만든어진 성당 중앙 제대의 모습..
왼쪽 높이 십자가가 보인다
지하 110m에서 만나는 커다란 소금성당,
가다가 소금 예수님을 만난다
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어라,,,하신 예수님께서
빛이 없는 이곳에서 소금이 되셨다.....
우린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것일까?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는 아주 작은 불빛하나도 사물을 비춰주지만,
햇볕이 떠오르면, 작은 불빛은 보이지도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 작은 불빛으로라도 살아지기를,,,
태양이 떠오르기전에 작은 희망의 불빛이라도 비춰주고,
태양이 떠오르면, 조용히 존재없이 사라지는 그런 작은 등불이라도 되어지는 삶이기를,,,
성녀 킹가의 성당
킹가 공주의 성당을 처음 접하는 곳은 커다란 발코니가 있는 지점이다.
그 곳에서 발아래 있는 웅장한 모습의 성당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중반 까지 지은 이 곳은 바닥과 천정 그리고 벽에 있는 조각 등 모든 것들이
수작업을 통해 소금으로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길이가 54m, 폭은 평균 17m, 높이는 10~12m이다.
약 2만2천 톤의 소금을 제거해서 생긴 공간에 만들었다.
바닥은 지상에서 101m 아래에 있다.
처음엔 다른 수백 개의 방들과 마찬 가지로 빈 공간 이었으나 광산 책임자가 1895년 성당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맨 처음 만든 소금 조각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광부 '요셉 마르코브스키' 였다.
그 중에서 ‘최후의 만찬’은 최고의 걸작으로 ‘안톤 비로데크’가 1935년에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이 조각의 두께는 20cm밖에 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면 전체의 아름다운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광산 기술학교를 졸업한 “이그나시 마르코브스키”라는 "토마스 마르코브스키"의 손자는 소금광산에 총책임자로
10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으로 1978년 비알리츠카 소금 광산이 UNESCO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곳을 결혼식 장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음악 연주회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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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만든 제대의 모습
킹가공주의 모습
1,224년에 태어나 1,292년에 죽은 킹가공주는 본래 헝가리의 공주이다
폴란드의 왕에게 시집와서 왕이 죽은후에 폴란드의 여왕이 되었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 빈민들을 돕고, 나중에는 왕위를 버리고 수도원에 귀의해 수도자로 살았던 사람이다
뒤에 로마교황청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소금광산도 이 킹가공주에 의해 시작되게 된다,
조각은 아마도 광산의 초기에 캐낸 소금을 킹가공주에게 바치는 모습이다.
헝가리의 공주로 태어나 빈민굴에서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마르기트 공주처럼,,,
킹가공주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공주이다.
모두가 소금으로 이루어진 성당과 벽면의 조각품
요셉성인과 아기 예수님을 안고 나귀에 앉아 계신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지하 깊숙이에서 목숨을 걸고 소금을 캐내야했던 광부들이 의지할곳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조각품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성당을 만드느라 파낸 소금만해도 2만톤이라고 한다,,
소금 파내고, 성당을 만들고,,,
우리에게 친숙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도 만들었다.
교황님은 살아 생전 보지못했다고 한다.
지하 130m에 있는 식당의 벽면 조각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작은 성당이 있다.
이 작은 성당은 소금 몇천톤을 파내서 만들었을까?
출구- 광부들이 이용하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직상승하며 나온다.
또 다른 이와 같은 엘리베에터도 있다.
지하 150m쯤 되는 곳에서 엘리베이터로 순식간에 지상으로 올라온다
올라오니 공원의 모습이 보인다.
지하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쉼터였을까?
소금광산 관광을 마치며 트램을 타고....
750년 크라카우의 역사 이야기를 그린 벽화의 길을 따라..
그 중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이 보이는 도로 벽화도 있었다.
죽음과 맞서며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
그러나 그처럼 말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광산입니다
돈을 벌기위해 소금을 캐내야 했지만,
소금을 캐내면서 만들어진 공간에 저런 조각을 해내고,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낸 모습이 감동스럽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먹거리만을 찾는것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되어지는 삶으로 살아지기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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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정말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금으로 이런 예술품도 나오는군요. 귀한자료 잘 보았습니다.
정말대단하네요
소금으로지어진성당꼭함가보구싶어요
비록갈수없을지라도이렇게라도볼수있게해주셔서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