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포근한 날씨에 하늘도 청명하지만
형형색색의 단풍잎들을 떨구어 낸 나목들은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스포츠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광저우아시안게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가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그들이 흘린 땀과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특히 어제의 여자축구, 비록 세계 최강이라는 북한에 3대 1로 지기는 하였지만
120분이라는 긴 시간 최선을 다해 뛰는 우리의 여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감동과 찬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경기에서는 졌지만 개개인의 선수들이 자신에게는 이긴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중진공 동기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 초 중진공에서 계약직(현장지원전문가)으로 함께 일하였던 4명이
올해 초부터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임 시작하자마자 한명이 해외 나가는 바람에 현재는 3명이 모이지만
가끔씩 메일로 주고받는 안부로도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동기 4명이 각각 출신도, 하는 일도, 성격도 다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인연인 것 같습니다.
점시식사로 시작된 모임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마치고
귀가를 위해 두 대의 택시를 불렀습니다.
거리가 더 먼 제가 먼저 온 택시를 탔는데
오랜만에 택시기사분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에는 택시를 타면 라디오뉴스에 나오는 기사를 주제로,
살아가는 얘기, 요즘 이슈가 되는 얘기,
기사분의 관심사에 대한 승객의 생각을 묻는 질문과 답으로
기사분과 대화하다보면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곤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사분과의 대화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주관이 강하게 들어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나 관심사를 가장 현실적으로 들을 수 있는
택시기사분과의 대화가 줄어든 것이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화가 줄어든 것은
택시업계가 불황에 직면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제가 신입사원으로 구미에 첫발을 디뎠을 때에는
개인택시가 아닌 영업용택시기사로 일을 하려해도
3~400만원의 프리미엄을 내야한다고 할 정도로 구미에서 택시는 성업이었습니다.
제 한달 월급이 30만원이었을 때니 엄청난거지요.
당시만 해도 시내에서 택시를 타면 신평, 비산, 공단, 인동까지
방향이 거의 일직선상에서 합승이 가능하던 때여서
운수좋은 날은 4명이 합승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벌이가 대단하였지요.
그러나 승용차 이용자가 급증하고
버스 노선이 개선되고 환승요금 무료 등 대중교통이 편리해졌을 뿐 아니라
체감하는 택시요금이 상당히 비싸다고 느껴지면서 이용객이 급감하여
택시기사분들은 쥐꼬리 고정급에다가
사납금 걱정을 해야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택시승강장마다 늘어선 택시들을 보면 교통에 지장을 주어 짜증이 나다가도
중노동에도 벌이가 시원챦은 현실을 생각하면 안스러워지기도 합니다.
택시기사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 한가지.
목적지가 다르면 택시기사분이 번거롭고 요금이 적을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두대, 세대의 택시를 불러 각자 타고 귀가하는데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완전히 반대방향이 아니고 둘러가는 길 정도라면
한대에 같이 타고 순차적으로 내려드리는 것이 벌이에 도움이 되고 좋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택시기사분 편의를 위해 각자 택시를 불렀는데
앞으로는 한대로 마지막 집앞에서 헤어지는 시간까지 일행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집 앞에 도착하여
요금이 6,200원 나왔기에 만원을 드렸더니
지폐 3장과 동전 네개를 주시기에 확인도 않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와 지갑에 지폐를 넣기 위해 꺼내보니
5천원짜리가 끼어서 거스름돈으로 3,800원이 아닌 7,800원을 받았더군요.
색깔은 다르지만 크기가 같으니
어두운데서 돈을 지불하다가 택시기사분이 잘못 주신거지요.
바로 택시회사로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이 기사분께 제 연락처를 전해주라고 하였더니
안내전화를 받으신 분이 이런 전화는 처음 받는다며 고마워하시는데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몇분 지나 기사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큰길로 나가 4천원을 돌려드렸습니다.
기사분의 고맙다는 말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기사분의 오늘 남은 일과가 이 일로 즐거움이 지속되리라 믿고 싶었고
저 자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의 손과 발이 되어 주시는 우리 택시기사분들, 힘 내시고
힘들더라도 웃으며 우리의 손과 발, 귀와 입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며
모셔온 시 '장작불'의 내용처럼
'여러 몸을 맞대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임을 모두가 인식하였으면 합니다.
장작불(모셔온 글)===============================================
우리는 장작불 같은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거야
몇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거야
-----노동시인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 중에서
백무산의 이 시에 백창우가 국악풍으로 작곡을 하고
김용우, 손병휘가 각각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