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디시 인사이드 밀리터리 내무반 갤러리
펌이라서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오체도;
왜가 그린 조선수군
조선역해전도라오. 역사스폐셜에 공개되었던 것인데, 지금 보니 놀랄 노자의 위력을 보여주는 그림이란 걸 세삼 느끼게 되오. 동경에 화방에서 보유하고 있던 것이며, 깃발과 전투의 치열함등을 보면 '명량해전'을 그린 것임에 매우 유력하다 하오. 왜군이 바라본 조선 수군. 대략 스크롤 압박 시작이오;(출저는 ㅇㄹㅇㄹ님)
`` 전체 그림이오. 전체적인 구도는 왜군의 세키부네가 조선의 판옥선 한 척을 향해 달라 붙은 모습 되겠소. 대략 명량에선 안위의 판옥선이었소? 대략 이런 꼴 비슷한 꼴이 났었다오.
왜군 전선, 크기로 보아 세키부네 정도로 보이오만 그 뒤에 고바야와 조선군 협선이 사투를 벌이고 그 뒤에 성 같이 큰 것이 판옥전선으로 보이는구랴. 대략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분간이 잘 안되더이다.
달라 붙는 왜군 고바야와 세키부네를 막기 위해서 활을 쏘는 습사수들의 모습이 몇몇 보이는구랴. 왠지 필사적인 느낌이 드오.
거대한 판옥선과 그에 달려드는 세키부네의 모습, 이쯤되면 조선군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기 시작함을 느낄 것이오.
판옥선 위에 옹기종기 모인 조선수군의 확대된 모습. 오, 충격! 사극은 물론이요, 심지어 민족기록화라는 곳에서도 웨이터 드레스(-_- 포졸복)를 입고 갑옷 입은 왜군들과 싸우던 그들이 왜군들의 눈에는 두정갑과 간주형 투구등으로 모두가 완전무장한 조선수군으로 그려져지고 있소. 신기전을 쏘기 위해 시위를 당긴 푸른색 두정갑주를 입은 습사수가 인상적이오.
천자총통을 쏠 준비를 하는 조선수군. 우리가 아는 조선수군의 포대와는 꽤나 모습이 다르구랴. 원주형 투구가 눈에 들어오오. 이 그림에서 첨주형투구는 발견되지 않는다오. 이미 이 시기부터 간주형투구가 월등히 많이 쓰였음을 보여주는 듯 하오. 정공청 장군의 유품 투구의 형상이 저기 저 투구들과 매우 흡사하오.
붉은색 통을 던질 준비를 하는 붉은갑주를 입은 조선수병. 대략 저 것의 정체는 곧 밝혀지오. 벙거지모를 쓴 조선군 병사 발견! 그런데 두정갑을 입고 있소. 대략 절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벙거지모 포졸이 아니오.
조선수군 판옥선의 화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무기들 중 하나. 수노사수들이 활쏠 준비를 하고 있소. 수노기 - 수노궁은 위에 보이는 네모난 상자가 바로 탄창이고 계속해서 활을 발사할 수 있는 연사무기라오.
붉은 상자의 정체는 질려포통이었던 듯 하오. 질려포통은 일종의 수류탄과 같은 것이며, 왜군에 비해 우수한 화약무기를 다량 보유했던 조선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소. 또 놀라운 사실은 왜란 당시에는 그 수가 거의 적었으리라 믿어지던 팽배수들이 이 그림에선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오. 원방패는 물론이며, 명나라로부터 당시에 전래된 등패역시 한점 보이오. 환도뿐만 아니라 중국식의 검역시 사용하고 있소.
왜군 진영- 뎃포 아시가루들이 적을 향해 한명은 겨누고 한명은 열심히 화약 쑤셔 놓고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잘 살렸다고 생각하오.
공성 병기? 잘은 모르겠으나 방패를 든 조선수군을 향해서 찌르는 듯한 모습이오. 조선수군 전선을 기어오르고 뒤에서 조선수군들은 방패등을 들고 대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오.
활을 쏘며 지원하는 왜군 궁수들. 불면증 이순신에선 왜군 장거리 무기는 조총병만 나오는데, 실제론 이렇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오.
조선 수군 배를 향해 올라라? 화살이 빗발치는 가운데 두 왜군이 밧줄인지 뭔가를 잡아 당기는 모습
적 배에 오른 도세이 구소쿠를 입은 꽤나 잘 나가는 젊은 사무라이가 조선수군 을 향해 창을 쭉 뻗고 있소. 단병법전에 약한 조선군인데 걱정이 되는구랴.
배에 오른 아시가루. 대비하고 있는 팽배수들의 표정이 인상 깊소. 젊은 팽배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구랴.
판옥선 위의 조선수군들. 대부분이 두정갑으로 중무장하고 있소. 장교와 군졸의 식별은 힘들구랴.
사조구나 장병검 같은 창들도 몇점 보이는 듯 하오.
휘날리는 조선군의 깃발. '이?' 전주 이씨 할때 그 이자? 그렇다면 저 함선이 설마 충무공 이순신의 통제상선?;
왜검을 빼들고 갑판위로 올라와 달려드는 왜군과 그에 응전하는 팽배수의 모습에서 강렬한 포쓰가 풍기오.
정신 없이 싸우는 판옥선 위의 조선수군. 올라온 줄사다리를 치우느라 허겁지겁, 갈고리를 치우느라 바쁘고 정말 생동감 있구랴.
맹선? 아니면 협선? 이런 함선에 탑승한 수군들도 모두 완전무장하고 있소. 왜군이 바라본 조선수군은 이런 모습이었던 듯 하오.
왜란 당시의 싸움을 그린 것이 명확하다는 조선역 해전도의 전투모습에서 소햏은 솔직히 의외로 놀랐다오. 조선군 대부분이 갑옷을 입었음을 상상했으나, 저런 식으로 간주형투구가 이미 저 시대에 대량으로 쓰이고 대부분이 두정갑을 입고 싸울줄은 전혀 몰랐다오. 저것이 명량해전 당시의 모습이라면 조선수군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인데도 저 정도 장비를 하고 있다면...
지금의 불멸의 이순신의 수군들은 도대체 뭐지...
첫댓글 저게 진짜일지 아니면 과장일지는 모르는 일이죠. 사실 명량해전 같은 경우는 왜소한 조선 수군에게 강대한(하다고 믿었던) 왜 수군이 패배한 사건이니, 자신들을 위해서도 '사실 조선수군은 이렇게 강력한 군대였다. 진게 당연하다'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설마 쪽바리들은 이미 몇백년전부터 왜곡을 시작했었다는 것인가?..ㅎㄷㄷㄷ
참으로 묘한 논리인데, 통상 님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긴 전쟁에서는 적을 과대포장하여 자신의 대단함을 강조하고 진 전쟁에서는 적을 깎아내려 사실 별거 아닌데 재수가 없어서 졌다, 이렇게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 보통 상식이죠.
이순신의 대한 신격화가 좋은예가되겠습니다(뭐 신격화시킬만큼 뛰어난 장군이긴 하지만)
신격화가 아니라, 이순신은 적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세계역사상 몇 안되는 명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역사상 수많은 명장이 있지만 적에게 존경 받는 장수가 누가 있지요? 을지문덕, 강감찬, 계백, 권율같은 이들이 적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이름 있는 명장들 가운데 적에 의해 신격화된 이는 이순신과 롬멜뿐입니다. 쥬코프, 만슈타인같은 이들이 적에게 존경을 받았었는지? 존경은 고사하고 적개심만 불러왔죠.
어떻게 해서 조선 수군이 왜소해지게 되고, 왜 수군이 강대해 지게 되는 걸까요...사실상 해전에서 이순신은 연전연승하였습니다. 그건 사실이고, 강력한 군대가 맞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왜군을 강력한 군대라고 과장하는 경향이 더 있습니다. 조총으로 연사를 하지 않나.(.. 연발총도 아니고; ) 왜군은 조총으로 완전 무장하지 않나; (왜군도 활을 씁니다. 그리고, 왜군의 조총 보급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 그리고, 초전에 패배했다고 조선의 군사력이 약하다고 비하하는 경향에서 뭔;.. 조선이 조총때문에 놀라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 .. 다소 좀; 조선도 조총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흐음 조총의 보급률을 둘째치고 당시 일본은 동시대에 가장많은 사냥용총을 소유한건 맞을텐데요 그리고 일본에선 조총도 류파를 나눌만큼 조선보다는 조총이 발전했습니다 조총에 대한건 결코 과장이 아니죠(물론 활도 자은님 말씀대로 사용했습니다만 사극에서 일본하면 조총이 떠오른건 당연하죠 마치 로마시대애들은 모두 빨간 망토를 두른것과 같이) 또 일본은 100여년의 전국시대동안 싸움으로 단련된 군대였습니다 게다가 그 전술은 조선군이 상대해오던 여진과는 다른 군대였습니다
물론 정기룡 장군과같이 북쪽에서 단련되고 단련된 조선군에의해 쳐발리긴 합니다만 적어도 조정의 인식은 남쪽은 그냥 시끄러운 왜구들이나 출몰하는곳이나 생각했지 북쪽만큼 위험을 덜느꼈다고 봅니다 그래서 초전에 개박살이 난거죠 전쟁은 병력의 배치도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기때문에 개전초에서부터 평양까지 약 9개월동안은 일본군의 승리행진이 이어질수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은 꽤 인정받은걸로 알고있습니다 만슈타인은 아마 20세기 최고의 장군이란 극찬까지 받은걸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혼쭐이난 조선은 일본때문에 삼수병형태로 전환하는데 북쪽에서 내려온 후금군에게 개털렸다는거(이괄의난도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만)하여튼 운이 지지리도 없어요 ㅡㅡ
임란당시 조총병 비율은 다치바나군 사례는 1153 병졸 중에 기수 72, 총졸 350, 궁졸 91, 창졸 640입니다. 무사를 포함한 1365명 중에 350, 무사와 비전투원을 포함한 총병력 2607명 중에 350명.. 입니다. 계산해 보시길;
제가 말하고 싶은건 일본군이 모두 조총을 가졌다는게 아닙니다 자은님께서 언급하셨던 다치바나군은 제기억이 맞다면 큐슈 이부근에서 시마즈랑 싸우던 오토모 가문일텐데 조총이란게 당시 첨단무기여서 많은수를 가지길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마즈 가문과 오다가는 많은량의 조총을 집단적으로 사용운용한사례가 있습니다 조선의전장에서 어느정도는 위력을 발휘했다는 애깁니다 그리고 저는 동시대에 군용총이라고 하지않고 사냥용총을 말하는겁니다 (이거쓰면서 내가 뭔말을 하려는건지 모르겠네 ㅡㅡ)
하여튼 결론은 자은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조총의전술 당시 조선군에게(조총이란게 원래 조선에 먼저 전래되었습니다만) 충분히 위협이 될수있다는겁니다
마지막으로 공부좀 더해야겠네요 ㅡㅡ
그런데...아마도 그렇게 과장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좀 모자른 면이... 조선군이 단순한 복장인 그 헐렁헐렁 군복을 18~19세기에만 사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고려시대때에도 모두 저런 두정갑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저때도 쓰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군은 갑옷을 입게되면 물에 빠지면 익사하기 쉽상입니다 아마 제생각에는 조선수군은 갑옷을 걸치지 않는게 더 싸움에 도움이 될것같군요 실제로 갑옷을 입기보다는 안입었다는것으로도 알고있고요
수군이 물에 빠져 익사하기 때문에 갑옷을 입지 않는 다는 생각은 좀 이상한 듯 합니다. 이미, 물에 빠지는 상황이라면 수군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함선이 박살났다는 의미니;) .. 따라서, 그걸 고려해서 싸움을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실제로 갑옷을 입었다는 자료는 실록을 비롯해서 여러곳에 나와 있습니다.;
조선 수군이 익사하기 때문에 갑옷을 입지 않는다라는 기록도 있습니까? Ihsz님이 수군이 물에 빠진다고 다 익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말인데, 조선 수군의 기록-조방장 김완은 정유년 7월 해전에서 갑옷 입고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에서도 갑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서 살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선 수군의 갑옷이 통짜 철갑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배가 침몰하는 것을 기준으로 수군이 철갑을 입지 않는 다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말하고 싶은거지. 거기서 인명경시로 나가자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배에서는 기동력이 별로 필요없기 때문에 육군과는 달리 갑옷을 많이 입었다고 보여 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조선 후반에 쓰인 (갑옷이라고도 할수 없는)포졸복을 일제가 식민시대때 '니들은 붕당정치+나태한 정치+..... 등등으로 인해서 군비투자 제로로 원래부터 저런 포졸복만 입었다..' 라는 왜곡을 한게 아닐지....하는 생각입니다
저 수노...기관총같군요...엣날에 어느 다큐에서 그리스에서 저거랑 비슷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기억....
저거 연사형 노?는 스펀지에 나왔고 그리스화약이었나?
저는 그리스 화약이라고 알고있었는데 그리스의 불인가요 ㅡㅡ?
조선군은 갑옷을 안 입었다, 라는 것은 엉터리 사극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잘못된 역사 지식을 주입하고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증명입니다. 갑옷 대신 삼베로 된 군포를 입는 것은 철포가 대량으로 수입, 제조되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입니다. 물론 갑옷은 조선내내 사용됩니다. 사극에서 안 입는 것은 80년대 조선왕조500년 촬영때 제작비 아낀다고 그랬던 것이 지금까지 당연한 것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포졸복이 군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제말이 그말인것
김경진님의 임진왜란 책과 홈페이지 워포그에서 설정 자료들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나라 수군의 무시무시한 중무장에대해 잘 알수 있습니다. 땅에서 열심히 뛰어야하는 보병보다 배위에서 편하게 서있기만하면 되는 수졸들이 오히려 중무장 하는 경향이 강했구요. 특히 조선 수군은 사격전을 중시 하기에 갑판위의 대부분의 병사들이 눈먼 화살정도는 막을수 있는 갑옷을 입었다고 보는게 좋을듯 합니다. 천으로된 옷입고 삼지창 든 비실비실한 조선수군은 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