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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 동행하던 여성 여행자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마리아와 요셉은 그들 사이에 처음으로 태어난 아기의 부모가 되었다. 이들은 이 아들에게 여호수아(예수) 벤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예수는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지적이지만 호기심이 많은 탐구적인 아이였다. 성공한 목수이자 도급업자인 요셉은 자라나는 가족(8자녀)을 위해 비석은 물론이고, 여행, 음악 교습, 악기와 같은 특별한 것들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헌신적인 부모로서 넉넉한 환경과 충분한 학업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예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집안의 가축 보살피기, 치즈 만들기, 바구니 엮기, 꽃과 식물 가꾸기를 어머니로부터 배워 도왔다. 세 번째 언어인 헤브라이어를 배울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아버지에게서 두 가지 언어의 읽고 쓰기를 배웠다. 예수는 자연을 탐구하기를 좋아했고, 아버지와 함께 가까운 도보 여행을 즐겼다. 요셉은 또 예수에게 목수 일을 가르쳤고, 집이 있는 이곳 지역의 목수 작업장은 예수에게 대상을 따라 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많이 주었다. 요셉은 때때로 출장여행에 예수를 동반하면서,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과 인간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예수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서도 배웠는데, 한 삼촌에게서는 농사를, 다른 삼촌에게서는 고기잡이를 배웠다.
예수는 유대교 회당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의 첫 예루살렘 유월절 축전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의 교화와 하느님의 계시를 위한 지상 임무를 수행하도록 자신이 운명지어졌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유월절 안식일 전날, 예수의 마음은 영적 환상으로 넘쳐흘렀고, 그의 인간 마음은 영적으로 눈멀고 도덕적으로 무지한 군중에 대한 깊은 애정의 동정심으로 가득 찼다. 그날 밤, 그의 땅에서의 삶에서 최초로, 임마누엘이 보낸 사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 이제 네가 너의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이다.”
예수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엄격한 시험으로 사춘기의 혼돈과 적응 문제를 통과했던 젊은이는 일찍이 없었다. 그의 부모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그의 어머니를 낙담시켰다.
아버지의 일을 하려는 계획으로 살아가면서 예수는 유대교 회당 선생들 아래서의 상급반 교육과 자신의 어린 남매의 가정 교육을 병행했다. 요셉이 건축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망하여 이 나사렛의 가정의 모든 일상생활과 계획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의 미래는 아주 밝아 보였다.
겨우 열네 살이었던 예수는 임신 중인 어머니와 한 살에서 열 살에 이르는 형제들을 부양해야 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일솜씨가 뛰어났다 하더라도 14세 목수의 수입은 9명의 형제와 태어나지 않은 동생을 부양하기 어려웠다. 아버지 요셉이 마련했던 땅들이 다 팔리자 이들은 서서히 궁핍해졌다. 경제적 문제만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21세가 되기 전, 예수는 혼인 제의를 거절하고, 정치에 관여되는 것을 피함으로써 지역의 다수에게서 반감을 샀으며, 가장 어린 동생 아모스가 죽자 다시 한번 죽음의 아픔에 맞닥뜨렸다.
예수는 형제들에게 아버지이자 자상한 형이었으며, 끈기있게 동생들을 보살피고 성장을 도왔다. 아버지 요셉이 했던 대로 예수도 동생들이 13세가 되면 처음으로 그들을 사원에서의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보내주고, 동생들의 직업 선택을 돕고, 때가 되면 혼인 승낙도 해주었다. 예수는 여성들을 가르치지 않고 학교도 보내지 않았던 시대에, 여동생들의 교육까지도 돌보았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사를 돌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어려운 과업이었고, 특히 유다는 가장 어려운 십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집을 떠나 도망치기도 했고, 한때는 체포되기까지 했다. 예수에게는 세속의 부모들이 당면하는 모든 문제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였다.
드디어 26세가 된 예수는, 12세의 막내 동생 루스를 비롯한 가족의 모든 살림살이가 안정되자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예수는 열심히 일했고, 가족의 오래된 숙원인 목공소를 운영할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다. 나사렛을 떠나기 전 예수는 목공소 운영을 요셉의 차남인 야고보에게 넘겨주었다. 이때부터 야고보는 요셉 가족의 대표이자 보호자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가족의 모든 경제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예수는 세속적 가족의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그의 시간이 올 때” 까지 매달 돈을 보내주는 약속을 지켰다.
기원후 21년 1월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예수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조용히 가족을 떠났다. 예수는 잠시 갈릴리 바다 옆의 목공소에서 아버지의 친구 세베데를 도와 그의 아들 야고보, 요한, 다윗과 함께 배를 만들었다. 예수는 그동안의 소득을 세베데에게 넘겨주며, 자신은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여행을 해야 하니 매달 가족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로서 예수는 가족을 계속 부양할 수 있었다.
예수가 인도에서 온 부유한 사업가의 통역 겸 17세 아들의 가정교사로서 2년간 로마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은 세베데만이 알고 있었다. 이 2년간 여행의 특징은 예수의 개인적 봉사 업무였다. 그는 모든 인종과 계급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육신의 삶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만나게 된 모든 사람마다 삶을 풍부하게 하고 더욱 가치있게 할 만한 무엇인가를 말해주거나 어떤 일을 해주었다.
로마에서 돌아온 예수는 그의 가족 개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주 자연스럽지만 차츰 어딘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 대규모 캐러밴의 지도자가 격심한 병에 걸리자 여행기회가 또 찾아왔다.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던 예수는 1년 이상 소요될 임무에 자원했다. 이 여행은 인간으로 나타나 하느님의 삶을 시작한 존재, 하느님으로 나타나 인간으로서의 땅의 일생을 완수할 준비를 하고있는 존재에게 일종의 과도기였다. 그의 인간 마음과 그의 내재하는 조절자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중대한 진전이 일어났고, 그의 개별 존재성은 이 세상을 향한 태도에 커다란 변화를 준비하게 되었다.
캐러밴의 위치에 따라 그는 1년 동안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을 홀로 떠돌아다녔다. 예수는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인간 존재의 환경에 반응하는지를 연구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만나고, 돌보고, 배우면서 보냈다. 예수가 헤르몬 산의 기슭에서 6주 동안 하느님과 함께 혼자 살았던 것은 바로 이 기간 동안이었다.
예수는 일주일에 두 번, 산까지의 중간쯤에 있는 지정 장소에 한 소년이 날라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인간 존재 혼자라는 실체와의 마지막 싸움을 맞았다. 예수는 자신 안에 살며 자신을 인도하는 조절자와 함께 힘든 시험을 받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마음-이해하기와 개인본성-조절이라는 그의 인간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곳의 머무름이 끝나갈 때 예수는 사람의 아들, 인간으로서 그의 사타니아 적들과 회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아버지에게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루시퍼를 대표하는 사탄과 반역의 칼리가스티아는 예수에게 확실하게 보일 수 있도록 나타났다. 이들의 많은 제의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만 답했다. “나의 천원天元 아버지의 뜻이 승리하기를. 그리고 너, 나의 반역하는 아들아, 옛적부터 계신 이가 너에게 내린 신성한 심판에 따라 -나는 너의 창조자, 아버지이다- 나는 정당하게 너를 엄격하게 심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자비를 너는 이미 경멸하였다. 나는 너를 더 높은 우주 심판관들의 판결에 위임하겠다.”
헤르몬 산 자연의 고요함 속에 네바돈의 미카엘(예수)은 자신의 우주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없는 통치권을 쟁취했다. 그는 창조자 아들로서 정해진 임무를 완수했고, 사타니아의 루시퍼 반란과 유란시아에서의 칼리가스키아의 분리는 사실상 해결되었다. 그는 자신의 우주의 통치권을 획득하기 위해 그에게 요구된 마지막 값을 지불한 셈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그는 소년이 음식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고 이렇게 말했다. “휴식 기간이 끝났다. 나는 내 아버지 일로 돌아가야 한다.”
가버나움으로 돌아온 예수는, “나의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연장을 내려놓는 날이 되기까지 다시 세베데의 조선소에서 일했다. 예수는 곧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 앞에 자신을 나타냈다. 그는 모든 문제들에서 영으로서 자기 정체성과 그리고 마음을 정복하였으며, 인간의 진화 상승의 정점에 도달한 영역의 인간이었다. 완전한 동조와 충만한 교통이 예수의 인간 마음과 내주하는 영 조절사 사이에 확립되었다.
당신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조절자와 예수의 조절자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미카엘의 특별 임무가 준비될 때 육신화된 마키벤타 멜기세덱에게 내주되었었던 조절자가 그에게 내재되었다는 점이다.
예수에 대한 세례는 죄의 회개나 고백이 아니라, 낙원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려는 그의 성결 예식이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위해 두 손을 예수 위에 내리자 조절자는 예수의 완전무결해진 인간 혼에서 잠시 떠났다가 곧이어 개별 존재화된 조절자로서 낙원 아버지로부터 되돌아왔다. 오직 예수만이 자신에게 이미 있었던 신성한 영이 개별 존재의 형태로 그에게 돌아오려고 하강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세례 요한과 예수의 동생 2명은 낙원에서 기원된 이 영이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 안에서 나는 매우 기쁘다”고 말하는 것을 귓결에 들었다. 예수가 위를 보고 기도하자. 그는 자신의 환상, 즉 육신화되기 이전 하느님의 아들 그리고 마지막 증여 삶이 끝났을 때 되고자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오직 예수만이 이 천국의 환상을 목격했고, 이로써 그의 순수한 인간 삶은 끝났다. 신성한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았고 우주 아버지는 자신의 육신화된 아들을 찾은 것이다.
이후 예수는 계획을 가다듬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하느님의 새로운 왕국을 선언하는데 사용할 기법을 결정하기 위해 40일간의 은거생활로 들어갔다. 예수는 작은 산중에 머물면서 구원자별을 떠난 이래 최초로 그의 최고 우주 행정관 가브리엘과 개인적 교통을 가졌다.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협의하고 있을 때 예수의 유란시아 육신화 증여가 완료되었다는 임마누엘의 발표를 하기 위해 에덴시아의 별자리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의 우주에 대한 통치권 획득이 완결되었으며 루시퍼 반란이 종결되어 모든 관련된 미카엘의 증여 업무은 끝났고 이제 자유롭게 언제든지 자신의 육신화 증여를 끝내고 통치권을 받기 위해 아버지의 오른쪽으로 상승할 수 있으며 스스로 얻은 무제한적 네바돈 통치권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미카엘은 유란시아의 사람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네바돈의 모든 세계들을 위해서도 세상에 봉사하는 임무를 계속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구 생애를 그가 그렇게도 훌륭하게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아버지 뜻을 따르면서 끝마치기를 선택했다. 이것은 실제로 위대한 결정의 시간이었으며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영적 승리와 도덕적 성취의 영광으로 빛났다.
예수는 이윽고 개인적으로 6명의 사도를 선발했으며 이들은 때가 되면 각기 또 다른 사도를 선발하 예정이었다. 이후 4개월 동안 예수는 이들과 유대교 목사 랍비와 살며 자신의 신성으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는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왕국이 세워졌음을 선언하기 위해 왔다. 나의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왕국은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인과 노예의 모든 경배하는 혼을 포함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가 내려질 것이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 왕국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점을 일찍부터 터득했다.
사도들은 하늘의 왕국에 대해 배웠지만 예수는 사람의 왕국에 대해 더 많은 것들, 즉 유란시아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본질, 그리고 다른 진화 세상들을 배웠다. 비록 예수가 영광을 바라는 그들의 희망과 모든 야심에 거듭 찬물을 끼얹긴 했지만, 단 한명의 사도만이 그를 저버렸다는 사실은 그의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온당하며 감동적이었는지를 증언해주고 있다. 예수는 온화하고 유쾌하고 점잖고 친절했으며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강하고 당당하고 선천적으로 착한 남자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듣는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활기찼다. 갈릴리의 억센 어부까지도 그를 서슴없이 주님이라 부를 정도였다.
예수의 복음은 다음과 같았다.
1. 하늘의 왕국은 바로 가까이에 있다.
2. 하느님의 아버지 신분을 믿음으로써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로서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3. 사랑은 이 왕국 안에서 살아가는 규칙이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최고의 헌신이다.
4.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면서 자기 자신의 삶 동안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이 왕국의 법칙이다.
이 왕국의 복음이 퍼져나가자 유대인 사제와 통치자들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하게 되었다.
예수의 대중을 상대로 한 공개적 가르침은 주로 짧은 강연과 비유로 구성되었지만, 그의 사도들에게는 질문과 답변으로 가르쳤다. 예수는 제자들과 길고 진지한 문답이 오가는 회합을 수백 번 가졌다. 한번은 이 복음이 병약자와 노예에게만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교도들이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도들을 실망시키자 예수는 아주 길게 이야기 했으며 그 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사랑에 깃들인 특징을 모든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형제들이여, 그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리고 내 가르침이 오늘의 세대나 다른 세대나 유대인이나 이교도에 의해 잘못 이해되더라도 개의치 않고 나는 이 한 과업만을 해낼 것이다. 억제와 규율도 있지만 한편 현명하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의 동기를 아이들이 항상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낙원에 계신 나의 아버지가 그 분의 억제할 수 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힘으로 우주들의 우주를 통치하고 계심을 너희들에게 선언한다. 사랑은 모든 영적 실체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진리가 계시를 자유롭게 하지만, 사랑은 모두에게 최고의 관계이다. 오늘 너희들 시대의 그 어떤 너희의 형제들이 세상일에서 너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하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선언한 복음이 바로 이 세계를 다스릴 것이다. 인류 진보의 궁극적 목표는 하느님이 아버지이심을 경건하게 깨닫는 것이고 인간의 형제됨을 충실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나의 복음을 약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약자이더냐? 아니면 세례 요한이 약자처럼 보이느냐? 나의 아버지는 사랑의 신이고 자비를 실행하며 즐거워하시므로 왕국의 봉사가 쉬운 일의 하나라 생각하지 말라. 낙원 상승은 모든 시대에서 최고 모험이며 영원하고 험난한 성취이다.”
“땅에서의 왕국 봉사에는 너희와 동료들이 지닌 모든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믿지 않는 자들은 무저항 그리고 비폭력의 삶을 설교한다는 이유로 너희를 빈정대겠지만 너희는 길게 이어질 믿는 자 대열에서 첫 번째 사람이며 이 가르침에 대한 영웅적 헌신으로 모든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군대도 하느님이 아버지 되심과 인간들이 형제신분이라는 좋은 소식을 이 세상에 선언할 너희와 너희의 후계자들에 의해 극적으로 표현될 그러한 용기보다 더 큰 용기를 보인 적이 없다. 육체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성이다. 마음의 용기도 높은 종류의 용감성이지만, 그러나 가장 높고 최상의 용기는 깨우쳐 믿음을 가진 심오한 영적 실체들에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보이는 것이며 이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용기는 하느님을 아는 인간의 영웅적 행위를 구성한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하느님을 아는 인간이다.”
바로 이날부터 사도들의 공개 설교와 개인적 봉사 과업은 용기 넘치는 권세와 능동적인 적극성에서 나오는 새로운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예수는 상상이 가능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하여 답하고 가르쳤다. 그는 지나가던 길에서 만나는 대중들에게도 마치 씨를 뿌리듯 설교했지만, 개인적으로 필요를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치적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고 유대 통치자들이 오로지 그가 곤경에 빠지는 말만 들으려고 하자 예수는 비유나 우화를 이용하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구세주라는 관념에 집착했다. 예수는 기적을 일으키는 행위나 권능을 내보이는 행동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자신을 굽히는 것을 거절했다. 병을 치유했을 때도 그는 환자들에게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은 그들이 겪는 치유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다. 50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자 식사 때가 지나도록 흩어지지 않고 머물자, 그는 이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예수가 그렇게 하자 단순한 생각에 사로잡힌 군중은 기적을 보인 예수를 왕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영적 양식을 주고 싶어 했던 예수는 오로지 빵을 공짜로 주는 왕을 원하는 그들을 타일렀다. 기적을 보이지 않자 500명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더 이상 예수를 따르기를 거절하고 뒤돌아 사라졌다.
오랫동안 절친했던 나사로가 죽음을 맞았을 때, 예수는 아버지의 동의 아래 생명과 사망을 이기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보였다. 예수의 행동은 부분적으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려는 은혜를 베푼 것이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깨어나 자신의 무덤에서 나오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이야. 더욱 영광스러운 형태로 부활된다는 점만 다를 뿐,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 역시 너에게 일어난 일을 똑같이 경험하며 부활할 것이다. 너는 내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한 진리의 살아있는 증인이 될 것이다.”
이 기적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한편 어떤 사람들은 그를 거부하는 마음을 더욱 굳혔을 뿐이었다. 놀란 바리새인들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 예루살렘의 최고재판소 산헤드린 회의를 급히 소집했다. 오래지 않아 이들은 예수를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기원후 30년 4월 4일 화요일, 예수는 나사로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여성들 그룹에도 이별에 대비하여 조언을 했다. 그는 사도들 각자에게 개별적인 조언을 해주었으며 예루살렘 신전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다. 안식일이 지나 화요일이 되자 예수는 약 50명의 믿음으로 따르는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 최후의 만찬을 가지면서 예수는 회상과 기념의 만찬을 제정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너희를 떠나는 새로운 유월절이니 이것으로 나의 증여 삶을 기억하고 영원한 진리의 말씀, 그리고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을 기억하고 모든 육신에 부어져 들어가는 나의 진리의 영을 기억하라.”
예수는 떠나야 되는 필연성을 또다시 설명했고 사도들이 곧바로 일어날 사건에 준비될 수 있도록 평이한 말로 말했다. 그는 사도들에게 아버지 왕국 안에서의 삶은 무위와 자기만족의 안락함이 아니고 은총, 진리, 영광 안에서 끊임없는 전진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였고 아버지에게 돌아간 후 틀림없이 새로운 영 스승, 그의 진리의 영을 보낼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도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육신화된 인간으로서 네바돈의 미카엘, 나사렛 예수는 모든 인간과 똑같이 태어났고 모든 인간과 똑같이 살았으며 모든 인간들이 반드시 맞이하는 그런 죽음을 경험했다. 언제든지 그는 인간 육체에서 스스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결코 예수가 두 명의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음을 당하도록 계획하지도 않았고 행하지도 않았고, 또한 원하지도 않았다. 죽음은 참으로 인간으로서의 생애에서 미카엘이 체험하여야 할 부분이기는 하였지만 그토록 광폭하고 유별날 필요는 결코 없었다. 그렇게 참혹한 모든 일은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의 짓이었다. 유한한 인간이 신념이나 믿음에 의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출 수 있다는 복음은 예수의 죽음 덕분이 아니다. 복음이 주님의 죽음으로 빛을 발하기는 하였지만 이 복음은 그의 삶에 의해 엄청난 영광으로 빛나고 있다.
십자가 죽음과 매장 이후에 예수는 모론시아 형태의 자기 모습으로 19번이나 나타났다. 주님이 마지막 나타나신 것은 5월 18일 목요일 아침 감람산 서쪽 기슭에서 말없이 약간 어리둥절하는 그의 열한 사도에게이었다.(유다 이스카리옷은 이미 자살했다) 사도들에게 남긴 예수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나 내 아버지에게 올라가겠다. 우리는 곧 진리의 영을 보낼 것이다. 그가 오면 너희들은 왕국 복음에 대한 새로운 선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 그 다음에는 이 세상의 가장 먼 구석구석까지 선포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섬겼듯이 네 이웃을 섬겨라. 너희 삶에서 열리는 영의 열매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모든 사람이 형제라는 진리를 믿도록 세상의 혼들을 몰아 부치라. 내가 가르친 모든 것과 내가 너희들 속에서 함께 살았던 삶을 기억하라. 나의 사랑이 너희를 뒤덮을 것이고 나의 영이 너희와 함께 살며 나의 평화가 너희에게 머물 것이다. 잘 있어라.”
말을 마친 모론시아 주님은 다른 출현이 끝났을 때 매번 그랬던 것과 똑같이 사도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출처 : 유란시아 근본>
첫댓글 한국 유란시아 사이트 : http://www.urantia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