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에서 마냥 머물러 있기만 바라던 태풍 우쿵이 경남 남해안 지방으로 북상하며 그 영향권 안에 들면서 또다시 지난 장마로 순연되던 대간 길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하여 마음을 졸이며 일요일을 맞는다. 4구간 끝 지점인 성삼재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흐린 날씨를 보인다. 날씨 탓인지 전에는 청해도 쉽사리 들지 않던 잠이 오늘은 등을 뒤로 누이며 곧바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잠결에 간혹 바라보니 버스 와이퍼가 좌우로 작동하고 그렇게 구불구불 돌고 돌아 성삼재 앞 도로 옆에 버스는 정차한다. 이미 전날 내린 비로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 부산하게 산행 준비를 하는 회원님들의 모습이 날씨와는 상관없이 해 맑기가 그지없다.
잔비어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등로가 깊이 파인 형태의 외길이라 교행이나 추월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여 웬만하면 앞쪽에 서서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출발부터 앞쪽으로 나온다.
왕누님도 본진이 출발하기도 전에 혼자 숲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지고 잠시 후 뒤 따라 들어온 숲길은 간밤 비로 흠뻑 젖어 있다.
자욱한 안개가 온 산을 감싸고 있어 조망은 애당초 포기하고 앞사람이 가끔 흔들어 놓은 나무 아래로 비 오듯 떨어지는 물방울을 시원하다 생각하며 땅만 바라보며 걷는다. 사람의 키만큼 훌쩍 큰 산죽이 등로로 늘어져 있어 보일 듯 말 듯 내리는 안개비에 옷이 젖기 보다는 젖은 잎새에 뭍은 물기 때문에 바지가 금방 젖어 버린다. 웅장한 지리산 주능선의 조망이 압권이라는 만복대코스 오늘은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고 또한 울창한 잡목이 이중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어 마치 전인미답의 밀림을 헤치고 나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이쯤 될 바에야 무엇을 바라랴 스틱으로 대충 늘어진 나무를 헤쳐 길을 만들며 고라니가 숲을 헤치고 나가 듯 기세 좋게 전진을 한다. 30여분 밀림을 뚫고 조그만 내리막길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내려서니 헬기장이 나타나 잠시 뒤에 오시는 분들을 기다린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기념사진을 찍자니 2진이 도착하여 또 찍는다. 자욱한 안개가 파스텔화처럼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배경을 가리고 있어 어디를 배경으로 잡아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산행은 비슷한 여건 속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계속 진행된다. 비록 태양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없고 시계는 보지 않았어도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알람을 울린다. 출발하여 한 시간쯤 지나 다시 만난 헬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막 도착한 회원님들의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상당히 역동적이다.
익살스런 잔비님과 언제나 건장한 나누리님이 앵글 안에 들어온다.
언제나 지금처럼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되어 살아 갈 수 있다면 아마도 멋진 인생이 될지 않을까?
어릴 적 그렇게 빼기 힘들던 유치 경인의 마스코트 승호가 점심 식사 후 싱겁게 이를 빼고 “까치야 까치야 헌집 줄게 새 집다오” 하며 아주 뜻 깊은(?) 행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또 지리산 한자락에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에 웃음을 남긴다.
식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는데도 서둘러 출발하시려고 숲 속으로 접어드는 박선배님의 모습이 싱그러워 보여 잡아 본다.
고픈 배를 채우고 느긋한 기분에서 찍은 사진이다.
식사 후 30분이 채 안걸려 만복대 정상에 도착한다.
식사 때 다 안 먹고 남겨온 시원한 얼음 막걸리로 정상주를 대신하는데 목 줄기를 타고 흐르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느낌이 나중에는 머리까지 쑤셔온다. 언제부터 와서 기다렸는지 왕대님이 반가운 느낌으로 마중하고 돌탑 앞에서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모습인데 가만히 살펴보니 뭔가 은밀한 작업 중이다.
이제 만복대를 뒤로하고 정령치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나누기님의 모습이다.
안정된 워킹이 유별나게 돋보이는 것은 아마 오랜 시간 산과 같이 했음을 대변하는 것일 테고 이정표가 나타나거나 무언가 표식이 될 듯한 지점에 오면 영락없이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 모습이 늘 보아 오던 우리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묵묵히 뒤따르시는 나누기님의 모습이다.
출발하여 식사시간 및 휴식시간까지 포함하여 3시간여 만에 정령치 에 도착한다.
일반 산행과는 다르게 대간 길에는 이렇게 길도 건너야 하는 상황이 또 다른 환경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 사진이 그나마 가장 멀리 조망한 풍경이다. 큰고리봉을 타고 흐르는 안개가 마치 폭포에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밝은 웃음이 언제나 소년 같은 박선배님 다정한 부부애를 과시하며 산행분위기마저 포근한 느낌으로 채색케 만든 김영미씨 부부가 함께 앵글에 들어왔다.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정령치에서 고리봉에 이르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을 잔비님과 함께 힘차게 차고 오른다. 올봄 철쭉제을 본다며 걸었던 기억이 새롭고 금방 도착한 고리봉에는 길이 막혀 무던히도 고생했던 바래봉으로 가는 길이 옛 기억을 불러온다. 어는 산님이 동작 빠르게 정령치에서 아직까지도 뜨끈한 파전과 시원한 동동주로 2차 정상주를 하고 이제는 급하게 이어지는 고기리 쪽의 하산로를 통해 하산을 하는 회원님들의 모습이다.
급한 내리막길을 벗어나 조금 완만한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회원님들...
산에서 걸을때는 페이스대로 걷겠다며 천천히 오시던 순바리누님이 사진 찍으려하니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셔터를 누르는 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 머리를 들이 밀었다가 빼내 가신다.
슈퍼의 과자코너처럼 다양한 비스켓과 사탕을 풀어놓고 나누어 주시는 멀리 강화에서 나오신 분과 함께 이것저것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다.
자욱한 안개를 등지고 말없이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장송의 모습이 왜 이리 마음속을 파고들어 오는지...
정상부근의 자욱한 안개가 고도를 낮추어 감에 따라 옅어지더니 이제는 소나무 사이로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새벽 같은 분위기로 이어진 산행 끝에 만난 빛나는 태양이 마치 일출의 장엄한 모습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산행도 이제 거의 마쳐가는 지점 이름모를 묘가 내려다 보이는 산허리를 타고 길게 줄서서 내려오는 회원님들에 모습이다.
그리 힘든 산행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과 장마로 인해 연기를 거듭한 끝에 마무리된 지리산 권을 마쳤다는 즐거움의 표시인 듯 나누리님 손을 번쩍 쳐들고 만세를 부른다.
앞에서 만세 하니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만세다 하는 표정의 잔비님의 표정이 재미있고...
산행을 마치고 뒤 곁에서 조용히 앉아 산행을 정리하는 나누기님의 모습과 무엇이 그리 즐거우신지 활짝 웃고 계시는 뚝뚝이님과 여러 회원님들의 모습이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옆 계곡으로 숨어들어 정말 올 들어 처음으로 개운한 알탕 의식을 마치고 땀과 이슬과 비에 흠뻑 젖은 축축한 옷을 개운하게 갈아입고 나니 그 상쾌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키 힘들다.
주차장 옆 식당에서 미리 정령치에서 버스로 내려오신 선두팀이(?) 반갑게 부르고 정말 드물게 만나는 맛있는 도토리묵과 벗하여 들어가는 막걸리가 지리산 권을 어렵게 끝낸 대간 입문생 들의 마음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덕유산 권에 접어들기 위한 연결 루트를 걸어야 하고 이렇게 올 여름을 지리산에서 보내며 이제는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유유히 다가오는 세월의 흐름을 못 막고 어느덧 가을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 되었다. 장기 프로젝트 백두대간 종주 비록 시작이라는 개념을 아직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장 큰 권역을 마무리함에 자긍심과 함께 다가올 대간종주에 더욱 열의가 불타오른다. 한분의 낙오자 없이 진부령까지 개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한다.
산에 정기를 받았음인지 요즘 들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 일과가 돌아가는지라 일찍 글을 올리지 못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회원님들 늘 건강하시고 6구간에서 멋진 모습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