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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우석훈 (경제학 박사)
1. 들어가는 말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편한 용어는 아니다. 생태학이라는 말도 쉬운 말은 아니다. 일반인이 생태학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용어가 얼마나 있을까 잠깐 생각해본다. predator-prey 모델은 가장 쉬운 모델 중에 하나이지만, 이 말도 그렇게 편하고 쉽지는 않다. 게다가 경제학이라는 말도 쉬운 말은 아니다. 그래서 생태경제학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 출발
생태경제학이 공식적으로 출발할 것은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분과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기술경제학에 비하면 아주 늦은 것도 아니고, 정보경제학보다도 먼저 생긴 분과이다. 공식적인 출범은 Journal of Ecological Economics라는 매체가 준비된 시점 정도로 계산하기도 하고, 국제생태경제학회인 ISEE(International Society for Ecological Economics)가 출범한 시점으로 잡기도 한다. 어쨌든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형성되었다고 보면 크게 무리한 시점은 아니다.
- 3가지 다리
요즘은 비교적 정리가 된 편이지만, 생태경제학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3가지의 입구를 거론한다면 크게 이상한 말은 아니다.
1) 런던학파와 최소기준(minimum standard)
David Pearce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1980년대 런던 지역의 대학과 연구소에 있던 경제학자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의 그룹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을 ‘런던학파’라고 부른다. 피어스 옆에 Kuhn과 Markandya라는 이름 정도를 기억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이들은 표준경제학 이론을 그대로 채용하였는데, 여기에 최소기준(minimum standard)라는 기준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이들의 이론을 보통은 ‘자연자본이론(natural capital theory)’라고 부른다. 노동과 자본 외에도 자연이라는 특별한 자본이 생산에 관여하는데, 이 중 자연이라는 자본은 최소기준 보다 많은 자산이 있는 경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이 기준보다 적어지면, 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최소요소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한 사회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최소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만약 이 최소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구역에서는 경제학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으므로, 일단은 그 최소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을 해야 한다.
2)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 법칙
여기에서는 죠르쥬스큐-뢰겐(Nicholas Georgescu-Roegen)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74년 루마니아 출신의 이 노교수가 미국에서 “Entropy and economic process”라는 역사에 남을 이단적 저술을 출간하였다. 아담 스미스와 칼 맑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생산”이라는 개념은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생산이 아니라 에너지의 “소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생산은 사실은 순수한 소비에 해당하는 일이며, 에너지의 생산은 오직 경제계 외부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하고 분배하는가에 맞추어서 새로운 경제학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뢰겐 이전에 유사한 주장은 18세기 중반 중농학파인 프랑수와 케네가 오직 농업만이 ‘순생산(net product)’를 가지고 있다는 중농주의를 만들던 시절에 같은 주장이 있었고, 맑스 시절에는 엥겔스와 논쟁을 하던 우크라이나 혁명가인 로만 로스돌스키가 이러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엥겔스는 로스돌스키는 경제학과 물리학을 혼동하였다는 비판을 하였다.
현재는 Ayers라는 이름 정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에너지 화폐론’에 대한 주장이 있었지만 많은 반향을 얻어내지는 못하였고, 전과정평과(LCA: Life-Cycle Analysis)와 공업생태학과 생태공단(industrial ecology)이 이러한 접근의 연장선에 있다.
설명력은 높지만, 에너지라는 요소로 모든 것을 환원하게 된다는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3) 생태학과 공진화(co-evolution)
리차드 노가드(R. Norgaard)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생태학자인 맥아더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스템 이론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장 상위의 생태계의 하부에 인간계가 자리잡고 있고, 이 내부의 시스템으로 경제계(economic system)을 설정한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결국 이 공진화 이론 혹은 직접적으로 생태학의 이론들이 결국 생태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2. 지속성(sustainability)은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이 길은 아니다
21세기가 시작하면서 생태경제학은 ‘환경경제학이 아닌 또 다른 접근’에서 ‘생태학자가 보는 경제문제’라는 방식으로 급격하게 경향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환경경제학은 ‘일반균형’을 가정한다. 세상의 모든 재화가 자신의 시장과 자신의 가격을 가지고 동시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왈라스(L. Walras)의 모델을 핵심에 두고 있는 경제학 이론을 표준모델이라고 부른다.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 근대경제학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보통은 표준모델이라고 부른다.
환경경제학은 이 표준모델을 채택하는데, 여기에서 시장실패(market failure) 혹은 외부성(externality)라는 가정 한 가지를 추가한다. 세상에 환경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한 가지의 이론이 추가된 셈이다. 물이나 공기가 과다하게 소비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로 환경문제가 생긴다는 이 접근 방식은 결국 어떻게 ‘가격’을 만들 것이냐는 한 가지의 질문으로 귀착된다.
1920대의 피구경(Sir Pigou)는 조세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고, 1940년대 코즈(Coase)는 시장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환경세와 배출권거래라는 두 가지 방식이 표준모델에서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제시된 체계적인 이론이고, 보다 직접적으로 이 ‘가격 부재’의 문제를 풀기 위한 방식이 ‘가치화(evaluation)’ 이론이다. 환경이 가치가 얼마인지 알 수 있으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이러한 접근들을 환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의 핵심에는 일반균형 이론이 존재한다.
생태경제학은 이 일반균형을 거부한 사람들이 만들어내고자 했던 새로운 이론틀이다.
그래서 개별생태계 혹은 전체 생태계가 지속가능한 상태(sustainability)가 어느 수준인지를 알면 좋겠다는 강력한 유혹이 있었다. 어느 정도에서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알기만 하면, 사람들의 활동은 그 지속성을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지면 된다는 생각이 그 핵심을 이룬다.
그런데 이 sustainability를 사람들이 계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1997년경의 일이다. 생태계가 복잡성(complex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인간이 생태부하(ecological burden)을 발생시켰을 때 자연이 그것을 동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이라는 지속성이 질문은 매혹적이지만, 생태계 자체가 고정되어 있는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는 문제와 종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복합성들이 1997~1998년 Nature를 비롯한 과학잡지에 제시되기 시작하였고, 결론적으로 현대경제학의 태두에 해당하는 Kenneth Arrow가 이 접근방식은 옳지 않다고 그야말로 젊은 경제학들에게 ‘한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생태경제학 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학문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혹은 ‘촌스러운 접근’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어느 수준이 지속가능한 것인가를 알 수가 없는데, 이 수치를 정하고, 여기에서 역산을 해서 인간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활동을 해도 좋다는 것을 알기 위한 일련의 접근은 ‘공무원’ 접근 혹은 UN식 접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생태경제학 내에서의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은 정치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21세기로 넘어든 다음에는 생태경제학은 ‘생태계’ 자체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연구 프로그램이 전환되었고, 환경경제학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더욱 정치적으로 선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최악의 경우는 화폐와 결합된 sustainability의 경우이다. 다음 세대와의 형평성을 계산할 때, 생태자산을 더욱 많이 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부를 더욱 많이 주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계산을 하게 된다. 물질을 화폐로 환산하면, 정치적으로는 현 세대의 생태계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더욱 많은 ‘경제적 부’를 이전하게 되면 사실상 세대간의 형평성 문제는 풀리게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러한 이론은 정치적으로는 그러므로 더욱 많은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유도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결론은 ‘약간 환경을 위해서 노력한다’가 소극적인 해석이고, 적극적인 해석은 ‘그러므로 더 많은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가 이 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총자산(3) = 경제적 자산(1) + 생태적 자산(2)
(2)번 항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1)번 항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있지만, 실제로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들의 활동에 의한 경제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3)번 항을 높이기 위해서는 (1)번 항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유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3)번 항을 높이기 위해서 (2)번 항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보다 더욱 높은 속도로 (1)번 항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생태적 자산은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의 수준이 되어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더 높은 경제성장이 - 즉 빨리 선진국이 되어야 - 필요하다는 결론을 발생시키거나, 아니면 생태적 자산이 줄어드는 것보다 ‘자본’의 생산성이 더 높으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렇게 이해된 생태계는 경제학의 논리 내에서는 “사치재”와 사실상 동일한 논리 내에 위치하게 된다. 물론 비쌀수록 수요가 생기는 “베블렌 효과”와 동일한 의미의 사치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소득이 생긴 다음에야 수요가 생기는,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사치재와 생태계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국제적으로는 선진국이 일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된 다음에 중국과 인도와 같은 커다란 규모의 개발도상국가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때 선진국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의 논리를 제시한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경우 여기에 대해서 딱히 아니라고 할만한 논리는 없다.
(똑같은 논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2분법 -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 구도에서 발생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는데, 사실상 70년대 초반의 eco-development라는 UN 개념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히 양보한 개념이다. 물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을 개선시키자는 면에서는 유의미성이 아주 없다고는 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이 개념을 ‘출발점’으로 해서는 80년대의 논의보다 개선된 논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속성(sustainability)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양보한 개념인데다가, 물질적 의미의 지속성이 아니라 화폐적 의미의 ‘약지속성(weak sustainability)’ 개념에서는 더욱 더 곤란한 점이 많아지게 된다.
3. 새로운 경제학?
생태경제학의 출발점에 해당했던 런던학파, 열역학적 접근, 그리고 공진화 접근 중 현재는 공진화 쪽으로 훨씬 많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인데, 아마도 생태학의 비중이 보다 높아지면서 이 방향으로 더욱 많이 움직여나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태학을 경제학에 더 많이 도입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질문은 아직은 열려 있는 셈이고, 사실은 정확한 답을 생태경제학 혹은 생태학자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만약 있다면 생태경제학을 제기한 사람 중에 누군가는 벌써 노벨상을 탔거나 아니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속성 혹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태경제학이나 혹은 생태학에서는 일반균형을 이론의 기본전제로 출발하지는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세계적 규모의 해법에 관한 문제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문제 그리고 자원의 고갈 등 이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는 않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강화되기 시작한 세계화에 대한 질문 역시 답하기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왈라스의 일반균형과 같은 일반이론을 생태경제학이 가질 수 있을까?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장기적인 ‘안정성(stability)’가 기준으로서는 중요한 기준을 차지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안정성의 기준만이 경제 전체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원리로서 작동하기가 쉽지는 않다.
만약 ‘지속성’을 계산할 수가 없다면, 보통의 경우는 교육이나 홍보와 같이 자연에 대해서 더 많이 강조를 하게 되는 경제학 프로그램 보다는 사회학이나 교육학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 자체가 이런 교육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기는 쉽지 않고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에 생태경제학은 일반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가별로 혹은 지역이나 사회별로 풀어야 할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여기에 대해서 해법을 추구하는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사회 혹은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제시된 생태경제학과 한국에서 혹은 한국의 어느 지역에서 제시된 생태경제학의 프로그램이 동일하기는 어렵고, 또한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정립되기도 어렵다는 말이, 일반균형 이론과 같이 ‘보편적(universal)’인 경제학으로 발전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예와 스위스의 사례 혹은 한국의 사례가 또한 동일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일반이론으로 전환되기 어려운 것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단점은 보다 더 많은 특수해법과 지역성 혹은 역사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일반이론과 같이 ‘비용’과 ‘편익’만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는 접근 방법에 비하여 확실히 생태경제학의 해법은 복잡하고 또한 모든 경우에 적용되기가 어렵다. 반면에 장점은 ‘맥락(context)’이라는 상황성을 보다 풍부하게 이론 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인식론적으로는 이 두 가지의 장단점은 어쩌면 trade-off에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4. 우리나라에서의 생태경제학이란?
대한민국 혹은 대한민국의 특정지역이라는 맥락으로 들어오게 되면 생태경제학은 조금 더 풍부한 내용과 적용대상을 가지게 된다.
전체적인 도넬라 메도우 여사를 비롯한 1970년대의 제로성장론의 논의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무기와 도로 등 공공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서, 이 공공지출을 여성과 육아와 보건 등 실질적인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곳에 사용한다면, 물질적 의미의 경제성장을 늘이지 않고도 사람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다.
2) 장기적으로는 인구증가를 억제하여(Z.P.G: Zero Population Growth)를 억제하여, 사회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긴장을 낮춘다.
물론 이제는 이러한 제로성장론에 관한 국제적 논의 자체는 굉장히 뒤로 후퇴한 상태이지만, 생태경제학이 제시하는 가장 큰 프로그램은 어쨌든 무기 등 국방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토목공사를 유지하기 위한 건설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2005년 이후 건설산업에 대한 대안 제시에 생태경제학의 프로그램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한국과 같은 맥락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생태경제학이 현재 연구 프로그램으로 제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순서없이 나열해 보도록 하자.
□ 친환경 농업
우리나라에서의 농업과 친환경농업에 관한 논의는 현재 생태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연구 프로그램 중에는 사회적 논의의 가장 맨 앞에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고, 가장 창의적인 제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젊은 학자들의 연구가 집중되는 곳도 바로 이 분야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토에 비교해서 가장 높은 유기농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이며 (10%)이며, 한국은 중국이나 어떤 중남미 국가 혹은 동구권 국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베트남(0.04%)과 같은 그룹에 속해있는 최하위 그룹군에 들어가 있다. (한국 농토의 친화경경작지 비율 - 0.05%... 사실 이 숫자만으로는 한국은 베트남, 피지, 라오스 등의 수준이다.)
한국은 단위당 농업생산성과 함께 장비투입율 등에서는 80년대 기준으로 농업선진국에 해당하였지만, 이미 선진국이 10% 내의 유기농 경작비율을 기록하는 등 이미 상업적으로도 경쟁구도로 진입한 상태에서, 우리나라 농업은 유기농 전환에 대한 시기를 놓친 상태인데, 생태경제학의 사회 프로그램 내에서 유기농업은 중요한 몇 가지 장점들을 제공한다.
유기농업을 경제학적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인력집중적, 지식집중적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인데, 이러한 문제점은 동시에 사회안전망과 고용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고, 지식집약적인 농업이라는 점은 산업유발효과가 생명산업을 중심으로 기존 농업에 비해서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고용과 지역의 경제대안 그리고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 등을 통한 친환경농업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은 현재 우리나라의 생태경제학이 제시할 수 있는 사회프로그램 중 맨 앞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역 경제와 생태경제학의 대안
국가모델인 아닌 지역모델의 경우에는 지역순환성과 내발적 효과 그리고 토착지식(endogeneous knowledge)에 대한 산업화 등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데, 가장 쉽게 이러한 모델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은 스위스형 경제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는 우리나라 국토의 절반 정도의 크기에 인구는 1/4 정도가 살고 있는데, 국민소득은 4만불이 넘는 세계 경제의 제 1그룹에 해당하는 나라이다 (2만불 그룹군에는 미국과 일본 등이 들어가는데, 4만불 그룹군에는 이러한 규모의 경제가 아닌 지식형 경제를 추진하는 국가들이 들어간다).
스위스는 독일어권, 불어권, 이탈리어권의 3가지 주요 언어권과 알프스의 전통민족인 헬베티카어의 4가지 언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스위스가 관광으로 국부를 유지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민소득 중 관광 비중은 프랑스보다 낮은 수준이고, 실제로는 지역 특성에 기반한 소규모 제조업과 은행 산업 등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요소 분석을 통해서 스위스 경제의 특징을 분석해보면, 직접 민주주의와 지식의 요소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데, 지역 공동체의 요소가 오히려 전통 지식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스위스 경제의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의 자본을 유치해서 국책사업으로 도로와 관광도시를 건설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역 경제가 하나의 축을 형성한 국가로는 스위스와 덴마크를 모델로 할 수 있는데, 네덜란드의 상업주의는 국가적으로 생태계 관리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수질오염을 중심으로 국토생태의 문제가 지난 수 년 이후 점점 곤란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직접 모델로 채택하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생태경제학의 관점에서 현재 지역의 개발 모델은 베트남형에 가깝고, 스위스형과는 극단적으로 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지역생태계의 장점을 지역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결합시켜 새로운 지역경제의 대안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은 생태경제학의 주요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생태권역을 중심으로 지리산 지역경제 모델과 한라산 생태권역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생태경제 모델들이 조심스럽게 제안되고 있는 정도가 연구수준인데, 아직은 출발점에 서 있는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서해안 갯벌의 염전을 중심으로 한 고기능 염전을 통한 지역생태경제 모델이나 부안의 유기농경제 등이 조심스럽게 제시된 적은 있는데, 아직은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이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 탈핵 프로그램과 지역 자원재순환 구조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국가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일종의 탈핵 프로그램은 생태경제학이 제시할 수 있는 국가 의제 혹은 지역 의제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지역 차원보다는 국가 장기 의제로서의 개편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진행되는 수준이다.
□ 생태공단과 지역산업의 재배치
울산, 여수, 포항 등과 같은 전통 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생태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 산업단지 내에 물질재순환 구조를 설정하고, 전체적인 환경부하를 낮추는 문제점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 생태경제학이 일정한 기준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보조적 역할의 위험으로서의 장식품으로서의 위험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 지역 환경문제와 보건 문제
특정지역에 특정 산업이나 건설이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보건상의 피해와 보건비용을 결합시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생태경제학이 장기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연구 프로그램의 하나인데, 아토피나 천식에 대한 산업적 혹은 지역적 대안에 대한 연구가 아직은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지는 못하다.
5. 생태경제학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농업 부문과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몇 가지 전망들을 제시한 정도인데,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에는 아직은 우리나라의 생태경제학이 인력과 전문성 혹은 인프라 등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생태경제학이 다른 접근에 비해서 가질 수 있는 큰 장점들을 요약하면, 박정희식 “압축성장”이 발생시킨 불균형 산업전략이 만들어낸 경로의존성(path dependecy)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측면과, 중앙경제 혹은 국민경제라는 국가 차원에서 움직이는 거대 담론이 아닌 지역경제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현 상황에서는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인즈식 ‘재정정책’을 통한 지방의 성장전략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의 토호들과 비토호 사이의 경제적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스위스식 경제는 실제 거주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지역 대안을 주민들이 만들어나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접근이 미국식 중앙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작동했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요약하면, 환경경제학의 접근은 특정한 환경 문제만 해결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일반균형’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라고 요약될 수 있는데 반하여 생태경제학은 (지역에서 요소투입을 불균형을 통해서 과도하게 만들어내지 않는 상태에서) 또 다른 사회적 해법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나 지리산 같은 경우에 생태경제학의 이론적 실험과 관광제주 혹은 관광지리산이라는 정부 프로그램이 현재 정면으로 부딪히는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과연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지역의 생태적 요소를 ‘개발’에 투입하는 것 사이의 장기전망의 차이점 그 어느 곳에 생태경제학의 연구 프로그램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경제학이 장기적으로는 생태경제학이 풀어나가야 할 또 다른 요소 중의 하나인데, 통일에 대한 별도의 전망과 통일 후의 ‘국토생태’라는 개념 그리고 ‘국방비’ 같은 요소들이 장기적으로 생태경제학이 부딪혀야 하는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우석훈 박사님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습니다.(http://retire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