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 강화 나들길(1)
-북쪽 해안과 강화산성을 걷다-
1. 강화도는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섬이다. 분단된 한반도 북쪽과 경계를 이룬 긴장의 지역이자, 외세의 침략 때 최후의 보루지로서 가졌던 위상을 증거하는 역사적 현장이며, 육지와 또는 섬들 사이로 연결된 다리들을 통해 접촉과 단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지리적 공간으로 다양한 색깔을 제공해준다. 또한 단군의 흔적을 담은 마니산의 참성단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와 특산물로 가득한 해안가의 맛집을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2. 1시간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드라이브하기에도 좋고, 걷기에는 더욱 좋은 섬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행운이다. 너무도 익숙하여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장소이지만 어떤 장소보다도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장소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이곳에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진한 추억이 아련하게 기억되어 있다. 어머니와의 ‘맛집 탐방’의 추억과 S와의 추억 여행 흔적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것이다.
3. 지난번에 ‘갑곳돈대’에서 섬의 남쪽 방향인 초지대교까지 ‘강화 나들길’ 2코스의 아름다운 해안가를 걸었다. 이번 답사는 반대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강화 나들길 1코스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2코스와 마찬가지로 해안가를 옆에 두고 걷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2코스가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접할 수 있다면, 1코스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바다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북쪽과 바로 접하고 있어 군사적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길의 특별한 느낌을 만나게 한다. 불완전한 시선 너머로 보이는 해안선의 모습과 북녘의 산하는 우리의 삶이 어떤 막힘과 방해 속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증언해준다. 완벽한 삶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불완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죽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이자 운명일 것이다.
4.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역인 ‘민간인 통제구역’ 바로 앞에 ‘월곶돈대’가 있었다. 이 곳은 돈대의 이름보다는 돈대 안에 있는 아름다운 ‘연미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 방송 촬영장소로 많이 이용될 정도로 멋진 바다풍광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자는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동해와는 다른, 혼탁하지만 소박한 서해의 물결은 다양한 바다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3면의 바다가 지닌 다른 얼굴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같지만 다른 모습이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것만을 본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안정에 익숙해지면 변화가 불안해진다. 인간도 여유를 잃어버리면 다른 모습의 인간에 대해, 다른 성격의 타인에 대해 적응력을 잃어버린다.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만날 수 있는 내면의 힘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의 확대를 바다를 보며 생각해 본다.
5. 연미정에서 강화읍내 방향으로 발을 옮긴다. 모내기를 마친 논들의 평온한 모습이 주변 의 산들과 조화를 이룬다. 시선은 넓고 하늘은 높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만이 자연의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쪽 방향은 군사적인 이유로 펜션이나 상업지대가 적어 자연스런 농촌의 모습이다. 자연과의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다. 때론 펜션과 카페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겠지만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 돌을 찾는 여정
1. 강화 읍내를 돌아 강화산성 북문에 도착했다. 과거에는 문을 보고 곧바로 돌아섰겠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강화산성 성벽에 올랐다. 걷기에 익숙해지면 과거에는 회피했던 장소를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돌로 만든 산성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흥분된다. 산성의 흔적 속에서는 생존해야 했던 민초들의 고통과 용기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적을 막기 위해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럼에도 자신의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결집했던 힘의 흔적이 산성에는 남아있다.
2. 북장대에서 바라보는 강화도의 모습이 장관이다. 새로운 장소를 찾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의 발견이다. ‘새로움’의 추구는 단순히 어떤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행위이다. 지식도 경험도 ‘우물 안 개구리’의 영역을 벗어날 때 의미있는 도전을 추구할 수 있다. 익숙했지만 오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강화산성 돌 벽 위에 서서 서해와 북쪽 땅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직은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희망 또한 품어본다. 한반도 남쪽을 대부분 걷는 동안, 북쪽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 성취되길, 그리고 북쪽을 걸을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3. 오늘은 북문에서 동문 쪽으로 방향을 잡아 강화산성 코스를 반쪽만 걸었다. 다음 답사 때는 고려궁지 주변에 주차한 후, 동문에서 출발하여 북문과 서문을 지나 남문까지 성벽일주를 시도해야겠다. 남한산성같이 웅장하고 정돈된 느낌은 적지만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직도 복원되지 않은 과거의 폐허가 오히려 강화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한다. 강화도가 지닌 바다만이 아닌, 산성의 매력을 발견했다. ‘돌을 찾는 여정’의 목록에 추가해본다.
첫댓글 역사와 풍경을 따라 걷는 길의 강화! 낙조의 아름다움도 기억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