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2일(토) 창녕의 우포늪은 다녀왔다.
아침 7시경 직장일로 먼길을 떠나는 애 엄마를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곧바로 창녕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그 전에 아침밥을 먹고 서둘러 밥통에 남은 밥을 프라스틱 통에 담고 김치 한가지, 그리고 작은 보온 물통에 물도 담았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방구석이나 지킬 것이지 소득없이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니냐고? 생각하기엔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잠들기 전 나 자신에게 떳떳해 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넌 오늘 하루 무엇을 했니?'라는 물음에 대하여...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일부러 고속도로를 피하여 달려가는 시골도로는 차가 적게 다녀서인지 아직도 음지엔 눈이 제대로 녹지 않았다. 미끄러운 도로위에 핸들을 쥐 손에 힘을 더했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지금은 통행량이 적어 폐쇄된 도로인 듯 하였다. 네비게이션을 보아도 알수가 없다. 에라! 가는 데까지 가보자. 언제는 내가 호강하려 길을 떠났던가. 조심스레 한 고개 두 고개를 넘다보니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우포 생태관에 들어서니 내가 일찍 온 것 같았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혼자 길을 떠나? 언제는 내가 남의 눈치보고 다녔던가? 작은 배낭하나 그 위에 카메라 가방 엮어 메고 길을 나섰다.
늪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는 3-4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볼거리가 많다면야 시간 가는 것이 대수겠는가? 내게 남아도는 건 시간 뿐인데...
늪지대는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혔다. 그래서인지 새들은 늪지대 가운데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호숫가를 걷다가 제방을 걷고, 그리고 숲을 연이어 걸었다. 지난 늦가을에 다녀온 주남저수지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두곳 모두 넓다란 호수인데 말이다. 그곳은 인공저수지이고 이곳은 자연 늪지란 말인가? 이곳에도 제방들이 있는데...
길다란 제방을 걷다보니 건너편 논밭들이 눈에 덮혀 하얀 빙판길 같다.
그러고보니 이곳에선 농사짓는 일도 쉽지가 않을 것 같다. 다른 곳처럼 농약을 살포하면 새들이 살아남기가 힘들테니 말이다. 정부에서 보상대책을 세워 주는지 알수가 없지만 자연을 보호하고 더불어 사는 마음씀이 이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닮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그런대로 사람들이 제법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 미끄러워 통행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날씨가 추운탓에 잠시동안 들러보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나처럼 늪지대를 일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그래도 사람살기도 어려운 형편에 새들을 보려 온다는 마음이 가상하지 않은가?
이곳은 새들은 움직임이 적고 두껍게 언 얼음만이 하얗게 빛나는 늪지대이다. 햇살이 피어나고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갈 무렵 나는 일주를 마쳐가고 있었다.
햇볕이 드는 나무밑 조망권 좋은 곳에다 가방을 놓고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생각없이 덩치만 큰 사내가 끼어들어 떠나지를 않는다. 넓지도 않은 이곳에서 내가 조금은 오래 머무를 것이란 생각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척 보아도 아는 것이 같이 온 여자는 자신이 임자가 아닌 것 같다. 검은 안경을 낀 여자는 이쪽의 눈치를 보아가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망설이는데 남자는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오라고...새들도 아무데서나 들이 밀지를 않는데 새보다 못한 사내인가?
덩치 값도 못하는 참으로 눈치도 없는 친구다. 하는 수 없이 결국엔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어쩌다 부모 잘 만난 놈팽이려니...
늪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아하게 옷을 차려입은 중년 여인네들의 수다스런 행렬을 피하여 경계선을 넘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었다. 가방에 짖눌러진 밥과 김치 뿐인데도 그런대로 한끼를 때우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닌다는데 나는 질보다는 양을 우선시 한다. 그래서 애 엄마와 외식을 할때면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택한다. 그런 면에선 나도 부모 잘 만난 탓이 아닐까?
멋도 없고 맛도 모르는 내 인생이다. 그렇게 태어나고 살아 온 것을 이제와서 어떡하랴? 그냥 사는대로 살다가 돌아가고 싶다는 오기(?)가 가슴속에 꽉 찼는지도 모르겠다.
차창속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허전하여 광으로 가서 고구마 상자를 꺼집어 내었다. 수확 때부터 별로이던 고구마가 얼어가는지 매우 딱딱해져 있다. 한 바가지를 씻어 전자렌지에다 삶았다.
텔레비젼에선 '7번국도'를 소재로한 한국기행이 방영되고 있다. 포항의 고래고기며, 해풍을 맞고 자란 시금치(이곳에서는 포항치라고 한다나..), 그리고 동해의 명물 과메기까지 모두가 동해의 찬바람과 많은 일조량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참! 그리고 할머니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오는 국수도 유명하단다. 하여간 그곳의 삶도 우포늪 주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조물주가 등 밀었는지, 아니면 내가 서둘러 이 세상을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 삶을 남에게 굳이 보일 필요도 없다. 다만 내게 쌓아두고 남에게 보일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거쳐가는 시간이라는 마디마디를 내가 인식하고 있느냐가 필요할 것이다. 왜나면 그게 모두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남의 삶이 궁금해도 겯눈질 참으면 된다. 그러면 500원 버는 것이란 것...
낮에 늪지대 호수의 하얀 얼음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던 새들을 생각해 보았다. 호수가 온통 얼음이 얼어 먹이는 어떻게 구할까? 저들은 떼지어 모여앉아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삶, 사랑...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저들보다 얼마나 가치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글쎄다.
첫댓글 제고향에 다녀오셨네요..지도 가고싶네요...
오늘 일때문에 아무데도 못 가셨나보네요. 시간이 나시면 다녀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