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전북 출생인 김득구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이복형제들과의 불화 등으로 어린시절을 보내고
14살 되던 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로 상경 후, 김득구는 동아체육관(관장:김현치)에서 3년 간 아마추어 활동을 하다
1978년 4라운드 판정승으로 프로 권투계에 데뷔한다.
이후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이 되며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경기전날 김득구 선수의 훈련모습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 마련된 특설링에서
미국의 맨시니(r. mancini)와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갖는다.
이는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의 라이트급 세계도전이었다.
맨시니가 절대 우세하다는 여론의 예상을 뒤집고 대등하게 싸우던 왼손잡이 김득구는
불행히도 14라운드에 맨시니가 던진 결정타를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나흘간의 뇌사 상태 끝에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득구 사망 당시 약혼녀는 임신 중이었다.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챔피언’ VIP 시사회에 참석한 맨시니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며 상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는 “그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왜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닌 김득구였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김득구를 다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맨시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슬픈 표정을 짓다가
"그와 나는 말이 필요없는 사이"라며 "그저 악수를 한 후 껴안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