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에서는 구세주 새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심판하시는 일에 대하여 일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구세주의 백보좌의 심판이라 함은 6천 년 동안 마귀가 주름잡던 세상을 끝장내기 위하여 인생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끌고 가던 마귀를 멸하심으로써 마귀에게 사로잡힌 당신의 자식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예수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심지어는 자기 부모님을 섬기는 일마저도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죄악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인류를 살생하고 분쟁을 일으키며 세상을 소란케 하였던 것이다. 오직 예수 외에는 모두가 다 마귀라는 사상이 그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가 아니고 하나님을 근본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혈손이요, 하나님의 분신 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부모님도 하나님이요, 형제들도 다 하나님처럼 섬겨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17장과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세 사람이라고 하였고, 아브라함이 달려 나가서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며 맞이하였고, 물을 떠다가 하나님의 발을 씻어드리고 떡과 고기를 대접하니 하나님께서 드시고 떠나셨다는 기록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몸이 있고 발이 있으시니 물로 발을 씻어드렸으며, 하나님이 손과 입이 있으니 떡과 고기를 잡수신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분명히 사람의 몸을 입고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모세율법 십계명의 일부를 소개하는 바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우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여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진노하는 신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고 나를 사랑하며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천 대까지 베풀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하리라.’
----- 신명기 5: 1~11 -----
이와 같이 성경 전체에 오직 하나님만이 구세주요,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것이 일관된 내용인 것이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속량하여 구원해 주실 구세주는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분명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성경에서 찾아본 것이다.
‘나 곧 내가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 이사야 43: 11 -----
‘곧 구원자가 나 외에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은 나를 앙망하고 구원을 얻으라. 나는 하나님이니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 45: 21∼22------
‘우리의 구속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 이사야 47: 4 ----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여호와-가라사대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니’ ----- 이사야 48: 17 -----
이처럼 하나님만이 구세주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셨으며, 말세에도 오직 하나님이 친히 오시어 인류를 구원하실 것에 대하여 신약성경에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를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시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 딤전 6: 15∼16 -----
기약이 이르러 말세에 나타나시는 구세주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신다고 한 그대로, 우리의 찬송을 받으실 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오직 홀로 새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는 것이다. 찬양과 경배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구세주 새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 것이다. 태초의 하나님은 안식에 들어가시고, 말세에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은 바로 새하나님인 것이다.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라고 함과 같이, 죽지 않는 영생도 오직 구세주 새하나님에게만 있으니,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는 바로 새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단 사이비 종교
본란에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쓰는 이유는 진실한 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느 누가 이 진리를 진정 깨닫고서 미망에 빠진 이 나라의 기독교인들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어서 속히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구자가 되어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그리고 그 동안 본인이 이단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모함으로 수십 통의 고소나 투서를 받고 조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차제에 이단 사이비 종교에 대하여 명백한 규명을 하고자 하는 바이다.
요즈음 사회에서 신흥종교가 나타났다고 하면 벌써 의례히 이단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지적하여 두지만, 이단 사이비 종교의 판단은 온전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법이요, 불완전한 죄인들은 불완전한 판단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나 함부로 다른 종교에 대해서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 운운하는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특권에 대한 도전이요, 월권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라는 말 자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절제하고 신중히 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처신이라고 제언하는 바이다.
성주님께서는 그 동안 영생교 승리제단에서 모함하는 고소, 투서를 청와대나 안기부, 검찰청에 21통이나 제출하여 수사를 받으셨던 것이다. 영생교 승리제단에서는 성주님을 사이비 종교교주라는 것이며 헌금을 사기했다는 것과 여자들을 강간을 했다는 식의 고약한 죄명으로 고소를 하였던 것이다. 영생교에서 고소장에다 첨부하였던 성주님이 여자들을 강간을 했다는 증거로써 1982년 6월 17일에 200여 명에게 몰매질을 당하면서 강요에 의해 썼던 자백서를 증거로 제출했던 것이다.
처음에 1983년 1월 25일에 승리제단 간부들에 의해서 6통의 고소장이 서울시경 폭력계에 접수되었던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밤새 철야조서를 받으면서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담당 형사가 성주님께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하였다. 그리고 담당 형사는 그 거짓말 탐지기 위에 손을 얹으라고 하여 성주님께서 그 위에 손을 얹으셨으나 바늘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성주님께서 처음에는 그것이 잘못된 일인가 하고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이 기계가 고장이 나버릴까?’라고 속으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그 형사가 자기 손을 얹어보니 그때는 바늘이 발발 떨면서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 형사는 또다시 성주님께 손을 얹어보라고 하여 성주님이 손을 얹어보시니, 또다시 바늘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형사를 불러서 손을 얹어보라 하니, 그때도 역시 바늘이 발발 떨면서 올라갔던 것이다.
그러자, 형사들이 오히려 성주님을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변하여 더욱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바늘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모양이다. 즉,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여 심장이 뛰게 되고 그리하여 맥박이 세차게 뛰면서 그 기계의 센서가 인식을 하여 바늘이 떨면서 올라가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형사가 거짓말탐지기를 들고 한참 흔들어 본 다음에 또다시 성주님께 손을 얹어보라고 하여 손을 얹어보시니, 여전히 바늘은 아예 고장이 난 것처럼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다시 그 형사가 손을 얹어보니 다시 바늘은 벌벌 떨며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형사들이 바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하하하하! 그리고 성주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은 분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은,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어찌 그렇게도 전혀 움직이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마 숨을 쉬고 사는 동물이라면 어느 짐승이 발을 올려놓는다 해도 바늘이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성주님이 손을 올려놓으시자, 바늘이 아예 고장이 난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것은 예사로이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가 하나님을 알아본 것이 분명하다. 그러자, 그 형사는 머리를 숙이면서 “저희들이 몰라 뵙고 무례를 범한 것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말투도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하며 깍듯이 존대 말을 쓰면서 모든 조사를 다 마쳤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처럼 거짓말 탐지기가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이현석이라는 분은 이미 죽고 없는데, 죽은 사람의 손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하나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니까 거짓말 탐지기가 이를 알고 증거를 한 것이다.
당시에 성주님을 고소했던 네 명의 고소인들은 무고로 그 즉시 검찰에 구속 송치되고, 한 건은 고소취하를 하고, 한 건은 고소인 불출석으로 기소중지로 처분 되었던 것이다.(사건번호: 83년 형제51824호)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반장 이하 전 수사진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셨던 성주님(이현석) 앞에 일렬횡대로 서서 “일동 경례!”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사가 끝났음을 고하고 “교주님께서 다음에 크게 일어나시고 저희들도 필요하시면 불러주십시오! 즉시 달려가서 심부름 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서울지검 3호 검사실에서 출석 요구서를 보내와 나가셨는데, 사건을 담당한 최 모 검사가 말하기를 “교주님께서는 이전에 어느 종파에 계셨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당시에 이 사건이 신흥종교 교주로서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내용의 사건이므로 종교분야에 대하여 박식한 기독교인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시켰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성주님께서 “예, 전도관에서 12년간 성직생활을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시니, “전도관이 무엇입니까?”하고 반문을 하므로, 성주님께서는 “신앙촌 박태선 장로님 모르십니까?”라고 하시자, 그 검사가 하는 말이 “아, 그러면 사이비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성주님께서 “검사님은 말씀이 좀 지나치시군요. 온전하신 하나님만이 사이비다, 사이비가 아니다. 온전하게 판단하시는 것이요, 불완전한 죄인은 불완전한 판단밖에 못하는 법, 검사님은 새까만 죄인입니다. 그런데 검사님은 하나님의 종교를 함부로 사이비다, 아니다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그 검사는 손으로 재빠르게 자기 입을 가리면서 “아,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 말 취소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여기서 처음에 그 검사가 한 말은 너무나도 조리가 안 맞는 말이다. 누구든지 지금 자기가 속해 있는 종교도 아니고, 그전 전에 속했던 종교가 사이비 종교의 기준이 된다는 말인가. 그러면 지금은 아무리 올바른 종교일지라도 그 전 전에 속했던 종교에 따라서 이단, 사이비의 기준이 정해진다면, 이 세상에 어느 누구라도 이단, 사이비가 아닌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검사의 수준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주님께서는 그 검사실을 나오시면서 “이 나라의 석학인 검사가 자기의 잘못을 즉시 시인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래도 이 나라의 장래가 그리 어둡지 만은 않구나!”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 후에 서울지검에서 사건결과통지서가 우편으로 발송되어 왔는데,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4건은 무혐의로 처리가 되고 한 건은 고소인 김순례 씨가 고소를 취하하였으며, 한 건은 고소인 불출석으로 기소중지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소인 네 명은 모두 무고로 검찰에 구속송치 되었던 것이다.
1995년 어느 날, 역곡 승리제단의 소문종 살해암매장 사건에 관련된 4명의 살인범과 관련이 있다는 김규섭이 삼천년성에 와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면서 성 모 형사와 김 모 형사 두 사람이 찾아왔었다. 그들은 1994년에 역곡 조희성 전도사님을 구속시켰던 이경재 검사 휘하에 있는 형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김규섭이 삼천년성에 오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당시 이경재 검사님이 성 형사와 김 형사 두 사람을 성주님께 보내어 그와 같은 사실을 자세히 설명을 하고 수사협조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성주님의 집무실에서 형사들이 이경재 검사님에게 전화를 연결해서 인사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성 형사, 김 형사 두 분들이 성주님께 건네 드렸던 메모지의 연락 전화번호(02-530-4492~3)에 의해 그 후 여러 차례 전화연락을 하였으며, 두 형사들이 성주님께 보냈던 편지도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이경재 검사님은
“광주에 이현석 씨는 아주 굉장한 사람이다. 그 분은 아주 젊으신 분인데, 저 악랄한 조희성이가 이현석 씨를 강력한 라이벌로 의식하여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없애버리려고 10년이 넘도록 도전했지만 도저히 못해보고 자기가 쓰러지고 말았다. 저 악랄한 조희성이도 이현석 씨한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현석 씨는 아주 젊은 사람인데 엄청난 사람이다. 조희성이가 세 차례나 괴한들을 보내서 이현석 씨를 납치를 하려고 했으나 모두 다 실패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다 잡아다가 죽여 버리고 했지만 이현석 씨 한 사람만은 조희성이가 못해보고 만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그의 수하에서 일하던 두 명의 형사들이 찾아와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이다. 성주님께서 “이경재 검사님이 어찌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신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시자, 두 형사들은 자세히 설명을 했던 것이다.
이경재 검사님은 전국 5개 지방검찰청(서울지검, 의정부지검, 울산지검, 부산지검, 광주지검)에서 수사를 했던 성주님의 사건 서류를 모두 모아놓고 다 읽어보니, 단 한 건도 기소된 사건도 없이 모두 다 검찰에서 무혐의로 끝이 났으며, 이현석 씨는 아주 굉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영생교 승리제단에서 삼천년성의 성주님을 사이비 종교 교주라고 하면서 헌금 사기 등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모두 무혐의로 처리가 되었으며, 고소인들이 무고로 구속이 되었으니, 성주님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아님을 검찰에서 분명하게 확인해 준 셈이다. 그렇다면 성주님을 사이비종교 교주라고 모함한 승리제단은 과연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담당 최 검사의 잘못된 고정관념도 함께 지적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무렵에 성주님을 북한 공작금을 받은 간첩이라는 모함을 받고 은밀히 수사를 받으시는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984년도에 영광 홍농 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박병규라는 사람은 자기 부인과 함께 찾아왔는데, 그 부인의 몸집이 아주 비대한 모습을 보시고 성주님께서 “5천 평이시네!”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한두 달 사이에 2천 평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 분은 전남대학병원에서 당뇨병과 루머치스 관절염, 신장염 등의 합병증으로 더 이상 약물치료로는 어려우니 이제 퇴원을 하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나온 아주 중환자였다. 성주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계속 울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안찰을 받고 첫 성례를 참석하여 성주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데,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온통 향취가 진동하였고, 집에 돌아가서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도 이불 속에서도 온통 향취가 진동하였으며, 길을 걸어가도 향취가 진동하고 약 10일 동안이나 직장에서도 하루 종일 향취 은혜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이처럼 황홀한 은혜 체험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21일을 참석하는 동안에 병이 다 나아버리니, 아예 광주로 이사를 하여 성전에 다니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자기의 집 재산을 다 가져왔다고 하면서 예금통장과 돼지 저금통까지 가지고 와서 성주님께 바치면서 “성주님은 틀림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런 재산을 가지고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받아주세요.” 하고 말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여도 막무가내였다.
그 무렵에는 주로 서울과 부산에서 이사 온 성도님들이 주로 성전에 매일 나오고 있었으며, 광주 본토 사람들은 전혀 없을 때였다. 그런데 그들은 서울과 부산에서 이사를 와서 살면서 직장도 없이 새벽에 거리에 나가서 고물을 수집하는 등, 아주 어렵게 살아가는 영세민들이었다. 성주님께서는 그처럼 고생하는 성도들에게 들어오는 헌금으로 수십 세대를 매월 수십 만 원씩 생활비를 지불하셨던 것이다. 오직 당신 얼굴 보고 살기 위하여 이 멀고 먼 타향에 와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성도님들이 직장이라도 잡아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거두어 주시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소문이 이상하게 번져나가서 성주님이 무슨 북한 공작금이라도 받아서 큰돈을 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누군가 성주님을 북한 공작금을 받아서 지하운동을 하는 빨갱이라고 고발을 하였다. 성주님에 대하여 수사를 담당한 형사는 광주 동부경찰서 대공과 이태주 형사로서 그는 성주님의 어릴 때부터의 행적과 전에 종사했던 종교단체까지 아무도 모르게 암암리에 조사를 하였던 것이다.
성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이미 다 아시고 동부경찰서 대공과로 전화하여 이태주 형사를 직접 불러서 만나시게 되었다. 이 형사는 “제가 조사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리고 “교주님께서는 신도들에게 약 3~40십 만원씩 생활비를 매월 나눠주고 계신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다. 마치 그것이 엄청난 죄라도 된다는 어투였다. 가장 풀리지 않은 의문점은 그 많은 돈이 과연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성주님께서 “예!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거나 은혜를 받고 감사하여 바치는 헌금을 나 혼자 쓰지 않고 여러 어려운 성도님들을 골고루 도와주며 쓰고 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 저촉되는 일이라면 그 법조항을 제시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이태주 형사님은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십 도로 엎드려 절을 하면서 “예! 저희들이 점잖으신 어른께 결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희들은 그 돈의 행방이 가장 궁금하였던 것인데, 이제 모든 의혹이 다 풀렸습니다. 이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다 끝났습니다.” 하고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 담당 형사는 성주님께 “그 동안 몇 가지 문제만 남았고 모든 수사는 다 끝이 났는데, 그 중에서 돈 보따리의 정체가 가장 풀리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이현석 씨가 무슨 사업가도 아니고, 생산 공장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어디서 그렇게 큰돈보따리를 가지고 와서 돈을 푼다는 말인가? 돈 많다는 이병철 씨도 그렇게는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필시 북한 공작금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이현석 씨는 붉은 물은커녕 분홍 물도 안 들었다. 이현석 씨는 틀림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결론이 났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현석 교주님을 사상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전도관 박태선 장로님과 승리제단의 조희성 총재까지도 철저하게 조사를 한 결과 세 분은 모두 다 틀림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결론이 나왔습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성주님을 간첩이라고 고발한 사람은 성주님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여 더욱 당당한 신분을 확인하게 하였으니, 오히려 고마운 사람이라고 성주님께서는 밝게 웃으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성주님께 사이비라고 실언을 하였다고 사과를 하였던 최 모 검사가 가장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기독교는 과연 어떤 종교인가,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는 유독 다른 종파에 대하여 이단 사이비라는 말을 너무나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단인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나님과 이단인 마귀를 함께 섬길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는 같은 신이 아니요, 반대 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반대 신이요, 분쟁의 신 마귀라는 속성을 예수가 스스로 말한 내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마태복음 10: 34~36, 누가복음 12: 51~53)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 동안 거짓 목자들이 예수 마귀의 악한 독초를 먹여가지고 고약한 불치병에 걸려 있다. 소위 양을 치는 목자라는 자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여야지 마귀의 악한 독초를 먹이고 있으니, 그 심령들이 다 완악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영의 양식이든 육신의 양식이든 먹는 대로 숨김없이 겉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악한 독초를 먹으면 그 악한 독이 몸속에 불치의 질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악한 독소가 겉으로 방출되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로운 독초를 먹고 광란을 일으킨다. 예수라는 독초를 먹인 양들은 사나워진 것이다.
예수는 이 세상에 화평케 하고 인류를 구원하려고 온 자가 아니고, 세상에 온갖 분쟁과 전쟁을 일으키고 인류를 멸망케 하려고 온 마귀의 앞잡이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등의 예수가 한때 허울 좋게 내뱉은 소리를 가지고 제법 이 세상에서 가장 화평을 주는 종교인양 사랑을 표방하는 의로운 종교로 겉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가 분쟁의 신이요, 마귀의 화신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은 성경의 기록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화평케 하러 온 줄로 알지 말라. 화평케 하러 온 것이 아니요, 병기를 일으키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아들이 아비와 불화하며 딸이 어미와 불화하며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그 집안 식구리라.’ ----- 마태복음 10:34~36 -----
‘너희는 내가 화평함을 세상에 베풀러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함이니, 이후에는 한 집에 있는 다섯 사람이 분쟁하여 셋이 둘을 치고 둘이 셋을 치대 아비가 아들을 치며 아들이 아비를 치고 어미가 딸을 치며 딸이 어미를 치고 시어미가 며느리를 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치리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2: 51~53-------
예수가 어찌 화평 왕이란 말인가. 예수는 자기 스스로도 말하기를 자기는 이 세상을 화평케 하러 오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했고, 또 그와 같이 분쟁만 일으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라는 신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는 것이다. 그는 공중 신 마귀의 자식이다.(참조: 마태복음 3: 17)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귀의 하나님 아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중세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200만 명이나 인명살상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기독교는 구교와 개신교 사이에 예수의 이름으로 서로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없어져야만 할 가장 못된 마귀요, 이단이라고 싸우다가 종교전쟁까지 일으켜 200만 명이나 암살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살인마집단이라 해야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기에 서구(西歐) 제국의 기독교도가 회교도를 정벌하기 위하여 일으켰던 전쟁으로서 11세기말(1096년)부터 13세기말(1291년)에 이르기까지 전후 7회에 걸쳐 약 700만을 동원하여 거행한 원정(遠征)으로, 중세 최대의 영향을 아구(亞歐) 여러 나라에 끼쳤던 것이다. 그 목적은 성지 팔레스티나, 특히 예수의 묘가 있는 예루살렘을 회교도의 손에서 빼앗아 기독교의 영토로 삼아 순례자의 편리를 꾀하려는 데 있었으나, 또 다른 면으로는 경제적 이해관계 및 이(異)민족 간의 분쟁충돌로서, 전후 200년간에 약 200만 명 이상의 인명을 살상하고 끝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종교전쟁은 1618년 5월 23일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그 후 약 30년간이나 치열하게 계속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종교전쟁은 어느 한 쪽이 승리를 하여 이단의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서로가 크나큰 피해를 면할 수 없고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적당히 화해를 하고 중단한 상태이니,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없어져야 할 못된 이단이라는 주장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천주교나 개신교보다 더 크고 못된 이단 종교는 감히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 사이비 종교에 관해서는 이 세상에 어떤 다른 이단 종교나 사이비 종교는 감히 명함이나 내 놓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처럼 이렇게 엄청나게 살인 만행을 저지른 종교는 유사 이래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오늘날까지 감히 기독교를 능가할 만한 이단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데도 감히 타 종교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자기들의 신앙을 빙자해서 집안 식구들과 불화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신앙은 갖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사람이 더욱 올바른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고 더욱 행복하기 위하여 종교를 갖는 것인데, 그 종교 때문에 인간생활에 행복과 인류의 평화를 파괴한다면 그 종교는 올바른 종교가 아니요, 그러한 종교가 바로 이단 사이비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에 대하여 이단이니, 삼단이니, 사이비니, 오이비니 하고 함부로 말하면 되겠는가? 어불성설이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이 더욱 악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자체가 분쟁의 신이요, 악한 마귀의 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엔 각 성당이나 교회에서 미사나 예배를 보면서 “화평 왕이신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평화를 주려고 오셨다!”고 감언이설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 또한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왔다고 주장하지만, 예수가 오고 난 후부터 이 세상은 오히려 십자군 전쟁, 종교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사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매년 12월 25일이 오면 그날이 예수의 생일이라고 거짓으로 조작을 하여 아기 예수가 화평의 왕으로 탄생했다고 주장을 하면서 혹세무민을 일삼고 있다. 초기 3세기경까지는 예수의 생일을 6월 20일로 지켜오다가 더욱 알려진 날로 편리하게 변경을 한 것이다. 그들은 능은 없고 이처럼 거짓과 속임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족보와 처녀 잉태설에 이르기까지 허위 조작의 명수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이나 예수를 믿으며 잘난 체를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라면 모든 사람을 마귀로 여겨서 어떠한 살육전쟁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자기네들이 주장하는바 그대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못된 이단인 기독교가 걸핏하면 다른 종교에 대하여 이단이니 삼단이니, 사이비니 오이비니 하고 모략을 하면 되겠는가.
기독교가 그처럼 가장 못된 습성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은 모르고 남의 눈에 티를 빼겠다고 덤비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기에서 기독교인들의 포악성을 잘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속성이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이 이러하기 때문에 중세기에 있었던 기독교의 십자군전쟁이나 종교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화평과 영생의 신임에 반하여 예수는 분쟁과 살인마의 마귀 신임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서기 2000년 3월 6일에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이를 시인하고 사죄하는 미사를 집전하였던 일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 것이다. 교황이 이미 시인한 바와 같이, 그들은 2천년 동안 교회의 범죄에 대한 시인과 사과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다 사해주셨다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 순간의 회개나 반성으로 그 죄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개 개인은 한때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 용서해 줄 수는 있지만, 종교는 그렇게 개과천선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이미 스스로 시인한 바와 같이, 그들은 종교라기보다는 살인마 집단이라고 말해야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용서해서 될 일이 아니고 아예 종교의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고 살인마집단이라는 간판을 걸고 역사와 세계 인류 앞에 엎드려 공개적으로 양심선언과 함께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하나님을 바르게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같은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에 더 이상 미혹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기독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그 정도로 자인을 했으면 종교라는 미명 아래 혹세무민을 이제는 그만 하고 종교라는 간판을 내리고 범죄 집단 또는 살인마집단이라고 간판을 바꿔서 다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아니면 이단 사이비 종교라는 유령회사 영업을 계속해서 더 해먹고 싶은가, 대답하라!
지금은 예수나 믿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인가. 성경에서도 이미 지나간 시대의 예수가 아닌 말세에 강림하실 구세주 새하나님을 집중 예언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어서 속히 이 땅에 강림하신 구세주 새하나님을 영접하여 다시는 사망과 애통이 없는 영생의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역군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태선 하나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나 종파에 대하여 유독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고, 또는 사이비니, 오이비니 하면서 유별나게도 잘난 체를 하고 유난을 떠는 습관이 있다. 불교나 다른 종교의 신도들은 그렇지가 않다. 이는 목사들이 그렇게 교육을 잘못 시켜놨기 때문이다. 선량한 양과 같은 사람들을 독초를 먹여서 천박하고 사나운 무식한 사람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단임이 드러난 셈인데, 그 중에서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대적한 집단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저지른 만행 중에는 우리 국내에서 한국 기독교가 저지른 사건도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을 한 페이지 남겨놓고 말았던 것이다. 기독교가 적그리스도인 예수의 신을 받은 이단의 집단인데, 오히려 하나님의 줄기를 “마귀다, 이단이다!”라고 핍박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과 마귀의 신은 서로 상대적인 반대 신이기 때문이다. 간계한 마귀는 누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을 벌써 알아보고 대적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은 그 동안 과거에 전도관 박태선 장로님에 대하여 한국 기독교 11개 교파 교권주의자들이 합세하여 교인들을 앞세워 이단이다, 삼단이다, 온갖 핍박을 다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생각을 해보라! 이단(마귀)이 상대방을 이단(마귀)이라고 주장을 하면 반대로 상대방은 과연 어떤 존재이겠는가. 바로 하나님의 줄기가 아니겠는가. 마귀는 하나님을 마귀라 하는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은 이 땅에 오신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이었다. 그들은 소위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자들인데, 정작 그들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니, 마귀라고 하면서 발악하고 대적하였던 것이니, 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인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이단인데, 전도관 박태선 장로님을 이단으로 단죄하려고 발악을 하였으니, 이거야말로 한국판 적반하장(賊反荷杖)인 것이다. 도둑놈이 몽둥이 들고 길거리에서 큰소리치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요,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던 한국의 수치인 것이다. 그런데 낯짝 두껍게 이런 뻔뻔스런 일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국제적인 수치거리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아직도 잘난 체를 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국가적인 수치라고 본다.
자유당 때부터 한국 기독교 11개 교파가 총동원되어 박태선 장로님을 이단이라고 할 때에 총회에서 각 교회에다 공문을 보내어 박태선 장로가 이단이라는 증거를 ‘박태선 장로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린다고 하니 이단이다. 그러므로 각 교회에서는 박 장로를 단에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서,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 이하에도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으리라.’라고 예언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여러 부분에 이슬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신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를 내리는 박 장로님이 왜 이단인가?
또한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물 붓듯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늙은 자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 자들은 이상함을 볼 것이요, 또 그때에 내가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고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요엘서 2: 28~30)고 함과 같이, 하나님의 신을 이슬 같은 은혜로 피와 불과 연기 기둥과 같이 임하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성신을 내리지 못하는 기독교가 이단이지, 이슬 같은 하나님의 성신을 내리는 박태선 장로님이 이단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 세상에서 가장 득세하는 기성교회의 세력으로부터 가장 이단으로 지목받아 핍박을 받는 줄기에서 이긴자 구세주 새하나님이 나오시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것은 이긴자 구세주의 징표요,(호세야 14: 5~7) 성경의 예언대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지 못하는 기독교야말로 마귀의 줄기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때 한국 기독교 총회에서 당시 전도관의 박 장로님에 대하여 ‘박태선 장로가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린다고 하니 이단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오히려 이단으로 몰아 온갖 핍박과 박해를 가했던 한국 기독교 11개 교파는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한 이단이 분명한 것이다.
성경에 수천 년 전부터 예언 명시한 그대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성신을 내리는 주인공이야말로 성경에서 예언한 틀림없는 하나님 성신의 줄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지 못하는 기독교 전체가 이단이지, 이슬 은혜를 내리는 줄기가 이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슬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신이라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거늘, 박태선 장로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린다고 하니 이단이라고 주장함은 그들이 스스로 이단임을 극명하게 드러낸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증거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도관 초창기에 기독교 11개 교파가 박태선 장로를 대법원에서 교리재판을 할 때, 한국 기독교 전체를 대표하여 당시 유호준 목사(신학박사)가 박태선 장로가 이단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내용이 “박태선 장로가 아무리 봐도 사람인데, 하나님도 사람의 죄를 못 사하시는데 어찌 박 장로가 사람이 되어 안찰을 하여 사람의 죄를 사한다고 하니 참람하도다. 그러므로 박 장로는 이단입니다.”라고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박태선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박사님은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어보셨습니까? 요한복음 20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보세요. 성신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정하면 정하여진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성신을 받았으므로 사람의 죄를 사할 수가 있지만, 박사님은 성신을 받지 못했으니 사람의 죄를 사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재판장이 성경책을 대령하라 하였으며, 유호준 박사에게 직접 읽어보라 하였던 것이다. 유호준 신학박사는 성경을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이날은 일헤 중 첫 날이라,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예수-이르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하시고,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는지라, 예수- 또 가라사대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기운을 불며 가라사대 너희는 성신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정하면 정하여지리라.”
여기까지 읽어가던 유호준 박사는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즉시 얼굴을 싸매고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교리재판의 결론인 것이다. 박태선 장로가 이단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 전체가 이단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켰던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은 이 땅에 오신 태초의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결국 자기네가 믿는 하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는데, 그 하나님을 이단이라고 발악하며 대적하고 만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다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하나님의 사람을 해치려고 극악으로 대적하는 자들에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9번이나 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대적하려던 거물급 인사가 국내에만 해도 29명이나 되었던 것이니,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기붕 씨 부인 박 마리아, 신익희 씨, 조병옥 박사 등이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우두머리 격인 박 마리아는 남편 이기붕 부통령의 정치적인 입지를 이용하여, 박태선 장로님이 자기를 안찰하실 때에 음란죄를 지적한 것에 대한 앙심으로 박 장로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서 법적으로 사형을 시키려다가 5.16군사 혁명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박태선 장로님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내가 박 마리아의 그 가문의 씨를 말려버리겠노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박태선 장로님이 “박 마리아에게 그리하지 마옵소서! 제가 핍박을 당하는 것은 예로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기성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아온 것처럼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리하오니 그에게 그리하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성경에 기록한 대로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빌되 복을 빌고 재앙을 빌지 말라.’(로마서 12: 14~21)고 한 대로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비는 것은 잘하는 도다! 그러나 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너는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박 마리아와 이기붕은 결국 그의 아들 이강석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이강석은 스스로 자기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문의 혈통이 끊기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가문의 씨를 말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야 말았던 것이다.
또한 신익희 씨는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기독교인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박태선 장로를 제거해 버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던 것이다.그 무렵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주에 인천에서 신익희가 기독교의 대표목사들과 함께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우선 신앙촌부터 박살을 내고 박태선 장로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로 묵계를 하였다는데, 내가 감히 누구인 줄도 모르고 그러는 거야! 대항하면 여지없이 박살이 나고 말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당시에 신익희 씨의 인기는 대단했으며, 그대로라면 신익희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선거일 하루 앞두고 호남 유세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심장마비로 급사를 하고 말았으니, 그도 역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말았다.
또한 조병옥 씨는 박태선 장로님이 축복하신 생수를 박 장로 손 씻은 물이니, 발 씻은 물이니 하며 모함을 하며 대적하였던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조병옥 박사는 날마다 자기의 손과 발을 씻어서 그 물을 날마다 복용을 하는가보다. 자기가 그렇지 않으면 어찌 다른 사람들이 손 씻고 발 씻은 물을 먹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발 씻고 손 씻은 물을 먹으라고 주는 자가 어디 있으며 그 물을 받아먹는 자는 또 어디 있겠는가?”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성령의 역사를 대적하는 자는 절대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거야! 조병옥이 내가 누구라는 걸 모르고 그러는 거야! 나를 대항해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내가 그에게 떨어지면 여지없이 박살이 나고 말아! 이번에 조병옥 박사가 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나가지만, 들어올 때는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에 나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객사를 하여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비참한 말로를 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도 한국의 모든 기독교가 다 종교 달러의 원조를 받아서 일어났으나,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님은 단 원 달러도 원조를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신앙촌 건설하다가 국내의 시멘트가 품절이 되어 일본에다 수입요청을 해놓고 계실 때, 케네디는 미8군에 지시하여 8톤 트럭 12대에 시멘트를 가득가득 싣고 신앙촌으로 들어와서 도와드리겠다고 하였으나 정중히 사양을 하셨으며, 그 후로도 수차례 종교 달러를 원조하겠다고 하여도 사양을 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케네디는 박태선 장로님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그 즉시 케네디는 괴한의 총탄에 저격당하여 비명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모든 기독교가 다 미국의 종교달러의 원조를 받아서 성장하였지만, 전도관(박태선 장로)은 단 원 달러도 원조 받은 일이 없으며, 못대가리 하나 원조 받은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하여 이단이다, 사이비다 하고 함부로 중상모략을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기독교에서 가장 절대적으로 믿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이단이라고 명시된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하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신봉하는 성경에는 기독교가 이단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기독교가 비난하는 다른 종교는 이단이라고 성경에 기록이 올라 있지도 않은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단이라고 다음과 같이 아주 당당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사람은 염병 같은 놈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요란케 하는 자인데 나사렛당의 괴수라. 저가 성전을 더럽게 하고자 하기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각하가 친히 통촉하시면 곧 우리가 송사하는 모든 일을 알리이다. 유대인들이 좇아 화답하여 가라대 이 말이 옳다하는지라.’ ---- 사도행전 24: 5∼9 ----
이는 당시에 예수의 사도 바울을 붙잡아서 당시 법관에게 넘겨 송사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와 같이 2천 년 전에 그 당시에도 나사렛 당 예수교는 이단이라고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될 정도라면 기독교는 그때부터 이미 확실하게 강력한 이단으로 자리매김을 해놓았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였는데, 당시에 예수라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가 구세주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가 당장에 이단으로 인식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신의 은혜를 받지도 못할뿐더러 예수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성령의 은혜를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과 반대가 되는 대장 마귀 예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은혜를 받았다, 성신 받았다 하는 것은 모두 마귀 악신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교회는 절대로 구원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 박태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기성교회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는 것이다. 만약에 기성교회에 구원이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라고 외치셨던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구세주 새하나님이 오시면 기성교회는 폐하게 되고 새하나님께 나아와야만 구원을 받게 될 것을 강하게 강조하신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줄기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소굴에서 어서 속히 탈퇴하여 나와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똥통에나 버려라!
내가 예수가 가짜 구세주이며 성경은 엉터리 거짓말 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어린 중학교 1학년 때이다. 나는 그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베스트셀러 1위가 성경책이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날 즉시 읍내 서점에서 성경책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신약성경 첫머리 마태복음 1장을 읽어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1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마리아에게서 나시니라.’(마 1: 1∼16) 계속해서 읽어내려 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성례하기 전에 성신으로 잉태함이 되었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 18∼19)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족보를 장황하게 나열해 놓고는 또 다시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니,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순인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을 다 읽고 나서…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이것이 무슨 놈의 성경책이란 말인가? 당장에 의혹이 생겼다. 첫째, 예수는 이 족보에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며, 다만 의붓아버지인 요셉의 족보에 예수의 이름을 삽입해 놓은 것에 불과하니, 예수는 절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니, 이 족보는 더욱 가짜가 아닌가? 반대로 이 족보가 사실이라면 처녀 잉태설은 거짓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경우는 서로 상충되는 모순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예수의 족보설과 처녀 잉태설 두 가지가 모두 다 허위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만약에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오히려 “나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도 없고 족보도 없노라!” 하고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허위로 족보를 조작하기까지 한 내막은 혈통 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구세주가 나오게 되어 있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처녀 잉태설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여 생육하고 번성케 하신 하나님의 생명창조의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단설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즉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이 성경책은 거짓말 책이요, 엉터리다. 아무튼 예수는 혈통 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가짜 구세주다.”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시간은 성경책을 읽기 시작한 지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처럼 어린 중학교 1학년 때 성경책을 접하여 읽은 지 불과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데, 아직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구세주가 나오리라고 예언이 된 고로, 예수는 처녀 잉태설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가짜 족보라도 조작을 하여 자기가 혈통 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구세주라는 증거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랄 만한 사실은 예수의 족보가 누가복음에 중복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두 군데 제시된 족보에 기록된 예수의 5대조 할아버지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와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족보에 기록된 예수의 5대조까지의 할아버지들의 이름이 각각 서로 다르다. 그 내용은 다음의 표와 같다. 아래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에 예수의 5대조까지의 할아버지 이름이 각각 서로 다르니, 참으로 해괴한 족보도 다 있다.
조상별
성경출처
1대조
2대조
3대조
4대조
5대조
마태복음
야곱
맛단
엘느앗살
엘니웃
아킴
누가복음
헬니
맛닷
레위
멜기
얀나
세상에는 진돗개나 도사견과 같은 개들도 족보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개들의 족보도 이보다는 훌륭하다. 개들도 할아버지 개가 두 마리씩 되지는 않는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는 이를 헷갈리게 해서 잘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제시하는 족보의 순서를 정반대로 기록하여 잘 분간하지 못하게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자세히 살펴서 이처럼 엉터리임을 여지없이 밝혀내고 말았다. 그리고 신약성경 4복음서 중에서 복음서의 기록이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록된 내용들이 이 외에도 많다.
세상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 가장 정확하고 엄격하게 신뢰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 소위 구세주(?)라는 예수의 족보가 이런 정도 엉터리라면 다른 내용은 얼마나 엉터리이겠는가. 가히 짐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2%만 있고 98%는 마귀의 글이다. 이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것은 마귀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요, 성경은 곧 마귀의 글이므로 마경(魔經)이라 해야 옳은 것이다.
그런데 이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작전 전략서(戰略書)에 하나님께서 2%정도의 암호문을 마귀 모르게 삽입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이 세상에 구세주 새하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마귀가 모르게 암호문으로 삽입해 놓은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이며 구세주라는 기록은 모두 마귀가 기록한 글이다. 그 동안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장난에 놀아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처녀 잉태설과 족보의 조작으로 인하여 자기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세주라는 사기극에 넘어가 가짜 구세주 예수를 믿고 찬양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행위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을 일 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경전으로 믿고 순종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와 같은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본을 받고 순종을 하면 저주를 받는 불행한 자가 되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성경책을 똥통에 던져버리는 자는 하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워 의인으로 찬양하는 인물들마다 어린 자녀들의 교육상으로도 본을 받아서는 안 되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포악하고 더러운 음란한 개자식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본을 받을 만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성경을 읽으면 오히려 해독이 되는 추악한 인물들을 가장 의로운 인물이라고 추앙하고 칭송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경이 도대체 얼마나 훌륭하고 거룩한 글인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성경이 얼마나 거룩하고 훌륭한 글인가를 알아보려면, 성경에 의인이라고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 중에서 가장 거물급부터 그들의 인물됨을 한번 분석해 보아야 한다.
첫 번째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자기 본처 사라가 있는 가운데,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첩으로 데리고 살았으니, 매일 음란한 창녀와 기생집에 가서 음란죄를 짓는 것과 같다. 이는 여지없는 음란한 개새끼다.(창세기 16: 1∼16) 소위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이 정도의 개자식인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그의 조카인 롯도 역시 신약성경 베드로후서 2장 7절에 ‘다만 의로운 롯을 건지심은 그가 악인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야 깊이 근심함이니 대개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야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마음을 상하는지라.’라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의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처럼 의로운 의인이라고 하는 롯의 행실이 얼마나 의로운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소위 성경상의 의인이라는 롯은 소돔 고모라 성에서 유황불로 멸망당하기 전에 두 딸과 함께 도망하여 소알이라는 산언덕 토굴 속에서 숨어살면서, 두 딸과 밤마다 교대로 교미(동침)를 하여 자식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자식은 도대체 롯의 아들인가, 롯의 손자인가? 자기가 낳았으니, 아들이면서 또한 딸이 낳았으니 외손자도 된다는 말인가? 그런데 자기가 낳았으니 롯의 친손자도 된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롯의 친손자인가 롯의 외손자인가? 매우 헷갈린다. 이런 나일론 자식이 또 어디 있는가. 참으로 한심하고 지저분한 의인도 다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기록한 성경 구절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경에 기록된 의인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음란한 죄인들이다.
‘그 밤에 저희가 아비를 취케 하고 큰딸이 들어가 동침하나 아비는 그 딸의 누었다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더니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더러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아버지와 함께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취케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라. 우리가 아버지로 좇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이 밤에도 저희가 아비를 취케 하고 작은 딸이 동침하나 아비는 딸의 누었다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롯의 두 딸이 아비로 좇아 잉태하여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러라.’--- 창세기 19: 33∼38 ---
그러면 그와 같은 성경의 기록을 한번 자세히 읽어보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글은 신앙인에게는 물론이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훈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글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소위 기독교의 성경이다. 그러면 과연 그토록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도록 술이 취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가 있겠는가. 또 그렇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이는 자라나는 자녀들의 교육상으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런가 하면, 예수의 조상이라고 기록된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와 간통을 하여 자식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며느리 다말이 자기 시동생 셀나가 자라고 있으나 아직 남자 구실을 못하니 창녀로 변복하여 시아버지와 간통을 하여 아이를 배어 자식을 낳았으니,(창세기 38: 12∼19) 이 또한 헷갈리는 나일론 자식을 낳은 소위 위대한 예수의 조상들이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음란한 개잡놈들을 의인이라고 미화시켜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나 자기의 근친 가족이라도 변장을 하여 속이고 간통을 하기만 하면 죄가 되지 않고 의로운 일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런 추잡한 잡소리를 기록해놓았단 말인가. 예수의 조상들은 가장 더러운 음란의 줄기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본받아 자기 가족의 누구에게라도 술이 취하게 하여놓고 동침을 하여 자식을 낳는다면 롯과 같은 거룩하고 깨끗한 의인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또한 그러한 의인을 본받아야 하는가. 천하의 더럽고 너절한 개 같은 짓이다. 그리고 근친 중에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얼굴을 가리고 속여서 간통을 저지르면 죄가 안 되는가. 그리고 모르고 지었다고만 하면 죄가 안 되는가. 모르고 지은 죄라도 죄는 분명히 죄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음란죄를 짓는 자는 아예 용서 없이 죽여 버리라고 엄명하셨다. 오늘날 인간의 몸속에 피를 직접 더럽히는 가장 더러운 죄가 음란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가장 미워하는 죄가 바로 음란죄인 것이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그 간부와 음부를 용서 없이 죽이라.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면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으니, 둘 다 용서 없이 죽이라. 그 죄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면 둘 다 용서 없이 죽이라. 저희가 난륜하였으니, 그 죄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 남자가 남자와 동침하기를 여인과 동침하듯 하면 둘 다 가증한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 없이 죽이라. 그 죄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취하면 악행이니 세 사람을 불살아 너희 중에 악행을 금하라.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용서 없이 죽이고 그 짐승도 죽이고 여자가 짐승에게 가서 교합하면 여자와 짐승을 용서 없이 죽이라. 그 죄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 자매 곧 동부 이모나 동모 이부의 딸을 취하여 피차 하체를 범하면 부끄러운 일이니 저희가 백성 앞에서 끊어질 것이며, 저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죄를 당하리라. 누구든지 경도하는 여인과 동침할 때에 여인이 거절치 아니하면 그 경도를 범하였으니, 두 사람이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 레위기 20: 10∼18 -----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법이 이토록 엄중하니, 성경에서 의인이라는 롯과 그 딸들이나, 유다(시아버지)와 그 며느리 다말, 그리고 다윗이나,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예수의 사도 바울이나, 소위 구세주라고 하는 예수까지도 모두 당장에 돌로 쳐서 때려 죽여야만 하는 천하의 개잡놈들이 아닌가.(참조, 신명기 22: 12∼30) 그런데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은 음란죄를 지은 자들은 모두 다 죽이라고 하였는데, 반면에 가장 살인을 많이 하고 음란죄를 많이 지은 자들을 가장 위대한 위인이요, 가장 깨끗한 의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리에도 맞지 않는 이론이며 참으로 개 같이 더러운 성경인 것이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인가? 하나님이 음란죄를 지은 자를 용서 없이 죽이라는 율법이 맞는 기록인가? 아니면 가장 많이 살인하고 음란한 개잡놈들이 의인이요, 위대한 왕이라고 추앙하는 기록이 맞는 것인가? 이와 같이 성경은 크게 모순이 된 글이요, 잘못된 글이 분명하다.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으며, 신성불가침이라는 성경이 왜 이런 모순투성이인가? 이러한 성경을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성경에 기록된 의인들을 다시금 계속해서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자기 딸들과 음란죄를 지어 나일론 자식을 낳은 롯이 아브라함보다는 50배나 더 더러운 개새끼다.(창세기 19: 30∼38) 유다가 자기 며느리와 간통을 한 일은 너무나 추하여 거론할 가치도 없다. 그리고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하는 야곱은 또 어떠한가. 그는 부인이 네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아들을 12명이나 낳았으니, 이는 또한 롯에 비하면 100배나 더 더러운 개새끼다.(창세기 29: 18∼35) (참조, 창세기 30: 1∼24)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위대한 왕으로 추앙하는 다윗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는 자기 부인에게서 아들 솔로몬을 낳은 것이 아니라, 충신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낳았으니, 그 놈은 번지수가 헷갈려서 엉뚱한 번지에다 일을 저질렀다고나 할까, 요즈음 말로하면 가정 파괴범이요, 그야말로 아주 골치 아프게 난잡한 놈이다. 다윗은 밤에 몰래 남의 지붕위로 돌아다니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집 뒤꼍에서 발가벗고 나체로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며 음욕이 동해 침을 질질 흘리다가 신하들에게 잡아오라고 하여, 끌려온 여인을 그 자리에서 당장 겁탈을 하여 음란죄를 지었다. 천하에 때려죽일 개잡놈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 여인이 아이를 배니, 그것을 그의 남편 우리아에게 덮어씌우려고 하였으나 되지 않으니, 그의 남편 우리아를 치열한 전쟁터에 몰아넣고 뒤에서 죽여 버리고, 그 아내를 빼앗아 살면서 솔로몬을 낳았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저분한 혈통에서 나온 놈이 솔로몬이다.
‘우리아의 처가 그 남편 우리아가 죽음을 듣고 위하여 통곡하더라. 그 슬퍼하는 일을 마친 후에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궁으로 부르니, 저가 곧 처가 되어 아들을 낳았으나, 그러나 다윗의 소위를 여호와 ―악하게 여기시더라.’ ---- 사무엘하서 11: 26∼27 ----
다윗은 이런 식으로 모아들인 첩이 많았으니, ‘왕이 여인 열을 명하여 궁을 지키게 하니 저희는 곧 첩이라’(삼하15: 17절)라고 함과 같이, 다윗의 첩은 10명이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대 왕이 곧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임금을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맡기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집을 네게 주대 만일 이것을 적게 여기면 내가 네게 이것 저 것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없이 여기고 그 눈앞에서 악을 행하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곧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네 처를 삼음으로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 사무엘하서 12: 7∼10 ----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지저분한 혈통으로 나온 솔로몬을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고 성경에서는 최고로 위대하고 거룩한 인물로 칭송하고 있다. 성경은 왜 이토록 지저분한 혈통에서 나온 개잡놈들을 모두 위대한 의인들이라고 추앙하고 있는지, 너무나 더럽고 추잡한 성경도 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다윗과 같이 이처럼 악독한 놈은 없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행할 수 없는 악을 행한 자요, 살인마요, 더러운 개잡놈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야곱보다도 만 배나 더 더러운 개새끼다.(사무엘하 11: 1∼27, 20: 1∼10) 모세의 십계명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에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삼상18: 7)라고 기록하면서, 다윗을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분명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모세의 십계명을 어기고 최고로 음란죄를 많이 짓고 살인죄를 많이 저지른 음란한 개잡놈이요, 살인마 죄인괴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윗이 굉장히 많은 인명을 살해하여 죽이고 수많은 왕들을 쳐서 죽이고 성을 모두 불사르고 하여 굉장히 용맹스러운 장수요, 위대한 왕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기독교에서는 지금까지도 다윗을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미화하며 자랑하고 있다.
다윗이 아내를 빼앗고 죽여 버린 우리아와 같은 인물은 오히려 의인이라고 칭송할 만한 의로운 인물인데, 그러한 의로운 자는 다윗의 명을 어겼으니, 치열한 전쟁터에 몰아넣어서 뒤에서 쏴서 죽여 버린 것이 잘했다고 기독교인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성경을 읽고 있단 말인가.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묘사할 만한 인물은 모두 악한 자로 몰아버리고, 다윗과 같은 음란하고 포악무도한 자는 의인이라고 높이 칭송하고 추앙하니, 이것이 오늘날 소위 기독교의 거룩한(?) 성경이다.
도대체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칭송할 만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어서 하필이면 그토록 추악한 놈들만을 대표적으로 높이 추켜세우고 있단 말인가. 한심한 성경도 다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답변하라! 위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아브라함과 롯과 다윗과 같은 인물들이 행한 일들이 사실인가, 아닌가, 말하라!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옳은가 옳지 않는가, 분명하게 대답해 보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였다고 하였으나, 다윗과 같은 자의 불순종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축복을 받지 못하고 훗날 나라까지 잃고 2천 년 동안이나 유리방황하며 설움을 받는 비참한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수천 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갖은 음란하고 더러운 짓을 다하는 자였다. 그런데 이 솔로몬 왕도 역시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성경에 미화시켜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그를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들이 즐겨 읽고 있는 시편의 글 중에 다윗의 시와 솔로몬의 시를 즐겨 읽고 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가서’를 신령한 영시라고 하여 여인의 육체와 음란한 장면을 성경에 기록해 놓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즐겨 읽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의 심령이 얼마나 썩어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는 왜 이렇게 악한 살인마나 음란한 개새끼들만 골라서 의인들이라고 숭상을 하는가? 소위 거룩한 구세주 예수의 조상 중에는 참으로 기가 막힌 더러운 개새끼와 음란한 기생 라합도 끼어 있으며, 예수의 조상인 유다는 자기 며느리인 다말과 간통을 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이 또한 상당히 헷갈리게 하는 나일론 자식들이 아닌가.(창세기 38: 12∼30)
그런데 이런 것은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니다. 신약 성경에 들어가게 되면 참으로 더 개판이다. 이는 곧 기독교의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구약 성경에서 많은 것을 배워 가지고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 고단수로 놀아나는 작태를 엿볼 수가 있다. 이것이 오늘날 소위 기독교의 신성불가침인 거룩한 경전(?)이다. 그리고 성경(신약전서)에서 예수가 구세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2천 년 전에 소위 예수가 살아 있던 그 시절에 예수를 구세주라고 따랐던 당시의 행적을 예수가 죽은 지 수세기 후에 구전을 통하여 내려오는 전설과 외경의 기록 중에서 예수의 좋은 점만 골라서 미화시키고 과장하여 기록해놓은 책이다.
그런데, 그 후 예수는 죽고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2천년 동안 영생을 얻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고 예수가 구세주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예수가 구세주라고 믿고 또 주장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둔하고 어리석은 짓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성경과 기독교의 과거 역사가 이와 같으니, 이 모든 추잡한 마귀 세상의 어둠의 과거사를 이제는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그 중에 예수라는 우상을 완전히 박살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성경을 제법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수준은 참으로 미개인이요, 야만인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유치한 수준의 인물들을 숭배하고 본받으며 섬기라는 말인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적어도 성경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은 지우개로 지우고 나서 예수를 구세주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구세주가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위장하기 위하여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의붓아버지 요셉의 족보를 예수의 족보라고 위장한 기록(마태복음 1: 25, 누가복음 3: 23∼38)과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남겼다는 최후의 한마디다.
‘오후 세 시 즈음에 예수-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니 엘니 라마 사박다니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함이라.’ ---- 마태복음 27: 46 ----
2000년 전에 유대 땅 나사렛 예수! 그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면 성경에 이와 같은 기록이 왜 존재하는가. 이와 같은 기록들을 모두 지우개로 지우고 나서 예수가 구세주라고 주장한다면 몰라도, 이러한 기록이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예수를 구세주라고 기록한 성서 기자들이야말로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는 자기가 구세주라고 하면서도 제자들이 말세에 어떠한 징조가 있겠느냐고 질문을 할 때에, 그는 ‘다만 그 날과 그 시는 아는 사람이 없고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니, 홍수 전에 사람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기를 노아가 배에 들어가던 날까지 하였으되 홍수가 이르러 그 무리를 다 멸할 줄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 3, 36∼39) 하였으니, 이 또한 성경에서 지우개로 지워야만 할 것이다.
구세주라면 어찌 말세가 언제인지,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도 이렇게나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예수의 말을 믿었다가는 모두 다 천치바보들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어느 시대나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짓고 살지 않은 시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사는 모습이 말세의 징조가 될 수가 없다.
말세의 징조는 노아와 같은 의인이 나타나서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원하시게 된다. 그리고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다고 하였으니, 감람나무 새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만민에게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며 하나님의 성신을 부어주시는 것이 말세의 징조이다. 그리고 예수를 구세주라고 주장하려면 예수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주장한 기록들을 모두 다 지우개로 지워야만 할 것이다. 예수를 믿어서 2천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영생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던 것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어도 그 후에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니, 이 양식을 먹는 자마다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리라. 이 양식은 세상 생명을 위한 양식이라.’----- 요한복음 6: 49~5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는 것을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 요한복음 8: 5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요한복음 11: 25 ----
이와 같이 예수는 자기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호언장담하였으나, 이 예언들이 모두 다 부도수표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가 한 말 중에서 구세주라고 인정할 만한 훌륭한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가 한 말은 모두가 다 거짓말이었으니, 이런 자가 어찌 구세주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동안 예수의 예언은 모두가 다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앞으로 성경은 새로 기록해야만 하는 것이며, 새로 쓰는 성경에는 예수라는 이름 자체를 아예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아주 잘못돼 있는 것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기도를 할 때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추악한 귀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주시겠는가? 예수는 한낱 죽은 서양 귀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2천년이 되어도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예수가 중간에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으려면 예수부터 내동댕이치고 나서 하나님을 믿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 세상을 화평케 하고 인류를 구원하려고 온 자가 아니고, 세상에 온갖 분쟁과 전쟁을 일으키고 인류를 멸망케 하려고 온 마귀의 앞잡이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라! 기독교는 중세기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200만 명이나 인명을 살해하였으며, 그 후 기독교는 구교와 개신교 간에 서로 이단이라고 주장하며 종교전쟁을 일으켜서 또 다시 200만 명이나 학살을 하였던 것이다.
유사 이래 어느 종교가 이처럼 많은 사람을 살인하고 원수를 맺으며 세상을 소란케 한 종교가 있었는가. 이러한 기독교를 어찌 참 종교라고 추앙할 수 있겠는가. 이는 종교라는 미명으로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이단, 사이비 종교요, 살인마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땅에 이러한 기독교를 믿는 민족과 나라는 결국 서로 싸우다가 종래는 비참하게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으려면 어서 속히 이와 같은 기독교부터 버리고 예수 믿는 것을 이제는 그만 둬야만 하는 것이다.
기약이 이르러 말세에 진짜 구세주가 출현하시면 그 동안 세상에서 2천년 동안 구세주라고 행세하던 예수에 대한 평가를 분명하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심판주가 되시는 구세주가 오시면 가짜 구세주와 마귀를 심판하여 멸하시기 때문이다. 진짜 구세주가 오시면 진짜와 가짜가 백일하에 그대로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구세주 왕으로 추앙을 받는 것도 구세주(실로)가 임하실 때까지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나 믿는 시대가 아니다. 아직까지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미개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독교는 이미 하나의 종교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차제에 여기서 한마디 더 말하겠다. 성경에 기록된 말세의 재앙이나 모든 예언서에 기록된 인류의 멸망과 같은 것들이 앞으로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거나 주장하는 자들은 여지없는 마귀의 앞잡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세주 새하나님은 성경이나 예언서에 기록된 말세의 재앙을 중단시키고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도록 거짓말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경전의 예언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게 하여 거짓말이 되도록 하시는 분이 진정한 구세주가 아니겠는가. 이제 새 하늘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엉터리 성경을 읽고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는가, 저주를 받겠는가? 천치바보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성경을 읽고도 예수를 믿는다면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말세에 오직 새하나님만을 믿고 섬겨야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십계명에 예수나 다른 존재에게 찬양을 하고 섬기고 경배를 해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왕의 왕도 만주의 주도 예수가 아니고 새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라고 하였으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곧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이시지 예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구세주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와 같은 성경말씀을 부정하고, 느닷없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믿으면서 만왕의 왕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예수에게 경배하고 찬양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0여 년 전에 위에 인용한 성경 말씀과 같이, ‘만왕의 왕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예수가 아니다’라고 예수가 만왕의 왕이 아니라고 여지없이 쳐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만왕의 왕이라고 예수에게 경배하고 찬양하니, 이는 분명히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40일을 금식한 후에 마귀가 시험할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예수—닐아사대 또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다 하신대 마귀가 또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라대 만일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 하니, 이에 예수-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홀로 그를 섬기라 하였다 하시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는 이르러 수종들더라.’ ---- 마태복음 4장 7∼11절 ----
예수는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홀로 주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했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도 말하기를 홀로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했다고 말한 바와 같이, 십계명에도 오직 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예수에게 경배하거나 섬기는 행위는 우상숭배에 불과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요, 사탄의 장난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가장 큰 오류는 예수를 구세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성경에서 예언한 말세의 주인공 구세주가 출현하시면 이 세상의 모든 경전과 예언서가 필요가 없으니, 이 엉터리 성경은 폐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달걀이 어미닭의 품속에서 21일이 되면 병아리가 부화가 되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달걀껍질은 거기서 나온 병아리가 노란 발로 바삭바삭 밟아서 다 깨트려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새하나님이 출현하셨는데 성경도 새 성경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새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새 성경이 나와야 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옛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름다운 지상천국 유토피아가 건설되는 것이다.
찬양을 성주께!
태초의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6천년의 기약이 차서 영원한 안식에 가실 때가 될 무렵에 “찬양을 성주께 드리어라!”라고 하셨으니, 앞으로는 태초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말고 새하나님께 찬양을 하고 섬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하나님께 새 노래로써 찬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태초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말세에 기약이 이르러 오시는 새하나님의 모습도 분명하게 사람의 모습이요, 사람의 몸으로 오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고 유령처럼 나타난다면, 그런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도깨비요, 마귀새끼에 불과한 것이다.
말세에 기약이 이르러 나타나시는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신다고 한 그대로, 우리의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홀로 새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 것이다. 기약이 이르러 6천년이 지나고 7천년 시대가 되면 태초의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시고, 새하나님이 오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새하나님은 홀로 하나만 되시는 삼위일체 완성자 구세주가 되어 오시는 분이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를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시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 딤전 6: 15∼16 -----
오직 죽지 아니하는 존재는 구세주 새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 것이다. 태초의 하나님도 영생의 존재가 아니시며, 제칠 일째 되는 날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 함은, 곧 죽으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태초의 하나님도 마귀에게 패하신 고로 그 생명의 피의 한계가 6천년까지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죽은 자는 구세주가 아니다. 그러므로 2천 년 전에 이미 죽은 예수는 더군다나 위에 인용한 성경 말씀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죽지 아니하고 영생주시는 구세주는 이미 죽은 예수가 아니라, 오늘날 말세에 출현하신 새하나님이신 성주님인 것이다.
에덴동산의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의 3수는 본래부터 존재하였으며, 감추었던 한 씨의 하나님은 따로 존재하셨던 것이다. 이 중에서 단 한 분만 없어도 오늘날 인류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세 씨는 감추었던 한 씨의 하나님과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과 아담인 것이다.
해와는 씨가 아니지만, 이 해와가 없이는 또한 인류가 태어나고 번식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세에 오시는 새하나님께만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신다고 하였으니, 이 세상에서 찬송을 해야 할 분은 새하나님 한 분외에는 없는 것이다. 예수나 다른 어떤 존재도 찬양과 영광을 받을 존재는 없는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이 우리 성주님을 처음 만나 뵈올 때 대부분 엎드려서 경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도 그때부터 성주님을 뵈올 때마다 공식적으로 경배를 드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주님께 예를 갖추어서 행하는 의식을 보고, 처음에 오시는 분들은 좀 어색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간혹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금도 어색하거나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세 살 난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그 분이 높고 거룩하신 분이라면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도 그 앞에 엎드려서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항차 그 어린아이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러 오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 앞에 경배를 드리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성주님이 어린 세 살 적에 성모님께서 마루에서 아이를 안고 계실 때에 어느 삿갓을 쓴 도사 한 분이 찾아와서 하는 말씀이 “그 아이가 금년 들어 몇 살입니까?” 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예, 세 살입니다.”
“그러면 이 댁의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고성이씨 입니다.”
“그 아이의 생년월일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아기의 생일은 음력으로 8월 초닷새 날 아침 9시입니다.”
그러자 그 삿갓을 쓴 도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씨 가문에 큰 인물이 나셨습니다! 왕이 나셨도다! 그 아이가 장성하거든 이름을 판석이라고 지으시오!”
그 도사는 그와 같이 말씀을 하고 나서, 마당에 엎드려서 경배를 하고 떠났던 것이다. 그와 같이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그 어린아이가 말세에 이 세상에 오시는 새하나님이었던 것이다. 그 삿갓을 쓴 도사님은 바로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이었다는 사실이 후일 밝혀졌던 것이다.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만은 이 땅에 새하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아시고 삿갓을 쓴 도사님으로 변장을 하여 은밀히 찾아와서 세 살 나신 새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 구례산판을 하시며 어리신 성주님께서 자라나시는 모습을 뵈려고 그 마을을 자주 지나면서 드나드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도 새하나님 앞에는 땅바닥에 엎드려 경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죄인들이 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오히려 그렇게도 고대하던 새하나님을 뵙고 경배를 드리는 일이야말로 엄청난 영광이요 축복을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경에 서울에서 박홍래 선교사라는 사람과 권연진 회장님과 함께 성주님을 찾아왔었다. 그런데 전라북도 정읍을 지나면서 권 회장님이 전도자 이모(某) 씨에게 말하기를 “성주님을 뵈올 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질문을 하자, 이모(某) 씨가“성주님을 뵈올 때에 사람들이 삼배 경배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권연진 회장님이 “나는 모태로부터 기독교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까지 부모님에게도 절을 하지 않았으며, 산 사람에게는 절대로 절을 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 위에서 권연진 회장님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는 절을 해도 되느니라.”라는 영음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권 회장님은 성주님을 뵈옵는 자리에서 “저는 모태 기독교인으로서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 평생에 처음으로 성주님께 절을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경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박홍래 선교사는 영안이 열려서 성주님의 참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던 것이다. 성주님과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성주님 앉으신 뒤로 천군천사들이 구름떼 같이 둘러서 호위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던 것이다. 성주님이 움직이시는 때는 항상 그렇게 수많은 영들이 호위하며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 저승사자도 함께 와있는 광경을 보고 놀라면서 “누가 감히 성주님을 대항했다가는 여지없이 작살나겠더라.”고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 놀라며 돌아갔다. 성주님은 분명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은 처음부터 성주님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을 아무도 모르게 큰 성안에 모셔놓고 그 앞에 부복하여 이마를 땅에다 대고 음부보다 천만 배 억만 배 더 낮은 데로 떨어지는 심정으로 아버지여 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구더기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누추한 것이 감히 아버지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어!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해!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입술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하소서!’… 내 가짜 그것 가지고는 안 되게 되어 있어.… ‘그러나 때리는 것만큼은 당신이 하소서!’ 하고 지금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1981년 1월 3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아무도 모르게 성안에 감추어 모셔놓았다는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날 삼천년성 안에 계신 감추었던 한 씨의 새하나님이신 판석 성주님이시다.
이처럼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도 새하나님 앞에는 이마를 땅에다 대고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구더기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누추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곧 죄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박태선 장로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 가짜 그것 가지고는 안 되게 되어 있어!… 그러나 때리는 것만큼은 당신이 하소서!”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태초의 하나님은 인류를 영생을 주지 못하시니 구세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린다는 것은 심판을 뜻하니 심판주 구세주 새하나님이 바로 오늘날 삼천년성의 성주님이시다.
태초의 하나님은 마귀에게 패하심으로써 전지전능의 능력을 상실해버리신 것이다. 전지전능은 곧 마귀를 멸하는 권능인 것이다. 오늘날 구세주 새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을 회복하시고 비로소 우주의 마귀를 모두 멸하시고 새 세상을 만드시게 되는 것이다. 박태선 하나님은 이긴자 새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긴자 같이 끌어 올 자가 없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은혜를 끌어올 자가 없어! 이긴자가 아니면 역곡에 끌어올 자가 없어! 그 이긴자같이…”라고 하셨고, “두 달 만에 의인이 되면 그 피의 권세에 그 하나님의 태초의 하나님의 권세보다 그 피의 권세니끼니…그 피의 세력이 높은 이긴 피의 그 맨 꼬리라도 그 정도 되니끼니…소사에서 그때 두 달 만에 의인들이 됐으면 상당히 센 층이 되거든 …아 그래놔서 권세와 권능과 능력과 그 힘과 창조력이 그 이제 무한하게 태초의 하나님보다 끝없이 높은 고로 신이 다 되는 거야! 그 말 알았어? 뭐 세계에서 최고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필요가 없어! 어? 내 가지를 당할 사람이 없단 말이야!” ------ 1980. 8. 23. 박태선 하나님 ------
라고 말씀하셨던 그 이긴자가 바로 성주님이다. 소사에서 두 달 만에 의인이 되어 나오신 성주님은 태초의 하나님(박태선 장로님)보다 그처럼 끝도 한도 없이 높으신 새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성주님의 가장 대표적인 구세주의 권세와 능력은 바로 성주님께서 1982년 6월 17일에 200여 명에게 몰매를 맞아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성주님께서 이긴자가 되셨다는 사실은, 곧 유사 이래 처음으로 사망의 신 마귀를 죽이고 승리하여 부활하심으로 구세주의 능력이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단 한 마리의 마귀를 죽이는 능력만 소유하셔도 온 우주의 마귀를 전멸시킬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리하여 단 한 명의 이긴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곧 전 인류가 다 이긴자가 되고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과거에 박태선 장로님이 “내가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하여 백마를 타고 와서 심판을 할 거야!”라고 하신 말씀도 당신은 구세주가 아니요, 둘째 반열(白馬)을 타고 세 번째로 출현하시는 삼천년성의 성주님이 삼위일체 완성자 구세주라는 뜻이다.
위에서 창조주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당신은 가짜라고 하시며, 당신이 하나님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큰 성을 쌓고 그 성 안에 모셔놓았다고 하셨으니, 곧 오늘날 삼천년성을 암시하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전도관이나 승리제단은 교단 명칭 그대로 제사를 드리는 제단일 뿐이지 성은 아니다. 교단 명칭을 ‘삼천년성’이라 하는 오늘날 삼천년성을 분명하게 지칭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은 감추었던 한 씨의 새하나님 앞에는 구더기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누추한 죄인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기 때문에 새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이마를 땅에다 대고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음부보다 천만 배 억만 배 더 낮아지는 심정으로 ‘아버지여! 이 구더기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누추한 것이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입술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하소서!’ 하고 지금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새하나님은 그토록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항상 단에 설 때마다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실 때 바로 이 감추었던 한 씨의 새하나님이신 성주님을 향하여 바라보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새하나님이신 성주님 한 분밖에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1986년 5월 이슬성신절 행사 때에 박태선 창조주 하나님께서 “찬양을 성주께 드리어라!”라고 친히 찬송인도를 하셨던 것이다.
이는 바로 ‘이제는 태초의 하나님인 나에게 찬양하지 말고, 오직 새하나님인 성주님께 찬양하라!’라는 뜻이다. 이는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시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라고 한 그대로 세상에서 찬양과 영광과 경배와 만세삼창을 받으실 분은 오직 말세에 출현하시는 만왕의 왕 구세주 새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관상학 상으로도 성주님은 천상천하에 이보다 더 높으신 상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최고로 높으신 미륵부처님 상이라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상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박태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1980년도 경에 “이현석 관장님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질문하는 당시 이진희 전도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현석 관장님은 아주 귀─하고 귀하신 분이야! 그러나 이현석 관장님을 절대 함부로 만나고 그러면 안 돼. 조심해야 돼!”----- 박태선 창조주 하나님 말씀 -----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이렇게만 감추어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은 성주님이 바로 감추었던 새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자세히 밝히지 않으시면서, 무지몽매한 죄인들이 감히 하나님을 두려운 줄 모르고 경솔하게 함부로 만나고 무례히 대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함부로 만나고 불경스럽게 대하면 안 된다.”고 엄히 당부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진희 전도사님은 이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였으며, 다만 축복일 때마다 이현석 관장님을 찾았으며, 만나서 인사를 하지 않고 먼 거리에서 이현석 관장님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가곤 하였다고, 1999년도 경에 부천 역곡의 변모 성도님 댁에서 여러 성도님들 앞에서 고백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전도관의 영모님께서는 성주님을 만나 뵙는 자리에서 언제나 두 손을 가지런히 합장을 하시고 매우 공손한 자세를 취하시면서 말씀도 아주 정중하고 공손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박태선 장로님은 그때도 성주님을 알아보시고 그와 같이 예를 갖추어 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태선 장로님께서 1980년도에 영모님 응접실에서 전국 144명 중앙관장 전체 회의석상에서 “여기 144명 중앙관장님들 이 가운데서 앞으로 아담 이긴자가 나오게 되어 있어!”라고 분명하게 밝히셨던 것이다. 이 말씀도 역시 그 시간 그 자리에 함평 중앙관장으로서 중앙관장회의에 참석하신 성주님을 적시(摘示)하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말세의 주인공 이긴자 구세주는 1980년도에 전도관에서 중앙관장으로 시무하신 분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 후에 승리제단의 조희성 해와 주님은 “이긴자는 전직 전도관 관장 출신인 것이올시다!”라고 증거를 하셨던 말씀도 똑 같이 성주님 한 분을 적시하여 증거를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현석 관장님(성주님)은 전도관에서 12년간을 전도사, 중앙관장 직책으로 성직 생활을 하셨으므로 전직 전도관 관장 출신이지만, 역곡 조희성 전도사님은 11년간 육군 장교생활을 하신 분이기 때문에 전직 육군 장교출신인 것이다.
이는 비유로서, 마치 성경에 이삭의 아들 쌍둥이 형 에서와 아우 야곱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형 에서는 사냥을 즐겨하는 무사풍의 성품이었으며, 아우 야곱은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드리면서 학문을 힘쓰는 학자풍이었고 도인 풍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박태선 장로님은 태초의 하나님으로서 감추었던 한 씨의 새 하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러 먼저 나타나신 오리라 한 엘리야였으며, 역곡의 해와 주님은 엘리야와 동행한 엘리사였던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은 당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당시에 신앙촌 간부들을 추운 겨울날 자택 10번 경비실 정문 앞 마당에 모아놓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앞에는 엎드려서 경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시며 모두 땅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게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셨던 것이다. 죄인들이 어찌 감히 하나님 앞에 버젓이 서서 얼굴을 뻔뻔하게 쳐들고 나아올 수가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성주님은 또한 불교의 비로자나부처님인 것이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땅에 한 번도 현신하여 나타내신 적이 없으시며, 도솔천에 계시다가 말세에 미륵부처님으로 사바세계에 현신하시어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실 생 미륵불이요, 새 부처님이다. 이 세상에 소위 부처라고 하는 석가 등 모든 부처들은 사람이 공부를 하고 성도를 하여 부처가 되었으나, 비로자나부처님은 본래부터 부처님이요, 청정법신이며, 석가가 구원하지 못한 일체 중생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낮고 낮은 사바세계에 강림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