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2박 2일] 봉평·대관령
달빛 물든 메밀밭서 '하얀 가을'
봉평의 메밀밭. 아이들이 하얀 파도에 잠겨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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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문화제(5~14일)가 열렸던 강원 평창군 봉평(면)은 흥겨운 잔칫집이었다. 인파와 흥겨움이 넘쳤다. 소박한 메밀꽃은 화려한 공주처럼
사랑을 받았다.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꽃은 지지 않았다. 가을의 감성으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진정한 정한(情恨)으로 다가가는 여행은 잔치 이후이다. 텅 빈 꽃밭에서 계절의 오고 감을 실감한다. 내친
김에 대관령의 언덕에도 올라본다. 서서히 푸른 빛을 잃어가는 너른
초원에 서서 가을을 마중한다.
준비
봉평 인근에서 1박, 횡계에서 2박을 한다. 봉평 인근의 가장 큰 숙박시설은 보광휘닉스파크(033-333-6000). 요즘은 비수기여서 객실이
넉넉하다. 잘 살펴보면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 분위기 좋은 숙소를
원한다면 팬션을 택한다. 가을동화(332-0098), 별빛사냥(335-6770),
한스타운(333-3114) 등 깔끔한 팬션이 많다. 횡계에도 거대한 숙박시설이 있다. 용평리조트(1588-0009)이다. 역시 비수기여서 객실이 많다. 스키장이 모여 있는 횡계와 봉평에는 민박집 등 숙소가 많다. 잠자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출발(금요일 오후 6시30분)
벌개미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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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만 없으면 서울에서 2시간30분이면 닿는다. 그러나 주말임을 감안해야 한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빠져 6번 국도로 장평교를 넘으면 봉평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저녁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
하행선의 경우 여주휴게소의 한식당과 문막휴게소의 우동전문점이
맛깔스럽게 음식을 낸다.
봉평 나들이(토요일 오전 9시)
바쁜 하루다. 우선 메밀밭에 간다. 봉평중학교 앞에 넓게 펼쳐져 있다.
사진기는 필수. 메밀밭 인근의 가산 이효석 생가에 들른다. 다른 꽃도
볼 수 있다. 보라색 벌개비취다. 메밀밭 사이사이에서 묘한 색의 조화를 이룬다. 색다른 꽃밭으로 이동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허브나라가
있다. 흥정천이라는 맑은 계곡을 끼고 있다. 오색의 꽃색깔과 갖가지
향기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점심식사는 물론 메밀국수(막국수)이다. 초가집옛골(033-336-3360),
풀내음(335-0034), 고향막국수(336-1211) 등이 유명하다.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봉평 메밀국수
◇ 소설과 현실 아우르는 쫄깃한 면발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나 어디 없이 하얀 꽃밭이다….’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설의 무대인 강원도 봉평장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메밀묵이나 메밀국수의 그 하얗고 쫄깃쫄깃한 면발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봉평의 산골 개울가에서 반딧불이가 환상적으로 날고 있는 풍경 하며, 물방앗간의 그 희게 부서지는 여름밤의 정서는 또 어떤가.
이 모든 것이 곧 맛으로 살아날 때 우리 한자말로는 백면(白麵)이라 하는데, 일본에서 자랑하는 음식 ‘소바’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17세기 중엽 장씨부인이 쓴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메밀국수
조리법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메밀을 물에 잘 씻어 너무 말리지 말고 알맞게 말린다. 껍질을 벗긴다. 알갱이를 고운 가루로 만들려면 미리 물을 품어 축축하게 해둔다.
한편 녹두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 거피(去皮)한 것을 물기가 빠지게
둔다. 메밀 알갱이 닷 되에 거피한 녹두 한 복자씩을 섞어 방아를 찧는다. 껍질은 키로 까불어 버리고 흰 알갱이만 모아 다시 찧으면 매우 흰
메밀가루를 얻는다. 면을 반죽할 때엔 더운물에 눅게 말아 누른다. 그러면 빛이 희고 좋은 국수발이 된다.’
이렇게 조리법만 읽어도 그 맛이 정겹게 우러나는 것이 우리의 메밀국수다.
2일과 7일은 마침 봉평 장날이었다.
평창읍에서 대화장을 거쳐 봉평 장날까지 옛 정취를 더듬어가는 발길은 허생원이 나귀를 몰고 가는 그 밤길처럼 정겨웠다.
봉평에 이르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기리는 가산(可山)공원이 있다. 때는 5월이어서 팥배나무
한 그루가 공원 마당에 흐러드러지게 피었다. 그 한 마장쯤 거리에는
기념관 건립 공사가 한창이고, 이윽고 충주집이 있다. 그 곁마당에 ‘옛골’(033-336-3360)이라는 메밀국수집이 자리잡고 있다. 관광객으로 붐빌 때는 메밀전골이 주 메뉴로 등장한다. 냄비에 생국수발을
넣고 육수에 삶아내는데 콧등치기 국수 비슷하게 쫄깃거리는 맛이 일품이다.
메밀전골을 맛있게 먹은 후 이효석의 소설로 다시 들어가 본다.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으로 소문났던 성서방네 처녀와 정사가 있었을 듯한 물레방앗간과 나귀가 섰음직한 구윳간도 현재 복원되어 한결 옛골의 정취를 돋우고 있다.
바로 그 물레방앗간이 하얀 물보라를 쏟아내며 지금도 강한 암시를
던지는 알리바이 현장이다. 더구나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조선달, 허생원, 동이)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맛에 적적하지는 않았다”“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는 암시 부분에서 동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알리바이치고는 픽 웃음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알리바이가 탄생함을 본다.
지금 물잎새를 쳐내는 물레방앗간 앞에서 사진을 찍다 말고 쫄깃거리는 옛골의 메밀국수 가락을 떠올려 본다. 그 맛은 소설과 현실이 어우러지는 봉평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향토성의 맛 그대로임이 분명하다.
고원여행(오후 1시)
다시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횡계IC에서 빠진다. 옛
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터까지 간다. 과거 가장 높은 곳에서 동서를
호령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휴게소 건물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상행선 휴게소 위로 길이 나 있다. 약간 오르면 양떼목장이 나타난다.
인근 신랑신부들의 야외 촬영장으로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언덕이다.
목장을 빙 돌아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양떼목장에서 나와 용평리조트로 들어간다. 스키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른다. 발왕산(1,458㎙) 정상까지 곤돌라를 운행한다.
17분간 곤돌라를 타고 대자연을 발 아래로 굽어본다. 꼭대기에서도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용평리조트를 나와 우회전하면 도암댐으로 가는 길이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운치가 있다. 깊은 계곡을 가로막아 만든 도암호는 아름다운 인공호수이다. 그러나 정선으로 흘러드는 송천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떠올리면 흉물로 돌변한다.
황태 저녁식사(오후 7시)
횡계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황태. 당연히 황태요리가 유명하다. 황태회관(033-335-5795) 등 횡계 시내 식당의 절반 이상이 황태요리집이다. 황태국을 제외한 메뉴로 식단을 짠다. 황태국은 다음날 아침 해장용으로 남겨두자. 불고기, 구이, 찜 등 다양한 황태요리가 있다. 저절로 소주를 주문하게 된다.
대관령 옛길 트레킹(일요일 오전 9시)
대관련 박물관의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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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국으로 속을 달래고 신발끝을 동여맨다. 대관령 옛길 트레킹을
떠난다. 옛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강릉쪽으로 약 4㎞ 내려가면 ‘대관령 옛길’이라는 비석이 나온다. 비석 옆으로 길이 있다. 지금의 고속도로가 새길, 옛 고속도로가 옛길이라면 이 길은 원조 옛길인 셈이다.
신사임당이 고향을 떠나 한양으로 갈 때 이 길을 걸었다. 어깨동무하고 4명 정도가 걸을 수 있는 폭이다. 쉬엄쉬엄 걸으면 약 2시간. 편을
갈라야 한다. 가져온 차를 옛길의 끝지점인 대관령박물관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경포대까지는 차로 약 20분. 동료들이
트레킹을 하는 동안 간단하게 경포 앞바다의 파도를 구경할 수 있다.
점심 먹고 출발(오후 1시)
강릉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경포대 관광단지는 먹거리 천국이다. 생선회에서 돌솥밥까지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든든하게 먹고 출발한다. 돌아올 때에는 새 고속도로로 대관령을 지난다.
영동고속도로 상행선의 형편이 좋아졌다. 상습정체구역이던 여주 이천 구간이 편도 4차선으로 뻥 뚤렸다.
/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화보] 봉평 메밀밭
글 : 이항복 월간중앙 기자 (booong@joongang.co.kr)
메밀꽃 하면 새삼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 하나면 충분하다. 그 누가 달빛에 젖은 메밀밭, 그 서정 가득한 정경을 몇 자 글로써 한 폭의 수채화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정작 이효석이 묘사한 메밀밭 정경은 겨우 한두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메밀꽃 하면 이효석을 연상하는 이유는 그 속에 고단한 삶과 애틋한 인연이 한데 어우러져 서정적 울림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함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젊은 세대들은 메밀 하면 살 안 찌는 다이어트 식품 혹은 특별한 입맛을 찾는 미식가들의 기호식품으로 여긴다. 또 초가을 서정을 맛보기 위해 평창의 메밀밭을 찾지만 사실 메밀은 척박한 이 땅의 가난을 상징하는 곡물이었다.
이효석 당시는 물론 그 한참 후까지도 메밀은 가뭄에 강하고 척박한 화전에서도 잘 자라 대표적 구황(救荒)식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막국수’ 역시 메밀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막 만들어 주린 허기를 때우던 먹을거리였다.
어쨌거나 가장 흔해빠진 골칫거리 잡초인, 3년 묵정밭의 개망초꽃보다
볼품 없는 메밀꽃이 관광상품화된 것은 온전히 이효석에게 힘입은 바
크다. 그러니 메밀꽃 구경을 가자면 꽃구경은 물론이고 이효석의 자취와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까지 찬찬히 뜯어볼 일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탄생할 당시, 평창 하면 그야말로 심심산골이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평창은 이웃한 원주에서조차 사람 살 데가
아니라는 취급을 받았을 정도다. 그러나 이즈음 평창은 그 특유의 자연조건으로 수많은 레저 시설이 들어서고 겨울이면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각광받는 관광지가 됐다.
그에 힘입어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단 잠잘 곳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여기저기 제법 볼거리도 충분히
갖췄다.
풍요와 여유를 읊조려야 할 이 시절, 그러나 풍파 겹치는 현실에 짓눌려 잠깐의 여유조차 찾을 길 없는 이 가을, 산자락에 걸린 은하수의 긴
꼬리가 달빛에 젖어 흐늘거리는 그곳, 봉평으로 발걸음을 옮겨 한 포기
메밀꽃인 양 흐늘거리며 시간을 죽여 봄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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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03년 10월 01일 335호 / 2003.10.01 14: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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