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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한글성경(개역한글,개역개정성경등)을 보다 보면 '예언'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말로는 '예언'이라고 모두 한결같이 표현이 되어 있으나, 2가지의 다른 뜻을 지닌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이라는 단어들이 있어서 그 의미상의 차이를 성경본문을 기초로 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그래야만 성경기록속에서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교리가 가능하고 혼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지금도 '예언의 은사?가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그 '예언'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이 때의 예언이 위의 2가지 예언이라는 단어들 곧 '예언'(豫言,prediction)과 '예언'(預言,prophecy,대언)중 어느 것에 속하는 지는 누구나 평생 한번은 잘 분별하여 꼭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에 속합니다.
저처럼 지금까지 현대 개신교회에 속하면서 교회는 오래 출석하였지만,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기초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좀처럼 몸에 익숙하지 않은 성도들 대부분은
엄청난 예언'(豫言)의 은사를 가진 어떤 사람으로부터 예언'(豫言)을 받았다며 그것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장차 목회자나 사모(목사의 아내)가 되겠다든지 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예언'(豫言)을 받아두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그 예언'(豫言)의 말을 늘 마음에 새겨두며 사업이나 개인직장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일상적인 어려움이 조금이라도 닥치면
'결국은 자기의 갈길은 목회자의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우왕좌왕하면서 다시 방황하기가 일쑤입니다.
꼭 목회자의 길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는 우리의 일상에서 수없이 많이 발생합니다.
저는 지금 오늘날 우리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속에서(=성경기록밖에서) 일방통행처럼 오랜동안 잘못 믿고 확신하도록 강제되어져 온 '예언'(豫言,prediction)은 끝났다는 점과,
'예언(豫言)의 은사'라는 것은 이 시대에 결코 있지도 존재하지도 않음을 미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기록안에서는 어떤가요? 당연히 성경기록안에 '예언의 은사'가 존재합니다.
다만, 오늘 서두에 본문으로 제시한 구절인 고전12:10절과 고전14:1,3,4,5,6절에서 말하는 '예언'은 豫言(prediction)이 아니라 預言(prophecy)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 이해하시고 성경기록의 전후본문을 잘 읽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성경기록을 통해서 말하더라도,
고전12장과 고전14장등을 통해 '예언의 은사'가 있다는 이야기나 주장들을 수없이 많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저도 그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아마도 오랜동안 그랬을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순진하기만한 수많은 한국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성경에 분명히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하는데, '왜? 없다!'라고 하느냐는 의혹을 돌을 던지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아마 상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이 좀 다소 길어진다 하더라도 '차분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with calm and in soberness)' 성경기록에 존재하는 '예언'이라는 [두 성경단어들]에 대해서 한번은 독자분들과 같이 깊이있게 잘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예언'이라 말을 대하는 순간, 한자어로 '豫言'(=prediction)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수성도들의 생각과는 달리, 성경기록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예언'은 '豫言'이 아니라 동음이의어인 '預言'을 뜻합니다.
'예언'(預言,prophecy)은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기록대로, 받은 그대로 전달하는 말'로써 오늘의 본문으로 채택되어진 고전12:10절과 고전14:1,3,4,5,6절에 해당하는 예언 곧 대언(代言)을 말합니다.
쉬운 예로, 우리는 거래하는 은행에 가면 '예치금(預置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행에 맡겨둔 '예치금'(=맡겨둔 돈)을 '예금(預金)청구서'를 통해서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게 됩니다.
예치금과 같은 용례로 고전12:10;고전14:1,3,4,5,6절에서도 예언('預言')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예언자(預言者)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기록대로) 맡은자'라는 뜻입니다.
예언(預言)이라는 말이 한자적으로 쉽사리 잘 구분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저는 예언(預言)이라는 말 대신 더 정확한 의미를 지닌 대언(=prophecy)라는 말의 사용을 권해드립니다.
영어성경에 있어서도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에 해당되는 말은 엄연히 다릅니다.
영어단어에 predict(명사형-prediction,예언-豫言)라는 단어와 prophesy(명사형-prophecy,예언-預言)라는 단어는 둘다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다시 한번 더 설명드립니다.
가) 'predict'란 동사는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라는 의미의 예언(豫言)을 의미하며,
나) 'prophesy'란 동사는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직접 말씀대로 또는 기록대로) 사람들에게 그대로 잘 전한다'는 의미의 예언(預言)을 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나는 '선지자'(이전에는 선견자,Seer라 했음)를 때로 '예언자'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때 예언자는 '예언자'(豫言者)가 아니라 '예언자'(預言者) 곧 대언자(=Prophet)입니다.(삼상9:9)
'(예전에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여쭈려 할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더라. 지금 대언자라 부르는 사람을 예전에는 선견자라 불렀더라.)'-킹제임스흠정역성경 삼상9:9
'(Beforetime in Israel, when a man went to inquire of God, thus he spake, Come, and let us go to the seer: for [he that is] now [called] a Prophet was beforetime called a Seer.)'-영어킹제임스성경 삼상9: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개역한글성경 삼상9:9
(Formerly in Israel, if a man went to inquire of God, he would say, "Come, let us go to the seer," because the prophet of today used to be called a seer.)-영어NIV성경 삼상9:9
선지자 곧 예언자(預言者)는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을 미리 점치듯 말하는 방법으로 예언('豫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하나님께 받아서 맡아 두었다가(=은행의 예치금처럼 맡아두었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임받은 말씀그대로의 온전한 뜻을 잘 전달하는 자들' 곧 '대언자들'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예언자를 '나비'(נָבִיא, 복수형 느비임נְבִיאִים)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뜻인 '나바'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헬라어에서도 예언자를 '프로페테스'( προφήτης )라고 하는데 이 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의미의 '프로페테우오'에서 나왔으며 이 말이 곧 영어의 Prophet의 어원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말 한글성경 번역본들에는 여전히 많은 번역오류문제가 있습니다.
성경 본문 가운데서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예언이라고만 표기하게 되면, 그 단어자체의 본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예언'이 예언(豫言)인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한자가 병기되지 않은 성경책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보다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은 한자를 병기한 성경들 가운데서조차도 예언(預言)이라고 해야 할 부분을 예언(豫言)이라고 병기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선지서들에는 예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예언들은 거의 'prophecy'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預言) 가운데는 예언(豫言)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의 예언(豫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預言)'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제시해 드린 고전12장과 14장에 나오는 예언도 'prediction'이 아니라 'prophecy'를 뜻합니다.
그런데 고전12:10과 고전14:1, 3, 4, 5, 6절에는 계속하여 '예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한자말로 한결같이 '豫言'이라고 번역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다수의 영어성경들(KJV,NIV,ASV,RSV)을 보면 한결같이 'prophecy'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豫言'이라는 한문성경들의 한자어 단어들도 분명 '預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공동체안에서 성경에 기초한 교리가 마음판에 잘 정립되어 있지 않은 연약한 지체들의 경우에 '예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바른 계시와 그분의 뜻'을 바르게 알고자 함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막연한 불안감과 궁금증'을 풀어 보려는 또는 해소해 보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불신자들이 주로 예언(豫言)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서양에서 성행하는 점성술이나 우리 한국의 점쟁이들이 하는 것이 그런 예언(豫言)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계시와 뜻이 온전히 드러나 있기에, 하나님의 예언(預言)된 '66권의 말씀 곧 계시의 완성'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하고 또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분명하게 말씀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예언'(預言)이 없습니다. 이것을 '계시의 종결 또는 완성'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신구약 성경 66권이 '유일한 예언(預言)'인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기록에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데 이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갈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그리고 우리시대에 '예언(豫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란 결코 있을 수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교리적으로 어지럽고 암울한 우리의 불신앙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예언(豫言)의 은사를 받은 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면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는 알아 맞추고 일부는 틀리면서 '사람이란 완전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변명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거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특히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리라 생각됩니다만 간단하게 한 두어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국한되는 은사입니다.
이는 성경말씀이 완전한 계시(예언,預言)의 완성으로 주어지기 전,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방편으로서 허락하신 일시적인 특별한 은사(영적인 선물, spiritual gift)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그러한 '예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보수주의 신학들 모두가 동의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르침에 속합니다.
둘째, 우리시대에 굳이 적용을 하려 한다면, '예언의 은사'의 의미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잘 해석하여 교회 앞에 바르게, 그대로 잘 선포하는 은사(영적인 선물,spiritual gift)'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預言)인 계시를 드러내는 은사라는 측면에서 입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라는 것이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을 예언(豫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고 분명합니다.
말씀이 약한 시대가 도래 할수록 사람들은 누구나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사람들이 하는 예언(豫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이며 자신들의 본성에도 잘 맞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다수의 교회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 허튼 자들의 미혹의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잘 무장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혹이라도 누구든지 이런 방법들로 어떤 예언(豫言)을 받은 적이 있다거나 이로 인해서 부담스럽거나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자신의 믿음가운데에 있어 왔다면
말씀에 기초하여 모두 말끔히 잊어버리고 예언(預言,대언,Prophecy)에 기초하여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람의 예언(豫言) 대신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예언(預言) 곧 '대언'(Prophecy)에 귀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로 인해서 바울이 고전14:3-5절에 말한 '대언하는 자'와 '알지 못하는 언어(=타언어)로 말하는 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현대 교회공동체안에서 '자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일'(고전14:4)에 탁월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대언'과 '타언어'(당시 통역이 필요했던 '방언' 곧 '여러지역의 사투리' 또는 '외국어'등)이라는 영적인 선물들(=spiritual gifts)에 뛰어나기를(고전14:12)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고전14:3)
*고전14:3절의 '대언하는 자'는 '예언(預言)하는 자'를 말하고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고전14:4)
'나는 너희가 다 타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되 특별히 대언하기를 원하노니 타언어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가 세움을 받게 하지 아니하면 대언하는 자가 그보다 더 크니라.'(고전14:5)
*고전14:4-5절의 '알지 못하는 언어'와 '타언어'는 우리말 성경에서 '방언'이라고 번역된 부분입니다.
*이는 천사의 말도 아니며 사람사이의 통역이 필요했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타언어, '방언' 곧 여러지역의 사투리, 당시의 외국어등)입니다.
첫댓글 예언과 예언이 다르다? 한글로는 같으나 그 의미가 다름을 확실하게 알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해요